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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16: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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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추천할 만한 사람
본문: 로마서 16: 1-5
진나라 「기해」가 나이가 많이 들어 수상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황제 도공이 그에게 후임 수상을 천거하도록 했습니다. 기해는 평소 자신의 정적이었던 「해호」를 추천했습니다. 황제는 깜짝 놀라면서 물었습니다. 「해호는 그대의 적수가 아닌가? 어찌 그를 후임 수상으로 추천하는가?」 기해는 대답했습니다. 「폐하께서 물으신 것은 이 나라의 수상될 재목이 누구냐는 것이요, 신이 좋아하는 이가 누구냐를 물은 것이 아니므로 신은 폐하께서 물으신 뜻에 합당한 자를 추천한 것뿐입니다.」 그 말에 황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해호 이외의 적임자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러자 기해는 「그 다음은 오가 적임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황제는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오는 기해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해의 아들 오는 세인들로부터 당대 최고의 재상감이라는 평을 듣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해는 자신의 아들을 앞세우기보다 공정한 판단으로 왕에게 충언을 올렸던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더 필요한 사람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공정한 사람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공정하고 정직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천거」란 말은 「추천」 이라 해도 좋은 말입니다. 사람이 추천하는 것도 좋지만 성경이 추천하고 하나님이 추천할 만한 사람, 이런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본문의 가르침 따라 생각해 보겠습니다. 1절에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자매 뵈뵈를 천거한다고 하였습니다. 요즘의 세태를 보면 일감도 많고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추천하려면 추천할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많아도 일군은 심히 적다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자리는 있어도 그 자리에 추천할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목사에게 추천해 달라고 추천의뢰를 해 오기도하고 또 어떤 기관이나 단체에서도 추천해 달라고 요청해 오기도 합니다. 그러면 목사가 입장이 아주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목사에게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할 때에야 성품이 좋고 예수 잘 믿고 충성하며 실력 있는 사람을 추천에 달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즉 책임질 만한 사람을 천거해 달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어디에 좋은 자리가 있으니 자기를 추천해 달라고 직접 찾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목사는 입장이 아주 곤란한 경우가 됩니다. 교회를 제대로 나오는 것도 아니요 어느 부서에서 봉사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그러니 뭐라고 추천을 하겠습니까?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추천을 못해주겠다고 하면 그 다음 주일로 이웃교회에 가서 아주 멋진 추천서를 받아 가지고 갑니다. 이것을 어쩌면 좋습니까? 그래서 제일 못 믿을 것은 목사의 추천서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천거서는 전혀 다릅니다. 바울이 책임질만한 사람만을 천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천거하고 성경이 추천하는 사람에 대해서 상고해 보겠습니다. I. 열심 있는 사람 (1-2절) 제1차 세계대전 때 참전하였다가 다리를 다친 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수도사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늘 수도사에 대한 생각과 꿈에 사로잡혀 있던 그는 온갖 노력 끝에 수도원의 요리사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비록 그가 원하던 수도사가 아닌 요리사로서 수도원에 들어 왔지만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수도사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수도 할 때, 그는 부엌에서 열심히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시장 보러 갈 때에는 「주님, 좋은 식품을 값싸게 구입하게 하시어 수도사들이 잘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며 열심히 봉사했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주님, 이 그릇들이 깨끗게 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내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씻어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며 열심히 섬겼습니다. 심지어는 불을 지피면서도 「주님이시여, 이처럼 성령의 불이 내 마음속에 타게 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무엇을 하든지 열심히 했고 또 그의 모든 생각을 하나님께 복종시키기를 원했습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러 그는 훗날 수도원 원장까지 될 수 있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열심 있는 신앙생활을 기뻐하십니다. 따라서 성도는 계속적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열심으로 섬겨야 합니다. 열심은 참 좋습니다. 열심이 없는 믿음은 Coma(혼수 상태)의 믿음입니다. 