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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14:1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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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아브라함 |
14장 10절-24절.
10절-24절: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군사가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고하니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자더라 아브람이 그 조카의 사로 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자 삼백 십팔 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 가신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쫓아가서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 왔더라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오직 소년들의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취할 것이니라.
기도 올립시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당신의 택한 사랑하는 자녀들로 하여금 당신께서 만드신 이 세상 속에서 천국을 점령할 수 있는 귀한 구원의 비밀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우리 앞서 출생한 믿음의 선진 중에 아브라함의 신행을 우리가 보면서 이 세상 속에 들어있는 모든 사건 환경 속에서 천국을 점령해 간 그 믿음을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신앙의 선조와 선진들을 통해 저희들이 바로 깨달아 이 세상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 겪는 모든 사건 환경 속에서 우리의 천국을 넓혀가고 개발하고 점령해 나갈 수 있는 신앙의 실력들을 잘 갖추는 복된 당신의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깨닫는 시간을 허락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드신 원인이 있고, 인간을 만드신 동기가 있고, 인간을 만드신 목적이 있습니다. 인간을 뚜렷한 목적 하에 만들어 놓으시고, 또 그 인간으로 하여금 그 목적 하에서 걸어갈 수 있는 도덕이치를 주었고, 또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물질을 이용할 수 있는 물질이치를 주었습니다.
도덕이치를 바로 깨달아 나가면 물질이치가 깨달아지는데, 물질이치를 마음대로 이용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또 도덕이치를 바로 깨달아 나가면 자기의 새로운 자체성이나 자기의 새로운 능력성이나 영원한 천국이 발견이 되고 발굴이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 얻어진 것은 다 자기 겁니다. 자기 것이 되도록 했어요.
이 천국이란 천국은 전체적인 천국이 있는가 하면, 또 전체 속에 들어있는 자기의 자체적으로 되는 소유적 천국이 있는 것도 우리가 볼 수가 있지요. 이 세상에서도 보면 전체 세상이지만 활용 면에서 개개인이 사용하고 활용하는 면에서 자기의 소유를 볼 수 있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개개인의 활용하는 그 면에서의 자기의 천국이 따로 있다고 하는 면을 우리가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천국이다’ 그럴 때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은 자는 다 ‘내 천국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요. 그런데 ‘내 천국이다’ 그런다고 해서 그가 그 천국을 자기 실력대로 누릴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더라 그 말이지요. 다 자기 천국이라고 말할지라도 활용적인 면에서 자기가 활용을 못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지요. 내가 이 세상에서 신적 도덕이치 이거 하나 깨닫는 게 자기 천국 개발이요, 자기 천국 확장이라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2천 년 전에도 사람이 살았었고, 그 전에도 사람이 살았었고, 그 후에도 사람이 살았었고, 지금도 살고 있는데 가만 보면 2천 년 전의 사람들이나, 후의 사람들이나 먹고 자고 입는 면에서는 하나도 틀린 게 없고 똑같지요? 똑같아요. 변한 게 없어요. 먹고 자고 입는 그 자체는!
그런데 우리가 보면 백 년 전보다도 지금은 과학적인 면에서 급속도로 많이 발굴이 됐고, 발명이 됐지요? 뭘 하나를 발명을 하니까 그게 연관이 돼서 상당히 급속도로 빨리 발명이 되지요. 특히 과학계에서 뭐가 발명이 되니까 연관된 발명이 빠르지요? 전자제품에서 볼 수가 있지요.
내가 알기로도 라디오가 처음에 나올 때는 진공관 식으로 나왔단 말이요. 그게 만들어졌을 때 굉장한 환호성이었는데 그것보다도 더 작은 트랜지스터가 발명이 된 후에 그 기술에서 발전이 아주 빨랐지요. 그게 반도체입니까? 물론 트랜지스터도 반도체인데 이 트랜지스터를 복합적으로 만들어서 다양한 기능을 가질 수 있는 것을 자꾸 개발을 하니까 제품이 상당히 작아졌지요.
