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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장들과 놋제단과 성막의 뜰

출애굽기 김강호 목사............... 조회 수 3070 추천 수 0 2012.11.28 22:5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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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26:31-27:8 
설교자 : 김강호 목사 
참고 : 은혜와평강교회 http://www.gap.or.kr 

휘장들과 놋제단과 성막의 뜰

 

성막에는 휘장으로 드리운 문 셋이 있다. 성소의 휘장과, 성막문의 휘장과, 뜰 문의 휘장이 그것이다. 휘장들은 성막을 덮는 막처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만들며, 그 중 성소의 휘장은 그룹들을 수 놓아서 만든다.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중에 거하실 성소의 장막과 기구는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보이신 식양대로 지으라는 말씀으로 단락들을 이룬다(25:9, 40, 26:30, 27:8,). 첫 단락은 재료와 용도를, 둘째 단락은 성소의 기구를, 세 번째 단락은 덮는 막과 벽을 만드는 널판을, 네 번째 단락은 성소를 구분 짓는 휘장들을, 그리고 마지막 단락은 뜰을 만드는 방법이다.

 

뜰을 만드는 방법에 이어서 제사장 직분에 필요한 의복과 위임식과 그들이 분향할 단과 씻는 물두멍과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기름과 사르는 향품에 대한 명령이 따른다.성소의 휘장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짠 천에 그룹들을 수 놓아서 만든다. 성소의 문은  네개의 금기둥의 금갈고리에 성소의 휘장을 드리워서 만든다. 기둥은 조각 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서 만들며 각 기둥은 각각 은 한 달란트로 만든 밭침 위에 세운다.

 

성소의 장은 드리운 후에 증거궤를 그 휘장 안에 두면 그 휘장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한다.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고, 휘장 밖 북편에는 상을 놓고, 남편에는 등대를 놓아 상과 대하게 한다. 성막 문의 휘장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짜서 만들고, 그것을 금기둥 다섯의 금갈고리에 드리운다. 기둥의 밭침은 놋으로 부어 만든다.

 

또 단을 조각목 널판으로 비게 만든다. 크기는 가로 세로 각각 오 규빗이며 높이는 삼 규빗이다. 네 모퉁이에 뿔을 연결해서 만들며 전체를 놋으로 싼다. 단에 쓰이는 기구들도 다 놋으로 만든다. 놋 그물을 만들어 네 모퉁이의 네 고리에 드리워 높이의 반에 이르게 한다. 단을 메도록 채를 조각 목으로 만들고 놋으로 싼다. 그리고 성막의 뜰을 세마포 장으로 만든다. 뜰 문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 놓아서 짠 휘장을 기둥에 드리워서 만든다. 세마포 휘장은 남편과 북편의 길이가 각각 100규빗, 서편의 길이가 50규빗, 동편의 문 좌우편이 각각 15규빗, 문은 20규빗, 높이는 5규빗이다.

 

세마포 휘장을 드리우는 기둥은, 남편과 북편이 각각 20개, 서편이 10개, 동편의 문 좌우편이 각각 3개, 문에는  4개이다. 기둥은 각각 한 개의 놋 밭침 위에 세운다.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와 머리 싸개는 은으로 만들며, 성막에서 쓰는 모든 기구와 말뚝과 포장 말뚝을 다 놋으로 만든다.성소의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는 것이 목적이다. 성소와 지성소는 같은 재료로 만들고 그 기구들이 같이 언급되나 이스라엘을 위해서 그룹들을 수 놓아 만든 휘장에 의해서 구별된다. 증거궤는 휘장 안에 두며 그곳은 천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지성소이고, 떡상과 등대는 휘장밖에 두며 그곳은 성소이다.

 

성소의 문의 휘장은 성소와 뜰을 구별하고, 뜰의 문은 성막과 그것의 밖을 구별하지만 본문에서는 성소의 휘장처럼 구별하기 위한 용도라는 말씀이 없다. 그러므로 성소와 지성소는 하나이지만 구별되며, 성소와 뜰과 성막의 밖은 구별되나 하나이다. 시내 산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보이신 식양대로 사람이 만든 장막 곧 이스라엘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소가 있을 동안-곧 첫 장막인 휘장 밖의 성소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는 동안-에는 지성소에 나아가는 길은 아직 막혀있었다. 성소의 빛 가운데서 하나님의 상으로부터 안식의 양식을 받는 것이 이스라엘 중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 중에 형제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제 교회에 생명의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그 상에서 먹고 마시며 그리스도의 얼굴에 비치는 하나님을 아는 영광의 빛으로 사는 온전한 생명을 주셨다.

 

광야에서는 울타리도 천막이고 전부다 천막인데 돌로 짓고 안에다가 백향목과 잣나무로 대고 금으로 입히고 그런 집에 사셨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영광의 빛 가운데서 함께 계신다. 자기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셨으면 자기 백성과 함께 광야에서 사시고 자기 백성에게 가나안 땅의 안식을 주셨으면 가나안 땅의 영광 중에 계신다. 그 하나님이 지금은 부활하신 영광으로 교회에 계신다. 교회에 새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그런데 그 집을 지을 때까지라도 성소를 덮는 막까지라도 열 폭으로 되어 있지만 둘로 나누도록 되어 있어서 둘로 나눈 데서 금 고리로 연결하도록 했는데 곧 그것이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그 중간 지점에 오도록 되어 있다. 그러니까 휘장으로 지성소와 성소를 나눌 뿐만 아니라 그 덮는 막까지라도 그렇게 나누는 구조로 되어 있다.

