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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수2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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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성실한 자의 유익
본문: 여호수아 24: 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자치통감을 쓴 사마광에게 어느 날 그의 제자 유안세가 물었답니다. 「선생님 한문자 수만 자 중에서 제일 중요한 글자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일생동안 살아가면서 생활의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글자를 하나만 골라 주십시오.」그 때 사마광은 「 그것은 성(誠)이라는 글자다.」라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제자가 「선생님, 성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자 사마광은 간결 명쾌하게 「불망어(不忘語)」라고 대답했답니다. 망(忘)은 허망할 망자입니다. 허망한 말과 허망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성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성실은 「정성 성」자와 「열매 실」자로 된 단어입니다. 그래서 성실은 ‘맡은 일에 있어서 정성을 다해 알차게 그 일을 행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실(誠實)한 자의 유익과 성실에 대하여 벤자민 프랭클린은 「정직과 성실을 벗으로 삼아라. 아무리 친한 벗이라도 너의 정직과 성실만큼 너를 돕지는 못할 것이다.」 「백 권의 책에 쓰인 말보다 한 가지 성실한 마음이 더 크게 사람을 움직인다.」라고 했습니다. 제임스 럿셀 로우웰은 「성실하지 못한 사람은 위대한 것들을 생산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고, 카네기는 「성실한 한마디의 말은 백만 마디의 헛된 찬사보다 낫다.」라고 말했습니다. 변화가 급박한 세상에서 성실은 구시대의 유물처럼 취급되고 성실은 변화를 거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성실은 힘이 있고 성실한 자에게 유익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실히 해야 할 일은 1. 도덕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창39:10) 2. 하나님을 섬기는 것(수24: 14) 3.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행하는 것(왕상3:6) 4. 맡겨진 일(왕상12: 14, 15) 5. 하나님의 전을 보살피는 일(대하 34: 11, 12) 6. 백성을 보살피는 일(시78:72). 7. 타인의 비밀을 지키는 일(잠11: 13) 8. 하나님의 말을 전하는 것(렘23:28). 9. 하나님의 선한 종이 되는 일(마24: 45) 10. 구제하는 일(롬12: 8) 11.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는 일(엡6:5, 골3:22) 12.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요삼1:5) 등입니다. 그러면 성실한 자의 유익이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이 함께하사 형통케 하십니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39:22, 23) 불쌍한 유대인이 이스라엘에서 살기 힘들어 무조건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는 영어를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습니다. 마침 유대인 회당에서 관리인을 모집한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영어를 전혀 못해 퇴짜를 맞았습니다. 그는 취직을 포기하고 길거리에서 행상을 시작했습니다. 워낙 열심히 일한 그는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은행에 대출을 요청하였습니다. 재산이 많은 것을 안 은행에서는 대출을 허락하면서 사인하라고 서류를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어에 까막눈이었습니다. 은행원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영어를 읽지도 쓰지도 못 하면서 이렇게 큰 성공을 하였군요. 만일 영어를 읽을 줄 알고 쓸 줄 알았으면 무엇이 되었겠습니까?」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영어를 할 줄 알았으면 회당 관리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걸 못하는 바람에 성실하게 행상을 해 이렇게 돈을 많이 벌었지요.」 성실이 재산입니다. 성실은 일을 성취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성실함은 자산이며 우세함입니다. 성실함이 어딜 가나 환영받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성실한 사람은 때론 나약하고 무능하며, 고지식한 사람의 대명사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느 분야에서나 성실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 한 방울도 꾸준히 떨어지면 돌을 뚫게 됩니다. 성실이 재능을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 각지에 1,700여 개의 점포를 설치하여 백화점 왕으로 알려진 페니는 지난날을 술회하면서 "나의 자본이라고는 세 곳의 점포와, 그 밖에 책임을 맡길 만한 인재를 발견하여 훈련하고, 신의와 성실을 거래의 대원칙으로 한다는 경영상의 나의 신조뿐이었다."다고 술회한 바 있습니다. 성실이 그를 부자로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성실은 인간을 성공케 하고 형통케하는 큰 자본입니다. 2. 주께서 큰 은혜를 베푸십니다.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왕상3:6) 영국의 대 부호이자 건축가인 토머스 해밀턴 가에는 선조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불가사의한 보물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자유자재로 황금이 생기게 하는 '마술의 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술의 돌은 주인 외에는 아무도 절대로 볼 수가 그 정체를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영국 왕 제임스 6세가 해밀턴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왕은 해밀턴에게 오래 전부터 궁금하게 여기던 그 보물을 보여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조금 후에 해밀턴은 작은 상자를 가지고 왔습니다. 