한국사람들도 과학적으로 개발한 것이 상당히 수준이 높던데 반도체를 ‘몇 만분의 몇’ 하는 상당히 단위성이 높은 그런 걸 많이 발명을 했어요.
그런데 물론 2천 년 전에도 물질을 가지고 살았고, 그 후에도 물질을 가지고 살기는 하지만 물질이치를 깨달아가지고 이용 활용하는 면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갖고 있지요. 굉장한 차이지요. 먹고 마시고 잠자고 사는 것은 똑같아요. 그러나 과학적인 발명을 해가지고 이용 활용하는 면에서 엄청난 차이다.
내가 어제 차를 타고 가면서 보니 수원도 길이 굉장히 복잡하대요. 그 전에는 낮에는 소통이 잘 됐고 밤에만 출퇴근 시간이라서 복잡했는데 지금은 낮이고 밤이고 없어. 어떻게 복잡한지! 그래서 운전사보고 그랬지. ‘앞으로 개인적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가용이 나올 거다’ 그런 얘기를 했다고. 어쨌든 사람이 생각해서 될 수 있는 건 자꾸 발명이 돼서 이용 활용이 될 거요.
모르긴 해도 교통수단이 유람적인데 쓰는 것은 천천히 가는 게 생길 것 같고, 그런 것도 공존하면서 신속하게 달리는 업무용도 생길 것 같아요.
원시인과 문화인의 차이가 과학적으로 그렇게 나오듯이 성경도 마찬가지예요. 성경을 문자적으로 붙잡고 사는 것은 천국이나 영적 도덕이치를 개발하지 못한 하나의 원시인이나 미개인이라 그렇게 한 번 붙여보고 싶고, 문화인은 거기서 신적 도덕이치를 많이 개발해서 사는 자들이다 그렇게도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영적인 면의 기능과 지능의 차이가 상당히 많이 벌어지고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가 없어요.
일반적으로도 학문을 많이 연구 개발해서 그 면에 생활적으로 활용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경의 이치를 많이 깨달아 가지고 사상적인 면의 방향이나 목적의 움직임을 알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을 우리가 볼 수가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원시인과 문화인을 우리가 볼 수가 있다. 하나님 당신의 신적 도덕이치를 바로 깨달아 가지고 살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그런 면을 가르쳐 줍니다. 특히 계:에서도 보면 종들에게 그런 것이 허용이 돼 있고, 그것을 가르쳐 줬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날마다 새로운 것이 발견, 발명이 된다면 참 좋겠는데, 이 세상에서도 일반적인 이치를 발견 혹은 발명을 못하면 후진국이 되지요? 그래서 그 면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 과학단지도 만들고, 우수한 인재들을 기르고 하지요.
우리 성도들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목적적 주격으로 돼 있으면 안 돼요. 그렇게 되면 문제는 다른 면으로 해석이 되는데 제가 말씀 드렸지요? 세상은 사람들을 붙잡아 갖고 자기의 제물로 쓰려고 그래요. 자꾸 제물이 되라고 하는 그런 걸 많이 볼 수 있지요.
우리는 그런 것도 한 편 알아야 되고, 우리는 세상에 대한 제물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한 제물이니까 거룩으로 바쳐지고, 삶이 거룩으로 살아지고 쓰여지는 면으로 돼야 됩니다. 세상을 그러한 면으로 이용 활용을 해야 합니다. 어쨌든 성경에 신적 도덕이치가 무한이니 여기에서 천국개발을 많이 하고, 천국확장을 많이 해야 한다.
내가 물질이치를 못 깨달았지만 과학적으로 깨달은 자들로부터 그 혜택을 내가 누릴 수가 있어요. 내가 전기를 발명을 하지는 못했지만 남이 발명한 전기를 내가 쓸 때는 그동안 내가 쓰던 호롱불을 치운단 말이요. 필요가 없다 그 말이요. 많은 혜택을 본다. 그런 것처럼 남이 깨달아 놓은 도덕이치를 내가 배우고 그대로 써먹을 수가 있단 말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자연계만을 볼 때 3천 년 전이나, 4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옛날의 소나무가 그 소나무고, 창세 때 지은 까마귀는 역시 지금도 그 까마귀입니다. 자연계 자체로는 달라진 게 없어요. 그렇지만 이제 과학적으로 잘 개발을 해서 유용하게 사용을 하지요.
