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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느8: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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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2012.9.30 열린교회(용인) http://www.yeolin.or.kr |
탈출(12) 하나님이 싫어하는 관습으로부터
느헤미야8:1-12
요즈음은 추석이 되면 대부분 처갓집에 갑니다. 처갓집 못 가게 하는 시어머니는 야만인으로 취급받습니다. 택배 기사를 하시는 집사님께서 추석이 되어 처갓집에 갔답니다. '딩동~~' 하고 처갓집을 벨을 눌렀답니다. 장모님이 인터폰을 받고 물었답니다. "누구세요?" 그러자 집사님께서 거리낌 없이 "택배요..."라고 했답니다. 매일 습관적으로 반복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것입니다. 절에 오랫동안 다니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녔답니다. 목사님을 만나러 교회에 갔는데 문이 잠겼답니다. 대문을 두드리니까 관리집사님이 나왔답니다. 관리집사님이 “웬일로 오셨습니까?”라고 말하자 “주지 목사님 만나러 왔습니다.”라고 자신도 모르게 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익숙해진 습관 쉽게 바꾸기 어렵습니다. 특히 특정한 사회에서 같은 행동이 다수인에게 반복해서 계속됨으로써 무의식중에 생겨난 관습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관습이란 오랜 기간에 걸쳐 한 민족이나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형성된 풍습입니다. 어떤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켜 내려와 형성되어진 집단적인 행동양식으로 그 사회 성원들이 널리 인정하는 질서나 풍습을 관습이라고 합니다. 비슷한 말로는 관례, 관행, 전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습관, 버릇 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부분 관혼상제(冠婚喪祭)가 관습에 의해 행해집니다. 관례로 조선시대에는 성년이 되면 청소년이 머리에 관을 쓰고 성년이 되는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결혼에 복잡한 결혼 절차가 있었고, 장사를 지낼 때도 복잡한 절차에 따라 진행했습니다. 조상을 기리는 제사도 시제, 차례, 묘제 등 복잡한 절차에 따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관습 중에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악습들이 있습니다. 남존여비나 남편이 죽으면 아내를 같이 묻는 수장제나 아내를 여러 명 두는 축접제, 노예제 같은 당시에는 정당화된 나쁜 관습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명예살인이나 여성할례 같은 나쁜 관습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삶의 질을 좀먹고 있습니다. 신앙인들을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나쁜 관습을 과감하게 버려버려야 합니다. 오늘은 탈출 마지막 시간으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관습으로부터 탈출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합니다. 오늘은 민족의 고유 명절 추석입니다. 추석 명절이 되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리민족의 고유한 관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사라는 관습입니다. 제사의식, 차례의식입니다. 예로부터 내려온 미풍양속이고 제도이니 당연히 해야 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예식이니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아무런 생각이 없이 따라하는 조상 제사가 믿는 사람은 두말 할 것없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인 우리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관습으로부터 어떻게 탈출할 수 있겠습니까?
