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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1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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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아브라함 |
창 12장 1절-3절
기도: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라도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사랑하시고 기억해 주셨다가 이 거룩하고 복된 날 아버지 하나님 앞에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은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세상 것에 대해서 너무나도 강한 반면에, 또한 세상 것이 유혹이 올 때에 너무나도 믿음을 지키기에 연약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믿음을 굳건케 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써 저희들을 감염시켜 주시고, 붙잡아 주시고, 말씀의 사람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캄캄한 세상에서 빛 되신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복된 당신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모든 행동 활동 일거수일투족,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남이 알던 모르던 순간적이었지만 영원한 그 세계에 가서는 내가 행한 대로의 그 이력들이 뒤를 따른다고 했으니 내가 숨겨놓더라도 숨겨지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이 나타나서 나를 향해서 손가락질할 것인 줄 압니다.
아버지 하나님! 그 날의 부끄러움을 미연에 방지토록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말씀으로 이 시간에 깨닫게 해 주시고, 권고해 주시고, 말씀에 실력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1절-3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성경 한 구절 한 구절, 한 단어 한 단어 속에는 하나님의 무궁한 계시의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을 우리가 100% 다 해석을 할 수도 없겠지만 다 하려고 해도 한정이 없습니다. 참 계시가 무한 다양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신앙의 조상이라고 하는데 ‘조상’이라는 것은 최고의 선행자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신앙의 조상이라고 했으니 이 아브라함이 우리 신앙의 선행자라는 말인가? 질적, 실력적인 면에서 우리 신앙의 최초의 선행자라는 그 말이냐?
노아도 아브라함 전에 있었고, 에녹도 아브라함 전에 있었고, 아벨도 있었고, 아담도 있었습니다. 이 모두가 신앙가들입니다. 순서적으로 보면 이들은 아브라함보다도 시대적으로 훨씬 앞섰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을 신앙의 조상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의 양을 가지고 따지는 것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신앙보다도 더 좋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보면 아브라함도 실수가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니엘을 보면 실수가 없었지요? 이렇게 보면 오히려 다니엘이 아브라함보다 더 돋보여집니다.
신앙의 조상이라는 말은 믿음이 최고로 높기 때문에가 아니고 아브라함의 걸음걸이에는 다양적인 행동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삶 속에는 다양적인 계시가 들어 있습니다.
최초의 부름에 대해서, 환난에 대해서, 타락에 대해서, 권고에 대해서, 물질관에 대해서, 내세관에 대해서, 부요관에 대해서, 애정관에 대해서, 동류관에 대해서, 시간관에 대해서 등등 아브라함에게는 아주 다양합니다. 즉 아브라함을 계시목적으로 등용시켜서 활동을 하게 해서 후대에 사는 자들이 그런 사건의 역경을 만나거들랑 아브라함을 보고 이 아브라함에게 가서 배우라는 뜻에서 신앙의 조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의 걸음걸이를 살펴보면 어떤 그 면을 통해서 사건에 조심하고, 사건을 통해서 깨달아 나가고 한 그 면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신앙은 순서나 그 부피나 양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노아의 세 아들 중에 셈의 후손이지요? 셈은 노아의 큰아들입니다. 역사적으로 셈은 황인종이고, 아시아로 번져 나갔고, 함은 흑인종으로서 아프리카로 번져나갔고, 야벳은 백인종으로 유럽 쪽으로 퍼져나갔다고 말들을 하지요.
그러면 아브라함의 조상은 어디에 살았느냐? 갈대아 우르입니다. 거기서 수 백 년을, 혹은 수 천 년을 살았는지 모르지요. 우리가 역사를 보면 강을 중심해서 인류가 산 것을 볼 수가 있어요.
유브라데강 상류는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던 아라랏산이고, 그리고 갈대아 우르는 유브라데강과 힛데겔강이 합치는 곳입니다. 그래서 농사 짓기 아주 좋은 곳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천문학이 발달했다고 하지요.
또 성경적으로 보면 예수님 탄생 때에 별 박사도 그곳에서 왔다 그 말이지요. 물론 천문학을 연구하게 된 것은 단순히 그냥 별을 연구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당시에 태양신이라든지, 별에 대해 신들의 이름을 많이 붙였단 말이요. 그러니까 이방종교인들은 그런 천체들을 신격화 시켜서 그런 것에게 복을 달라고 그랬단 말이요.
