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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벧전2:2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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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2008-01-18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십자가 은혜의 회복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 2:24,25)
이렇게 참 하나님이신 그 분이 비천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이전에는 주님의 탁월하신 아름다움, 우리를 향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은총이 생생하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성육신하신 생애를 통하여 우리가 지은 모든 죄와 이 세상의 어두움을 긋고 지나가는 선명한 빛줄기처럼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이 의심할 수 없게끔 우리 모두에게 비추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이 창조하신 이 세계를 망가뜨리고 당신께 반역한 모든 사람의 죄값을 예수로 치르고 용서해주셔서 다시 그에게 하늘을 여시고 생명과 사랑을 부어주셔서 ‘참 사람’으로 살게끔 만들어 주셨습니다.
I. 회심치 않은 자에 대한 경고
A. 인생의 종말을 생각하라
그렇게 때문에 인간의 가장 큰 의무는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고 그 분을 믿는 것이며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이 없으면 그는 사람이되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오, 생명을 이어가되 그는 실상은 죽은 자인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분의 극한 고난의 형상이 바로 우리의 죄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굳게 믿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가져온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회심치 않은 자에 대한 경고를 여러 차례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돌아올 수 없는 인간을 위해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 오셔서 우리 모두가 볼 수 있게끔 멸시와 욕을 당하며 아무리 죄가 큰 인간이라도 그분께 돌아오기만 하면 용서해 주시겠다고 하는 구원의 약속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하나님의 초청을 거부하고,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거역하며 인생의 종말을 맞이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두 번 물으실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더럽히고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고 불효막심하게 살아온 그 삶에 대해서 심판하실 뿐만 아니라 비참한 인간을 위해 친히 자기 외아들을 이 세상에 내려 보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으라고 그렇게 뜨거운 사랑으로 권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는 그 죄에 대해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B. 현재의 비참한 상태를 생각하라
그러므로 교회에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 예수 그분을 향하여 인생의 태도를 바꾸고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깊이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이것은 인생에 있어서 지나칠 수 없는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교회에 나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기독교식 문화를 가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믿는 가족들과 함께 어울리며 산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 모든 만물 앞에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그 한 분만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이 창조되었고, 창조된 이 세상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고 그분을 믿는 것 외에는 이 세상에 어떠한 행복도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그분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피묻은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의 비참한 상태를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목자 없는 양 같이 유리하고 방황하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의 물결이 여러분들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 같지만 여러분들의 영혼은 어떻습니까? 세상에서 수많은 상처와 고통을 받고,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짓밟으면서까지 행복하기 위해서 달려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평안이 없는 삶과 찢어진 마음, 난도질 된 가슴밖에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들로 하여금 교만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 앞에 떳떳이 내세울 만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 앞에 정직하십시오. 여러분들의 영혼의 상태는 ‘비참함’입니다. 회심하지 않고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인간의 영혼은 모두 비참하고 추루한 영혼입니다.
C. 끊임없는 부르심을 생각하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지금 처음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까지 수없이 부르셨습니다. 양심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성경을 통해서, 많은 사람의 전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수없이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회심치 아니하고 주님을 멀리 떠나 하나님을 버린 삶을 살아온 완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진정으로 평안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을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까? 창조주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로 인하여 눈물 흘려 본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여러분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주님께 돌아오기 전까지는 이 세상에서 여러분들이 무엇을 하든지, 어떤 지위를 누리든지, 어떤 것을 얻든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회개하든지, 멸망하든지 두 길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알고 이제껏 지은 모든 죄를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여러분들의 죄는 모두 깨끗이 용서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늘의 문을 열고 영혼에 생명과 진리, 사랑과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전달하는 도구로 살게 하실 것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깊이 뉘우치고 그리스도 예수를 꼭 붙드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생각지도 못한 행복을 주실 것입니다. 인생의 방황은 기독교 신앙에서 끝납니다.