1. 우리 신앙인들은 조상 제사 문화를 하나님께 경배하는 예배 문화로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관습이 무엇이겠습니까? 우상 숭배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섬기는 모든 것은 우상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명절이 되면 하나님 대신 바알과 아세라 신에게 제사를 하였습니다. 바알신이 비를 내려주어 농사를 잘 짓게 하여 풍년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결국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망했습니다. 남쪽 유다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70년 만에 포로에서 돌아와 느헤미야가 무너졌던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습니다. 어렵게 성벽 재건을 다 마친 후 명절날 7월 1일 민간력으로는 1월 1일입니다. 수문 앞 광장에 모인 것입니다. 이 날은 나팔절 날입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민간력으로 정월 초하루 설날과 같은 명절입니다. 계절로 말하면 추수를 다 끝낸 추석과 같은 명절입니다. 이 명절에 백성들이 다 함께 모여 이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이 무엇입니까? 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 경배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나쁜 관습을 버린 것입니다. 어떻게 예배를 드립니까? 1절을 보십시오.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져와 읽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몇 시간을 예배드립니까? 새벽부터 정오까지입니다. 적어도 6시간을 서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3절을 보십시오. 율법책에 귀를 기울입니다. 모든 백성이 일어났습니다. 에스라가 여호와를 송축하니까 백성들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6절을 보십시오. “아멘.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합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고 잘못을 회개합니다. 민간력으로 정월 초하루 명절 시작부터 바알을 예배하는 문화가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문화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추수를 다 끝내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악한 관습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도 명절 문화를 조상 제사 문화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문화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추석문화의 중심은 조상제사, 성묘 차례가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리서치가 서울시내 가정주부 5백 명을 상대로 면접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74%가 추석 때 차례를 지내고 불교신자의 92%, 천주교 신자의 79%, 기독교신자의 53%가 차례를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왜 제사를 드리겠습니까? 유교에서는 효자로서 어버이를 섬기는 3도가 있는데 그것은 "살아 계실 때에는 봉양하고, 돌아가시면 그 상복을 입고, 상이 끝나면 제사를 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맹자는 "뒤를 이을 아들이 없이 조상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되는 것은 가장 큰 불효다"라고 했습니다. 왜 가장 큰 불효입니까?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중국인들의 민간신앙은 귀신을 인귀, 귀신, 명신 등으로 구분지어 생각합니다. 후손의 제사로서 궤양을 풍족히 받은 영혼은 오래 동안 살고 제사가 끊어지면 주림에 못 이겨 제 2차 죽음으로 적멸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드릴 때는 새벽닭이 울기 전에(닭이 울면 귀신이 가버리니까) 드리고, 밥에 수저를 꽂아두고 국에 밥을 말아둡니다. 이런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부모를 영원히 죽이기 때문에 가장 큰 불효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을 품고 있는 유교제사가 이조시대에(13세기 이후) 외래문화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전통적 풍습처럼 정착하였습니다. 중국산 문화입니다. 제사를 지낼 때는 조상의 은덕을 기대하고 드립니다. 조상의 도움으로 한해의 농사가 잘되었으니 그 은혜에 감사하다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냅니다. 이것이 우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상이란 무엇입니까? 우상이란 창조주 하나님 대신에 어떤 피조물이나 어떤 무형적인 것을 하나님의 위치에 두고 섬기고 관심을 기울이며 충성을 바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중심이 아닌 삶이 곧 우상 숭배인 것입니다. 제사를 드림으로 조상의 은덕으로 잘 살고, 제사를 지내지 않음으로 화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 중심이 아닌 조상 중심의 우상숭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조상이 귀신이 되어 제사를 잘 드리는 후손에게 복을 줍니까?