신앙의 입장에서 본다고 하면 그 때 당시에 노아의 후로 여호와 하나님의 세계를 하늘이라고 생각을 했지요. 즉 하나님은 땅에 계시지 않고 하늘에 계신다 그 말이지요.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니 ‘그러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궁전이 어디에 있겠느냐’ 라는 궁금증이 생기게 되어 이를 나름대로 연구를 해서 ‘혹시 수많은 별들 중에 하나가 아니겠느냐’ 하게 되니 천체를 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학계의 용어를 빌린다면 ‘금성에 계시는 하나님이실까, 목성에 계시는 하나님이실까, 토성에 계시는 하나님이실까’ 하며 별을 연구를 하다 보니 각각의 별의 위치가 시간마다 달라지고, 계절마다 달라지니까 ‘이게 왜 이럴까’ 하게 되니 자연적으로 천문학이 발달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저 멀리 계시던 하나님이 어떻게 땅에 오셔서 움직이실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니 자연들 속에서 찾아서 ‘목신이니, 석신이니’ 하고 나오게 된다 그 말이요. 이렇게 되니 다신교가 생기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시기의 갈대아 우르를 우리가 신학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일정한 신론이 없습니다. 교리가 없다 그 말이요. 다신이 있지만 일정한 신론이 없다 그 말이요. 체계가 없다 그 말이요. 이런 상태에서는 여러 가지 신앙론이 나올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이방종교를 보면 체계가 없지요. 다만 인간이 질병 고통 가난과 죽음 두려움 등등에 꼼짝없이 당하게 되니까 연약한 인간들이 신의 조력을 찾는 것뿐이지요.
신약에서 갈릴리 바다는 세상을 축소시켜서 보여주는 것처럼 갈대아 우르는 물질계를 축소시킨 겁니다. 우리가 테레비를 볼 때 세상을 축소시켜서 보여주는 것을 봅니까? 여러분들이 한 사람의 한 일생을 테레비로 볼 때 실지로 테레비를 보는 시간은 한 시간도 못 되잖아요?
그런데 그 한 두 시간 속에 등장되는 인물이 출생해서 죽는 한 일생이 다 지나갑니까? 이렇게 축소시켜서 보는 것처럼 갈대아 우르는 물질계를 축소시킨 것이다. 그러니까 성경은 과학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인생과 세상을 축소시켜 놓은 겁니다.
이 세상에 보면 태양신 천신 수신 목신 석신 등등 다양한 신이 있지요? 지금도 있지요? 농사짓고 목축하고 결혼하고 하는 신이 지금도 있는 것처럼 갈대아 우르에서도 그게 다 있었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다신종교였는데 지금은 없어요? 지금도 다 있단 말이요. 그러니까 갈대아 우르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질병과 죽음과 가난과 전란과 풍재 수재 한재 등등 이런 재난을 인간의 힘과 노력을 가지고는 피할 길이 없습니다. 갑자기 태풍이 불어와서 모든 것을 쓸어갈 때는 ‘와, 바람을 움직이는 신이 노했다’ 라고 하지요. 신이 성이 난 것처럼 느껴진다 그 말이지요.
인간의 출생을 책임진 신이 누구지요? 삼신할망구? 그래, 처녀들이 시집가서 아기를 잘 낳으려면 그 삼신할망구한테 잘 보여야 돼. 안 그러면 자식도 없대. 그래서 대접을 잘 해 줘야 만이 된다. 산을 치리하는 산신령, 또 인간의 생명을 좌우지하는 염라대왕. 이들에게 대접을 잘못하거나 잘못 믿으면 다 잡아간다 그 말이지요.
지금도 어리석은 자들은 그런 걸 다 믿고 따라가지만, 역시 그 때도 그런 게 있었고, 특히 희랍신화의 전설이 그런 게 많은 걸 볼 수가 있어요. 희랍소설을 보면 신들도 자기들끼리 시집 장가가고 사랑하고 시기 질투하고 싸우지요? 그런데 신들이 싸우는데 고통을 느끼고 죽어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인간들이더라! 인간이 죽어나.