사람은 오장 육부 사지백체를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 속에는 36도 5부의 뜨거운 열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이 식어지면 죽는 겁니다. 그러기에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열이 내 생명을 지탱해 주는 겁니다. 믿음 생활에도 열심히 없으면 그 믿음은 송장이 됩니다. 제 딸과 사위가 이번에 유학 갈 때 불러 앉혀놓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희들이 가서 너희들 이상 되기를 나는 바라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신 재능을 100%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라'는 간단한 말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다섯 달란트 맡은 종에게 하나님은 다섯 달란트 이상 요구하지 않습니다. 장사해서 다섯 달란트 남겼으니 잘했다고 하셨습니다. 두 달란트 맡은 종에게 두 달란트 이상 하나님이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장사해서 두 달란트 남기니 똑같은 칭찬을 하셨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뜻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간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두뇌가 명철해도 제 머리 믿고 게으름 피우는 사람보다는 차라리 머리가 조금 모자랄지라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성가대원이 실력이 있어서 악보를 갖다주면 안 가르쳐 줘도 부를 수 있다고 할지라도 열심이 없으면 그 실력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연습할 때는 안나오고 찬양할 때만 나오면 그 찬양이 뭐가 됩니까? 찬양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재능도 좋지만 열심이 귀한 겁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성공하는 법입니다. 이런 사람이 믿고 추천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이 본문의 가르침입니다. 본문 1절과 2절에 「내가 겐그리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너희가 주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보면 첫째 사람으로 등장하는 뵈뵈는 겐그리아 교회 집사입니다. 겐그리아 교회는 바울 사도가 전도하여 직접 세운 교회입니다. 겐그리아에 바울 사도가 전도하러 갔는데 그 지방은 귀신을 많이 섬기기로 유명한데 그 중에 왕 노릇하는 귀신의 이름이 뵈뵈입니다. 그런데 여자 하나가 딸을 낳은 다음에 뵈뵈라고 하는 신에게 바쳤습니다. 그 신의 이름을 따라서 이름을 뵈뵈라고 지은 겁니다. 뵈뵈신을 뵈뵈라는 이름의 여자가 아주 잘 섬겼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예수 믿고 얼마나 충성하는지 겐그리아 교회에 집사가 됐는데 뵈뵈라는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처럼 귀신의 딸도 예수 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대로 둔 겁니다. 열심으로 항상 앞장을 섰습니다. 바울 사도가 로마에 편지를 보내는데 요즘처럼 우편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인편으로 보내는데 누구를 보내야 하는가? 누구를 추천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다가 많은 사람 중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겐그리아 교회 여집사 뵈뵈였습니다. 그 여집사가 바울 사도의 로마로 보내는 편지를 가지고 갑니다. 너희들이 바로 뵈뵈가 가면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예절로서 영접하고 온갖 필요로 하는 것을 다 도와주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저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보호자라는 말은 앞장서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수 믿는 일에도 앞장서고 봉사에도, 헌금에도, 기도를 해도 항상 앞에 선 사람은 뵈뵈였습니다. 뵈뵈의 가정은 상당히 그 지방에서 부자로 살았는데 여러 사람과 바울을 돕는데 항상 앞장서서 도왔다는 말입니다. 순회 전도자가 그 일대에는 많았는데 이곳 저곳을 순회하며 전도합니다. 전도하러 다니는 사람마다 이 집에 와서 신세를 졌고 이 집에서 도움을 받고 갔습니다. 바울 사도도 이 집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 줄을 알고 뵈뵈가 로마에 가거든 너희는 그리스도인의 예절로서 영접해 주라는 겁니다. 믿어도 열심이고 인생을 살아가도 열심이고 봉사를 해도 열심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을 천거한 겁니다. 여러분들은 가정 생활을 해도 열심히 하십시오. 예수를 믿어도 열심히 믿고 봉사를 해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성공을 해도 하는 겁니다. 시카고에 가면 쉐드라고 하는 수족관이 있습니다. 기록을 보니까 쉐드라고 하는 사람이 상당히 가난했습니다. 또 시카고에 가면 마샬필드라고 하는 유명한 백화점이 있는데 물론 시어백화점이라고 하는 더 큰 백화점도 있습니다. 이 마샬필드라고 하는 백화점에 쉐드가 취직을 했는데 단순노동자로 주급, 10불을 받았습니다. 요즘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때는 큰돈이었습니다.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마샬필드에는 많은 종업원들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빈둥거리지만 그 사람은 열심히 일하는 것을 사장이 보게 되었습니다. 20년만에 그 회사 사장이 됐습니다.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이 돈을 어디에 쓸까? 그러다 현찰로 시카고 시에 기증을 했습니다. 그 돈으로 지어 놓은 것이 쉐드 수족관입니다. 전 세계에서 제일 큰 수족관입니다. 전 세계에 있는 물고기는 모두 모아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중에 바다의 신비를 한 눈에 다 볼 수 있는 엄청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 사람은 인생을 열심히 살았습니다. 보람 있는 일을 하였습니다. 일도 열심, 돈버는데도 열심, 예수 믿는데도 열심, 좋은 일 하는데도 열심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추천할만한 사람입니다. 