 

오늘은 그 성소에 있는 휘장과 그리고 놋 제단과 그리고 성막 뜰에 대해서 강론하겠다. 성막에는 휘장으로 드리운 문 셋이 있다. 성소의 휘장과, 성막문의 휘장과, 뜰 문의 휘장이 그것이다. 옛날 부자들은 구중 궁궐에 산 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삼중 궁궐에 사신 식이다. 휘장들은 성막을 덮는 막처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만들며, 그 중 성소의 휘장은 그룹들을 수 놓아서 만든다. 이 문은 성소의 영광과 같이 되어 있는데 특별히 제일 안에 있는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휘장은 그룹들은 수 놓아서 만든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중에 거하실 성소의 장막과 기구는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보이신 식양대로 지으라는 말씀으로 단락들을 이룬다(25:9, 40, 26:30, 27:8,). 첫 단락은 재료와 용도를, 두째 단락은 성소의 기구를 말하는 단락인데 이 성소의 기구에는 증거궤 떡상과 등대가 있다. 그리고 세번째 단락은 덮는 막과 벽을 만드는 널판을, 네번째 단락은 성소를 구분짓는 휘장들을, 그리고 마지막 단락은 뜰을 만드는 방법이다.

 

그 구분마다 산에서 본 식양대로 지어라 하는 말로 단락들을 이루고 있다. 지금 25장부터 31장까지에서 성소의 구조를 말하는 것과 그리고 34장 이후에 성전을 직접 짓는데 가 있다. 거기서 말하는 순서가 다르다. 그것은 다음에 공부하면서 하겠다. 어떻든 하나님께서 거하실 집을 지어라. 그 집은 어떤 구조로 될 것인가? 했을 때 이 집을 지으라는 말은 하늘에서 보인 식양대로 지어라 하는 명령으로 되어 있는데 그 명령을 따라서 집에 대한 구조가 네 단락으로 되어 있는데 처음에는 하나님께 기뻐 예물을 가져올 것이고 그 예물들은 이런 것이다. 그것으로 내가 거할 집을 지어라. 그렇게 하고 나서 내가 너에게 산에서 본 식양대로 지어라 하면서 한 단락을 나누고 있고 그 다음 단락은 이제 증거궤를 만들고 그리고 떡상과 등대를 만들라 해 놓고 그 결론으로 산에서 본 식양대로 만들어라. 이런 단락이 나누어져 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지난주에 배운 것처럼 덮는 막은 제일 안에 있는 막은 이렇게 두 개로 만들고 그 위에 덮는 막도 두 개로 만들어라. 그런데 두 부분을 맞추는 제일 안쪽 것은 금이고 그 위에 덮개는 놋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다가는 염소털로 하고 해달의 가죽으로 만들어라. 이것은 완전히 무슨 막인가? 아마 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아라비아 유목민들이 광야를 유리하며서 지은 천막집이다. 그 사람들 천막은 남자 천막이 따로 있고 부인 천막이 따로 있고 그런 모양이다. 그 막이 그렇게 되어 있는데 이 막은 아마도 제일 고급 천막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중막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위에 덮는 막들은 완전히 유목민 천막인데 안에는 보니까 완전히 청색 자식 홍색 가늘게 꼰 베실로 아름답게 짰고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를 덮는 막은 아예 두 부분으로 만들어져 있고 그리고 안에는 나무로 둘러 쳤는데 금으로 입히고 그런 집으로 되어 있었다.

 

그것이 지난 시간에 배웠던 것이고 그리고 나서 하늘에서 본 식양대로 지어라 하는 말로 한 단락이 지어져 있고 그리고 오늘 배울 때를 보면 그 성소를 나누는 휘장 그러니까 주로 문들에 대한 이야기다.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휘장 그리고 그 밖에서는 성막에 문을 만드는 휘장 그리고 나서 놋 제단을 이야기하고 나서 하늘에서 본 식양대로 지어라 이 말로 단락을 지어 버리고 그 다음에 뜰에 대한 이야기가 쭉 나온다. 그리고 끝난다. 그리고 뜰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서 그 다음부터는 제사장이 어떻게 하나님의 전에 등불을 밝히고 하나님의 집에 들어와서 봉사하는가 하는 제사장의 규례로 연결이 되어 있다.

 

뜰을 만드는 방법에 이어서 제사장 직분에 필요한 의복과 위임식과 그들이 분향할 단과 씻는 물두멍과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기름과 사르는 향품에 대한 명령이 따른다. 성소의 휘장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짠 천에 그룹들을 수 놓아서 만든다. 성소의 문은  네개의 금기둥의 금갈고리에 성소의 휘장을 드리워서 만든다. 기둥은 조각 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서 만들며 각 기둥은 각각 은 한 달란트로 만든 밭침 위에 세운다.

