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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출29:2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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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 참고 : | 1012.10.16 새벽예배-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출애굽기(85) 성도에게 필요한 3대 의식
(출애굽기 29장 29-37절)
제사장직은 아론 가문으로 배타적으로 세습되었습니다(29절). 그것은 왕 같은 제사장인 성도에게 언약의 상속자 의식이 분명해야 함을 도전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켜 행하면 그 길이 평탄하고 형통하게 된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받을 상속자가 없으면 성공해도 진짜 성공이 아닙니다. 결국 상속자 의식은 성공적인 삶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왜 상속자 의식이 중요합니까? 첫째, 성경적 성공은 성공하는 순간을 넘어 인생의 긴 여정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의 상속’은 ‘잠깐의 이익을 얻는 성공’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둘째, 성경적 성공은 후대를 위해 좋은 것을 남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성공은 남의 성공의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셋째, 성경적 성공은 자기 이름을 내는 것은 아니라 미래의 길을 예비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성속의 일원론 의식
위임식을 할 때 위임식 숫양을 취해 성막 뜰에서 그 고기를 삶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회막문에서 그 숫양의 고기와 광주리에 있는 떡을 먹었습니다(31-32절). 원래 화목제는 제물을 드린 사람과 제사장들이 그 제물을 함께 먹으면서 절정을 이룹니다. 그런데 제사장 위임식을 위한 화목제는 오직 아론과 그의 아들들만 식사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33절). 이 규례를 보면 하나님이 제사장들의 먹는 문제에 상당히 신경을 쓰심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목회자는 의식주 문제를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야 은혜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 성속이원론 사상은 바람직한 사상이 아닙니다. 물론 목회자가 너무 의식주 문제에 신경 쓰면 은혜가 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목회자는 헐벗고 굶주려봐야 설교가 깊어져!”라고 하며 목회자의 의식주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복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목회자가 의식주 문제까지 신경 쓰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 써주는 것이 복된 일입니다.
3. 하나님께 성결 의식
위임식 때 남은 고기는 어떻게 처리했습니까? 당일에만 먹고 나머지는 모두 소각했습니다(34절). 고기를 오래 남겨두면 부패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거룩한 의식에 사용된 거룩한 음식이 가볍게 취급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출 23:18). 결국 이 규례는 성결한 삶을 강조합니다.
또한 7일 동안 위임식에서 매일 수송아지로 속죄제를 드릴 때 제단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함으로 제단을 위해서도 속죄의식을 행했습니다(36절). 그렇게 7일 동안 제단을 위해 성결의식을 행하면 그 제단도 거룩해지고 그 제단에 접촉하는 모든 것도 거룩해진다고 했습니다(37절). 이 장면도 역시 하나님이 성결함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 거룩함을 추구하십시오 >
‘거룩한 삶’이 무엇입니까? 첫째, ‘분리하는 삶’을 뜻합니다. 거룩함은 악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악으로부터 분리되어 멀리하는 것입니다. 둘째, ‘채우는 삶’을 뜻합니다. 즉 죄로부터 분리된 빈 마음을 하나님이 실제로 선한 것으로 채워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면 그때 그 몸에 하나님이 축복의 집을 지어주시면서 거룩한 삶의 건축이 이뤄집니다.
어느 전망 좋은 곳에 한 판잣집이 있었습니다. 한 부자가 그 장소를 사려고 하니까 판잣집 주인이 돈을 더 많이 받고 팔려고 그 집을 수리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래서 무너질 것 같은 지붕에 새로운 짚을 깔고 지저분한 벽에 흰 페인트를 칠합니다. 그 모습을 부자가 보면 얼마나 민망할까요? 그렇게 있는 힘을 다해 수리해도 그 집은 여전히 판잣집이고 그 집에서 부자는 결코 살지 못합니다.
부자가 원하는 것은 판잣집이 아닌 집터입니다. 그래서 그 집터를 사면 그 판잣집을 완전히 부수고 부자가 원하는 대로 새 집을 지을 것입니다. 그처럼 부자가 판잣집 대신 집터를 원하듯이 하나님도 ‘우리’라는 집터를 원하지 ‘스스로 건축한 우리 자신의 어떤 모습’을 원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자신’이란 판잣집을 뜯어 붙이고 수리하는 것은 하나님께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거룩함은 투쟁을 통해 얻어지는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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