그렇다면 천국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쳐주는 곳이 어디냐 하면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천국을 안 가르쳐주면 어디서 가르쳐줘요? 못 가르쳐 주지요. 우리는 교회에서 천국을 성경적으로 잘 배우고 깨닫고 알아야지요.
오늘날 기도원이나 그런데 가만 봐 봐요. 천국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교훈이다. 그러니까 교회간판만 달아놓고 세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 다음에 교회에서 세상운동을 하는 거지요. 구국운동, 민족운동, ‘사회에 대해서 교회가 어떻게 하자’ 하는 이게 다 무슨 운동이지요? 세상운동! 전부 세상이지요. 천국운동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님이 왜 우리를 당신의 피로 구속을 했느냐? 천국의 사람으로 만드는 운동 아니요? 그런데 그 위에다 자꾸 세상을 세우잖아요? 그 위에 천국건설을 해 나가야지.
그리고 교회라고 하는 교회는 겉으로 보면 꼭 세상일 같은데 안으로 들여다보면 천국운동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전도하는 것도 ‘교회에 나가면 참 좋습니다, 축복받습니다’ 하는 전도가 있고, 또 ‘사람은 근본적으로 이렇게 이렇게 사는 거다’ 하면서 성질과 인격적인 면에서 예수님을 닮게 하는 전도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어라, 복 받는다, 병 낫는다’ 하며 전도해서 사람을 교회에 나오게 해 놓고는 세상운동을 하는 이것은 교회운동이 아닙니다. 천국운동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의 교훈은 우리가 확신컨대 천국운동인데도 사람이 안 모이지요. 그렇지 않아요? 안 그래요? 세상운동을 하니까 사람이 안 모입니까, 천국운동을 하니까 사람이 안 모입니까? 세상운동을 하면 세상사람들이 다 좋아하니까 사람이 많지요. 그런 걸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세상운동은 뭐냐? 세상운동은 결국 인간 제 소원운동이지요.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까’ 하는 육운동이다. 이건 세상일이지요. 우리는 세상운동을 못한다 하더라도 사람을 바로 세우는 일을 해야지요. 어쨌든 천국운동을 하고 가야지요.
아브라함이 롯에게 ‘네가 저축해 놓은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니까 롯이 ‘소돔성입니다’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그건 네 것이 아니다, 천국에 저축해 놓은 것만 네 것이다’ 라고 합니다.
롯이 지상저축 주의로 살면서 지상에 저축해 놓은 것이 자기 것으로 등록이 됐습니까, 빼앗겼습니까? 다 빼앗겼지요. 거지 중에 알거지가 됐지요. 감이 잡혀요? 지금 ‘하라, 마라’ 그게 아니고 ‘무엇을 목적을 해서 하는 거냐?’
이 롯은 아브라함의 말을 듣지를 않았습니다. 다 빼앗기고 난 다음에야 롯이 깨달았지요. ‘아, 삼촌이 한 말이 옳구나’ 하고서 깨달았지만 그 때는 이미 천국에 저축이 됐어요, 안 됐어요? 저축이 안 됐지요. 안 됩니다. 사망계에 빼앗긴 내 소유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자녀보고 유언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러니 다 빼앗기기 전에 자타의 구원성장을 위해서 천국저축 주의로 살아야 하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들에게 이 성경을 보여주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바로 가르쳤고, 말씀대로 감화대로 바로 살았습니다만 롯은 금생내세에 거지신세를 면할 길이 없게 됐습니다.
그러면 이 롯이 천국에 갔습니까, 지옥에 갔습니까? 보면 롯이 불신적 사상으로 살았지요. 그러니까 ‘이 롯이 천국에 갔느냐, 지옥에 갔느냐’ 하는 그 면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지요. 천국자녀의 타락된 모형을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거지요.