본문에서 뵈뵈와 같이 하나님이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헌신적인 사람 (3-4절)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의 등불이었습니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헌신하고 있었을 때 영국에 있던 동료들이 도울 것을 의논하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우리는 자네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 몇 명을 현지에 보내려고 한다네. 자네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어떤 길이 좋은가? 가장 좋은 길을 가르쳐 주게" 리빙스턴은 이 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이곳까지 오는데 길이 있어야만 오겠다는 사람들이라면 의미 없네. 나는 길이 없어도 오겠다는 사람을 원한다네」 헌신적인 사람이란 제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아무리 열심 내는 사람도 제 몸이라면 무척 아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번은 율법사가 예수님께 나와서 「주님, 하나님이 우리 인생이 살아가는데 이렇게 하라, 혹 저렇게 하라, 혹은 이것을 하지 말라 하여 저것을 하지 말라고 하여 사람들이 바르게 살아갈 도리를 말씀해 주신 계명 중에 제일 큰 계명이 뭡니까.」 라 물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게 첫째 되는 계명이니라」고 분명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이것이 곧 전인적인 신앙생활입니다. 전인적인 헌신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로는 헌신을 잘 합니다. 그런데 몸을 드려 헌신하는 법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에 없는 외식적인 헌신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이 시간에 예배당에 나와 몸은 앉았는데 마음은 집과 직장을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몸은 나와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전인적인 예배는 아닙니다. 외식적인 헌신입니다. 어떤 사람은 몸은 설악산에 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교회에 있습니다. 이것도 전인적인 신앙생활은 아닙니다. 몸도 마음도 정성도 모두 쏟다 부어 드리는 예배, 이것이 전인적인 예배요 전인적인 헌신입니다. 이것이 바로 몸을 바치는 헌신적인 예배요, 헌신적인 삶이요, 헌신적인 사람입니다. 본문 3절과 4절에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 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 뿐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또 저의 교회에도 문안하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바울 사도가 천거한 사람은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입니다. 이 부부는 성경에 나올 때 항상 여자 이름이 먼저 나오고 남자가 나중에 나옵니다. 여자가 잘 믿는 가정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가정이 평안합니다. 그 반대인 경우에는 불편한 일이 많습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에 전도하러 갔습니다. 바울은 교회에서 생활비와 선교비를 보조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업을 하면서 전도합니다. 바울의 기술은 장막을 깁는 기술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지라 찾아갔는데 유대인이었습니다. 본도에서 출생한 유대인인데 로마에서 자리를 잡고 잘 살다가 로마 황제 글라오디오가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할 때 고린도로 쫓겨와 있었습니다. 만약 로마에서 나가지 아니하면 재산을 몰수하고 또 투옥을 하거나 심지어 죽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급한지라 재산을 챙겨 오지도 못하고 쫓겨오다 보니 고린도까지 왔고 여기서 바울을 만난 겁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얼마나 기뻐하는지 이제는 바울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협력자가 되었습니다. 에베소로 가자 하면 에베소로 가고 고린도로 가자 하면 고린도로 가고 로마에 가야 되겠다고하면 로마로 갔습니다. 이 정도로 열심이었고 바울의 협력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에베소에 가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데 에베소 사람들이 바울을 죽이겠다고 달려들어 소란을 피웠습니다. 이 때 누구 한 사람도 도와주겠다고 나서지 않는데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그 무리 속에 뛰어들어 바울을 감싸고 빼내고 자기네들은 죽지 않을 정도로 두들겨 맞았습니다. 겨우 바울이 도망하여 살아났습니다. 바울의 목숨을 위해 자기들의 목을 내놓았습니다. 그렇게 협력을 잘 해 주는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로마에서 자리 잡고 잘 살 때 쫓아냈던 글라오디오 황제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돌아가서 교회를 세운 겁니다. 자기 집을 교회를 위해 내놓았습니다. 목숨을 내 놓고 재산을 다 내 놓은 겁니다. 전적으로 몸도 아끼지 않고 충성했고 봉사했고 믿음 생활하는데 헌신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성경은 추천하고 하나님은 들어 쓰신다는 겁니다. 장로교 창설자가 칼빈입니다. 제네바 공동묘지에 가 보면 돈이 많은 사람의 무덤은 돌로 굉장하게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칼빈의 무덤은 진짜 무덤이 아니라 가묘입니다. 왜냐하면 죤 칼빈은 본래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법률 공부를 해서 법률가가 되려고 했습니다. 얼마나 머리가 비상한지 14살에 대학에 들어갔고 4개의 대학을 나왔습니다.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위장병에 걸려 죽을 때까지 고생을 했습니다. 27살에 기독교 역사상 불후의 명작인 기독교 강요를 남겼습니다. 어느 신학자도 쓰지 못할 만큼 훌륭한 저서입니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하는데 의회를 붙잡고 마음대로 조종하면서 종교개혁을 해나가는데 완전히 성공하였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31살에 합니다. 