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도 이것을 믿지 않습니다. 대부분 나이 드신 분들이 전통적인 추석문화를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기 때문에 그저 의례적으로 따라서 할 뿐입니다. 효도는 살아계실 때 해야 합니다. 살아계실 때는 용돈 한 번 주지 않던 자식이 효도한고 평생 돈을 들여 차례상을 차려놓고 절을 한다고 살아계실 때 효도하지 못한 것 보상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전통 문화이니까 무조건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사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가 아닙니다. 중국산 외래 수입 문화입니다. 관습도 잘못된 것이라면 바꾸어야 합니다. 며느리가 싫어하는 것을 관습이라는 명목으로 강요하여 갈등을 일으키게 하고 이혼하게 하면 안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슬람 사회에 명예살인이라는 것이 관습으로 당연시 되고 있습니다. 인류 보편적 정서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외부인이 보면 얼마나 나쁜 관습입니까? 관습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비문명적이고, 비양심적이며 비인권적입니까? 아프가니스탄 신여성 샤이마가 있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발발하고 나서 톨로 TV가 새로 신설되었는데, 이 방송국에는 샤이마 레자위는 인기 여자 앵커로 활동하였습니다. 당시 24세였던 그녀는 예쁘고 똑똑했습니다. 그녀가 진행하는 인기가요 순위 프로그램은 시청률 1위를 기록할 만큼 대단한 인기를 얻었습니다.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생각도 깨어 있어 직접 운전하며 방송국에 출근을 했으며, 영어도 잘했답니다. 아프가니스탄 여자들은 보통 부르카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가리고 다니는데, 샤이마는 서양식 의상과 머리만 간신히 가리는 스카프(히잡)만 쓰고 방송에 출연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엄청난 논란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장 강력한 이슬람법인 샤리아법을 따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샤이마의 서양식 의상과 여성과 남성이 함께 의자에 앉아 진행하는 방식이 이슬람 율법에 반한다고 항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종교 단체의 압력으로 방송국은 결국 2005년 3월, 샤이마를 해고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두 달 뒤, 샤이마는 집에서 오빠가 쏜 두 발의 총알에 머리를 맞고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명예살인’을 당한 것입니다.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딸과 아내를 아버지와 남편이 죽이는 일을 당연시 여기는 관습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처녀가 임신하거나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지만 부모가 정해 주는 집안이 아닌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거나, 타 종교인과 교제할 경우, 옷차림, 언행 등 행실이 남에게 좋지 않게 보이는 경우, 심지어는 외간 남자를 쳐다보았다는 것으로 명예살인을 합니다. 이와 같은 관습은 요르단, 이라크, 팔레스타인, 이집트,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등을 비롯해 이슬람 국가 대부분에서 행해집니다. 유엔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해마다 약 5000명, 인권단체들의 통계에 의하면 약 2만 여명의 무슬림 여성들이 명예살인으로 희생된다고 합니다. 이런 관습을 정당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과거 전통과 관습이라는 것으로 포장된 악습들이 존재했습니다. 명예살인처럼 불과 수백 년 전인 조선 시대만 해도 양반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을 때 자결하는 은장도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자살을 권유한 것이고, 이슬람 국가는 오빠나 아버지가 직접 살해한 것이 다를 뿐입니다. 가문의 영광과 체면을 위한 수절문화가 숭배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사회적 관습으로 전해져온 이런 전통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 밖에 없는 딸들에게 관습이라는 명목으로 은장도를 주겠습니까? 우리나라에 들어온 초기 선교사님들은 조혼, 처첩제, 여성 차별, 일부다처, 아편, 음주, 흡연, 조상제사 등을 국가발전을 막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한국의 악습으로 생각해 엄격히 금하였습니다. 그래서 우상숭배 금지와 조상제사 폐지, 성수주일, 부모공경, 축첩금지 등을 가르쳤고 이를 세례교인이 되는 필수 조건으로 삼았습니다. 기독교인이든 비 기독교인이든 조혼, 처첩제, 일부다처 등을 고유 전통과 관습이라고 지금도 그렇게 살 것을 주장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조상제사 만큼은 전통과 관습이라고 주장하며 제사를 강조하고 추석 같은 명절만 되면 그것으로 가정에 갈등이 생기고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과감하게 제사문화에서 탈출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명절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돌아가신 조상의 은덕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 50편 23절에도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라고 하였습니다.
