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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염려로부터 탈출

마태복음 김필곤 목사............... 조회 수 3229 추천 수 0 2012.11.17 13: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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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6:25-34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2012.9.16 열린교회(용인) http://www.yeolin.or.kr 

탈출(10) 쓸데없는 염려로부터
마6:25-34

지난 목요일 점심시간에 소망마을에서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해서 만둣국 집에 갔습니다. 그 때 한 권사님께서 손녀 이야기를 합니다. 요즈음 성폭행 범들이 많아 예쁜 손녀가 염려가 되어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먼저 전화하라고 한답니다. 그러면 권사님이 내려가서 같이 타고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육시키기를 이상한 남자가 있으면 넘어진 체하며 엘리베이터 비상벨을 눌러 라고 가르쳐주었다고 했습니다. 언론에 매일같이 성폭행범 뉴스가 나오니까 딸이나 손녀를 둔 분들은 그런 염려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학문적으로는 “가용성 편향”이라고 합니다. 계속 언론에서 성폭력을 말하면 그 사건이 격렬한 감정을 불러 일으켜 나에게도 쉽게 발생할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뇌는 양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극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친숙성을 토대로 특정 사건의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하였거나 자주 들어서 기억하기 쉬운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는 직관적인 믿음을 가지고 삽니다. 그래도 권사님 정도의 염려는 순기능적 염려, 건강한 염려에 속합니다. 염려로 준비하게 하고 위험을 예방하고 만약을 대비하여 조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방어와 준비를 하게 합니다. 단단하지 않은 얼음으로 덮인 강을 건너갈 때 염려하는 것처럼 정상적인 염려는 우리에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가 되고 문제를 다루기 위한 준비를 하게해 줍니다. 그러나 역기능적 염려, 병적인 염려는 삶의 평안과 행복을 빼앗아가는 마음의 독약입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 놓고 ‘제대로 밥은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병은 안 났는지?’ 염려가 되어 잠을 못자는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을 것을 걱정하고, 여름이 되면 더위를 걱정하고, 겨울이 되면 추위를 걱정하다 병이 납니다. 아들만 생각하면 밥맛이 없습니다. 군대에 보내 놓고 군대에 맡기기 못하고 걱정을 합니다. 이런 염려는 쓸데없는 염려입니다.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오면 짚신 장사 아들을 걱정하고 맑으면 우산 장사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와 같은 것입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데 염려만하고 있는 것입니다. 걱정거리를 만들어 염려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심화되면 사람을 정상적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병적인 염려가 됩니다. 텔레비전에서 암의 증상에 대한 이야기만 들어도 ‘나도 암이 걸리지 않았나?’ 염려합니다. 위만 조금 아파도 ‘우리 아버지도 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나도 위암에 걸리지 않았나?’ 염려하여 밥맛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건강 염려증 환자가 되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에서 어떤 질병에 대하여 들으면 나도 심각한 질병에 걸린 것으로 생각하며, 불안해하거나 공포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늘 건강 염려증에 사로잡혀 사시는 할아버지가 어느 날 TV에서 나오는 '무엇이든 물어 보세요'를 보고 있었답니다. 그리고는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어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물었답니다. "아버님 왜 그러세요?" "얘야 저기서 얘기하는 게 나하고 증세가 너무 똑같다. 아무래도 내가 저 병에 걸린 게 틀림없어" 그래서 며느리도 ‘무슨 병인가?’하여 같이 TV를 보게 되었답니다. 방송이 끝나면서 아나운서가 "지금까지 자궁암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걱정 현명한 걱정”에서 베벌리 포터는 “쓸데없는 걱정은 고문이자,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하며,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허비하게 만드는 일종의 생지옥이라 할 수 있다. 더욱더 나쁜 점은, 걱정이 더 많은 걱정을 만들어내면서 두려운 생각과 불안한 반응의 악순환을 일으킨다는 것이다...쓸데없이 걱정하는 사람은 조마조마한 염려 속에서 조그만 위험의 징조를 유심히 살피고는, 이를 곧 닥쳐올 불행으로 확대해석하고 그 발생 가능성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쓸데없는 걱정은 일종의 사고방식, 정신적 습관이다”라고 말합니다. 틀에 박힌 사고에 갇혀 마음속으로 걱정스런 상황을 반복 재생한다는 것입니다. 