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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14:1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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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아브라함 |
14장 12절-24절.
12절-24절: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고하니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자더라 아브람이 그 조카의 사로 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자 삼백 십팔 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 가신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쫓아가서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 왔더라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오직 소년들의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취할 것이니라.
오늘날 많은 교역자들의 가르침이 ‘천국이 있다, 또는 인간 앞에는 죽음이 있다, 죽은 후에는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하는 이것을 많이 선전을 해서 그것을 알지 못하는 많은 인생들에게 그것을 알게 한 공이 상당히 크다 그 말입니다. 그렇지만 천국의 실존을 증거해가지고 천국의 성질에 대해 바로 가르쳐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죄가 더 크지 않은가 생각이 돼 집니다.
천국에 갈 성도라면 마땅히 그 천국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고, 그리고 그 면에 대한 수고와 애씀이 나오도록 가르쳐야 할 텐데 천국에 대해 세밀하게 알려주지는 않고 지옥과 천국이 있다고 하는 그것을 미끼로 해 가지고 목사라는 직을 자기의 직업화해서 성경말씀을 팔아 자기의 배를 채워나가고 있으면서 그 면에 대한 심판은 생각을 못하고 있다.
우리가 영웅을 생각해 볼 때에 세상에도 영웅이 많이 있지만 기독교 안에도 영웅이 된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그리고 기독교 안에서 영웅이 된 사람은 자연적으로 기독교 밖으로부터도 영웅소리를 듣게 되니까 세상의 거물급이 된 자들도 많다 그 말이요.
그리고 교역자들의 세계를 가만히 보면 그 사람은 기독교가 아니었더라면 밥도 못 먹고 굶어 죽을 번한 인간도 많이 있을 수 있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예수를 믿지 않았으면, 목사가 되지 않았으면 세상에서 아무 것도 못하고 무직이야. 장사도 못하고, 그렇다고 기술이 있나? 그런데 신학교 나와서 얼쩡얼쩡 하더니 목사가 돼 가지고 교회 한답시고 방방 뛰든지, 닐니리 날나라를 하든지 그런 수단을 써가지고 밥을 먹고 사는 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자들이 돼선 안 되지요.
그리고 한국 기독교계의 거물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자들의 메시지를 들어보면 천국을 소개를 하지 않는다 그 말이지요. 이게 문제다 그 말이지요. 천국을 소개를 하지를 않아.
우리가 버스나 전철을 타고 오다가다 보면 장사꾼을 만날 수 있는데, 지갑장사, 혁띠장사, 양말장사, 고무장갑 장사 등이 있는데 그런 걸 선전을 잘 하지요? 어찌 그리 선전을 잘 하는지! 그런 것처럼 기독교인의 경우에도 주님을 믿는 성도로서 주님을 선전하는 면에 전문적이 돼야 되겠는데 그 면에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 말이지요.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덕분에 잘 먹고 사는 사람도 있지요.
우리는 어느 지역에서나, 어느 부분에서나, 어느 사역에서 공을 세워서 누가 알아주지 않거나 상패나 감사패를 안 받아도 천국의 성질에 대해서 가로막아 놓으면 절대로 안 된다. 예수 믿으면서 예수 덕으로 그저 밥이나 먹고 사는 그런 차원에 머물고 있으면 안 된다 그 말입니다.
교역자나 평신도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예수이름으로 축복 받아 세상에서 잘 살까, 어떻게 하면 예수 덕으로 떡 한 덩이라도 얻어먹어 볼까’ 하는 그 판이라 그 말이요. 그렇게 되면 절대로 안 된다.
이런 소원성으로 사는 자들을 보면 천국을 모르고, 천국으로 모르니 천국을 설명을 못한다. 그러니까 천국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안 나오는 것은 천국을 모르든지, 아니면 그 자는 가짜든지 그 둘 중에 하나입니다.
천국을 못 가르치면 뭘 가르치겠느냐? 그거야 세상이지요. 천국을 못 가르치면 세상밖에 없어요. 천국에 대한 가르침이 없으니 뭘 가르치겠어요? 세상을 가르치는 것밖에 없는 거지요. 이건 딴 소리 하는 거지요. 우리 기독자들은 절대로 그런 차원의 신앙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이 있는 동안에 천국을 발견을 많이 해야 된다. 새로운 신적 도덕이치를 많이 발견하고 만들어서 그대로 살면 돼요.