2. 우리 신앙인은 죽은 사람 중심의 고통스런 문화에서 산 사람 중심의 즐거운 추석 문화로 바꾸어야 합니다.
추석에는 전국에서 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귀성한다고 합니다. 추석이 되어 고향에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순한 귀소본능 혹은 회귀본능일까요? 아닙니다. 추석 날 날이 밝기 전에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입니다. 씨족의 종가에 모여 씨족조와 선조에게 제사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성묘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효의 연장으로, 한 해 농사를 잘 짓게 한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여 죽은 조상을 즐겁게 하는 의식을 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죽은 조상을 즐겁게 하려하다 보니까 죽은 자 중심의 문화가 되어 버립니다. 남자들은 명절이지만 주부들은 노동절이 되어 버립니다. 죽은 자를 위해 산 자들이 죽어나는 절기가 됩니다. 며느리들은 추석 음식 만들기, 제사상 차리기, 성묘하기, 설거지하기, 선물 준비하기 등으로 명절 증후군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추석에 만나 서로 용기를 주고 격려하고 위로하며 만남의 기쁨을 나누기 보다는 제사와 성묘문제로 갈등을 겪게 됩니다. 죽은 자를 기쁘게 하는 추석 문화에서 산자들이 즐거워하는 추석 문화로 바뀌어야 합니다. 부모님을 추모하는 정도에서 끝내어야 합니다. 살아 계실 때 교훈을 생각하고 좋은 점들을 기리는 것입니다. 죽은 후 상 다리 불어지게 제례상을 차리고 백번 절을 한다고 죽은 조상이 즐거워하는 것 아닙니다. 부모를 즐겁게 하고 효도하는 것은 살아 계실 때 하여야 합니다. 죽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다윗은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을 때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삼하12:23)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죽은 영혼은 다시 올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10:21)라고 했습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관습도 변해야 합니다. 과거에 있었던 순장제도를 관습이니 지금도 지키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인도에서는 아직도 사회적 관습이라고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같이 땅에 묻히거나 아니면 과부들만의 공동체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렇게 죽은 자를 중심으로 하는 관습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마 죽은 남편을 위해 살아있는 아내를 생매장한다면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악습이니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명절 제사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사를 지낸다고 유교 전통대로 제대로 지키는 것도 아닌데 제사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은 자를 위해 산자라 죽어나는 명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아들 딸 하나인 집들이 많습니다. 며느리 세 네 명씩 거느린 때가 아닙니다. 시어머니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내 딸이 하기 싫어하는 것 며느리에게 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추석날 오후 두 여인이 공원 벤치에 앉아서 자식들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답니다. 한 여인이 "댁의 사위는 어때요?"라고 물었답니다. "아주 훌륭해요, 딸이 아침을 차려 주지도 않고 늦잠 자게 내 버려 두지오."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댁의 며느리는요?"라고 물었답니다. "아주 형편없어요, 아침마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들이 굶고 다녀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내 자식과 남의 자식 차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다 하나 둘 밖에 없습니다. 재산도 똑같이 상속합니다. 