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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복

갈라디아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899 추천 수 0 2012.12.16 23:5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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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갈3:6-9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2.1.8 주일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성서의 복
갈 3:6-9                            

언젠가 월요일 등산을 가는데 산 입구에 손바닥만한 헝겊에 이런 글귀가 새겨 있었습니다.“부자 되세요.”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망하라는 것보단 부자가 되라는 그 발원이 싫지는 않더군요. 자신도 부자 되기를 바라지만 또 남도 자기처럼 ‘부자가 되라’고 축원하는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이제 우리도 서로가 서로에게 복을 비는 소극적인 삶에서 좀 더 적극적인, ‘부자가 되도록’밀어주고 도와주는 사람으로 살아야 된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왜냐 구요? 그게 세상을 지으시고 보기 좋아하셨던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고, 그의 아들 예수께서 가르치고 살아 보이셨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축복’ 그러면 교회는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하나는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그런 물질적 축복을 교회에 오면 다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쪽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축복은 세상 축복과 별 차이가 없으며 차이가 있다면 세상 사람들과 달리 예수 이름으로 그 축복을 구한다는 것뿐이죠. 이런 교회의 문제는 역사 없는 축복 종교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교회는 어떤 고차원적인 의미의 축복만을 관장하는 곳이라고 보아서 세속적인 축복을 교회의 영역에서 제외시키는 쪽입니다. 이런 곳에서는, 신도들은 여전히 축복을 받기 원하기 때문에, 교회 밖에서 적당히 구하는 이중 구조를 갖고 살아가게 됩니다.

클라우스 베스터만은 <성서와 축복>에서 축복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관점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그의 요점은, 본래 축복은 기독교 이전부터 존재해 온 고대 종교적 요소라는 것입니다. 축복은 본래 신학 이전의 것이며 마술적인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야곱이 축복을 받기 위해 형과 아버지를 속였던 일이 있는데, 이로 보아 당시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축복은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것이라서 한 번 정해지면 취소 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또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 하는 장면에서 보는 것처럼 축복은 단순하게 빌어주는 요식 행위가 아니라 자기 영혼의 일부를 내어주는 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고대 사람들에게 ‘축복 권’은 이만큼 강력하고 절대적 이었습니다. 그러니 축복할 수 있는 능력이 아무에게나 있지 않았습니다.

구약성서에 와서 개인의 이런 현세적인 축복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역사 속에서 새롭게 해석 됩니다.

출애급한 이스라엘은 광야를 거치면서 역사 신앙으로 강하게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되면서 그들은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거기서 백성들은 정착했고 이제 물질과 풍요를 누리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광야에서 인도하신 주 하나님이 과연 그들에게 그런 생식력을 줄 수 있는지 묻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생식력을 비롯하여 물질과 풍요는 모두 바알신이 주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하나님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 호세아, 엘리야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에게 구하는 축복이 사실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내가 그에게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주었으며, 또 내가 그에게 은과 금을 넉넉하게 주었으나, 그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그 금과 은으로 바알의 우상들을 만들었다”(호 2:8-12).

이런 노력은 신명기에서도 나타납니다.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명령을 주의 깊게 지키면, ...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너희에게 찾아와서 너희를 따를 것이다. 너희는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의 태가 복을 받아 자식을 많이 낳고, 땅이 복을 받아 열매를 풍성하게 내고, 집짐승이 복을 받아 번식할 것이니, 소도 많아지고 양도  많이 낳을 것이다. 너희의 곡식 광주리도 반죽 그릇도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는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다”(신 28:1-8).

능력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졌다고 믿었던, 그래서 바알신을 섬기게 되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 놓고 있습니다. 이 당시 하나님의 축복은  신체, 토지, 가축 이 세 가지의 생식력을 말하는 거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구약성서에 오면 이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한에서―조건부로―그들이 누리게 되는 축복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하여 마술 같았던 야곱의 축복은 끝이 납니다. 이제는 그저 빌기만 한다고 축복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누군가가 강력한 축복의 능력을 가져서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의 백성이 될 때 그 축복을 받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축복의 역사화는 신약성서에 와서 다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듭니다. 이것이 오늘 바울의 말 입니다.

“또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을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실 것을 미리 알고서, 아브라함에게 ‘모든 이방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하는 기쁜 소식을 미리 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갈 3:8-9)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을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사람들에게도 전하는 아주 거대한 통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이 거대한 파이프라인은 땅속에 묻혀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이방 사람들은 거기에 접근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자기들끼리만 나누어 먹는 축복에 그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바로 이 막힌 관을 뚫고 모든 믿는 사람에게 아브라함의 축복이 시원스레 통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축복은 이삭이나 야곱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바알신이 주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조건부로 순종을 해야 얻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예수에게 닿기만 하면, 마치 물이 흐르듯이 우리에게로 흘러들게 된 것입니다.