지나친 쓸데없는 염려는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쳐 심각한 고통을 수반하게 되며 스트레스를 유발 할 뿐 아니라 불안장애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염려의 늪에 갇히게 되면 평안을 잃고 불안해집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초조해지고 긴장을 합니다. 무기력하게 되고 심하면 우울증에 걸립니다. 쓸데없는 염려, 역기능적인 염려, 비정상적인 염려, 병적인 염려는 마음에 강한 스트레스를 줍니다. 혈액 순환이 나빠지고, 근육통이 생기고, 판단 착오를 일으키며, 요긴한 것을 잊어버리게 하고, 실력 발휘를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질병에 대한 저항력 약화시킵니다. 소화불량, 신경쇠약, 궤양, 두통, 발진을 일으키게도 합니다. 초조해지고 숨이 가쁘며, 잠을 못 이루고, 쉽게 피곤해하며, 식욕을 잃게 만듭니다. 소심하게 되고 지나치게 예민하게 됩니다. 쓸데없는 염려는 백해무익합니다. 위장병의 80%가 신경성에서 유발된다고 합니다. 류마티스 관절염도 염려와 걱정이 가져다주는 부작용이라고 합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 15:13)라고 했습니다. 잠언 17장 22절에서는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골다공증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염려 때문에 일찍 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염려는 사탄이 우리 마음속에 심어주는 정신적 독약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염려로부터 탈출할 수 있겠습니까?

1. 쓸데없는 염려란 하나님을 불신앙의 죄와 불유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의지적으로 염려로부터 탈출해야 합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쓸데없는 염려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염려는 심각한 죄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심각한 죄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산상 수훈을 말씀하시면서 염려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염려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으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염려하지 말라고 무려 7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염려하지 말라" 입을 것 먹을 것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생활에 가장 기본적인 것인데 그것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역을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을 염려하는 것은 죄입니다. 왜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까? 첫째 염려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만큼 큰 죄는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롬 14:23)" 라고 말씀합니다. 살인죄 간음죄만 심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염려하는 것도 심각한 죄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공중 나는 새도 심지도 거두지도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지만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먹이신다는 것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들의 백합화도 솔로몬의 옷보다 더 좋은 옷을 입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먹는 것 입는 것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먹는 것 입는 것으로 쓸데없는 염려, 병적인 염려, 비정상적인 염려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라는 것입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이런 염려를 하는 것을 믿음이 적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아버지 George Muller는 “염려의 시작은 신앙의 종말이며, 참된 신앙의 시작은 염려의 종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의식주 문제로 늘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이방인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재물을 좇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염려란 하나님을 불신하는데서 오는 심각한 죄입니다. 그래서 염려를 말씀하면서 예수님은 25절에서 “그러므로”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24절에서 사람은 재물 아니면 하나님 중에 한 주인을 섬기게 되어 있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의식주를 위해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돌보와 주시는데 하나님의 아들딸인 우리는 말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3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쓸데없는 염려로부터 탈출해야 합니다. 아이가 아침에 엄마가 밥을 안해 줄 것을 염려하며 잠을 못잔다면 얼마나 웃기는 일입니까? 학교가지 말라고 할까봐. 집나가라고 할까바 걱정하고 있다면 이 아이가 정상적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40년동안 광야 생활을 보십시오. 물이 없으면 반석을 쳐서 생수가 나오게 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자 만나를 먹게 했습니다. 고기 걱정하자 메추라기를 먹여 주었습니다. 홍해 앞에 걱정하고 있으니까 홍해를 가르셔서 마른땅같이 건너가게 했습니다.