어쨌든 갈대아 우르에도 다신종교가 있어서 그런 신들을 섬겨서 복을 받아야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 갈대아 우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신들을 섬겼지만, 이를테면 염라대왕을 섬기면 죽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염라대왕을 잘 섬긴 사람들을 보면 염라대왕을 잘 섬겨가지고 이때까지 죽음의 선을 넘지 않고 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또한 삼신할망구를 섬기는 자도 보면 아이가 출생해서 끝까지 살지도 못하고 죽기도 하고, 태에서부터 죽어 나오기도 하고, 아들딸을 아예 못 낳는 자도 많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약아 빠진 건지, 지혜로운 건지 모르지만 매 달 신을 바꿔가면서 섬기고. 그런데 그들이 섬기는 신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다 혜택을 주지를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섬기는 그 신들이 정말 존재하고 있느냐? 우리가 그들의 신앙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에 정말 그들이 믿는 신이 있다고 보느냐? 우리에게 염라대왕도 있느냐?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각각의 다른 신이 있느냐? 여러 신들이 있습니까? 없지요. 신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 이방인들이 주장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줘서 알게 되지요. 성경이 아니면 그건 모르지요. 죽었다 깨어나도 알 리가 없지요. 성경이 가르쳐주는 지식이 바른 지식이고 옳은 지식이라면 그들의 신관에 대한 지식은 모두 다 틀린 것이다. 완전히 우리가 못을 박을 수 있지요.
예수 신이 불교 신보다 훨씬 강력하고 셉니까? 그들이 솔직히 말한다면 마음속에 ‘자신들이 믿는 이것은 신이 아니다’ 하고 상당히 번뇌가 일어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알고 보면 이방인들 자기네들이 믿는 그 신을 절대자로 섬기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삼신과 그들이 만든 신에게 빌어도 받지 못했다면 그들 스스로를 위로를 하는데 ‘내 정성이 부족해서...’ 그렇게 들어가지요. 또 하나는 ‘주고는 싶지만 아직 때가 안 됐다’ 받을 때가 안 됐다는 거지요.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인들도 그렇게 생각들을 하지요. 그렇지요? 그게 뭐지요? 이방신관이란 말이요.
부르짖는 순서대로 하면 받는다? 그렇다면 부르짖는 건 인간인데 그걸 들어주는 분은? ‘그렇게 하면 세상 것이 받아지겠구나’ 하고 자기 나름대로 그렇게 하는 거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되길 바라고 믿는 거지.
그런데 그렇게 하면 100% 다 받아지느냐? 꼭 그렇지도 않지요. 그리고 당장 못 받게 되면 어떻게 되지요? 믿음으로 안 해서 그렇다? 말은 꼭 신앙 같으나 그렇게 말을 하는 건 자기가 뒤로 빠진 거지요. 책임을 못 지는 거니까!
그게 이제 사기꾼이고, 그리고 또 하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건 성경이 아니고 전부 이방신관이지요. 물론 구절이야 성경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 수법이, 사상과 정신이, 뿌리가 이방신관에 박고 있는 거지요. 이것의 배후 조종자를 보면 사단 마귀이고요.
그런데 어리석은 기독자들은 그걸 못 보니까 그 소리를 듣고 하나님만 쳐다보고 목을 매달고 있는 거지요. 얼마나 어리석은지! 눈은 하나님을 보고 있으나 마음은 물질에다 딱 접착을 하고 있는 거지요. 그게 믿는 거냐? 대상만 바꿔치운 거지요. 하나님께서 그걸 모르느냐 그 말이지.
갈대아 우르에서도 어떤 신을 만병의 통치자로 믿는다고는 했지만 실은 그렇게 믿지를 못했다. 오늘날처럼 그 신관이 그랬었다 그 말이지요. 자기들이 믿는 그 신들이 자신들의 소원대로 이뤄주지를 못했다 그 말이지요.
그렇다 보니 ‘이렇게 해야 잘 믿는 거다, 저렇게 해야 잘 믿는 거다’ 하며 행동 활동으로 정성을 드렸지만 시간은 다 흘러갔고, 세월은 물처럼 다 흘러가 버리고 말았지요.