과학이 발명이 될수록 기계 속을 들여다보면 굉장히 복잡하지요. 보통 복잡한 게 아닙니다. 주먹구구식으로 쇳덩어리를 붙여놓은 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집을 보더라도 옛날에는 그냥 통나무를 잘라다 쓱쓱 끼워 만들어 놓은 게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지요. 깎고 빗고 새기고 해서 어떻게 묘하게 짜놓는지!
지금도 개발을 못한 자는 나무를 대충 깎아 뚝뚝 못질을 해서 세워놓지만 잘 연구해서 이용을 하니까 같은 나무라도 그것이 침대가 될 수도 있고, 밥상이 될 수도 있고 하지요. 책상도 보면 집어넣으면 책장으로 되고, 쑥 빼면 책상이 되는 것도 있고, 또 침대도 벽에서 뭘 하나 떼면 침대가 되고, 집어넣으면 벽이 되고 하는 것도 있대. 어쨌든 이렇게 개발을 해서 발명을 하니까 상당히 활용이 됩니다.
성문계시만을 붙들고 사는 사람은 옛날에 관솔불을 붙잡고 사는 것과 같다고 할까? 미개인이 그렇게 살았었지요. 그런데 우리가 시공간을 초월하는 면으로 볼 때에 그 옛날에도 문화인으로 산 자들이 많다. 아브라함도 문화인으로 살았었고, 영적 신앙적인 면으로 보면 사도바울도 문화인으로 산 사람이었다고 볼 수가 있어요. 영적 신앙적인 면으로 보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몇 천 년이 지난 후이니 물질적 과학적으로 문명의 시대에 살고 있는데 영적 신앙 면으로 보면 왜 미개인으로 살고 있느냐 그 말이지요.
지금도 미개인으로 살고 있는 자가 많습니다. 성문계시 이거 하나 붙들고 사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천국에는 해와 달이 필요가 없다고 했으니 여담적으로 본다면 천국에서 그런 자는 소경이 불을 켜놓고 사는 겪이 아니겠느냐? 우리는 한 이치 한 이치를 깨달아 가지고 천국을 발견해 나가야 된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했으니 먼저 본토를 떠나는 것! 아브라함의 노선이냐, 롯의 노선이냐? 우리가 노선적으로 이걸 깨달아 나가는 것도 무진장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성경이 나온 지가 벌써 언제입니까? 그런데 아직까지도 아브라함의 그 신앙노선을 바로 못 깨닫고 나가는 신자들이 많이 있다. 이걸 보면 미개인과 같다, 원시인과 같다 그렇게 봐 집니다.
보면 백 년 전이나, 천 년 후나, 문명인이나, 미개인이나 등 따시고 배부르면 그만 아니요?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도 ‘등 따시고 배부르면 그만이다’ 하고 산다면 미개인이 아니냐?
아브라함은 그 때는 물론 성문계시는 없었지만 그렇지만 그 때마다 들려오는 말씀에 순종해서 올라오니, 회개해서 올라오니, 은밀계시를 깨달아서 순종이 돼 나가니 요단평야를 받게 되는 거고, 하나님과 동행을 하니까 동서남북 종횡으로 모든 것을 다 받게 되는 겁니다. 당시에 롯은 요단평야를 차지했고, 아브라함은 헤브론 산골에서 살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다 아브라함 거였지요. 동서남북이라 하는 것은 전부 다 가 되는 거지.
그런데 갑자기 전쟁이 났지요? 연합전쟁이 났습니다. 5대 연합군과 4대 연합군의 전쟁이 났어요. 다섯 나라 왕들이 그돌라오멜을 12년 동안을 섬겼는데 13년째 되는 해에 배반을 해서 공격이 된 겁니다. 그돌라오멜은 4대 연합군이고, 소돔 왕은 5대 연합군이 됐지요.
평지에서 전쟁이 났는데 4대 연합군이 5대 연합군에 속한 늙고 병들고 한 자들 다 죽여 버렸어요. 청춘남녀를 다 빼앗고, 병든 것은 다 죽였습니다. 싱싱한 것은 노예를 삼기 위해 다 가지고 가고, 재물도 다 빼앗아 가버렸어요. 평지에서 살면 다 빼앗겨요.
아브라함은 이 소식을 듣고 가만있을 리가 없습니다. 전쟁은 이미 끝났지만 롯의 목자가 그랬는지, 누군가가 헐레벌떡 달려와서 아브라함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롯이 물질을 다 빼앗겼고, 롯 자신도 역시 포로로 잡혀간 거지요.