염려하지 말아야할 두 번째 이유는 염려는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염려한다고 일어날 일이 일어나지 않고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염려와는 아무 상관없이 역사는 진행됩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 할 수 있겠느냐?”라고 질문합니다. 염려한다고 작은 키 크게 되는 것도 아니고 80년 살 것 90년으로 늘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염려는 아무 능력도 없다는 것입니다. 염려하는 것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니 젤린스키의 《모르고 사는 즐거움》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라고 합니다.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걱정의 4%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염려 걱정의 96%는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4% 바꿀 수 있는 것은 걱정하지 말고 바꾸면 되는 것입니다. 96%의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기쁨도, 웃음도, 마음의 평화도 잃어버린 채 살아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미국에서 목회했던 웰치 목사께서 장수하여 101세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답니다. 생일 축하식에서 한 기자가 "목사님, 101세이십니다. 남은 생을 생각하면 걱정이 안 되십니까?"라고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 때 그는 "나는 30년 전 70대에 은퇴를 했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은 중요한 진리가 하나 있다네. 목사로서 부끄럽지만 나는 일평생 살아오면서 매일 염려를 끌어안고 살았어. 날마다 염려하고 근심하며 살았는데 나중에 은퇴할 때 가만히 보니 내가 평생 끌어안고 씨름한 것 중에 실제로 일이 터진 것은 거의 없었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걱정과 염려는 안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걱정은 사치스런 한가함에 불과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염려는 비신앙적이고 비 생산적인 것입니다. 염려는 불필요하고 불신앙적이고 불유익한 것입니다. 염려하는 것은 불신앙의 표시입니다. 염려하는 것은 이 세상 만물이 하나님의 창조라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입니다.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서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심을 모르는 것입니다.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그의 공의와 사랑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 죄입니다.염려는 자동차에 앉아서 기어를 중립에 놓고 시동을 건 다음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대는 것과 같이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에너지만 소모시킬 뿐 무익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염려한다는 건 아직 내 앞에 오지도 아니한 시간과 장소를 무언가로 가득채우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혹시 암에 걸리지 않을까?, 혹시 실직하지 않을까?, 혹시 실패하지 않을까? 혹시 사고 나지 않을까? 혹시...' 쓰레기 같은 부정적인 ‘혹시’로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걱정 근심거리가 다가오면 우리는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주신다는 것을 전적으로 믿고 염려하면 죄다는 사실을 깨닫고 염려를 즐기지 말고 적극적으로 염려로부터 탈출해야 합니다.
우리의 염려 거리는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다는 것을 전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며 염려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 14:1)"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염려가 있을 때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 42:5)라고 했습니다. 염려라는 것이 심각한 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내 염려 문제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염려로부터 탈출해야 합니다.

2. 쓸데없는 염려는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탈출해야 합니다.
염려가 죄라는 사실을 알고 적극적으로 "염려하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다고 염려의 문제로부터 완전히 탈출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하나님을 역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염려 거리가 생기면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죄이니까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삽니다. 그런데 가끔 학교에 간 예쁜 딸이 밤 11시가 되었는데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전화를 해 봅니다. 어느 때는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면 염려가 생깁니다. 계속 전화해도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면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잠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이 좋으신 하나님, 지켜 주시는 하나님,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쁜 딸인데 험한 세상에서 누구에게 납치 되지 않았을까? 사고가 나지 않았을까?’ 별별 나쁜 생각을 하며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혼자 소설을 쓰는 것입니다. 이렇게 염려에 대한 설교를 하고, 쓸데없는 염려는 하나님을 믿지 못한 죄라고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 염려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염려함으로 결국 내가 손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염려해도 염려한대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 인생은 그 염려의 늪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실제 삶에 얼마나 됩니까? 알면 알수록 더 염려의 늪에 갇히게 되는 것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내가 할 수 없기 때문에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할 수 없는 쓸데없는 염려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빌립보서에서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라고 말씀합니다. 염려의 문제를 감사 기도제목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무릎 꿇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뢰는 것입니다. “딸아이가 저녁 늦께까지 공부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받을 것을 생각하며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성폭행 당할 것을 걱정하는 것보다, 사고 났을 것을 걱정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하나님께 쓰임받고, 하나님이 사용할 것을 감사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평강이 찾아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니다. 염려 거리가 있습니까? 기도하십시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염려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걱정하십니까?" 신앙의 사람들은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왔을 때 염려하며 낙담한 것이 아니라 기도했습니다.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할 때 염려하며 절망한 것이 아니라 기도해 아이를 얻었습니다. 히스기야가 불치의 병에 걸려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염려하며 좌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여 질병을 치유 받았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약 5:15)"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염려하며 포기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여 빌립보 감옥을 나오게 된 것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눅 11:9)"
다니엘이 총리직을 잃어버리고 죽음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 염려하며 방구석에 앉아 걱정 근심으로 한탄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여 능력 받고 승리한 것입니다.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시 34:6)“
특히 염려 거리가 있을 때 어떤 기도를 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까?
