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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희생을 요구하신다?

마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780 추천 수 0 2012.12.16 23:5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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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0:46-52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1.9.6 주일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하나님은 희생을 요구하신다?
막 10:46-52
 
예수 믿는 사람들 중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은 희생을 요구하시는 분이며 우리는 그것에 순종해야 하고, 그런 순종의 대표가 예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로테 죌레는 <고난>이라는 책에서 이런 이해를 “기독교적 매저키즘” 또는 “신학적 새디즘”이라 부릅니다. 즉 하나님은 죄에 대한 형벌을 요구하는 형리(刑吏=간수)와 같은 분이라는 것이죠. 그 대표적인 예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불합리한 요구를 하고, 또 외아들 예수를 희생 제물로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신학적 새디즘입니다. 기독교적 매저키즘은, 이러한 하나님의 불합리성에 대해서 어떠한 이의나 항의도 제기하지 않고, 그저 아브라함의 순종을 신앙의 모범으로서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이삭이 물었습니다. "불과 장작은 여기에 있습니다마는,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대답하였습니다. "얘야,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창 22:7-8)

흔히들 이것은 이삭을 안심시키려고 둘러댄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실제로 일어날 일을 담담하게 말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것을 계산하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후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백 살이 되어 얻은 이삭이 죽는다면 그 약속은 지켜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절대로 이삭이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을 확신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잡으려고 한 것을 보면, 그 시절에는 인신제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하셨을 뿐 아니라, 그런 부당한 인신제사를 없애버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곡해하여 하나님은 피를 요구하는 가혹한 시험관으로 만들고, 아브라함을 순종의 모범으로 만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흔히 크리스천들은 예수는 순종적이고 희생적이었다는 전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서에 나타나는 예수의 모습은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그는 행동이 남 달랐기 때문에 그가 정신이 나갔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가족들이 예수를 말리려고 찾아왔을 때, 그는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며 자매냐고 하였습니다. 그는 부모나 가족에게 순응하여 자기의 사명을 희생하려고 한 분이 아닙니다. 그는 동네 사람들에게 인정받거나 존경받지도 못했습니다. 그가 고향에 갔을 때, 사람들이 그를 무시하고 푸대접하자, “예언자는 자기 고향과 자기 집 밖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는 법이 없다”고 하였습니다(마 13:57).

여리고의 눈먼 거지 바디매오가 예수가 지나간다는 소리를 듣고“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습니다. 그가 예수를 부른 것은 정당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공연히 그렇게 꾸짖고 윽박지른 것입니다. 그들은 이름도 없고 그저 “많은 사람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면 개인은 따라야 하고 자기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관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오히려 “더욱더 큰소리로‘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하고 외쳤습니다.”그러자 예수님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조금 전에 바디매오를 꾸짖은 자들이 금세 태도를 바꾸어서, “용기를 내어 일어나시오. 예수께서 당신을 부르시오”하였습니다. 이것이 가해자들의 특징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의 이야기(요 8장)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법 조항을 들어서 그 여인을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소리칩니다. 그들은, 법으로나, 그들을 따르는 많은 수로나, 마치 그 여인을 희생시킬 권리라도 갖고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때 그 여인은 아마도 자포자기 속에서 희생당할 각오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는 “너희 가운데 죄가 없는 사람이 돌을 던져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금세 그들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그들은 본시 그 여자를 희생시킬 권리도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다 떠나갔을 때, 예수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그 여자는 불특정 다수에게 희생당할 필요가 없음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이 세상이고, 이 세상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로 대표되는 인습, 도덕, 법 그리고 지배체제 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서의 위대한 인물들은 이런 세상 사람이나 세상의 그릇된 인습에 자신을 희생시키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묵살한 바디매오도, 이방인의 장벽을 허물고 예수에게 도전한 수로보니게 여인도, 피 흘리는 여자는 남자에게 접근해선 안 된다는 관습을 깨고 예수에게 손을 댄 혈루증 앓는 여인도,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무시하고 예수께 와서 향유를 부은 어느 여인도, 남편을 여러 번 갈아치운 여인이라는 질시를 무시하고 예수께 시원한 생수를 요구한 사마리아 여인도, 인습에 의해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한 사람들 아닙니까? 지금까지 듣고 배운 바를 한 번 뒤집어 생각해 보세요.  