남존여비 관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아들이 설거지 하면 공처가이고 사위가 설거지 하면 애처가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며느리는 남편에게 쥐어 살아야 하고, 딸은 남편을 휘어잡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위가 처가에 자주 오는 일은 당연한 일이고, 내 아들이 처가에 자주 가는 일은 줏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추석날 고통 받는 대한민국 며느리들에게는 가장 끔찍한 말이 있다고 합니다. ‘더도 말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랍니다. 1년 365일이 그 ‘지옥 같은’ 한가위 같다면 저 원수 같은 남편이랑 한 이불 덮고 잘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제사 지내고 점심 먹고 상 치워놓으면 시누이들 벌떼같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자기 딸들 오면 그렇게 좋아하면서, 남은 딸 아버지 어머니 만나로 가는 것은 왜 싫어하냐는 것입니다. 추석 명절 죽은 자를 중심으로 하여 지치고 갈등 가운데 불행한 삶을 살 것이 아니라 산 자들을 중심으로 가족 친지들이 한데 모여 정을 나누면서 화목하고 즐거운 명절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음식도 제사 음식을 중심으로 준비하기 보다는 산 자를 중심으로 간단하게 합니다. 요즈음 평소에 잘 먹고 있습니다. 못 먹어 죽은 사람 없습니다. 고기보다 야채를 더 좋아하고 많이 먹어라고 하는 것은 욕이 된 세상입니다. 못먹은 조상들 생각하면 많이 차려여 회도하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며느리와 아들이 함께 음식 준비, 설거지, 집안 청소하는 것을 보기 좋게 보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나팔절 명절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지키라고 하시는지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가족이,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준비하지 못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 일가친척, 남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근심하지 말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이 말을 듣고 백성들이 어떻게 합니까?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명절, 소외된 사람과 함께 하는 명절, 공동체의 기쁨이 회복되는 명절을 보내라는 것입니다. 명절날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쁨이 회복되었습니다. 함께 나누어 먹습니다. 함께 즐거워합니다. 추석을 맞이할 때 우리의 어려운 일가친척들을 돌보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남을 배려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명절이 되어야 합니다. 결혼하지 않은 노총각 노처녀 만났을 때 “언제 결혼할래.”라고 물어 봄으로 과년한 싱글들의 기쁨을 빼앗지 말아야 합니다. 조금 건강한 아이에게 “살 좀 빼야지” 말하여 조카들의 기쁨을 빼앗지 말아야 합니다. 음식 다 차려놓자 나타난 시누이들은 고생한 며느리 보고 "고생하셨네요."라고 삐쭉거림으로 며느리의 기쁨을 빼앗기 말아야 합니다. 며느리는 종일 주방에서 음식을 하는데 시어머니와 남편과 시누이는 거실에서 TV만 보다가 점심이 되어 “왜 밥 차려 오지 않느냐”고 소리치면 며느리 마음 뒤집어 놓지 말아야 합니다. 며느리들은 동서나 시누이와 차별할 때 시어머니가 가장 야속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며느리한테는 일찍 오라고 아침부터 전화하면서 시누이한테는 하루 종일 자라고 할 때" "장보기부터 혼자 했는데 뒤늦게 나타난 동서에게는 아무 말이 없을 때" 며느리는 기쁨을 잃고 뒤집어 집니다. 잔소리 하는 것 기쁘게 못합니다. "조금씩만 차리라고 해놓고 '손이 작다'고 하면 속 뒤집어 집니다. "시누이 곧 오니까 보고 가거라"라며 친정 가는 길을 막아서는 시어머니 "너는 호강하는 거다" "요즘 애들은 고생을 몰라"라며 옛날이야기를 하는 시어머니, "다른 집 며느리와 용돈 액수를 비교하는" 시어머니는 며느리 마음을 기쁘게 해 주지 못합니다. "음식 다 차리고 나면 그제야 '어머니 고생하셨네요.' 하며 들어오는 며느리는 시어머니 마음 기쁘게 해주지 못합니다. "멀리 산다고 늦게 와서는 배고프다며 음식 주워 먹는 며느리" "차가 밀려 늦었다고는 늦게 오는 며느리” 시어머니가 그것 다 일부러 늦게 온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 마음 기쁘게 못하는 것입니다. "바쁘다며 돈만 보내고 넘어가는 며느리" "시종일관 못마땅한 표정의 무뚝뚝한 며느리" "아이 본다는 핑계로 방 안에서 나오지 않는 며느리" "귀향하느라 힘들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며느리" 시어머니 마음을 기쁘게 못하는 야속한 며느리들입니다. 차례상 다 차려 놓으면 와서 먹고 끝나기가 무섭게 일어서면 시어머니는 친정 갈 궁리만 하는 며느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반가운 가족 친척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이는 추석 명절이라고 무심코 뱉은 한마디가 듣는 사람에겐 상처를 주는 비수가 되곤 합니다. ‘살 좀 빼라’ ‘돈 많이 벌어라’ ‘결혼 언제 하느냐’ ‘몇 등이냐’ 이런 말 하면 남몰래 눈물 흐리며 ‘다시는 명절 때 할머니집 안 간다.’고 다짐하게 합니다. 죽은 자 중심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함께 즐거워하는 명절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만나서 즐거운 명절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악습은 철저히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야 합니다.
관습이라고 우리가 다 계승 발전시킬 것이 아닙니다. 좋은 관습은 계속적으로 계승 발전해야 하지만 나쁜 관습은 관습이라고 하여 그대로 따를 것이 아니라 새롭게 변화를 시켜야 합니다.