 

말이 왔다 갔다 해서 어렵겠는데 전체적으로 말했을 때 성막 증거의 장막 하나님의 집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것을 조금더 좁혀서 말하면 성소다. 그러니까 이 성소라는 말이 성막 전체를 두고 성소라고 그러는지 성소와 지성소를 나눌 때 성소라고 그러는지 거기서 말하는 의미들을 그 흐름에서 봐야 할 것이다. 그러면 문은 세 개로 되어 있는데 성소의 휘장 하면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휘장을 성소의 휘장 그렇게 말하고 그리고 그 성소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다. 그것을 성소 문의 휘장 그렇게 말하고 그리고 뜰에 문이 있다. 뜰에 문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문이 세 개인데 휘장으로 전부 드리워서 만든다.

 

그런데 이 세 문은 똑같이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섞어 짜서 만들고 그것이 성소의 내부의 천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는 휘장에는 그룹들을 수 놓아서 만든다.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는 휘장은 큰 나무 기둥을 세워야 되는데 기둥이 네 개다. 조각 목으로 기둥을 만들고 금으로 싸서 그 기둥을 네 개를 세우고 그리고 그 밭침은 은 밭침으로 한다. 그리고 금 갈고리를 기둥나무에 붙이고 거기다가 이제 천을 걸면 그것이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는 휘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성소 입구는 기둥 나무를 다섯 개를 세우는데 그 기둥도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입히고 밭침은 놋이다. 갈고리는 전부 금이다. 거기다가 걸면 된다. 거기는 그룹들이 수 놓아진 것은 아니다.

 

성소 뜰에도 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성막 뜰의 문이다. 거기도 기둥을 넷을 세운다. 그런데 그 기둥 이야기는 무엇으로 만들고 하는 이야기가 없다. 이것은 출애굽기 앞에 부분을 봐도 그렇고 뒤에 부분을 봐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만드냐면 기둥을 넷을 세우고 갈고리는 전부 은으로 만들고 밭침은 놋이다. 그리고 거기다가도 청색 자식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짠 천막을 걸면 그것이 문이다. 방금 말했던 것처럼 성소 안의 기둥은 전부 금 기둥이다. 그리고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는 밭침은 은이고 그리고 문의 밭침은 놋이다.

 

그리고 이제 그 천막 뜰을 둘러 쳐야 되는데 하얀 세마포 막으로 뜰을 만든다. 그 높이는 성소보다 반 성소의 높이가 십규빗이면 그것은 5규빗이다. 그런데 그 기둥 나무 이야기를 보면 재미 잇게 되어 있다. 밭침은 놋인데 기둥 나무는 무엇으로 만들어라 는 말이 없다. 가름대와 갈고리는 은이다. 그리고 출애굽기 후반부 성전을 지을 때 보면 그 머리 뚜껑을 은으로 덮어라 그렇게 되어 있다. 머리 싸개를 은으로 해라. 그러면 그 기둥이 무슨 기둥일 것 같은가? 그런데 무엇을 하라는 말이 일체 없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봤을 때는 분명히 조각 목으로 만들었을 것이고 입히라는 말이 없으니까 조각목 그대로 있던지 그럴 것이다.

 

그런데 머리 싸게는 은 가름대도 은 갈고리도 은 하자면 은 기둥이 되어 있다. 밭침은 놋이고 그리고 천막을 고정시키는 말뚝은 전부 놋으로 해라 그렇게 되어 있다. 이것이 청색 자색 홍색 실 가늘게 꼰 베실로 썩어서 수 놓은 것도 아름다움을 말한 것이고 특별히 민수기를 보면 청색 자색 홍색 실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무슨 의미가 있냐면 그것은 하늘에 속한 색이고 하나님께 속한 색깔이다. 왜냐하면 성소 기구들은 이동할 때 청색 보자기로 싸든지 자색 보자기로 싸든지 홍색 보자기로 싸든지 그 보자기로 싸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을 봤을 때는 성소 기구는 그 색깔과 관계가 있다. 그 색깔은 하나님과 관계 있는 색깔이다. 청색 자색 홍색 그러니까 하나님의 집은 금집인데 청색 자색 홍색천으로 드러진 금집인데 그 거튼이 어느 정도 내려오냐면 밑에서 한 규빗쯤 올라온다.

 

여러분이 지난 시간에 본 구조되로 하면 그렇게 되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덮는 막이 28 규빗이다. 그런데 이것은 삼십 규빗이다. 그러니까 양쪽에 일규빗 씩 남아야 된다. 그 위에 뚜껑은 전부 바닥에 닿게 되어 있고 제일 안에 것은 밑에서 보면 금이 한 규빗 정도 보이게 되어 있다. 천막집이고 금집이고 나무 집이다. 섞어져 있다. 어떻든 문들은 전부 보면 하나님의 성소에 있는 영광의 빛과 같은 색으로 되어 있다. 단지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는 것은 그룹들을 수 놓아 있다. 전체적인 구조를 알겠지요?

 

그러면 전체적인 구조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건축업 자가 아니잖아요? 그 구조가 문제가 아니라 이 구조를 가지고 하나님이 어떤 의미로 그들 중에 거하신다고 말씀하시는가? 그것이 이 집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유대인들 같으면 구체적으로 이대로 지어야 되겠지만 우리는 그런 것도 아니고 문제는 이 구조를 배열했을 때 어떤 말로 말함으로 그 집의 특성을 드러내는가? 그것을 우리들이 알아야 되는 것이다.