왕은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로 상자의 뚜껑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상자 안에는 마술의 돌이 아닌 두 구절의 글이 적혀 있는 종이가 들어 있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내일이 있다고 생각지 말아라, 타인의 힘을 의지하지 말아라.」 '사곡히 행하는 부자'란, 겉으로는 정직하게 재물을 모으는 것 같지만 마음속으로는 세상 재물을 사랑하여 부당하고 불의하게 치부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처럼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적인 부자는 차라리 가난하면서 성실한 사람보다 못합니다. 성실히 행하는 가난한 사람은 물질을 많이 봉헌하지 못해도 정성을 드려 하나님을 섬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재물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3. 하나님이 그 성실함을 따라 판단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시7:8) 최근 대학교들이 각 학교의 특성에 맞는 잠재력과 소질을 갖춘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실시하는 입학사정관제라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입학사정관제는 단순히 학업성적으로 학생을 평가하지 않고, 학생의 학교생활과 여러 가지 이력 등을 참고해, 리더십, 성실성, 잠재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학생들을 선별합니다. 따라서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하는 각 학교마다 학생들의 선별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최근 서울대에서는 ‘화려한 이력보다는 성실성을 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평가요소는 학업능력이 되겠지만 그만큼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였는가?’에도 큰 비중을 두어서 평가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3년 동안 많은 봉사활동과 수상 경력, 높은 직책을 수행했다하더라도, 마땅한 이유가 없다면 단순히 ‘이력 관리’를 했다고 평가받게 됩니다. 오히려 뚜렷이 보이는 이력은 없더라도 3년간 성실히 학생의 신분에 맞는 생활을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됩니다. 이력의 크기보다도 그 일을 하게 된 배경이 학생들을 더욱 잘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큰 업적을 쌓아 화려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보다도 꾸준하고 성실한 신앙생활이 중요합니다. 믿음의 크기는 업적으로 평가받지 않음을 기억하고 꾸준히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4. 하나님이 보호하십니다.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성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시31: 23) 일본인 크리스천인 가가와는 밤 중에 일어나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말에도 "만일 내게 이 기도하는 한 시간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 가가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읽는 습관이 있었는데 한 번은 졸업식 날, 그 날도 자리에 앉아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를 본 교수가 흔들어 대자 책이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가가와는 아무 반응도 없이 떨어진 책을 주워들고 또 계속해서 읽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성실한 사람입니다. 성실로 식물을 삼는 자 하나님이 아름답게 생각하십니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찌어다」(시37:3) 5. 온전한 길로 나아갑니다.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잠11:3) 가난하지만 남을 정성껏 섬기기를 좋아하고 성실한 청년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는 신앙생활에 충성하였습니다. 그 교회에 미국인 선교사 한 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분이 어느 날 장작을 좀 쌓아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 청년은 선교사집 귀퉁이에 장작을 힘들여서 잘 쌓았습니다. 힘들게 다 쌓고 나니까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이 곳은 비가 맞을 염려가 있으니 저 쪽에 다시 쌓아 주시겠습니까?」 그 청년은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렇게 순종하였습니다. 성탄절이 되었습니다. 선교사는 그에게 유학 비행기 표와 유학 허가증을 주었습니다. 일년 동안 그 청년을 이렇게 저렇게 시험하여 본 것이었습니다. 성실성, 정직성 그리고 충성심, 그리고 남을 섬기는 모습을 이렇게 저렇게 시험한 것이었습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골3:22) 성실은 자신을 완성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큰 나무도 작은 뿌리에서, 큰 집도 벽돌 하나에서, 큰 강도 물방울 하나에서 시작합니다. 자신의 인격을 성숙시키는데 성실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쓴 ‘중용’만큼 성실을 강조한 책은 없을 것입니다. 성실은 중용의 알파인 동시에 오메가입니다. '성실은 사물의 시작이요, 또한 끝이다. 성실성이 없으면 세상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성자물지종시. 불성무물)' 중용 25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성실은 인생의 대본(大本)이요, 도덕의 근간이다. 성실성이 없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니다. 성실성이 없는 우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성실성이 없는 대화는 참된 대화가 아니다. 성실성이 없는 인간관계는 진실한 인간관계가 아니다. 성실성이 없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니다. 성실성이 없는 사람은 믿을 수가 없다. 성실성이 없는 교육은 참된 교육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실은 성기(成己)의 원리인 동시에 성물((成物)의 원리」라고 중용은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자아(自我)를 완성하는 것이 성기요, 사물(事物)을 완성하는 것이 성물입니다. 