이처럼 허송세월을 보내는 동안에 인간에게 찾아오는 것은 노쇠와 죽음밖에 없으니 ‘왜 이 노쇠를 막을 수 없고, 죽음을 피할 길이 없는 인간인가’ 하고 탄식을 하며 이런 저런 신을 찾아가서 공을 드릴적마다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가 버렸습니다.
인간이 시간을 잡을 수가 없지요? 세월이 흘러가면 반드시 노쇠가 찾아오는데 뭘 가지고 이걸 막을 수 있겠느냐? 땅을 파고 거기에 시멘트 콘크리트로 옹벽을 쳐서 그 안에 혼자 들어가서 ‘노쇠 불가침’ 이라고 세계 각국의 용어 써놓고 앉아 있으면 안 늙지요? 그렇게 하더라도 노쇠는 들어온다.
뉴스에 보면 핵폐기물을 어떻게 봉해놓으면 영구적이라고? 그게 얼마나 영구적일지 모르지만 물질은 영구적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산화되고 응고되고 부서졌다 엉겼다 하는 것이고, 그리고 물질은 진동성이 있고 요동성이 있기 때문에 영구적이고 영원한 게 없는 거지요.
인간 자기 당대에 이변이 안 생기면 오래 간다고 하는 것뿐이다. 100% 완전하고 영구적인 것은 영원이지요. 그런데 물질성은 그런 게 없습니다. 혹 그 안에 든 것이 지상의 어떤 화학적인 변화를 일으켜서 자동으로 소멸되거나 날아가 버리는 것은 있을 테지.
노쇠가 들어올 때에 문을 열고 들어옵니까, 그대로 들어옵니까? 인간을 보면 어리석은 재미가 있는데 머리 깎고 산으로 올라가서 불공드리며 사는 사람들이 왜 거기서 살지요? 그러다가 배고프면 바가지 들고 세상에 내려와야지. 죄 때문에? 그들은 죄라고 할 때 인간들의 행동 죄만을 의식을 하고 들어가는 거거든요. 그래서 안 보면 죄를 안 짓는다고 하며 들어가는 거지요.
그렇다면 소경은 아무 것도 못 보지요? 그러니 마음속에 죄를 하나도 안 짓지요? 안 그럴까요? 안 보이는데 어떻게 죄를 지을 수 있어? 우리 인간들의 사고방식이 그래요. 안 보이니 죄를 안 짓는다고 하지만 아닌 말로 보이지는 않지만 더듬어 가면서 죄를 지을 수 있는 거고, 눈에 안 보이게 자기 마음속에서 얼마든지 죄라고 하는 걸 지을 수 있는 거지요. 그런데 인간은 그런 걸 죄라고 하기보다는 나쁜 생각이라고만 표현할 테지. 행동으로 나와야 만이 죄라고 말할 테지.
그래, 죄를 안 짓기 위해 올라갔다 그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가지고 그것을 볼 때에 그게 죄를 안 짓는 겁니까, 죄가 지금 커져가고 있는 겁니까?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서 볼 때 성화구원을 잘 이뤄가고 있는 겁니까, 하나도 없는 겁니까?
그러니까 ‘죄가 뭐냐’ 그럴 때에 일반사람들은 하나의 행동적인 어떤 면을 의식을 하며 말을 하지만 성경에서 볼 때에 무엇을 하는 것이 죄가 아닙니까? 또 무엇을 안 하는 것이 죄가 아닙니까? 그리고 어떤 행동을 안 하는 것이 죄가 아닙니까? 또 어떤 행동을 안 하는 것이 죄입니까?
성화구원을 안 입고 있다는 그 자체가 죄로 들어가는 겁니다. 왜? 우리는 순간마다 성화구원이지요. 끊어짐이 없이 중단 없이 성화구원인데 그걸 안 하고 있다는 자체가 벌써 뭘 먹고 있다는 거지요? 선악과를 따먹고 있다. 선악과를 먹는 것은 벌써 죄를 짓고 들어가는 거고, 환경에 지배를 받고, 세상에 지배를 받고, 다른 것에 지배를 받아 들어가는 게 죄지요. 일반적으로는 이걸 전혀 못 보는 거지요. 이걸 보면 우리가 정말 성경에서 많이 깨달아야 되겠다.