 

성소의 장을 드리운 후에 증거궤를 그 휘장 안에 두면 그 휘장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한다. 무슨 말이냐면? 성소의 장은 어떤 용도냐면 본문에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다. 본문을 보면 33절을 보면 (출26:33) 그 장을 갈고리 아래 드리운 후에 증거궤를 그 장안에 들여 놓으라 그 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리라.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지성소가 된 이유는 왜 지성소가 되는가? 그 안에다가 증거궤를 들여놓기 때문에 지성소가 되는 것이다. 실은 지성소와 성소는 같은 색깔과 재료로 만들어져 있다. 단지 한가지는 그룹들은 수 놓은 휘장이 가운데 쳐버리면 그리고 나서 그 장안에다가 증거궤를 들여놓으면 그것이 지성소와 성소로 구별로 되는데 어떤 구별을 하냐면 이스라엘을 위해서 이 본은 그렇게 되어 있다. 그 장이 너희를 위하여 지성소와 성소를 구별하리라. 그렇게 되어 있다. 말하자면 그 경계가 없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다 죽을 것이다. 그러니까 실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그룹들을 수 놓은 천막으로 진치게 해서 못 들어오게 한 것이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복이라고 그랬다.

 

그룹들을 수 놓은 것 보니까 그것은 천사의 거처다. 천사가 지키고 있고 또 증거궤 위에는 속죄소를 얹어 놔야 한다. 34절에 보면 너는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어라 그렇게 되어 있다. 그 속죄소 천사들이 함께 쳐서 만들어져 있다. 그러니까 완전히 천사들의 거처고 천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거처다. 거기 까지는 아직 백성은 못 들어간다. 왜냐하면 나누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지성소에 있는 속죄소 떡상과 그리고 등대는 같이 언급이 되어 있다. 같은 재료로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휘장은 지성소와 성소를 구별하는 역할을 한다.

 

그 다음에 이제 36절을 보면 청색 자색 홍색 가늘게 꼰 베실로 성막 문을 만들고 그렇게 되어 있다. 그리고 기둥 다섯을 조각 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고 다섯 놋밭위에 두어라.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지금 휘장들에 대한 이야기만 쭉 진행되고 있다.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고, 휘장 밖 북편에는 상을 놓고, 남편에는 등대를 놓아 상과 대하게 한다. 성막 문의 휘장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짜서 만들고, 그것을 금기둥 다섯의 금갈고리에 드리운다. 기둥의 밭침은 놋으로 부어 만든다. 그 다음에 이어 보면 재미있는 것이 이런 것이다. 분명히 성소는 다 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분명히 한 장막으로 되어 있는데 그 사이에 금갈고리로 연결 시켜서 두 폭으로 두 개로 나누었다. 무슨 말이냐면 이런 것이 한 폭이면 열 폭으로 되어 있다. 넓이는 열 폭이고 길이는 28 규빗 또는 30 규빗 그런데 그냥 열폭으로 만들라고 하지 않고 다섯 폭씩 연결 시키고 가운데는 금갈고리로 연결시켜야 된다. 그런데 분명히 한 폭인데 둘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니까 천장 까지나누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재료는 똑 같이 되어 있다. 분명히 나누어졌어도 금갈고리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 나누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휘장으로 나누어서 나누도록 되어 있다. 거기가 무엇이 있냐면 속죄소와 등대와 떡상이 있다. 이것은 다 금으로 되어 있고 하나님의 성소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둘로 나누어져 있다. 그런데 그 다음에밖에 유리창 문을 만들라고 그랬다. 그러면 분명히 유리창 문의 용도도 이야기해야 될 것이다. 여기 막는 휘장의 용도를 이야기했다. 너희를 위해서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리라. 했으면 저 문도 그런 이야기를 해야 될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 없이 바로 진행이 된다. 그것이 문제다. 왜냐하면 이 휘장이 쳐 있을 동안에는 이 천사가 지키고 있으니까 이 휘장 안에는 못 들어온다.

 

그런데 저 문들은 스스로 들어올 수 있다. 그것이 구약 성소의 구조다. 그래서 첫 장막 성소가 있을 동안에는 지성소에 나아가는 길이 막혔다. 왜 천사가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그 밖에는 유리창 문이든지 뜰 문이든지 스스로 들어올수 있다. 단지 휘장으로 가리워진 지성소는 일년에 한 번 잠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그 거처를 함께 두신 은혜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말씀한다. 첫 장막이 쳐 있을 동안에는 두 번째 장막 이 안에 들어가는 길은 막혀 잇었다. 그것이 첫 장막에서 하나님을 봉사하는 구약 시대다. 구약의 제사장은 이 성소에는 스스로 들어온다. 그리고 안식일에는 열 두 덩어리를 떡을 먹는다. 뜰하고 여기하고 들어왔다 나갓다 하는데 일년에 한 번 들어와라 그런 이야기기 없다. 뜰밖에서 뜰로 들어오는데 제물을 가지고 스스로 들어온다. 그러나 이 지성소에는 못들어간다. 그것이 구약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거처다.