33절을 읽어 보십시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염려 거리를 계기로 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것입니다. 재물을 좇는 삶을 살며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삶으로 기도제목이 바뀌는 것입니다. 딸을 놓고 기도할 때 잘 먹고 잘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는 삶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작은 염려는 더 큰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의식주에 매여 살 때는 아무리 쌓고 아무리 먹어도 염려문제에서 해방되지 못했지만 의식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게 되면 염려로부터 완전히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학교 시험으로 걱정하는 것 아버지 돌아가시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 비전을 가지면 인생의 소소한 문제 아무것도 아닙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니까 먹고사는 것, 강의 위험, 환란, 죽음 염려거리가 못되는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염려거리가 없어집니다. 이 세상 것을 목적으로 삼고 사는 이방인과는 근본적으로 삶의 방법이 바꾸어져 버립니다. 이 땅의 삶을 목적이 아니라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죽음도 질병도 실패도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더욱 보석처럼 만드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32절을 읽어 보십시오.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내가 할 수 없는 것 그것 붙들고 염려의 늪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염려하지 말고 하면 됩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시 37:5)"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잠 16:3)”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7)”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여인이 스위스 중부에 있는 5천 피트의 리치산 정상에 오르려고 준비하고 있었답니다. 친절한 안내자는 그녀에게 짐을 운반해 주겠다고 하였답니다. 그러나 의심스러운 눈길로 자신의 짐을 지고 오르는 여인은 오를수록 자신의 짐으로 고통을 받았답니다. 안내자는 등산용 지팡이만 빼고 그 외의 짐은 자기에게 달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그녀는 고집스럽게 짐을 가지고 오르며 힘들어했답니다. 보다 못한 안내자는 다시 한 번 안심하고 모든 것을 맡기라고 요청했답니다. 그녀는 한참 후에 모든 짐을 안내자의 튼튼한 어깨에 짐을 맡겼답니다. 모든 짐을 맡기고 나서야 나머지 길을 쉽게 오를 수 있었답니다. 염려의 무거운 짐을 이 시간 우리 주님께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목욕 땅에 가면 “귀중품은 주인에게 맡기십시오.”라는 글을 보았을 것입니다. 100만원 은행에서 찾아 왔는데 맡기지 못하고 걱정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맡겨놓으면 평안하게 목욕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 염려하지 말고 다 하나님께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 붙들고 우울해 하고, 힘겨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 붙들고 신앙의 기쁨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남편 아무리 전도해도 안 된다고, 자식 아무리 가르쳐도 안 된다고 염려하며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 버리시기 바랍니다. 다 하나님께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3. 쓸데없는 염려를 복음적인 생각으로 바꾸어 실천함으로 염려로부터 탈출해야 합니다.
염려라는 문제가 기도하고 하나님께 맡긴다고 다 끝이 납니까? 딸이 12시가 되어도 들어오지 않으면 기도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은 뜸만 나면 계속 나쁜 생각, 부정적인 생각, 비관적인 생각이 자신을 사로잡습니다. 기도하고 자버리며 아침에 딸이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가 교회에 자는 날은 모르니까 아애 걱정도 근심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집에 있으면서 깨어 있으면 자꾸 해석을 안 좋은 쪽으로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그릇일지라도 오물이 들어가면 오물 그릇이 되고 맙니다. 아무리 맑은 물일지라도 색소가 들어가면 금방 물의 색깔이 바뀌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해결하는 방법이 맑은 물을 계속 집어넣은 것입니다. 맑은 물이 들어가면 시간되면 더러운 물이 정제되게 됩니다. 어느 집사님이 조그마한 땅이 집 앞에 있었답니다. 계속 사람들이 쓰레기를 가져다 놓는 것입니다. 별 짓을 다 해 보았는데 여전히 쓰레기통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방법을 고안해 냈는데 그곳을 텃밭으로 만들어 채소를 심었답니다. 그 후에 쓰레기가 없어지더라는 것입니다. 염려의 늪에서 벗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쓰레기의 생각에 복음적 생각을 심는 것입니다. 계속 좋은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문제에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더욱 염려의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오늘 성경을 자세히 보세요. 26절에 보십시오. 목숨을 위하여 몸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공중의 새를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보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기르시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새들이 먹을 것 염려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가만히 굶주리며 죽도록 가만히 놓아두겠냐는 것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깊고 정확하게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창의력 개발 전문가인 에드워드 드 보노는 그의 저서 『여섯 가지 유형의 사고 모자(The Six Thinking Hats)』에서, 객관적· 감정적· 지지적· 가능성· 비판적· 전략적 사고라는 여섯 가지 기본 사고 유형을 말합니다. 걱정과 염려거리가 오면 “무엇이 사실인가(객관적 사고),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감정적 사고), 무엇이 실제적인가(지지적 사고), 현재 가능한 것은 무엇인가(가능성 사고),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비판적 사고),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전략적 사고)”라는 렌즈고 질문을 던져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걱정의 사고를 바꾸는 것입니다.