혈루증 앓는 여인(막 5), 수가성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에게 행했던 일들이 모두 그것입니다. 그들은 그저 자신을 예수의 몸에 잇댓기만 했습니다. 그랬더니 능력이 흘러 나와 병을 고치고 생수가 터져 목마름을 해결했습니다. 이것이 신약성서, 예수께서 전하시는 축복입니다.

예수는 자기 속에서 흘러넘치는 하나님의 축복을 많은 사람에게 주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는 사람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하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그가 병자에게 손을 얹고 귀신들린 사람에게 손을 얹을 때 하나님의 축복은 그들에게 물처럼 쏟아졌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람의 대표자인 어린아이를 껴안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기에 앞서서 빵을 들어서 축사하셨습니다. 예수의 손이 닿는 사람, 물질마다 주님의 축복이 쏟아졌고 거기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과 작별하시면서 그들에게 손을 들어 축복하셨다고 합니다(눅 24:50).

이것은 이천 년이 지난 오늘에도 똑같습니다. 오늘 본문 아래에,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복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 사람에게 미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갈 3:14)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한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고 그것은 또한 오늘날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축복은 다시 우리를 통하여 이 세상에 전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직접 전달되지 아니하고 우리를 통하여 전달됩니다. 우리가 축복의 파이프라인에 접속하여 복을 받듯이, 또한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전하는 작은 파이프라인들이 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실 때 축복의 임무를 주셨습니다.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너희를 모욕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눅 6:28).

자기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한다는 것이 인간적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 명령은 그런 인간적인 한계를 넘어서 역사하시는 어떤 축복의 흐름이 우리 속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비는 평화가 그들이 받지 않으면 돌아오기도 하는 어떤 기운 같은 것으로 은유됩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거기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사람에게 내릴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눅 10:5-6). “

그리고 거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고 그들에게 말하여라”(눅 10:9).

이처럼 예수는 제자들에게 평화의 사도로서 직무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어디를 가든 축복해 주고 평화를 빌어주고, 하나님 나라가 그들에게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고 격려하면서 하나님의 기운이 살아 운동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명령을 가장 충실히 따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욕을 먹으면 도리어 축복하여 주고...”(고전 4:12)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축복을 하고, 저주를 하지 마십시오”(롬 12:14).

베드로전서 기자는 축복의 말을 통하여 우리가 복을 이어받게 된다고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거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말고, 복을 비십시오. 여러분으로 하여금 복을 이어받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주셨습니다”(벧전 3:9).

입만 열면 축복을 말하면서 축복을 값싸게 만드는 크리스천들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구절들을 보면 축복은 절대로 말잔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욕을 먹고 박해를 받으면서도 축복을 해 주는 것입니다.

헬라어로“축복하다”를 유로게인(eulogein)이라 합니다. 그 뜻은“좋게(eu) 말한다(logein)”는 뜻입니다. 그것은 모든 게 좋아서 좋은 말은 하는 것보다는,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좋게 말할 수 있는 어떤 경지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먼저 나의 잘남과 상관없이 거저 주어져서 내 속에서 넘치는 축복을 경험한 사람에게 가능한 일이겠지요. 이것이 평화의 사도의 직무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결심이나 선행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는 상관없던,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에게 주어지고, 베드로전서 기자 말대로 그의 복을 내가 이어받는 데서, 내 속에서 흘러넘치는 축복의 기운 때문에 우리는 좋게 말할 수 있고, 남에게 복을 빌어 줄 수 있고, 평화의 사도로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아, 여기까지 듣고 나니 얼마나 장엄합니까?‘축복’이란 말이 가진 엄청난 뜻의 비밀에 가슴이 찌릿해 오지 않습니까?교회는 바로 이런 ‘축복’을 실현하는 현장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축복을 세상에 흘러 보내는 거대한 통로입니다.  

이것이 성서가 말하는 축복의 핵심적 의미입니다. 성서는 혼자서 물 떠놓고 빌면서 은밀하게 복 받는 그런 축복을 알지 못합니다. 항상 이 역사 속에 일하는 그 누군가를 통해서 축복의 맥이 닿아 있고 또 누군가에게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크리스천은 그저 혼자서만 축복을 받으려고 애쓰는 축복의 소비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잇대어 축복을 받고 또 누구에겐가 전하는 축복의 통로들입니다. 생산자입니다.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통하여,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받는 것입니다.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할(eulogein) 뿐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좋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누군가를 축복할 수 있고 또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렇게“유로게인 하는”(좋게 말해주는) 축복에 잇대어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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