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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층종교, 심층신앙

마태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857 추천 수 0 2012.11.15 15: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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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4:1-11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1.7.25 주일 2부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표층종교, 심층신앙
마 4:1-11

오강남 교수가 새로운 책을 냈습니다. 제목이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입니다. 청장년들에게는 이 번 주에 이 책을 읽고 모임에 올 것을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모두 읽으실 수 없으니까, 그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이제는 종교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적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교의 표층에 머무를 게 아니라 깨달음을 골자로 하는 종교의 심층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말하는 ‘심층종교’란 무엇일까요? 저는 이 책에서 그 이야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예수님께서 유대종교에 반대하여 새로운 가치와 생존 질서를 말씀을 통해, 삶으로 우리에게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터득해야 할 ‘심층 종교’ ‘심층 신앙’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심층 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예수께서 시험받으신 이야기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무대는 갑자기 광야에서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또 이 세상 모든 나라와 영광을 보여줄 수 있는 높은 산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설정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서에 나오는 말씀들을 사실적 묘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공생애 출발을 앞둔 예수의 결단과 준비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절을 보세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누구나 아는 것처럼 첫 번째 시험은 경제 문제, 민생의 문제입니다. 예수께서 40일 금식 후 주리셨을 때 이 시험이 다가왔습니다. 우리도 60년대 이전만 해도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고 언제나 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이럴 때 유혹이 찾아옵니다. 미군정기에 엄청난 원조물자가 들어오면서, 농산물 가격을 폭락시키고 우리 경제를 왜곡시켰는데, 굶주린 사람들에게 그런 문제는 보이지 않았고 빵만 보였습니다. 그 빵을 가져다주는 미국을 선망하게 되었습니다. 해방정국에서 입국한 미국 선교사 집단은 대부분 보수적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고 선교모국의 막강한 재정 지원을 가지고 한국 사회와 교회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남한의 궁핍한 상황에서 미국의 원조 물자는 남한의 대중들과 기독교 신자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빵의 유혹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주는 빵을 먹으면서 미국은 자유, 인간의 존엄성,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고, 세계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신으로부터‘선택함을 받은 기독교 국가’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크리스천들은 그 빵에 현혹이 되어서 미국인, 미국 국가를 기독교 문명이나 복음 그 자체와 소박하게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왜 제가 이런 해방 전후의 역사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예수 시대 갈릴리 상황은 해방정국이나 60년대 우리 상황보다 훨씬 더 열악했다는 것을 알려 드리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는 쉴 새 없이 빵의 유혹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당신이 우리를 구하려면 먼저 민생 문제부터 해결해 주시오. 그것을 못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오. 모세도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주지 않았소. 민중이 민생고의 도탄에 빠져 있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민중을 구하느냐. 먼저 먹을 것을 주어야 할 게 아닌가. 내가 저 많은 돌을 떡이 되게 한다면!”

그러나 예수는“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4절)는 말씀으로 그 유혹을 물리칩니다. 어쩌면 이 생각은 식량난의 궁핍에 빠진 당시의 군중들을 설득 할 수 없는, 구름 빵 같은 이야기 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물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굶주렸을 때 그들에게 주셨던 만나는 뭐냐고 말입니다. 그것은 그저 굶주림을 면하게 해주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빵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진리, 아무리 빵 문제가 중요하다 해도 그것만으로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돌로 떡을 만드는 기적이 아니라, 나눔의 기적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흔히 경제학자들은 경제를 살리려면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하거나 분배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구원은 이른바 파이를 크게 만드는 대기업에 있는 것도, 그 파이를 분배하는 정부에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파이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고백하면서, 적은 수지만 모여서 친교를 가지고 나눔을 실천하는 이 교회 공동체에 구원이 있는 겁니다.  

6절을 보세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실 것이다.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 너의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다.’”
 
두 번째 시험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시험인 것입니다. 모세를 따르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목이 마르자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그들을 살려주시고 새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에게 요구하기를, 바위를 쳐서 물을 내 보라 그러면 내가 믿겠다 이렇게 시험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에서 주께 대들었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므리바라고도 하고, 또 거기에서 "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 하면서 주를 시험하였다고 해서, 그 곳의 이름을 맛사라고도 합니다.(출 17:7)

표현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감히 사람이 어떻게 주께 대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바로 그런 불경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이 없다는 것과 동의어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무슨 보장을 받고 믿을 것인가, 아니면 내 삶이 주의 것이니, 무조건 주께 맡기고 복종할 것인가? 예수의 두 번째 유혹은 바로 이런 양자택일 앞에 자신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실증을 받고 보장을 받으면 마음이야 편하지만, 주님의 뜻에 나를 무조건 내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하지만 무조건 내맡기는 것은 그 누구도 보장해 주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러다가 나만 손해 보고 끝날 수도 있습니다. 모험입니다. 이 두 가지 가능성에서 예수는‘나는 비록 망하더라도 하나님을 시험할 수는 없다’고 결단한 것입니다. 무조건 자기를 내맡기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1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바탕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면서, 성서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을 꿰뚫는 특징을 바로 믿음에서 보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하나님께서 아직 보이지 않는 일들을 지시하셨을 때에, 경외심을 가지고 방주를 지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차 분깃으로 받을 땅으로 나갔으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떠났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이라 불리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잠시 죄의 향락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학대받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홍해를 마른 땅과 같이 건넜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사람들은 그렇게 한번 해 보다가 모두 빠져 죽었습니다.