지금도 조혼이나 축첩제도를 관습이라고 지켜야한다고 주장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겠습니까? 번잡한 제사 관습, 남존여비의 관습, 낭비적인 혼례 관습 지키지 않는 것이 미덕인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슬람권에서는 잔인하고 미신적인 여성할례가 아직도 종교의 탈을 쓰고 시행되고 있습니다. 일 년에 2백 만 여명, 하루에 6명 정도의 소녀들이 순결한 몸으로 시집갈 준비를 하기 위해 할례의식을 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할례를 받지 않은 소녀들은 음탕하고 불결하다는 누명을 쓰고 결혼할 수 없으며 딸을 가진 부모들은 예외 없이 관습적으로 어린 딸을 순결한 처녀로 키우기 위해 할례를 행하고 있습니다. 수단의 여성들은 지금도 90%가 여성 할례를 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남자들의 무지와 욕심, 욕정으로 만들어낸 악습입니다. 이런 것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들의 관습이고 전통이니 보존되어야 하고 길이길이 계승되어야 할 것입니까? 과거 피지와 같은 나라에서는 인육을 먹는 것을 당연한 문화와 전통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악습이기 때문에 살아졌습니다. 중국에서는 한 때 발이 작을수록 더 우대해주고 전족을 하지 않은 여인은 혼인길도 막히는 악습이 성행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살아졌습니다. 과거 역사 속에는 남편이 죽으면 아내를 생매장하는 순장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악습이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 거의 살아졌습니다. 그것은 전통과 관습이라고 주장하며 지금도 그와 같이 사는 사회가 있다면 사람들은 미개한 사회라고 비난합니다. 기독교 신앙이 들어가면 미신적 구조를 가진 악습이 타파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독교의 전파로 말미암아 남녀평등이 실현되었고, 조혼, 축첩 제도, 신분제도가 살아졌습니다. 조선 시대 때 남자는 머리를 상투하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이 때 목숨 걸고 싸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투하라고 해도 안 할 것입니다. 상투는 오히려 불편한 것이 되었습니다. 관습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의 의식이 바꾸어지면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관습을 절대시 하면 안 됩니다. 절대적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관습이란 마치 옷과 같은 것입니다. 옷은 겨울이 되면 겨울옷을 입고 여름이 되면 여름옷을 입어야 합니다. 관습도 인간이 짐승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전통은 중요합니다. 전통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과거의 축적물이 전통입니다. 이 전통문화는 마치 물과 같은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염된 물은 갈아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 조상들이 농경 문화와 유교적 전통에서 차례와 성묘로 했다고 지금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가족 제도 하에서 이런 문화가 통치자의 권위를 확보해주고 가정질서를 확고히 해주는 수단이 되었지만 지금은 정보사회이고 핵가족화된 사회입니다. 사회제도가 바뀌고 삶의 양식이 바뀌었는데 전통이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그 전통대로 해야 한다고 그릇된 전통을 답습해서는 안 됩니다. 조상이 추석을 그렇게 지내었느니 우리도 그렇게 지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통도 바뀌는 것이고 잘 못된 과거 전통은 변혁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핵가족 시대이고 아이가 하나 둘 밖에 없습니다. 조금 지나면 이 제사 성묘 문화는 바뀌지 말라 해도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조상 제사는 단순히 부모님께 효도하는 미풍양속이 아닙니다. 부모를 귀신으로 만들어 섬기는 것입니다. 부모의 영혼이 이 땅에 떠도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죽으면 지옥과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요즈음은 죄상 귀신들도 신세 한탄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어도 편리하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 때문이라고 합니다. 조상귀신들이 모였답니다. 한 조상귀신이 추석 제사 음식 먹으러 후손 집에 갔답니다. 그런데 “교통체증 때문에 처갓집에 갈 때 차 막힌다고, 저녁에 차례를 지내버려 가보니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다”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다른 조상귀신이 분통터져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자넨 그래도 나은 편이여, 나는 후손 집에 가보니 집이 텅 비었더라구. 알고 보니 해외여행 가서 거기서 제사를 지냈다는 거야. 거길 내가 어떻게 알고 찾아가누?"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찡그리고 앉은 다른 조상귀신이 나는 "상은 잘 받았는데 택배로 온 음식이 죄다 상해서 그냥 물만 한 그릇 먹고 왔어." 뿔난 또 다른 귀신이 "나쁜 놈들! 호텔에서 지낸다기에 거기까지 따라 갔더니, 전부 플라스틱 음식으로 차려서 이빨만 다치고 왔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열 받은 다른 조상귀신이 힘없이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난 말야. 아예 후손 집에 가지도 않았어. 후손들이 인터넷인가 뭔가로 제사를 지낸다고 해서, 나도 힘들게 후손 집에 갈 필요 없이 편하게 근처 PC방으로 갔었지."라고 말하자 다른 조상귀신이 물었답니다. "그래, 인터넷으로라도 차례 상을 받았나?" 그러자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먼저 카페에 회원가입을 해야 된다 잔아. 귀신이 어떻게 회원가입을 하노? 귀신이라고 가입을 시켜 줘야지! 