그러면 왜 소돔성에 전쟁이 일어났을까? 롯은 삼촌의 혜택을 입고 요단평야를 차지해서 소돔성에서 부귀공명을 누리며 살고 있었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양을 치면서 산골에서 살고 있었는데 전쟁이 일어난 것이 우연이겠느냐, 하나님의 섭리이겠느냐? 내용적으로 죽 봐서, 또 결과적으로 볼 때도 이건 우연이 아니다.
인간의 전쟁을 하나님께서 막을 수는 있습니다. 없는 건 아니에요. 또 하나님께서 전쟁을 일으키면 인간은 막지를 못하고, 또 인간이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도 하나님께서 막는다면 인간이 그것을 거슬려서 전쟁을 일으킬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막으면 인간이 못 일으키는 겁니다.
그런데 전쟁을 왜 일으켰느냐? 소돔성에서 전쟁이 일어난 걸 보면 혹 어떤 자들이 보듯이 롯이 배신을 해서 하나님께서 롯이 괘씸해서 일으켰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난 목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첫째는 아브라함을 위해서 일어났다. 두 번째는 후대의 성도들을 위해서 일으켰고, 세 번째는 롯을 위해서 일으켰다 이렇게 보아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롯에게 보복하는 전쟁은 아니다 그 말이요.
13장에서 아브라함이 깨달은 것은 ‘네가 종과 횡으로 행해봐라, 그러면 네가 밟는 그것을 너에게 다 주겠다’고 하신 이 진리를 써먹으라고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내가 가지려고 밟고, 깨닫기 위해서 밟고, 주기 위해서 밟고!
종과 횡으로 행해봐라: 하나님께서 우리 주변에 주신 모든 것은 딴 사람이 아니고 믿는 성도 자기를 위해서 준 겁니다. 자기 주변에 있는 것, 가는 곳곳마다 믿는 자기를 위해서 다 준 거다. 진리대로 사는 자를 위해서 일으킨 사건들이다.
가난도 부요도 역경도 모두 다 아브라함을 위해서 줬습니다. 반면에 롯의 입장에서 보면 롯을 위해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롯의 입장에서 그것이 ‘아브라함을 위해 일어났구나’ 이렇게 되면 롯에게는 수입이 없습니다.
이웃사람이 감옥 속에 들어가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 일어난 거지요? 이웃사람이 감옥 속에 들어갔다거나, 병이 들어서 병원에 들어갔다거나, 이웃사람이 옆에서 망하는 걸 보거나, 술을 먹고 가정이 파탄되고 하는 걸 봤을 때 믿는 성도 자기는 어떻게 여겨지느냐 그 말이요. ‘아이, 저 놈 그렇게 살더니 저렇게 망하는구나, 잘 됐다’ 그렇게만 생각하면 자기에게 깨달아지는 수입이 있겠느냐? 전부는 내 구원을 위해서 주신 건데 그 사람이 나와 왜 상관이 없느냐 그 말이요. 사건 속에, 상대 속에 내 구원이 들어있다.
또 다른 면으로 생각하면 ‘내 구원 속에 네가 들어있다’ 그렇게 봐야지요. 가룟유다 속에 내 구원이 들어있다 그 말이요. 그렇잖아요? 그런데 보통 보면 기독자들이 그걸 그렇게 못 보지요? ‘가룟유다는 예수 팔아먹고 지옥 갔다’ 그렇게 보통 보지요? 그렇게만 보면 자기에게 무슨 수입이 있어요? 성화구원에 아무런 수입이 없지요. 그렇게 보면 안 된다. ‘그 속에 내 구원이 들어있다, 내 구원 속에 또 그가 들어있다’ 이렇게 봐야지요.
원수 속에 내 구원, 내 보화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보배를 캐내려면 그런 것들을 내가 원수 시하고 물리칠 수만은 없지요.
어쨌든 원수 속에 내 구원의 보화가, 천국점령이 안 보이면 주먹다짐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상대가 천국을 보따리에 싸가지고 나에게 온 그걸 모르니 발길로 걷어 차버리는 겪이 될 수가 있습니다.
소돔전쟁은 아브라함을 위해서 일어났다 그 말이요. 또 다른 면으로 보면 나에게 온 실패도 깨닫고 보면 하나님의 선물로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보면 세상용어로도 그게 있지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실패 속에, 가난 속에, 질병 속에, 전쟁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보배! 그러니까 우리 기독자는 이면과 표면, 측면과 측면 등 안팎으로 보는 눈이 가득해야 된다. 에스겔이 한 면만 보지를 않았지요? 사면과 사면을 다 봤습니다.