희생을 강요하는 가장 가까이 있는 가해자는 가족입니다. 요셉을 팔아넘긴 자들도 형들이고 야곱을 죽이려 한 자도 형이요, 장인이자 외삼촌입니다. 가족 속에서 늘 기대에 못 미치고 의무감에 시달리면서 사람들은 많이 희생당합니다. 가족이 가장 친한 존재임은 틀림없지만, 희생에 대한 건강한 관점을 갖지 못하면, 가족이 가장 큰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곱을 보세요. 야곱은 가족에 의해 희생되지 않고 자유롭게 산 사람입니다. 형이나 아버지에게 복종하여야 하고 그들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인습도 그를 희생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는 라헬을 사랑하여 결혼하려고 했는데, 라반은 그를 속이고 언니 레아를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속은 것을 알았을 때 이미 일을 되돌릴 수 없었지요. 원치도 않는 사람과 평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런 희생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라헬을 아내로 맞이할 길을 찾아 결국 라헬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어떻게 보면 멍청한 짓이지만, 또 다른 측면으로는 절대 희생당하지 않으려는 각고의 수고가 엿보입니다. 그는 절대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희생시키지 않습니다. 그의 아내 라헬도 집안의 가보를 훔쳐 나오다가 아버지가 뒤쫓아 오니까 말안장 속에 숨기고 그것을 올라타고서 자기가 월경중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라헬도 훔쳐서는 안 된다거나 거짓말은 해서는 안 된다는 고정 관념으로 자기를 희생시키지 않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성서도 그들을 정죄하지 않죠? 오히려 이 세상, 특히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우리의 고정관념이나 도덕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일들이 있을 수 있다는, 유연하고도 열린 태도를 가집니다.
또 우리의 희생을 가장 크게 요구하는 곳은 직장입니다. 사람들은, 직장이 없어도, 있으면 쫓겨날까봐, 또는 직장 안에서의 인간관계 때문에, 희생을 강요당하고, 그 스트레스로 죽어갑니다. 요셉도 그런 희생을 강요받은 경우입니다. 상사 부인의 부당한 요구(성희롱)에 맞서야 했고, 상사의 무지로 옥살이까지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싸우면서, 자신을 희생자로 만들지 않았기에, 그들에 의해 희생되지 않고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과 다른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행을 쫓는 것입니다. 남들이 하는 것과 같이 머리나 옷 모양을 해야 마음이 편합니다. 이런 심리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고 획일화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가족 안에서 가장이 정한 것에 따르지 않으면 폭력을 행사하게 되고, 군대, 직장, 학교도 비슷한 원리로 움직입니다. 모두가 대체로 정해진 코스를 밟으면서, 부모와 선생님에게, 고향사람들, 그리고 직장상사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전전긍긍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자기 삶은 없고 늘 희생만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식이나 제자 또는 부하나 부하 직원이 정해진 길을 가지 않거나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격분하고,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력을 행사하여 복종하게 만들죠. 그게 인간이 되고, 철이 들고, 사회화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희생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들은 행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반대입니다. 그들은 원치 않는 것을 강제로 하기 때문에, 자기를 희생한다는 느낌을 가지며, 늘 불행하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면, 남을 이해해야 한다거나, 인정받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님도 자기 고향에서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누가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희생자의 감정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라이프니쯔는 단자론(Monad)을 세웠는데, 모든 인간은 고유한 단자이며, 그것은 창이 없다고 하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개개인이 모두 고유한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과 비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론은 물리학의 원자론이나 분자론뿐만 아니라 개인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였습니다. 모든 인간은 서로 통할 수 없으며 고독한 존재라는 인식은, 쓸쓸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해야 하고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무감, 특히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처럼 이해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수많은 관계들이 깨지고 희생자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자식이니까 자신과 꼭 같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자녀들을 억압하여 망치고 있습니다. 부부니까 일심동체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성관계를 원치 않는 상대방에게 억지로 요구하는 희생을 강요합니다. 부부가 의견이 다를 수도 있고, 성격이 다를 수도 있는데, 그게 무슨 죄악이나 되는 것처럼 펄펄 뜁니다. 20년 또는 30년을 함께 살아 왔는데, 부인이 타인처럼 느껴진다고 하면서 이혼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잘못된 사람입니다. 30년 아니라 100년을 같이 살아도 인간은 근본적으로 상대방에 대해서 타인인 것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게 됩니다.

예수를 만난 사람에게는 공통적으로 변화가 생기는데,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로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 이야기(요 9장)는 대표적 예입니다. 주위 사람들은 그가 나면서부터 눈이 먼 것은 죄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를 희생시키려 하였죠. 예수가 와서 그를 고쳐주지만, 이제는 예수를 믿는 사람은 쫓아낼 것이라고 협박을 하면서 그에게 예수가 죄인이라고 거짓말을 하도록 강요합니다. 하지만 예수를 만난 그는 이제 더 이상 희생자로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면서,“그가 죄인이라면 어떻게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겠느냐”고 당당하게 따집니다. 바디매오도 똑같습니다. 그가 예수를 만난 다음에는, 그에게 소리를 질러대는 많은 사람들의 비난에 희생당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보다“더 큰 소리로”예수를 향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제 부당한 요구에 대해 주눅 들지 않으며, 할 말은 하면서 사는 겁니다. 이것이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예수는 그에게“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고 물으십니다. 희생당하는 것의 반대는 자기가 바라는 것을 찾아서 그것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당연한 질문이지만 꼭 그 자신의 입으로 원하는 것을 말하도록 요구합니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하고 말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그렇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입으로 말할 때 우리는 비로소 희생자가 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 문화는, 유교의 영향인지 몰라도, 자신을 희생시키는 것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이를테면, 여럿이 식당에서 먹었는데, 한 사람이 다 내는 수가 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내는 것이라면 좋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내고 싶지 않으면서도, 남들이 쩨쩨하다고 하면 어쩌나 하면서, 억지로 내고, 집에 가서 후회한다면, 그것은 자기를 희생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혼자 음식점에 가서 일인분 시키는 것을 미안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1인분 서비스를 식당이 하는 것은 당연한데도 쓸데없이 공손하게“1인분도 되나요?”하고 묻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럿이 갔을 때, 옆 사람이 시킨 것과 다른 것을 시키면 미안하다고 그럽니다.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을 미안하게 여기고, 자기는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남들이 시킨 것을 주문한다면, 그는 자기를 희생자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산 물건이 마음에 안 드는데도, 직원들이 규정을 들먹거리면서 환불이나 교환을 거절하면, 두말 않고 포기하는 사람도 쉽게 자신을 희생시키는 사람입니다. 규정 따위에 주눅 들지 않고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히 설명하고 당당하게 요구하면 대개 그들은 요구를 들어줍니다.

인습이든, 도덕이든, 체제든, 가족이든, 직장이든, 그 무엇이든, 우리를 희생시키는 것에 대해서,“아니오”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디매오처럼 희생자가 되기를 택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소리로 주님을 외쳐 부르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한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자유인들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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