내가 나를 완성하고 어떤 사물을 완성하려면 성실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실은 자기완성의 원리인 동시에 사물을 완성하는 원리라는 것입니다. 성실하게 사는 것은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하여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11:5)」라고 말씀하십니다. 6. 복을 받습니다. 미국 대 강철 회사 사장인 카네기가 '쉬브'라는 사람을 후계자를 지명하였습니다. 회사의 탁월한 중역들을 제치고 초등학교 밖에 졸업하지 않은 그가 후계자로 지명되었습니다. 그는 원래 정원 청소부로 입사했답니다. 그런데 그는 정원 청소뿐 아니라 공장 안까지도 말끔히 청소를 하곤 했답니다. 그의 성실이 눈에 띄어 그는 청소부에서 정식 직공으로, 사무원으로, 마침내는 카네기의 비서로 발탁되었습니다. 어느 날 카네기가 밤늦도록 사무실에 있다가 집에 가려고 일어나 밖에 나와 보니 쉬브가 그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있었답니다. 놀란 카네기는 "왜 아직도 퇴근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답니다. 그는 "사장님께서 저를 언제 부르실지 모르는데 어떻게 자리를 비울 수 있습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쉬브는 카네기가 가장 신임하는 성실한 사람이었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져도 성실한 자는 복을 받느니라」(잠28:10) 7. 구원을 얻습니다. 「성실히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나 사곡히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잠28: 18) 마크 하트필드는 인도의 캘커타에 있는 마더 테레사를 방문해 그녀와 함께 하루를 보내면서 현장을 다니며 그 참상과 빈곤, 지옥 같은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었습니다. 날이 저물 무렵에서 그는 마더 테레사에게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엄청나게 많은데 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작을 뿐임을 느낄 때 낙심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즉시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주님께서 나더러 성공적이 되라고 나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성실하라고 나를 부르셨기 때문에 낙심되지 않아요.」 우리라고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 또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성실’을 위해서이지 ‘성공’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세상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심지어 때로는 교회도 우리더러 세상의 방식대로 측정되는 적당한 성공을 이루라고 재촉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주어진 삶에서 얼마나 성공했느냐를 따지시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성실했나를 따지십니다. 성실하게 사십시오. 8.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습니다.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창39: 46) 미국의 불루문 치즈회사의 창립자 휘트니는 농부의 아들로 자랐으나 회사 사장이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는 처음 식료품 연쇄점의 점원으로 취직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일에 성실하였습니다. 소매부에서 일하던 그는 거기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점심시간에는 도매부의 일도 자진해서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하여는 보수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담당 부장의 인정을 받게 되어 부장은 더 좋은 자리가 났을 때 휘트니를 끌어 앉혔습니다. 휘트니는 그 후 점원에서 외판원으로, 부장으로, 그리고 마침내 회사를 창설하여 사장이 되었습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의인은 결코 멸망하지 않습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며 꾸준히 올바른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유혹을 받을 때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며, 그 유혹을 물리치기까지 더욱 하나님을 굳세게 잡고 의지하여 큰 능력을 받고 신앙이 성숙됩니다. 이와 같이 정직하고 성실한 의인은 전화위복의 인생,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누구나 성실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성실에 대한 갈망은 누구에게나 있고 성실한 사람에 대한 몸값은 성실한 만큼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약삭빠른 세상에서 성실한 사람은 궁핍하게 보이고, 쉽게 폄하당하며, 융통성 없게 보일 지라도 길게 보면 성실함이란 결코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손해나 불이익을 끼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성실한 사람을 신뢰하고 함께 일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훌륭한 처세술이 성실이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 기도: 인자와 긍휼하심이 풍성하신 주님,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내가 거룩한 자의 회중에서 비파와 악기로 주를 찬양하며 주의 성실을 찬양하리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맡겨진 일과 구제하고 나그네를 대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에 성실한 마음으로 행하게 하소서. 성실한 자가 받을 복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에게 성실과 인내와 믿음의 본을 보여 주신 예수님, 주님이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성실과 믿음으로 승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꾸준히 주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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