에이 망할 놈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제례를 고집하지만 예날 전통대로 제대로 하는 집이 얼마나 됩니까? 제례는 조상의 은덕을 추모하여 정성을 기념하는 의식입니다. 제례는 상중에 지내는 우제(虞祭)와 소상, 대당, 시제(時祭), 차례(茶禮), 묘제(墓祭) 등이 있습니다. 제례를 지낼 때는 영신이라 하여 먼저 대문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그 후 제주가 신위 앞에 앉아 향로에 향을 피웁니다. 그 후 참신, 초헌, 축문 읽기, 아헌, 종헌, 침작, 삽시정저, 합문, 계문, 헌다, 철시복반, 사신, 철상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친 후 조상이 남겨준 복된 음식이라 해서 시식하고 친척과 이웃에게 나눠주는 음복으로 마칩니다. 그런데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유독 명절이 되면 차례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전통 의식대로 지내지도 않고 전통의식을 알지도 못하면서 제사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모 효도의 정신을 살려 살아계실 때 효도를 해야 합니다. 죽은 후 제사는 산 사람들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시켜야 합니다. 돌아가시면 부모님을 귀신의 예로 모시게 되는 것이 ‘효’의 표현일 수 있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추모예배로 드리면 됩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명절 다음날 지도자들이 학사 에스라에게 갑니다. 무엇하기 위해서 갑니까?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간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발견합니까? 초막절에 대한 말씀을 발견합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지냈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고난의 세월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 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초막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이 좋은 전통을 잃어버리고 산 것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 때부터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본질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종교력 1월은 중요한 달입니다. 1일은 나팔절입니다. 특별히 성별된 달의 시작을 선포합니다. 농경 주기의 마지막에 자리 잡고 있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10일은 속죄일입니다. 15일부터는 초막절이 시작되는 절기입니다. 신명기 31장 9-13절에 따르면 매 7년마다 초막절에 율법을 낭독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통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그 전통을 지키는 것입니다. 18절을 보세요. 악습은 철저히 버려 버리고 좋은 전통은 계승 발전하여야 합니다.
부패한 사회를 개혁한 영국의 양심 윌리엄 윌버포스가 있습니다. 18세기 말, 세계 최고의 해군력과 상선들을 갖고 있던 영국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잡아 북미대륙으로 실어 나르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열악한 항해 환경과 비인간적인 처우로 도중에 25%가 넘는 흑인들이 사망할 정도로 살인적인 노예 수송이 경제적 이익이라는 이유 하나로 묵과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150여 년 동안 약 200만에 다다르는 노예를 수송했는데, 이것이 국가 수입원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윌리엄 월버포스는 노예 제도가 하나님이 싫어하는 관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막강한 상인들이 반대합니다. 재벌, 넬슨 제독 같은 식민지 기득권 세력, 대부분의 왕족, 귀족들이 노예제도를 자신의 이익과 관습에 맞다고 찬성합니다. 그러나 왜소한 체격의 윌버포스는 150번이나 되는 대(對)국회 논쟁을 통해서 설득하였습니다. “영국이 진정으로 위대한 나라가 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하는데, 노예 제도는 분명 하나님의 분노를 자극하는 일이다. 기독교 국가를 자처하는 영국이 황금에 눈이 멀어 노예 제도를 갖고 있다니..., 이러고도 오래 살아남은 제국은 역사에 없었다.”라고 외칩니다. 두 번에 걸친 암살 위협과 갖은 중상모략과 비방에 시달리면서도 윌버포스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영국의 수많은 뜻 있는 목사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외롭고도 기나긴 싸움을 버텨 나갔습니다. 1833년 7월 27일, 윌버포스가 뜻을 세운 지 56년 만에 영국 국회는 노예 제도를 영원히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리고 사흘 후, 윌버 포스는 “나로 하여금 영국이 노예 제도를 통해 얻는 2천만 스털링의 돈을 포기하는 날을 목도하고 죽게 하시니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천국에 갔습니다.
민족 명절인 추석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관습은 우리에 의해 가정과 사회에서 바꾸어져야 합니다. 전통이 만든 근거 없는 악습, 전통으로 포장된 악습에서 탈출하여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명절 문화를 과거 지향적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관습에게 탈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신앙인들은 조상 제사 문화를 하나님께 경배하는 예배 문화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은 죽은 사람 중심의 고통스런 문화에서 산 사람 중심의 즐거운 추석 문화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악습은 철저히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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