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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붓다

논문신학성경 임헌준 목사............... 조회 수 1574 추천 수 0 2012.11.15 15: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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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daum.net/yhwhroi/16886155 
하나님과 붓다

 

임헌준(예은교회 목사, Ph.D)

 

1. 시작하는 말

 

불교 신자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하나님이나 부처님이나 다 같은 신(神)”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이 어디 있냐? 다 사람의 마음에서 만들어낸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후자는 대체로 젊은 층의 불교도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데, 그들은 하나님과 같은 절대자의 존재를 부정하며, 부처는 진리를 ‘깨달은 자(覺者)’이지 결코 신(神)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전자는 주로 노년층의 불교신자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절대자이고, 자신이 신봉하는 부처님도 절대자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는 여러 신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님도 있고, 부처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 같은 불교 신자이면서도 어떤 사람은 부처를 하나님과 같은 절대자로 생각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절대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일까? 과연 부처는 절대자(신)인가, 아닌가? 불교는 무신론(無神論)인가, 유신론(有神論)인가? 오늘은 ‘부처란 어떤 존재인가?’를 살펴보는 가운데 앞의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기로 하겠다. 부처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먼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2.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유한한 범주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단지 우리는 우리의 인식의 울타리 안에서 하나님에 대해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고, 그 깊이를 더할 수 있다. 그러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1)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존재에 의해 창조된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께서 호렙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니라”고 하셨다(출 3:14).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시다.

 

(2)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가리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으며(창 17:1; 35:11; 참조. 출 6:3; 계 1:8), 사람들 또한 하나님을 호칭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이’, ‘전능자’ 등의 표현을 사용하였다(성경 전체에 40회 정도).

 

(3)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 무(無)로부터 유(有)를 창조하셨다.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수많은 별들을 만드셨고, 땅에 있는 나무와 동물과 새들과 곤충들을 만드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창 1:27).

 

(4) 하나님은 역사를 주재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후, 더 이상 간섭하지 않고 구경만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세계를 통치하시며, 인간의 삶과 역사에 깊이 간여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하며 고통으로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이집트로부터 해방시키셨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면서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시다.

 

(5) 하나님은 인간을 아들, 딸로 만나 주시고 사랑으로 돌보아 주시는 인격적인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기계와 같은 비인격적인 존재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격체로 창조하셨으며, 만드신 인간을 아들, 딸로 만나 주시고 사랑으로 돌보아 주시는 인격적인 분이시다.

 

(6)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이 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죄 가운데 있는,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긍휼히 여기시고 직접 인간이 되셔서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인간이 되신 하나님,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다(롬 3:24).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은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언제나 내 곁에 계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바라볼 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열고 나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이다.

 

3. 붓다는 신인가, 인간인가?

 

‘붓다’(Buddha, 부처)라는 말은 본래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룬 고타마 싯다르타에 대한 칭호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붓다는 진리를 깨달은 수행자로서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인간일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점차 불교의 교리가 확장되면서 역사적 인물에게 붙여졌던 ‘붓다’ 칭호가 이상화되고, 여기에 초월적인 절대자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그러면서 아미타불, 비로자나불, 미륵불 등 수많은 부처들이 등장하였다.

 

오늘날 불교 신자들이 사용하는 부처라는 말에는 이런 두 가지 의미가 혼용되고 있다. “누구나 수행을 통해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할 때, 여기서 ‘부처’는 절대자가 아니다. 그러나 “부처님께 소원을 빈다.”고 말할 때, 여기서 부처는 절대자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부처라는 칭호의 사용 범위가 확대되어 가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불교의 절대자에 대한 이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차이가 난다.

 

(1) 원시불교의 무신론적 이해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싯다르타는 절대자의 존재를 주장하는 당시의 사상계에 대하여 반대하면서, 만약 절대자가 존재한다면 (1) 인간의 선악이 설명되지 않는다. 즉 인간이 선악을 행하는 것은 절대자의 뜻이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죄에 대한 책임도 없고, 선하게 살려는 노력도 무의미할 것이다. 또한 (2) 인간의 행복과 불행 역시 절대자의 섭리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의욕, 노력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中阿含經 第三卷 度經).

 

고타마 싯다르타는 절대자의 존재를 부정하였으며, 그의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는 원시불교는 무신론적 경향이 강하다.

 

 ※ 생각해보기 : 고타마 싯다르타의 절대적 존재에 대한 반대 근거는 타당한가?

 

고타마 싯다르타가 절대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기독교의 견지에서 볼 때 인간의 자유의지를 간과한 데서 비롯된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과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고(창 1, 2장), 창조하신 세계에 깊숙이 관여하심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선악 행위가 전적으로 절대자의 의지에 따르는 수동적인 것은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인 동시에,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그 스스로 책임을 져야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창 2:9, 16-17). 인간의 선악 행위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자유의지와 판단에 따르는 능동적 행위이며, 그에 따르는 책임 역시 당연히 일차적으로 행위 당사자인 인간에게 주어진다(참조. 창 2:9-3:24).

 

또한 인간의 행복과 불행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인간의 의지, 노력과 아무런 상관없이 하나님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 노력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다(신 30:15-20). 하나님께서 선한 사람에게는 복을 내려 주시고,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내리신다는 것이 성경의 기본적인 가르침 가운데 하나이다(시 62:12; 마 25:45-46; 갈 6:7).