 

여기 기록들을 봤을 때도 지성소와 성소는 휘장을 드리워서 나누게 하라. 그리고 분명히 천장까지라도 둘로 나누어져 있다. 금갈고리고 연결된 것이 위에 걸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그 다음 문은 성막 뜰에 문인데 성막 문에 대해서는 천사를 수 놓아라는 말도 없고 그것이 성소 안과 성소 뜰을 나누리라 그런 말도 없고 바로 이어서 뜰에 놓는 제단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성소 뜰하고 이 성소 안하고는 구별이 없는 것이다.

 

문은 있으니까 구별이 되어 있는데 들어오지 말라는 경계는 없는 것이다. 그것이 구약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그 교제 방식이다. 지금은 예수님 돌아가실 때 성소 휘장이 찢어졌고 이제는 새롭게 산 구원의 길이 열렸고 그것은 사람이 만든 장막 중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는 지성소에 들어간 것이다. 그것이 신약 백성 중에 함께 거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성경은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처의 구조 그 특성을 보니까 지성소는 성소와 나누는 특성이 있는데 나누기는 나누는데 묘하게 하나다. 다 금으로 되어 있다. 나누기는 나누는데 하나고 그 다음에 성소 뜰과 성소 안은 재료들이 좀 다르다. 그런데도 문은 나누는 기능이 아니고 영광스런 거처로 들어가는 입구로 되어 있다. 왜 성소 안의 영광과 같은 것으로 되어 있다.

 

문은 하나님의 영광에로 들어가는 것으로 되어 있고 나누는 것으로 되어 있지를 않다. 그것이 성소 구조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은혜를 나타내는 방식이다. 문 색깔이 성소 안의 영광과 똑 같다. 그 문들은 하나님의 영광에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 때는 지성소의 영광은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천사들을 수 놓은 휘장으로 가리워져 있기 때문에 그렇다. 거기는 빛이 없고 캄캄하다. 하나님은 어둠 가운데 계신다. 그러나 성소밖에는 금으로 된 상과 등대가 있고 빛 가운데 있다. 거기 까지가 구약의 빛이요 휘장으로 가리워져 있기 때문에 아직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예수에게로 나아가면 휘장은 벗겨지고 하나님을 본다. 그것이 고린도후서와 히브리서에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들은 다 하나님의 성소 내부의 영광에로 들어가는데 지성소와 성소만 그룹들로 수 놓아 가리워져 있고 나머지는 가리운 간격이 없다.

 

또 단을 조각목 널판으로 비게 만든다. 이것은 구리로 입히기는 입혔어도 실은 나무 제단이 핵심이다. 나무로 만들어라 했고 제일 끝에도 나무로 만들어라 그렇게 되어 있다. 27장 8절에도 조각 목으로 만들어라. 널판으로 비게 만들되 그리고 그 사이에 놋으로 싸라는 말이 쭉 있어도 보니까 나무로 만들어라 그렇게 되어 있다. 나중에 에스겔 성소를 보면 이런 놋 제단이아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구약 때는 금속의 아름다움으로 그 영광을 나타내는데 나중에 보면 점점 들어오지 못한다는 의미로는 영광이 가리어져 있지만 하나님이 밖으로 나오신다고 보면 오히려 영광은 더 낮아지고 있다. 백성이 무시로 나오는 것은 뜰이다. 그런데 에스겔 성소를 보면 담은 훨신 높고 훨신 두껍고 문들도 많지만 그 영광은 나무로 되어 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중에 오실 때는 구약 같은 가까이 하지 못할 그런 영광 그런 것으로 계시지 않고 우리와 같은 죄인의 모습으로 오셨다. 그렇게 해서 함께 계신다. 그런데 그 함께 계신 영광은 진정한 하늘의 영광이다. 그렇게 연결이 되어 있다.

 

그래서 단을 조각 목으로 비게 만든다. 크기는 가로 세로 각각 오 규빗이며 높이는 삼 규빗이다. 네 모퉁이에 뿔을 연결해서 만들며 전체를 놋으로 싼다. 단에 쓰이는 기구들도 다 놋으로 만든다. 놋 그물을 만들어 네 모퉁이의 네 고리에 드리워 높이의 반에 이르게 한다. 단을 메도록 채를 조각목으로 만들고 놋으로 싼다. 우리들은 여기서 항상 하나님 앞에 번제단 불을 태우는 단이니까 놋은 심판이다고 하는데 그것이 아니다. 놋은 금 보다는 덜 영광스런 것이어도 성소의 기구로서 같이 영광스런 것이다. 단지 그 영광 스러움이 점점 낮은 방향으로 나타난 것 뿐이다. 그러니까 금속 가공법을 말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금은 찌꺼기가 섞이면 안되니까 불로 연단해서 찌꺼기를 다 제하면 불같이 순결한 믿음이 되고 그래서 순결한 믿음은 성소 안에 있는 믿음이고 놋은 어떻게 하냐 먼저 심판을 받고 이 단계 은혜로 들어간다. 그래서 놋 제단은 십자가고 이런식으로 연결하면 안된다 그 말이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정결케하시는 불이 타고 있지만 그것은 성소 내부의 영광을 놋의 영광에 나타낸 것 뿐이고 그 놋 자체의 성격을 가지고 두둘겨 만드니 어쩌니 해서 심판이다고 그럴 필요가 없다 그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보면 이 제단에서 무엇을 하는가는 기록이 되어 있지 않다. 단을 만들어라 거기서 나한테 번제를 드려라 그런 말이 없다. 그것은 이제 성소를 세우는 후반부에서 나오는 이야기고 여기서는 그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성소 소위 설계도를 만드는데서 강조 점이다. 나는 어떤 하나님으로 너희 중에 거하실 것인가? 그 문제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만나시는 자리가 지성소인데 그것은 증거궤 위 속죄소다. 백성들은 거기 들어오면 안된다. 거기 들어오면 죽는다. 그러니까 천사들을 수 놓은 그룹으로 그 사이를 막고 있다. 그래도 실은 상하 방이다. 다 금으로 만들고 똑 같다. 그런데 휘장으로 가리워져 있다. 아직 까지는 들어가지 못한다. 그것이 성소 안에 있는 것이다. 이 영광의 간격을 성소 뜰에 나타낸 것이 놋 제단이다. 하나님은 거기서 자기 백성을 만나실 것이다. 거기서 백성이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릴 것이다.