II. 회심한 자에 대한 부르심
그런데 문제는 올바르게 배우고 올바르게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A. 은혜로부터의 부패
1. 십자가의 현재적 경험의 상실
신앙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이 크고 놀랍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죄는 너무 불결하고 크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는 죄에 대한 깊은 회개의 흔적이 있고,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이 있습니다. 반드시 회개의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회심하기 전 교회 다니는 사람이 그렇게 어리석어 보일 수 없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돌이키고 회심하고 나니, 이 세상에서 가장 시시하고 유치하다고 믿었던 교회에 인생의 답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2천 년 전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그분께서 방황하는 나의 삶을 지켜보시며 부르고 계셨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주님이라고 고백을 하니 순간 일생동안 경험해본 적이 없는 놀라운 평화가 영혼 깊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에 대한 경험입니다.
십자가에 대한 경험과 함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됩니다. 이것은 은혜로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십자가의 경험이 처음 예수를 믿게 될 때 한 번만 일어나야 되는 것이 아니라, 일생에서 계속적으로 반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2천 년 전 일어난 사건이지만 성령께서 오셔서 그분의 죽음을 우리에게 적용시키실 때에 그 사건은 지금 내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나의 정신 안에서 재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십자가의 고난 앞에 흘리는 그 눈물은 2천 년 전 십자가 사건에 대한 애도라기보다 지금 내 정신 안에 현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십자가 사건에 대한 현재적 반응입니다. 예수를 알면 알수록 십자가의 현재적 경험이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에 대한 현재적 경험입니다.
2. 은혜의 지배로부터 멀어짐
a.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림
그렇지만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십자가 경험은 나와 상관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예전에는 십자가 사건이 수시로 내 마음 속에 느껴졌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경험하면서 나를 부인하고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과 연합하는 영생의 행복을 실제로 누릴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로부터 멀어져서 부패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때는 하나님의 사랑에 펑펑 울고 이 생명도 달라시면 십자가에 놓겠다고 감격했던 사람이 은혜로부터 멀어지자 그렇게 하는 것이 싫어집니다. 모든 것이 아깝기만 합니다. 모든 것을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하고자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져 버립니다. 신자의 아름다운 삶은 바로 은혜에 의해 지배를 받는 생활입니다. 이 은혜가 그의 영혼과 정신 안에 가득해서 거기에 자신을 맡기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신자의 진정한 행복입니다. 은혜는 끊임없이 우리를 창조목적과 구원목적으로 데려가고, 죄는 우리를 그것으로부터 끊임없이 이탈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인생의 목표가 분명해집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고 싶다”는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b. 은혜의 방편의 미각을 상실함
은혜로부터 멀어지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수단들로부터도 멀어집니다. 굳은 땅을 파는 것은 곡괭이이고, 파서 모은 흙을 퍼 담는 것은 삽이고, 퍼 담은 흙을 옮기는 것은 삼태기입니다. 이것이 도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때도 도구를 사용하셔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게 하며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창조목적을 따라 살게 하는 이 은혜에도 우리에게 전달되는 수단이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은혜의 방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의 가슴 속에 옮겨주는 가장 훌륭한 방편입니다. 그래서 세속적인 이야기, 세상 사랑에서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가 증거될 때, 우리가 그 진리를 연구하고 이해하려고 할 때, 그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의 영혼 속에 전달됩니다. 진리를 방편으로 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은혜가 전해질 가능성은 없습니다.