아들을 하나 낳고 아내와 함께 살다가 아들이 죽고 14년만에 아내까지 죽어서 말년을 외롭게 살다가 55살에 죽었습니다. 한때는 배척을 받았지만 마지막에는 하나님 다음으로 추앙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죽은 다음에는 무덤을 크게 해 놓으면 자기 무덤이 우상이 될 것 같아서 공동묘지에 묻고 비석은 절대로 세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칼빈이 죽은 후에 무덤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후대 사람들이 제네바 시내 안에 있는 공원묘지에 가묘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죤 칼빈의 신앙과 삶의 표어가 '오직 예수' 입니다. 오직 예수 위해 살고 오직 예수 위해서 평생을 바쳤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귀하게 쓰십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도 평생동안 오직 예수밖에 모른 사람입니다. 이렇게 헌신한 사람이 하나님이 추천하시는 일꾼입니다. 3. 열매 맺는 사람 (5절)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저주를 받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마7:17~20). 예수님은 열매를 찾고 계십니다(막 11:13). 열매는 모든 노력의 결정체입니다. 열매는 큰 즐거움입니다. 농부의 추수의 열매, 공부하는 학생의 학업 성취의 열매, 사업가의 결실, 교육자의 제자들을 통한 열매, 부모의 자녀 성공, 크리스천인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축복된 삶은 모두가 열매로 인한 큰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열매는 무엇일까요? 나쁜 열매가 아닌 좋은 열매, 아름다운 열매입니다(마 7:17~20). 생산성(마 25:20~30)의 열매, 진실성(마 3:12)의 열매, 선한 열매(약 3:17), 성령의 열매(갈5:22~23)를 맺읍시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릴 때 옥토에 떨어진 씨는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도 열매 맺는 사람이 귀합니다. 뜰에 심은 관상수는 예쁘게 자라 주면 됩니다. 그러나 포도나무는 관상수도 아니요 재목으로 쓰는 것도 아닙니다. 열매를 구하는 나무이기 때문에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찍어서 불에 태워버립니다. 사과나무 또는 배나무는 모두 열매를 구하는 나무이기 때문에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열매를 원하십니다. 열매 맺는 사람이 귀합니다. 5절에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아시아는 오늘날 우리가 사는 아시아가 아니라 소아시아입니다. 소아시아의 수도는 에베소입니다. 바울 사도가 소아시아 지방으로 전도하러 갈 때에 수도가 되고 중심지가 되는 에베소에 먼저 가서 전도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에 있는 두란노 서원에서 열심히 전도하는데 거기서 예수 믿겠다고 작정한 사람 중에 떨어져나간 사람도 많았지만 믿겠다고 작정하고 끝까지 열매 맺는 사람을 중의한 사람이 본문에 나오는 에베네도입니다. 에베소에서 처음 열매 맺은 자입니다. 한꺼번에 익지 않습니다. 맨 처음 이삭이 익으면 그 다음에 줄줄이 익는 겁니다. 에베소에서 기둥 같은 일꾼이 되었고 소아시아 지방에 모든 신자에게 모범적인 신자가 되었습니다. 아가씨가 예수 안 믿는 집에 시집을 가서 가루 서말 속에 누룩처럼 남편과 아들, 딸 그리고 시아버지가 시어머니 또 시누이와 시동생이 줄줄이 믿어 완전히 복음화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가루 서말 속에 누룩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처럼 줄줄이 열매 맺는 사람을 하나님이 천거하고 성경이 천거하여 귀하게 쓰는 사람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추천하는 쓸만한 일꾼은 열심 있는 사람입니다. 뵈뵈라는 겐그리아 교회의 여집사는 아주 열심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천거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헌신적인 사람을 추천합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그 장본인들입니다. 그들은 주의 일을 위해서는 목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경은 열매 맺는 사람을 천거합니다. 에베네도는 아시아의 처음 익은 열매요 그로 인하여 줄줄이 열매 맺게 되었습니다. 나무는 열매에 의해 구분되듯이 우리의 신앙도 열매를 통해 평가됩니다. 사과나무는 사과를 맺어야 인정받고 포도나무는 포도를 맺어야 인정을 받습니다. 이름만 사과나무일 뿐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쏘시개 감으로 밖에 쓰이지 못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좋은 씨와 밭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당연히 좋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밭을 일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말씀을 듣고, 깨닫고, 결실하도록 만들어 주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열매 맺지 못하는 신앙인들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좋은 열매는 먼저 열심히 말씀을 듣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그 다음 말씀을 깨닫고, 깨달은 말씀대로 살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 속에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열릴 것입니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그런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다 성경이 추천할 만한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 감사와 찬양, 영광을 올립니다. 우리가 뵈뵈와 브리스가와 같이 천거할 만한 일꾼이 되게 하시고, 주님의 은혜 받아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하여 주옵소서. 내 평생 슬프나 기쁘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을 위하여 늘 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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