둘째는 그런데 노쇠를 막을 길이 하나 생겼습니다. 뭔가 하니 과학문명이 발달한 것인데, 여자들이 안 늙으려면, 즉 노쇠가 안 오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지요? 마사지? 화장품?
나에게 오는 이 죽음을 막을 길이 없다. 어디로 가야 피할 수 있겠느냐? 시간이 오면 노쇠가 찾아오고, 노쇠가 오면 죽음은 필연코 찾아온다.
인간아, 너희들이 지금 어디로 달려가고 있느냐? 죽음과 나 사이는 점점 가까워지는데 그러나 사람들 마음속엔 ‘어떻게 하면 잘 살지’ 하며 당장 눈앞에 보이는 생각을 하며 살다보니 어느 사이에 죽음의 문 앞에 당도하고, 죽음의 선에서 완전히 끝나는 인생이 되고 마는데, 그러면 인생이 죽음의 선에서 완전히 끝나버리느냐, 아니면 거기서 또 넘어가느냐?
어느 종교단체는 인간이 죽으면 무(無)로 돌아간다고 하지요? 또 어느 종교단체는 인간이 죽으면 신체는 송장이 되고, 영혼은 개구리가 되거나, 뱀이 되거나, 소가 되거나, 지독하게 살다가 죽으면 독사가 되거나, 아니면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들의 조상은 짐승이 되는 거지. 이나 빈대나 벼룩이 저희들 조상이 아니요? 저희 조상 중에 하나란 말이요.
그러니 길에 기어가는 개미는 누가 죽어서 그 개미가 된 것인지 알 수가 있나? 그러니까 살생을 금하는 거지. 그러니 이방종교는 허무, 전무, 전멸의 종교다.
우리 인간은 죽음에서 완전히 끝나는 게 아니고, 또한 죽음에서 목석이나 금수로 화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기독교는 사선을 넘으면 두 길이 있는데 하나는 생명길이고, 하나는 사망길이다. 이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영안으로는 보이는 겁니다. 전혀 딴 길은 없지요.
모든 사람은 길 가는 나그네라! 죽음의 선을 넘어가면 분명히 자기 앞에 두 길이 있어서 자신이 선택한대로 떨어지게 되는데 그 면에 대해서 염려하고 사는 자가 있습니까? 눈앞에 보이는 것에 허둥지둥 하다 보니 죽음의 문 앞에 서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사는 존재들이 그 때 당시의 갈대아 우르 사람들이요, 곧 오늘날 세상인간들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다신종교. 또 그들이 믿던 신은 절대자도 아니고, 전능자도 아니고, 얼마든지 신들을 바꿔치우기도 했다. 자기가 믿는 신보다 다른 사람이 믿는 신이 능력이 더 좋으면 그 신을 찾아 섬기기도 했지만 그들이 자신들이 섬기는 신에게 돈을 달라고 하면 그 신이 수백억을 줍니까?
소원성취 신이 뭔지 압니까? 알아요? 이방인들은 자기들이 섬기는 신이 소원성취 신이요. 생쥐 한 마리를 잡아서 그 신 앞에 가지고 가서 ‘이걸 황소로 만들어 주시오’ 하면 황소가 됩니까? 되지요? 황소가 된다고 하는 게 거짓말이요, 안 된다고 하는 게 거짓말이요? 유리조각을 가지고 다이아몬드로 만들어 달라고 하면 다이아몬드가 됩니까?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여러 가지 신들이 있지만 그 신들은 한 가지씩만 전문이다. 그러나 한 신을 믿어서 다 얻을 수 있는 길이 있다, 뭘 그렇게 복잡하게 믿느냐’ 누구만 섬기면?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면 된다!
그 분은 모든 능력을 다 가졌습니다. 그래서 환난 때 그 분께 부르짖으면 구원해 주지요? 부르짖지 않으면 안 구해주고! 만일 부르짖어도 안 구해준다면 다른 종교와 다른 게 뭐가 있느냐 그 말이요. 안 그래요?