기도도 은혜의 훌륭한 방편입니다. 그래서 깨달은 것을 가지고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마음의 틀은 움직이기 시작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의존하는 마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전달해주시기 때문에 기도가 은혜의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피를 흘려주신 속죄의 제사, 구속을 위한 고난, 그것이 집약되어 우리 눈에 생생하게 전달되도록, 그리고 우리의 입으로 그것을 맛보도록 하는 은혜의 수단이 성찬입니다. 그래서 성찬에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심령이 녹아내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방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질 만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깊이 회개하면, 다시 그 은혜가 내 마음에 부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질 만하면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 제가 잠시 눈이 멀었습니다. 제가 사랑할 분은 오직 주님 한 분 뿐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은혜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c. 자기사랑으로 고립됨
그런데 은혜로부터 아주 멀어지면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져서 예수의 사랑을 전해도 마음이 녹지 않고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의 날에도 심령이 떨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돌덩이 같은 심령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에는 자기 밖에 사랑하는 것이 없습니다. 인간이 자기사랑에 빠지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끊어지고 사람과의 관계도 끊어져서 결국 자기사랑으로 스스로 고립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자기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자기 혼자 떨어져 있다는 깊은 고립감입니다. 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아도 외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해도 주님의 사랑으로 한 사람이라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한 사람을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게 될 때,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B. 부패로부터의 회복
그러면 이러한 영혼의 부패, 십자가 은혜로부터 멀어진 이 부패에서 어떻게 회복될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1. 영혼의 상태를 성찰함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정확하게 성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루라도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담배가 가지고 있는 독성에 대해서 객관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이 이 독한 술이 나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일단 사랑에 빠지게 되면 객관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 힘들게 됩니다.
그래서 은혜 가운데 있을 때에는 자기반성이 쉽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고 그 말씀이 빛을 비추어주면 깨달을 수 있으니까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깨달을 수 있습니다. 기도가 살아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기도 가운데 나를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무엇이고 자신이 얼마만큼 잘못되어있는지를 말입니다. 또 자신에게 이 세상 밖에 없는 것처럼 사랑하며 살다가 성찬에 한번 참여하게 되면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정확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상태를 성찰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앞에 자기를 세워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대부분 은혜로부터 멀어질 때 평안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을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밝은 빛을 비추어주시고 우리는 이것으로 자신의 모습을 또렷이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그렇게 정확하게 볼 수 있을 때에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저히 안 된다, 은혜를 달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믿음을 가짐
이때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은혜로부터 멀어져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지만 잘 안 될 때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혼란스럽게 오고갑니다. 그 중 하나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 내가 지은 죄는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이렇게 쉽게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아가다가 낙심하면 하나님께 매달려야 하는 사람의 마음에 원망의 마음, 자포자기의 마음이 생기고 오히려 더 죄를 짓고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이탈하게 됩니다.
이때 해야 될 것은 자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던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이 세상을 구원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허공을 치는 듯 한 기도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시선을 예수께 고정한 가운데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좋은 것을 주실 수 있고 또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a. 치르신 죄 값을 기억함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어제 살았고, 오늘 살고 있고, 내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살 것입니다. 어제 살았지만 어제는 이미 흘러버려서 내 시간이 아닙니다. 오늘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오늘이라는 시간도 쉼 없이 미래로부터 달려와서 현재를 거쳐서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 하나, 멈추어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사는 것이 인간이고, 이 세상에 창조된 모든 것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존재합니다. 과거에 지은 죄도 있고, 지금 현재 짓고 있는 죄도 있고, 미래에 지을 죄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기도 하겠지만 죄를 많이 짓고 넘어지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할 텐데,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한 눈에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우리의 죄 값을 예수님께서 치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시간에 매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일어난 모든 일을 한꺼번에 보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는 과거나 현재의 죄만을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아직 시간이 흘러오지 않아서 발생하지 않은 우리의 죄까지 모두 짊어지고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미래에 지을 죄까지도 모두 한 눈에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죄 가운데 있고 은혜로부터 부패했지만 예수님은 이것의 죄 값까지도 다 치르고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당하신 그 큰 고난과 아픔이 내가 지은 죄 때문임을 깨닫고 그것을 다시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b. 베푸실 사랑을 기대함
뿐만 아니라 이렇게 악한 인간을 위해서 그렇게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죄를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바치기까지 예수님이 희생하셨다면, 하나님이 나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베푸신 분인가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값비싸게 산 나를 하나님이 버리실 리가 없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 때문에 나를 용서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 구원한 당신의 백성을 결코 버리신 적도 없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마음이 아직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면 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은혜로부터 멀어진 신자들로 하여금 주님께 돌아가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을 갖게 하시기 위해서 은혜로부터 멀어져 사는 영혼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실제로 맛보게 하십니다.