염려하는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은 합리적인 것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잘못된 감정에 의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염려하는 것은 대부분 상상과 추측에 의한 것입니다. 신앙적 이성으로 볼 때 세상에 염려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0절 보십시오. 솔로몬은 최대의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인공미도 하나님이 한 송이 백합화에게 준 아름다움을 따라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이 세상을 주관하시며 불가능한 것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작은 것도 주시며, 큰 것을 주시며, 많은 것을 주시며, 작은 것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염려할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통해 우리를 성숙시키시고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염려거리가 있으며 있을수록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미래가 불확실한 염려 거리가 가득 찬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수 1:9)"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하나님의 생각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죄악 가운데 죄의 대가를 받을 것을 염려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합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
부모님을 떠나 막막한 미래를 가야하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합니다. "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창 12:2-3) "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신 31:6)“
염려에 대하여 교훈하시는 빌립보서 4장 6절 이하를 보십시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라고 끝내지 않습니다. 8절에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4:8)” 이것을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고 사랑받을 만하고 칭찬받을 만한 것들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9절 말씀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4:9)”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 채우고 그것으로 끝내면 안 되고 실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입니다.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걱정만 하지 말고 걱정거리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해결책을 찾는 것입니다. 문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하여 해결책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현장에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지혜를 가지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만 구분 할 줄 알면 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고,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즉시 움직이기를 시작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각으로 가득 채우고 가만히 있으면 더 염려의 늪으로 빠져들어 가지는 않지만 염려의 문제로부터 완전히 탈출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가 남아 있는 한 염려는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염려의 늪에서 완전히 탈출하려면 더 적극적인 방법이 필요합니다. 병들었을 때 이 병으로 하나님이 나 죽지 않게 할 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더 적극적이 방법이 필요합니다. 1%로 가능성만 있어도 말씀 붙들고 달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치유시킬 것을 믿고 이제까지는 먹고 사는 문제로 염려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그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않습니다. 은혜로 주어진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자꾸 사람은 내일을 염려합니다. 그러나 내일은 나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면 있는 것이고 안주시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은혜로 주시면 오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면 됩니다. 때로 괴로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환난이 있습니다. 삶의 고난과 역경을 만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천국과 비교하면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한 날의 괴로움입니다. 염려로 인해 발목 잡히지 말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는 삶을 살다보면 어느새 염려는 없어지고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우리는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완전한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인 말씀을 보십시오. 34절 말씀입니다. 내일 일은 내가 염려할 것이거나 다른 사람이 염려할 것이 아니라 "내일" 그 자체가 염려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시간은 인격적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내일"이라는 시간이 염려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의 주인, 어제와 오늘과 내일과 모든 시간과 세월과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내일 일도 주관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내일에 대한 염려는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염려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매일 매일 현실에서 만나는 온갖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염려할 만한 괴로움은 있습니다. 그러나 내일 일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실 것을 믿고 오늘의 괴로운 염려거리 내일로 끌고 가지 말고 그날로 족하며 살아야 합니다. 염려를 아무리 한들 지나간 과거 변하지 않습니다. 미래에 대한 염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면 됩니다.
염려가 있습니까? 그치지 않는 비는 없습니다. 흐린 날도 구름 위로 오르면 창공이 있습니다.
쓸데없는 염려란 하나님을 불신앙의 죄와 불유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의지적으로 염려로부터 탈출해야 합니다.
쓸데없는 염려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탈출해야 합니다. 시설물 관리 염려하지 말고 전문 업체에 맡기면 됩니다. 돈 한 푼 들지 않고 계약 기간이 무제한이신 하나님께 모든 염려를 맡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순종하고 만사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명과 평안, 행복이 보장됩니다.
쓸데없는 염려를 복음적인 생각으로 바꾸어 실천함으로 염려로부터 탈출해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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