갈대아 우르 사람들이 신을 찾게 된 동기가 뭐냐? 죽음을 보니 이거(죽음)는 죽어도 싫어. 질병이 두렵고, 고통이 두렵고, 재산을 빼앗아가니 두렵고 공포가 오고. 그래서 여러 신을 섬긴 것인데 오늘날도 이런 일들이 안 일어나게 하려면 예수를 믿어야 된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버스 운전사들이 버스 창문 밑에 ‘오늘도 무사히’ 라는 글씨를 붙여놓는 그게 신을 찾는 게 아니요? ‘오늘도 무사히’ 하고 신을 찾는 그 목적이 죽음 이편이요, 죽음 저편이요?
여호와 하나님은 만능의 능력자이니 이 분께 모든 것을 다 이뤄달라고 하면 들어주나요? 구하기만 하면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고, 홍해가 갈라지고 그러지요?
자기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께 꼭 기도를 해야 만이 들어줍니까? 기도를 안 하면 안 들어주느냐? 인간 편에서 볼 때 인간이 환난을 당할 때 도움을 청하면 덕망이 있는 사람은 얼른 가서 도와주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지를 않더라 그 말이요. 그러니 이 하나님은 인간보다 더 못한 거냐? 꼭 그렇게 보이거든요. 우리 기독교인들 중에도 갈대아 우르 신앙을 가진 자가 상당히 많습니다.
왜 소리를 높여 목이 쉬도록 크게 기도를 하라고 그러는 거요? 많이 해 봤지? ‘입을 크게 벌려라’ 그런 구절을 갖고 와서 그래야만이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는 거지요.
어떻게 보면 맞는 거 같아요. 그래서 예를 들기를 우는 아이에게 젖을 준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안 울면 엄마가 젖을 안 주지? 그렇지 않아요?
아이가 울지 않아서 젖을 안 주었고, 젖을 안 주니 죽었다고 할 때 그 죽은 이유가 ‘부르짖어라, 그러면 준다’ 하는 식이라면 아이가 안 울어서 죽었습니까, 젖을 안 주어서 죽었습니까? 울지를 않아서 죽은 거지. 이치는 그렇단 말이요. 일반적으로 울면서 밥을 달라고 하면 밥을 줍니까, 때가 되면 밥을 줍니까?
하나님은 나보다 내 사정을 더 잘 아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갈대아 우르 신앙을 떠나야 되는 거지요. 그와 같은 사고방식, 사상을 버려야 하지요.
이 신, 저 신 다 찾아다녀도 안 됐지만 하나님은 내가 구하는 것을 이루어 주실 줄 믿기 때문에 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많지요. 누가 이런 소리를 잘 하지요?
‘네 소원 목적이 뭐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 봐라, 그러면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줄 믿는다’ 참 달착지근한 말 아니요? 그렇잖아요? 병들고 가난한 자를 찾아가서 이런 말을 하면 굉장히 권면성이 좋잖아요? 안 그래요? 특히 목사님들이 그런 소리 더 잘 하고. 안 그래요?
창립예배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안 그래? ‘하나님께서 다 채워주실 줄 믿는다, 그러니 채워달라고 해야 한다’ 하고, 또 그런 걸 채워줌으로 목회를 성공적으로 잘 하게 해 달라고 할 거고, 교인들을 가득가득 차고 넘치도록 해 달라고 할 것이고. 그러면서도 이 교회가 진리가 아니면 교인들이 하나도 없게 해 달라는 기도는 안 하지? 어쨌든 채워달라고 하는 것은 분명해.