9절을 봅시다.
"네가 나에게 엎드려서 절을 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

세 번째 시험은 교회가 이 세상의 정치권력과 어떤 관계를 가지느냐는 문제입니다.

해방정국 초기에 북한 기독교 신도 수는 약 25만, 전체인구의 3%미만이었지만 잘 조직되고 훈련되고 지식과 경제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북한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기독교 민족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은 잠정적으로 서로 인정하고 합작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독교 세력은 공산주의 세력에 의해 밀리거나 배제되었고, 이런 상황 속에서 북한의 기독교 지도자들과 신도들 수만 명이 남하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6.25를 겪으면서 370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남하하였습니다. 그들, 특히 크리스천들은 공산주의가 얼마나 나쁜지를 몸으로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한국 기독교가 철저한 반공주의 노선으로 나아가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해방 후에 한국 교회가 겪은 가장 큰 유혹이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가서 오래도록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다가, 4.19혁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잠자고 있으니까 죄 없는 어린 학생들이 자신을 희생시키면서 새 시대를 연 것입니다. 4.19는 준엄한 역사의 심판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승만 정권에 대한 심판이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유착되어 있던 한국 기독교에 대한 심판이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 정신을 차리고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한 크리스천도 없지 않았지만 그들은 소수였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유신체제 하에서, 또 5, 6공화국 군사독재가 시작될 때마다 그들의 독재를 방관했고, 교계 지도자들은 그들을 위한 조찬기도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예수도 역시 이와 같은 권력의 유혹 앞에서 양자택일의 위치에 서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것이 참 민중을 위한 것이냐? 하나님 외에 어떤 권력자와 손을 잡음으로 구체적인 권력을 잡는 일이냐? 전혀 아무런 보장도 없는 하나님께만 무조건 복종하는 일이냐? 악마와 손을 잡으면서도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것을 추구할 것이냐?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말 것이냐? 목적이 비록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선한 수단을 택하느냐?

10절에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였다.”

이 기로에 서서 결국 예수는 오직 하나님께 무조건 자기를 투신하는 길을 갈 것을 결정하였습니다.

이 이야기의 시점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직후요 공생애를 출발하시기 직전입니다. 예수는 이 이야기로써 새 시대를 열어가는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관료적이고, 형식적이며, 율법적이던 당시대의 ‘표층 종교’를 ‘심층 신앙’으로 바꾸는 전기를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40일을 금식하신 의미도 한 시대를 마치고 새로운 시대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40은 상징적인 수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을 지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이야기는 출애굽 백성이 광야에서 고생한 것과 유비 관계에 있습니다. 그래서 유혹하는 자에게 하는 대답을 신명기 6-8장의 출애굽 이야기에서 인용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간을 광야에서 고생했어도 마침내 그 출애굽 1세대가 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우상을 섬기는 죄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성서는 증언합니다. 그것을 오늘 설교의 제목에 비유하자면, 광야에 나간 백성들은 여전히 표층종교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심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마저도 요단강 건너 편 땅을 밟는 것을 허락받지 못하고 비스가 산기슭에서 새 땅을 바라보면서 세상을 떠나야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우리는 아직도 광야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표층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토록 많은 유혹이 있었던 것이고, 한국 교회는 많이 걸려 넘어지기도 했고, 그 유혹은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 유혹들을 이기신 것처럼 이제 우리도 그런 유혹을 이길 때에 우리는 광야의 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새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표층의 종교’를 떼고 ‘심층의 신앙’을 지녀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이제 ‘심층의 신앙’으로 변화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광야에서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새 시대는 단순히 통일이 되고 국민소득이 몇 만 불이 되는 사회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에게 새 시대는 무엇입니까?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확신하는 사람들, 보증이나 실증으로 예수를 믿는 게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주님께 자기를 투신하는 사람들, 어떤 상황 하에서도 권세에 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있을 때, 그런 뜻을 가진 사람들이 친교를 나누고 은사를 나누고 예배를 드릴 때, 분명 새 시대가 동터 오는 것입니다. 이걸 기대하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1절입니다.
“이 때에 악마는 떠나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의 시중을 들었다.”

‘심층 신앙’은 예수님께 얄팍한 인간사의 단물을 구하는 게 아니라, 마침내 천사가 우리를 시중들도록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표층의 종교를 떠나 심층의 신앙에 이를 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늘 말씀 하십니다. “깊은 데로 나아가 그물을 던져라.”(눅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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