전쟁이 일어난 셋째 목적을 생각해 보았듯이 롯을 위해 전쟁이 일어났고, 또 아브라함을 위해서도 전쟁이 일어났다. 그러니까 아브라함 입장에서는 그 전쟁이 자기의 구원건설에 이용물이 되는 겁니다. 원 건물을 짓는데 하나의 발판노릇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세상이치를 보면 그런 게 상당히 많습니다. 이번에도 아시안 게임을 히로시마에서 했나? 거기에서 금메달을 어느 종목에서 많이 땄지요? 레슬링! 가만 보면 머리만 잘 쓰면 자꾸 이길 것 같아요. 해설하는 사람도 ‘이렇게 하면 좋겠다, 저렇게 하면 좋겠다’ 하지요? 가만 보면 순간마다 머리를 잘만 굴리면 되겠어.
레슬링도 힘만 가지고 버티면 안 된단 말이요. 첫째는 버텨야 되겠지만, 버티는 힘을 역 이용할 수도 있다 그 말이요. 가만 보니까 붙잡고 가만있는 것보다 상대를 이쪽으로 넘어뜨리려고 하면 그 쪽으로 안 넘어지려고 저 쪽으로 버티게 되니 그걸 잘 이용해서 반대쪽으로 넘어뜨리면 될 것 같단 말이요. 어쨌든 상대보다 약삭빠르게 하면 이기지요. 신앙 면에서도 같은 신자라도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은 많은 것을 인용을 한다.
옥수수를 알맹이를 충실하게 기르려면 껍데기가 꼭 필요하지요. 그런데 껍데기를 홀딱 까놓으면 알맹이가 안 열리는 모양이대. 껍데기를 까놓으면 옥수수는 안 익어. 알맹이를 기르려면 껍데기가 꼭 필요하다. 그게 이치야. 신앙의 좋은 이치야.
왜 이렇게 전쟁이 일어나야 되는가 하니 아브라함에게 꼭 필요하고, 또 롯에게도 필요하다. 롯은 남의 것을 가지고 제 것인 양 하고 살았지요. 아브라함은 천국저축 소유주의로 살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 올려진 것이 아닌 것은 제 것이 아니라고 하며 살았단 말이요.
그래, 롯이 남의 것을 가지고 사니까 ‘그것은 네 것이 아니다’ 하는 걸 이 전쟁에서 가르쳐준다. 남의 것을 가지고 자기 것이라고 하니까 군대들이 와서 ‘이놈아, 그건 네 것이 아니다’ 하며 뺏어버리는 것이다. 군대들에 의해 롯이 재산을 다 빼앗겼다 그 말이요. 롯이 남의 것을 자기 것이라고 했듯이 군대들이 와 가지고 롯의 것을 ‘내 것이다’ 하고 빼앗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롯이 한 일을 군인들이 와서 다시 복사한다 그 말이요. 그런 일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 ‘이놈아, 남의 것을 빼앗아 가지고 네가 사는구나, 그것이 영원히 네 것 될 줄 알았지? 그것은 네 것이 아니다’ 하고 빼앗는 거! 롯은 남의 것을 빼앗아 가지고 영원히 자기 것 될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더라 그 말이요. 아브라함은 이런 롯에게 부지런히 천국저축 소유주의를 가르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롯은 지상저축 소유주의로 살았습니다. 영원히 자기 것이 될 줄 알았다 그 말이요. 빼앗기고 난 후에도 네 것이냐 그 말이지요. 지상에 저축해 놓은 것은 언젠 가고 빼앗길 날이 온다. 마:에도 보면 모래 위에 세운 집이 있지요? 바람이 불어, 즉 환경이 불어, 그리고 두 번째는 비가 와, 즉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고 죽음에 빼앗기고, 세 번째 창수가 나, 즉 최후의 심판이다. 세상의 재벌들이라도 제 것이라고 했지만 죽음의 선에서 다 빼앗기고, 최후의 심판에서 또 빼앗기는 겁니다. 롯처럼 지상의 소유는 다 빼앗깁니다.