우리는 갈대아 우르 신앙을 떠나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주실 줄 믿는다, 네가 소원하는 세상 것에 대한 것을 다 이루어주실 줄 믿는다’ 하는 이런 건 전부 다 갈대아 우르 신앙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갈대아 우르 신앙인지, 가나안의 신앙인지를 구별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 말이 오늘날 기독자가 신을 바꾸라는 말이냐, 네가 갖는 신앙의 성질을 바꾸라는 말이냐? 가나안의 신앙은 어떤 신앙인가?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이 세상 것은 없어지고 진동되고 썩어질 것이니 이런 것을 너에게 주어봐야 죽음의 선에서 다 버리고 갈 인생이다. 내가 너에게 주고 싶은 것은 그런 게 아니라 영원한 것을 주려고 내가 찾아왔다. 그런데 너는 이편 것이 네 눈에 보기가 좋으냐, 저편 것이 보기가 좋으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내가 너에게 지시할 곳은 가나안 땅이다. 그러니 너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하는 거지요.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댓글 '2'
眞劍의 突風
성요한은 계시록 XXI 16에서 천국의 크기에 대해 갈대로 그 도시를 측정했는데
1만2천"펄롱"이었으며 길이와 높이와 폭은 동일했다고 한다
1만2천펄롱은 2,414,040m이고 입방면적으로 계산하면 496,793, 088,000,000,000,000입방피트가 된다
다시 말해서 성요한에 따르면 천국은 각각의 공간 길이가 약 2,400km정도 된다는것이다
여기서 한사람이 필요한 공간을 10입방피트로 잡는다면 천국에는 49,679,308,800,000,000,000명의
사람들로 채워지게 될것이다 그리고 이 계산에는
신기한 과실이 달린 나무 한국말로는 개신교와 가톨릭이 다르게 표현하는데
GOD = LORD 절대 신)로 표시함)과 어린양 의보좌 앞에 놓이는 유리같이 맑은 생명수인
강이 들어설 자리와 황금도로등을 고려해 넣지 않은 것이다
이 계산대로 하자면 천국은 수백년전 쯤에 이미 만원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천국으로 들어가는길은 없고 출구만 있을뿐이다
나, 당신,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죽을것이고 천국에 들어갈수 없는 것도 분명한데
어디로 가야할것인가???
그러면 신학자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늘어 난다고... 글쎄다
그누구도 알지 못하는 죽음이후의 세계를 내세워 종교에 빠져 들게한 것이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것이고 알수 없는 것이 종교가 아닐까 싶다
천국과 지옥은 없지 싶다 하느님의 천국 지옥 VS 부처님의 천국 지옥은 공동인가?
따로따로 경영하고 있다는 것인가??? 멍청한 의문일까??
개신교에서는 예수를 믿지 않으면 천국에 못간다고 한다??? 만약에 있다면
죽어서 천국에 가면 횡재하는거고 없어도 그만이다 착하게 살면 된다
이슬람교, 개신교 가톨릭, 여호아의 증인, 불교등등 자신이 믿기 나름이지 싶다
있던 없던 인간은 죽기전까지 더불어 사는 human relationship 을 위해
종교가 필요한 것이라고 사료된다
예수 부처 알라 이 모두들 싸우고 있으며 인간을 통한 대리전쟁도 하면서 즐기고 있는 것인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중동지역의 알라신 IS와 아메리카 유럽의 예수와 한판 붙고 있는 것인가
과거에 성모마리아님의 계시를 받고 프랑스를 구했다는 쟌다르크는 교회법에 의해 화형 당했다
이것은 또 무었인가
신은 살해 당했다 신이 있다면 자살할리는 없다
그렇다면 누가 죽였는가 인간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지금도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부정과 정치적 모략 전쟁은 끊임 없이 지속되고 있음을 우리는 생각해봐야만 할 것이다
타인의 종교에 대해 비방은 하지 말자
종교는 어디까지나 종교일뿐이다 자신이 안 믿으면 그만이다 강요도 하지말라
나무
내가 아는 지식이란 북극곰의 몸에 난 터럭 한올 정도도 안 됩니다.
내가 알 수 없고 모르는 그곳에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네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진주를 도토리처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 진주의 가치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지요.
진정으로 천국과 지옥에 대해 알고 싶다면 눈에 덧씌워진 편견부터 제거해야 보입니다.
묵시록의 기록은 문학적 수사로 기록된 것입니다.
시인들이 '해가 떨어진다' 하고 시를 썼다고 해서 해가 진짜로 떨어진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걸 고지 곳대로 '해가 떨어진다'고 했으니 틀리다...라고 하면 시인들이 웃겠지요?
마찬가지로 묵시록의 천국 넓이를 '과학적으로' 계산해서 '만원'이라고 하는 것은 웃기는 것입니다.
묵시록이 약 2천년 전에 씌여졌다는 사실을 곰곰히 생각해 보세요.
부디 진리를 반대하려는 마음으로 보지 마시고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받으시길 빕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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