 

(2) 대승불교의 유신론적 경향

 

고타마 싯다르타의 가르침과는 달리, 대승불교의 가르침에는 많은 부처와 보살들이 나타나는데, 이들 가운데 초월적인 절대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정토신앙, 미륵신앙과 같은 타력신앙(他力信仰)에서는 초월적인 절대자의 힘에 의한 인간의 구제(구원)를 말하고 있다. 아무리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절대타자(絶對他者)인 아미타불, 미륵불의 본원력에 의해 구제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승불교 가운데 일부 종파는 유신론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몇몇 경우를 살펴보도록 하자.

 

(a) 보살신앙

 

보살(bodhisattva)은 대승불교가 일어나면서, 그 운동의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러나 보살은 일반적인 수행자가 아니라, 초월적인 능력과 방법으로 인간을 도와주는 절대자의 모습을 띠고 있다.

 

① 관세음보살

 

묘법연화경의 제25품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독립시켜 관음경(觀音經)이라고 부르는데, 이 경에서는 관세음보살이 인간을 현실 세계의 온갖 고통으로부터 구해준다고 말한다.

 

관세음보살을 관자재보살이라고도 많이 부르는데,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본다는 뜻이며 관자재(觀自在)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재롭게 관조하여 보살핀다는 뜻이다. 또 관세음보살의 이름 앞에 ‘천수천안(千手千眼)’이라는 수식어구를 붙이기도 하는데, 이는 관세음보살의 초월적 능력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② 지장보살

 

지장보살은 석가불의 위촉을 받아,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미래불인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의 부처가 없는 시대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교화, 구제한다는 보살이다. 특히 지장보살은 가장 고통이 가혹한 지옥중생을 모두 제도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하지 않는 한 자신은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운 보살로 일컬어지고 있다.

 

대방광십륜경, 대승대집지장십륜경, 지장보살본원경 등을 중심으로 하는 지장신앙은 4세기 무렵 중앙아시아의 타림분지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중국에 들어와 재래의 명부시왕신앙과 습합하여 민간신앙으로 뿌리를 내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장신앙은 명부시왕신앙과 결부되어 망자(亡者)의 천도와 복을 빌어주는 신앙으로 정착해 왔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명부전의 주존(主尊) 보살로서 관세음보살과 함께 널리 신봉되고 있다. 관세음보살이 현세의 이익을 수호하는 보살로 신앙되고 있다면, 지장보살은 사후 세계의 교주, 지옥 중생의 구제자, 망자 천도의 길잡이로 인식되고 있다.

 

(b) 정토신앙

 

정토신앙은 정토삼부경 곧 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을 기초로 하여 대승불교 초기(B.C. 1세기경)에 인도에서 일어났다.

 

정토신앙에서는 인간을 죄가 많고 번뇌에 휩싸인 존재로 본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성의 힘으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며, 오직 절대타자인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해서만 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아미타불의 본원력 구제설은 유신론적인 종교 사상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이에 대해 정토신앙이 힌두이즘의 영향을 받아 성립하였다는 학설이 있는가하면, 기독교의 영향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인도학을 전공한 일본학자 이와모토 유타카(岩本裕)는 아미타불의 타력본원(他力本願) 사상이 분명히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정토신앙이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타력본원 사상과 인도에 옛날부터 있었던 낙토사상(樂土思想)을 혼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c) 미륵신앙

 

미륵신앙(彌勒信仰)은 미륵삼부경(彌勒三部經) 곧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 미륵대성불경(彌勒大成佛經)을 기초로 하며, 대략 B.C. 2세기에서 B.C. 1세기 무렵에 인도에서 시작되었고 고타마 싯다르타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알려진 미륵보살이 미래불로 출현하여 깨달음을 얻은 후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륵신앙은 크게 ① 미륵보살이 지금 도솔천에 있으면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있는데 사람이 미륵불을 믿고 의지할 때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다는 ‘상생사상’(上生思想)과 ② 미륵보살이 미래에 도솔천으로부터 이 세계로 내려와 화림원(華林園)이라는 곳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룬 뒤에 세 차례의 설법으로 사람들을 제도할 것이라는 ‘하생사상’(下生思想)으로 나뉜다.

 

삼국시대에 우리나라에 미륵신앙이 전래된 이후 지속적으로 전파되었으며 특히 신라 말, 고려 말과 같은 변혁기에는 미륵불이 도래하여 고통 받는 민중을 구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기를 기대하는 신앙운동으로 성행하였다.

 

 이와 같이 절대자의 존재 여부에 관한 초기 불교와 후기 불교의 가르침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불교를 무신론 혹은 유신론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불교 학자들이나 승려들은 아미타불과 미륵불 같은 절대자가 실제로 존재하느냐, 아니면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냐는 문제에 대해 통일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각자의 신앙과 생각에 따라, 아미타불이나 미륵불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단순히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方便)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 보니 불교 신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나 부처님이나 다 같은 신(神)”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절대자의 존재를 부정하며 자신도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생각해보기 : 아미타불과 미륵불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앞의 “원시불교의 무신론적 이해” 부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싯다르타는 절대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적 주장을 전개하였다. 그처럼 근본불교 가르침에서는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반면에 아미타불, 미륵불의 교화와 구원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불교경전들에서는 결코 그 가르침들이 허구의 방편설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 내용들은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설이 아니라, 후대 불교의 수행자들이 절대자의 존재를 자각(인식)하면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절대자의 존재 여부에 관한 초기 불교와 후기 불교의 가르침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불교 학자들이나 승려들은 아미타불과 미륵불이 실제로 존재하느냐, 아니면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냐는 문제에 대해 통일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각자의 신앙과 생각에 따라, 아미타불이나 미륵불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단순히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불교신자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 것인가?

 

 *이 글의 출전

임헌준, 『아는 만큼 보인다』(서울: 쿰란출판사, 2005), pp. 3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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