천국저축 소유주의로 살아서 천국에 이전등기 해 놓은 것은 빼앗기지 않습니다. 천국에는 비바람이 있습니까, 강도가 있습니까, 전쟁이 있습니까? 또 이런 것이 온들 천국에 저축된 것은 이미 내 것이 됐으니까 절대로 빼앗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면 현세에서 포로로 잡혀서 사는 롯을 볼 수도 있고, 포로가 되어 있으면서도 포로인 줄도 모르고 사는 현재의 롯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롯의 전쟁은 이걸 또 보여주는데 그걸 모른다 그 말이요. 참 안타깝습니다. 대내전에서 옛사람에게 지고, 죄에 포로가 되어서 사망 길로 가고 있는 현재의 롯이 이걸 모르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우냐? 우리는 그 면에 정복을 해서 해방을 줄줄 아는 오늘날 현 시대의 아브라함이 돼야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죄에 포로로 잡혀가지고 옛사람이 하자는 대로 끌려가고 있는 성도 롯을 우리가 지금도 볼 수가 있습니다.
극장에 가는 것이 죄요, 죄가 아니요? 참 애매하단 말이요. 그래서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봤어. 그 순간순간마다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최대의 선이냐? 우리는 그 때 그 때마다 대악보다도 소악, 소악보다도 무악, 무선보다도 소선, 소선보다도 대선을 선택해야지요. 대악을 저지를 수밖에 없을 때 가능하면 할 수 있는 대로 소악으로 나가야 되고. 그 때 그 때마다 자기가 따져서 할 수 있는 그게 있을 거란 말이요. 그 순간순간마다 그게 있을 것 같아. 어쨌든 각자 신앙 속에서 판단을 내려야 하고, 또 거기에 대한 책임을 자기가 지게 되는 거니까 우리가 그런 지식은 알고나 있어야 되겠다.
우리에게는 생명 아니면 죽음이지 그 중간은 없으니 대내전에서 옛사람이 이기면 그 쪽을 징발을 당하게 돼요. 그래서 보면 눈은 보면 눈이 좋은 대로 ‘야, 가자’ 그럴 거고, 또 입이 있으니 ‘말 하라’ 할 거고, 손은 ‘잡아라’ 그럴 것이니 어쨌든 자기가 어느 쪽으로든 징발이 되면 그 쪽으로 행동과 활동이 나오게 되니 자기를 잘 잡아야 되겠지요? 포로로 잡히고도 잡힌 줄도 모르고 있으면 기도도 못하고, 의행도 못하게 됩니다.
롯이 포로가 된 것은 전쟁 전이 아니고 벌써 전쟁 후지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 이미 대내전에서 싸워서 진 거고, 또 눈으로 보이는 외부적인 전쟁도 이미 대내전에서 진 후가 되는 거지요. 그러니 자기를 잘 살펴야 되겠다. 어쨌든 대내전에서 포로가 되면 안 된다.
하나님은 영의 편이니까 육의 사정은 잘 안 봐줘요. 그러니까 인정머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 이런 하나님을 고통케 하면 어쨌든 자기의 육에 고통이 오게 마련입니다.
이 전쟁은 또한 ‘네가 롯의 길을 걸어가면 필연적으로 그런 결과가 온다, 그러니 너는 미리 깨달아 아브라함이 본 수입을 너도 봐라’ 하는 그 면을 또 보여줍니다. 롯을 보면 한 쪽 면만 수입이 되는 거지만, 그러나 아브라함에게서는 양 면의 수입을 볼 수가 있어요. 좋은 수입을 볼 수가 있다 그 말이요. 우리가 바른 이치대로 걸어가면 모든 것을 다 줍니다. 아브라함이 종과 횡으로 수입을 봤어요. 이건 총 수입을 보는 겁니다.
‘종과 횡으로’ 하는 이 이치를 가지고 써먹을 수 있는 때가 언젠가 하니 전쟁 때입니다. 종과 횡으로 깨닫지 못하면 그 전쟁에서 써먹지를 못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것도 전쟁이지요? 기독자들이 죄에, 세상에 포로가 돼 가지고도 싸울 줄도 모르고, 영적 면에 대내전을 싸울 줄도 모르고, 또 신앙사상적 영적 면에서도 싸울 줄도 모르고 포로가 되고 한 이걸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현 시대에서 대신관계를 바로 가진 상태(종적)에서 이걸 끊지 말고, 그 다음에 횡적 면으로 방금 말한 그런 것과 싸워나가야 한다. 전쟁에서 이걸 써먹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총 수입을 볼 수가 있다. 아주 수입이 많다. 우리는 이 시대에 종과 횡으로 써먹어야 합니다.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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