그리고 성막의 뜰을 세마포 장으로 만든다. 뜰 문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 놓아서 짠 휘장을 기둥에 드리워서 만든다. 세마포 휘장은 남편과 북편의 길이가 각각 100규빗, 서편의 길이가 50규빗, 동편의 문 좌우편이 각각 15규빗, 문은 20규빗, 높이는 5규빗이다. 세마포 휘장을 드리우는 기둥은, 남편과 북편이 각가 20개, 서편이 10개, 동편의 문 좌우편이 각각 3개, 문에는 4개이다. 그런 햐얀 천막 울타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 하얀 것은 하나님은 거룩하니까 들어가면 안된다. 담 넘어가면 안되고 문으로만 들어갑니다 하는 이런 말은 안된다. 왜냐하면 에스겔 성전도 문이 사방으로 뚫려져 있다. 계시록 성전도 보면 거기는 아예 문을 닫지 않는다. 밤낮 문이 닫히지 않는다 왜냐하면 거짓된 자가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하얀 천은 들어가지 못한 신호다 하는데 그런 것은 아니다. 하얀 것은 그것은 하나님의 거처를 밖의 세상과 구별함으로 드디어 그 다음에 거룩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 안에만 하나님의 뜰이고 밖은 아직 아니다. 그런 의미로 구별이 된다.

 

기둥은 각각 한 개의 놋 밭침 위에 세운다.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와 머리싸개는 은으로 만들며, 성막에서 쓰는 모든 기구와 말뚝과 포장 말뚝을 다 놋으로 만든다. 뜰에서는 쓰는 모든 기구는 놋이고 말뚝도 놋이다. 그러니까 놋으로 된 뜰이다. 그런데 천막은 하얀 천이고 거기는 하얀 은 가름대로 되어 있다. 그런데 기둥은 무엇으로 만드는지 말이 없다. 그러니까 그런 경우는 아마 은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표현이 되어 있지를 않다.

 

이런 것을 가지고 막 성막으로 예수님을 가르치는데 이것으로 예수님 무엇하고 연결시키면 안된다. 그래서 천막 제일 위를 보면 해달의 가죽으로 되어 있으니까 우중충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겉에는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 모양도 없고 나사렛 촌사람은 우중충한 천막이고 그리고 청색 자색 홍색 가늘게 꼰 베실은 하나님의 신성이고 그렇게 하면 안된다 그 말이다. 그것은 그냥 천막이다. 유목민의 천막인데 내부를 보니까 하나님의 궁전이다. 그것은 천막이다 그 말이다. 그것을 예수님의 인격과 직접 연결시키지 말고 의미적으로 연결을 시켜야 한다.

 

성소의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는 것이 목적이다. 성소와 지성소는 같은 재료로 만들고 그 기구들이 같이 언급되나 이스라엘을 위해서 그룹들을 수 놓아 만든 휘장에 의해서 구별된다. 증거궤는 휘장 안에 두며 그곳은 천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지성소이고, 떡상과 등대는 휘장밖에 두며 그곳은 성소이다. 그것이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봉사하는 자리다. 지성소는 천사들이 봉사하는 자리고 성소는 제사장들이 봉사하는 자리다. 그 제사장은 백성의 대표자로서 제사장이다. 거기 까지가 구약 때 나아가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지성소에는 못들어가고 성소 까지다. 그래서 지성소는 증거궤가 있고 그 천사들이 영광을 보는 지성소고 그리고 떡상과 등대가 있는 곳은 제사장이 봉사하는 자리다. 거기서 제사장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제사장은 백성의 대표다. 그것이 구약의 영광이다. 구약 때는 그 이상 들어가면 죽는다. 백성을 지키는 문이 있다. 그 백성을 위해서 지성소와 성소를 구별하는 휘장을 처라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시내 산에 영광의 하나님의 장막에 옮겨진 것이다.

 

성소의 문의 휘장은 성소와 뜰을 구별하고, 뜰의 문은 성막과 그것의 밖을 구별하지만 본문에서는 성소의 휘장처럼 구별하기 위한 용도라는 말씀이 없다. 왜 하나님의 성소까지가 백성의 대표자가 무시로 들어올 수 있는 거처이기 때문에 거기는 가리운 것이 없다. 그런데도 그 문들은 다 성소 안의 영광이다. 가늘게 꼰 베실로 수 놓아 만들었으니까 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런데 구약 때 영광은 성소밖의 영광이다. 떡상과 등대에 있는 영광이고 그 안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소와 지성소는 하나이지만 구별되며, 성소와 뜰과 성막의 밖은 구별되나 아직 들어가지 말라는 그런 구별은 아니다. 지성소와 성소는 하나지만 들어가고 들어가지 못하는 구별을 둔다. 그러나 성소와 뜰과 성막의 밖은 그 문에 의해서 구별되지만 그것은 들어가지 말라는 그런 구별은 없다. 단지 제사장이 들어가고 백성이 들어가는 그런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리다.