3. 그리스도께 마음을 고정함
부패로부터 회복되기 위해서 또 믿음을 가지고 해야 될 일이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께 마음을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a. 마음의 나뉨을 경계함
무엇보다도 마음의 나뉨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밖의 세계와 접촉하면서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자기 밖의 세계는 두 가지인데 정신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입니다. 물질세계는 눈과 코, 입과 귀, 그리고 살갗의 접촉, 이런 것들을 통해서 접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접촉하는 것은 오관을 통해서이지만 이것을 해석해서 정신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은 영혼이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은 쉬지 않고 활발히 움직이며 그것들을 해석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감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혼이 해석을 하는데 그 중에는 가치 있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영혼이 이것들을 해석할 때 초점이 있어야 하는데 없을 때입니다. 그 때 마음은 나누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을 고정시키는 데 있어서 이 나누어짐은 최대의 적입니다. 수많은 것들이 우리의 오관을 그렇게 자극하는데도 예수를 지속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다 봐야 되는 줄 알고, 들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들어도 되는 줄 알고, 만질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일관성 없이, 초점도 없이 수많은 정보를 전달하면서 해석해달라고 영혼에게 요구하데 그러다가 예수께 집중하려고 해도 다른 것들을 해석하느라 지친 나머지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집중하기 위해서는 접촉하는 것들을 죽여야 됩니다. 예수님께 집중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은 보지 않으려 하고, 듣지 않으려 하고, 생각하지 않으려 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죽일 때 예수님께만 고정하기에 적합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b. 은혜의 불씨를 유지함
두 번째로 은혜의 불씨를 유지해야 합니다. 은혜로부터 멀어져서 부패한 사람들은 어느 한 순간에 성령의 강한 불과 강한 은혜가 밀려와서 한 번에 변화되길 원하지만 그것은 소수의 경우에서만 그러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서서히 그 마음이 변화되면서 다시 은혜를 회복합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불씨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질 때 그것을 잘 간직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은혜를 받으면 그 은혜를 가슴에 잘 간직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애쓰고, 환경이 여의치 않아도 기도하고자 하고, 경건한 사람들과 교제하고자 애써야 이것이 유지가 되는 것입니다.
c. 환경과 자신에 경성함
그렇게 마음을 잘 지켜서 은혜의 불이 계속 타오르도록 환경과 자신에 대해서 깨어있으면서 그리스도께 마음을 고정할 그 때에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그 큰 사랑, 십자가로부터 받았던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 나 같은 인간을 건져주신 그리스도 예수의 자비하심을 깊이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큰 은혜가 우리의 심령 속에 가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은혜입니다. 십자가의 놀라운 사랑이 가슴 속에 따뜻하게 밀려오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인생에 전부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떠나서 살던 자신의 삶의 어리석은 삶이었다고 토설하게 되는 것입니다.
III. 그리스도께 순종함
그렇게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면 주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자기사랑의 축을 떠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이 무거운 짐으로 다가오지 않고 인간의 가장 고귀한 임무가 됩니다. 창조목적을 향한 인간의 그 의무에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과의 교통이 더 깊어지며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인간의 행복이 있습니다. 이 어둡고 혼탁한 세상을 배경으로 하여 한 줄기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탁월하심을 더욱더 알아가고 탁월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인간의 존귀한 의무이고 인간은 거기에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마르지 않는 임마누엘의 샘으로 오십시오. 거기에서 목을 축이십시오. 쓸모없는 세상의 지식과 썩어질 것들을 붙잡는 것은 우리를 위로할 수 없습니다. 신앙의 모든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그분의 아름다우심과 탁월하심에 감격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름답고 탁월하신 분이 쓰레기 같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하늘영광 버리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베푸셨던 자비 앞에 깊이 감격하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돌아가게 하시고 싶으셨던 인생, 참 사람으로서의 참 인생입니다. 여러분, 함께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2008-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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