 

시내 산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보이신 식양대로 사람이 만든 장막 곧 이스라엘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소가 있을 동안 곧 첫 장막인 휘장 밖의 성소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는 동안에는 지성소에 나아가는 길은 아직 막혀있었다. 성소의 빛 가운데서 하나님의 상으로부터 안식의 양식을 받는 것이 이스라엘 중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거기 까지는 들어오지 말라는 간격은 없다. 영광의 차이로는 문은 두고 있어서 백성의 대표자와 레위 지파 이런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인 들어오지 말라는 간격은 없는데 지성소와 성소는 들어오지 말라는 간격이 있다. 그러니까 백성의 대표자가 들어가는 휘장밖 금등대 있는데 까지 거기 까지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거처다.

 

그래서 첫 장막이 서 있었을 때 이 첫 장막은 제사장이 섬기는 금 등대 금상 금 향단 거기를 첫 장막이라고 한다.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하나님의 지성소에 나아가는 길이 막혔다. 두 번째 장막에 들어가는 길이 막혔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비유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제 까지는 예수님 오시기까지다. 그 때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이 막혔다. 구약 때는 사람이 만든 장막 중에서도 성소밖에는 들어가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 휘장이 걷어졌다.

 

하나님께서 사람들 중에 형제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제 교회는 생명의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그 상에서 먹고 마시며 그리스도의 얼굴에 비치는 하나님을 아는 영광의 빛으로 사는 온전한 생명을 주셨다.

 

구약 때 모세 제도의 영광으로 임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오셨는데 우리의 형제로 오셨고 그분에게서 우리가 이제는 생명 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그분은 우리의 생명의 양식이요 생명의 빛이어서 우리는 예수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을 아는 영광의 빛 가운데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한다. 그것이 우리의 성소 되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안에 있다. 그것을 구약 때는 그런 방식으로 나타냈다.

 

구약 때는 사람이 만든 장막 그 중에서도 첫 장막 밖에만 못 들어갔다. 이제는 사람이 만든 장막이 아니라 참 하늘에 들어갔다. 왜냐하면 우리의 대표자가 들어가셨기 때문에 그렇다. 그분이 우리 중에 오신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다. 그렇게 계신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에 막히는 길이 없다. 그전에는 대제사장이 들어가서 성소와 뜰의 구별이 있지만 이제는 그런 구별이 없다. 이제는 성소에서 비치는 일곱 등대의 빛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영광의 빛이 되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에게서 비치는 영광의 빛이다. 그래서 계시록에서 그런 말을 한다. 다시는 해와 달의 빛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어린 양이 친히 빛이 되시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말하고 있다. 성소의 일곱 등대의 빛이 비치는 것도 밤에만 비친다. 왜 낮에는 이런 휘장을 통해서 했빛이 들어온다. 그러니까 제사장이 들어갈수가 있다.. 그런데 밤에는 없다. 밤에 비치는 것은 일곱 등잔의 빛이다. 그러니까 그 당시 했빛과 일곱 등잔의 빛은 같이 언급이 된다.

 

그러나 예수님 재림하실 때는 어린양이 친히 빛이 되시니까 이런 빛이 아니다. 그 빛은 부활하신 예수 안에서 비치는 하나님을 아는 영광의 빛이다. 그분의 빛 가운데서 친히 그분이 주신 양식을 먹고 우리가 산다. 그것이 신약 교회가 누리는 복이다. 이제는 휘장을 쳐 놓고 함부로 나오다가 죽는다. 그렇게 계신 것이 아니라 소멸하는 불로 계신 것이 아니라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도록 계신다.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휘장밖에 떨고 있으면 믿음이 아니다.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물론 히브리서에서도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다. 하는 말은 그 당시 죄 때문에 타락할 위험성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지 지금 신약 신자에게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니까 조심해라 이런 경고로 오는 것은 아니다.

 

그 말이 쓰여진 문맥을 봐야 한다. 구약 때는 하나님이 소멸하는 불로 계신 것은 죄 때문에 그랬다. 만일에 우리들이 지금도 죄를 짓고 살고 있으면 하나님은 소멸하신 불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존재론적으로 소멸하는 불이니까 우리 피조물은 조심하자 그런 말은 아니다. 그것은 죄 때문에 나타난 구약 언어 표현이다. 지금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라고 그렇게 되어 있다. 그것이 우리 죄를 정당화시키는 말이 아니다. 믿음으로 나가라는 말이지 죄를 정당화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소멸하는 불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도록 길을 열으셨고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 안에 있다. 아버지 아들과 영으로 계신 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빠라고 부른다. 왜 우리가 아들의 영으로 살기 때문에 그렇다. 그것이 우리가 누리는 영광스러운 교제다. 구약에서 성소에서 계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우리 안에 계신다.

 

이제 계시록에 보면 이 성전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 완전히 성이 금성이다. 땅도 정금이고 성벽도 금이다. 문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처럼 열 두 보석으로 되어 있다. 또 열두 사도들의 이름이 있다. 사방으로 열려 있고 밤낮으로 열려져 있는데 부정한 자는 못 들어온다. 그 크기도 일만이천 스다디온으로 되어 있다. 이제는 성소와 예루살렘의 구별이 없다. 왜냐하면 성이 곧 지성소다. 그렇게 확대 되어 있다. 거기 보니까 성이 완전히 금이다.

 

구약의 지성소를 본 것 같다. 그런데 왜 금 땅에 나무는 나는지 생명 나무가 줄줄이 강으로 나 있다. 그리고 거기는 자동차도 못 다니게 길로 물이 흐른다. 거기는 채식만 있고 생명 나무밖에 없다. 그러니까 생명 나무만 있고 물이 가운데로 흐르니까 베니스 같은 데다. 그것이 처음 에덴의 표상을 가져다 쓰니까 그런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것이 어떻게 구약의 모세 제도에 나타난 영광인가를 봐야 한다. 그렇게 해서 온 땅에 생명이 완성되고 하나님의 임재가 완성되고 다 금으로 된 지성소요 완전한 생명이 있어서 흘러 넘치는 것은 생명수다. 온 땅에 나는 것은 전부 생명 나무다.

 

하나님의 생명이 완성됐다. 교회의 생명이 완성됐다. 열두 족장 열두 사도들의 이름으로 문이 열려 있다. 그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은 전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보석들이고 표상들이다. 그것을 예수님의 신성 인성으로 맞춰 버리면 안되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문제다.

 

부흥사들 말대로 하면 하늘에 내가 살 집을 지을 금을 환산하면 상당한 돈을 올려  보내야 할 것이다. 세상에 어떤 부자가 금으로 지은 집에 살겠는가? 지상에서 예배당 몇 개는 지어도 안되겠지요? 이 금이 곧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을 구약 성소 표상을 쓰기 때문에 계시록에서도 그렇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천당 가보니까 진짜 금집 있다고 한 사람은 순 사기꾼이다. 거기는 나무 한 포기 못 난다.

 

만일에 그 도시 같으면 얼마나 심심하겠는가? 전부 물이지 금이지 반짝반짝하지 내장산 보다 화려하지 않고 그것은 재미없는 나라다. 그런데 구약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의 영광의 거처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 안에 산다. 그렇게 말하고 있다. 순수하게 비디오 찍는 것처럼 글자 그대로 봐 가지고 내가 천당 가니까 계시록에서 본 것하고 똑 같더라고 똑 같은 것 보니까 진짜라고 그러니까 가짜라 그 말이다. 그것을 신문에도 내가 광고하고 대대적으로 하잖아요? 쌍촌동 안디옥 교회 박영문이 그런 사람이다.

 

천사 목소리도 녹음해 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얼마큼 성경을 가지고 무협지를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구원 역사적으로 풀지 못하면 아무리 성경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도 그것은 어리석은 이야기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구약 보다 더한 영광 가운데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 안에 있다. 하나님이 친히 빛이기 때문에 세상에 어떤 어둠도 우리를 어둡게 할수 없다. 그것이 교회가 누리를 영광이다.

 

그러니까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의 성소의 설계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것보다 하나님이 어떤 관계로 너희 중에 있겠는가? 하는 관계가 강조다. 출애굽기는 언약 체결이 문제다. 그 다음 이 성소를 지을 때 많은 재물들을 가지고 온다. 그것은 관계에 대한 문제보다도 그들 중에 계시는 영광에 대한 문제다. 어떤 영광으로 계시는가? 그런데가 강조다.

 

신약 성경을 풀 때도 이 구약 성경이 토대가 되지 않으면 신약 성경은 풀어지지 않는다. 또 이 구약 성경을 읽을 때도 이것만 열심히 해서 건축업자 되고 있으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휘장은 가리워진 것이고 그 사람은 성경을 제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휘장 밖에서 떨고 있는 믿음이어서 그것은 구원이 아니다. 드디어 예수에게로 돌아서면 휘장은 걷어지고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뵌다. 그것은 일곱 촛대에 비치는 영광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는 하나님의 영광 자체 시다. 예수 앞으로 돌아갈 때만 휘장은 벗겨지고 휘장밖에 떨고 있는 종이 아니라 자유하는 아들이 된다. 그것이 고린도서에서 말씀하는 문제다.

 

성막의 기구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중에 은혜로 계시는가를 말씀하고 있지 우리로 어떤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지를 않는다. 그가 어떤 영광으로 우리 중에 계시겠는가? 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은혜의 일을 인간 행위로 바꿔서는 안된다. 여러분이 그 하나님을 믿으면 여러분 그 영광안에 거한다.

 

성소 구조가 부흥사들이 책을 안 보고도 설교할 수 있는 설교 재료다. 어느 재료를 가지고도 열심히 설교할 수 있다. 그래 가지고 책도 많은 책들이 나와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전부 거짓된것이니까 그런데 관심 갖지 말고 잊어 버려야 한다. 우리는 성소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의 영광을 볼 때만 참으로 구약 성소를 베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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