오전에도 미개인과 문화인을 조금 얘기했는데 지금 여기서도 롯은 하나의 자연 속에서 등 따시고 배부르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사는 거지요. 이처럼 우리 기독교인들이 물론 ‘타락이냐, 아니냐’ 하는 것도 알아야 하는 거지만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는 것은 일반 자연인으로 사는 겁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일반인들이 먹고 마시며 농사짓고 장사하면서 배부르고 등 따시고 잠자는 것으로 만족하며 사는 것처럼 살면 이건 그냥 일반인으로 사는 겁니다. 우리 기독자들이 그런 식으로 살아서야 되겠느냐 그 말이요. 그런 일반 자연인으로 살아서야 되겠느냐 그 말이요. 우리 성도는 영적인 이치를 많이 개발하고 발명을 해 가지고 천국의 실력을 가져야 된다 그 말이요.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천국발명을 하고, 또 천국개발을 많이 해 가느냐’ 하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때까지 기독교인들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이치를 많이 깨닫고 가느냐’ 하는 이 욕심을 가져야지요. 그런데 오늘날 장로교회의 우상덩어리가 칼빈이지요? 칼빈 이상 깨달은 것을 이단시 하고 봅니다.
우리가 현재적으로 볼 때 이단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다가도 그 이단이 덩어리가 커지니까 그걸 진리라고 하고, 아무리 진리라도 소수이면 비진리로 생각들을 하더라 그 말이요. 세상은 그러잖아요?
그런데 진리란 그 시대에 세상에서 인정을 받으면 진리입니까? 아니지요. 진리는 그 시대에 인정을 하고, 안 하고 와는 상관이 없는 거지요.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세상으로부터 자꾸 인정을 받으려고 그러지요.
진리는 그런 게 아닙니다. 신앙은 그런 게 아니에요.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하지를 말아요. 말씀대로만 바로 살면 되는 거니까! 불신자들이 기독교 진리를 어떻게 알고 인정을 해 줍니까? 못하는 거요.
우리가 보면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얘기를 할 때 안 믿는 사람이 말하기를 ‘아, 그 사람 참 신앙이 깊고 믿음이 있다’ 그럴 때에 여러분들이 그 소리를 듣는다면 그 소리가 어떻게 들려요?
불신자는 제 척도에서 그렇게 말을 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그 소리를 들을 때에 덩달아서 ‘아, 그렇다’ 하지 말고 ‘이 바보 같은 녀석아, 네가 뭘 알아서 그런 소리를 하느냐’ 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불신자가 혹 여러분들을 칭찬을 하더라도 ‘네가 뭘 알고 그러느냐’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해야지 날 알아주니 그들과 같이 뭘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돼요. 나중에는 걷어 차여요.
노아시대에 그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인정했기 때문에 죽었습니까, 안 했기 때문에 죽었습니까? 진리를 인정해 줬기 때문에 죽었어요, 안 해 주었기 때문에 죽었어요? 인정하고 말고가 없지. 자기는 인정을 했다고 할 때 우리가 듣기에는 꼭 진리를 인정해 주는 것 같은 느낌으로도 들릴 수가 있지요. 그렇잖아요? 그런 걸 생각을 잘 해야지요. 그들이 아무리 진리를 인정을 해 준다고 해도, 즉 세상이 아무리 ‘야, 저 기독교는 진짜다’ 해도 우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그런가 하면 기독교계에서나 불신세상에서 ‘아, 저거는 사교다’ 그럴 때 우리가 확인을 해 보지도 않고 은근히 사교라고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또 어느 교회에서나 어느 기도원에서 어떻게 해서 사람이 죽었다거나 어떻게 됐다고 하는 불신자들의 말을 듣고 ‘좋다, 바쁘다’ 하는 것도 삼가 해야 됩니다. 우리는 그들이 하는 말의 척도를 바로 알고 그런데 휘말리지를 말아야 됩니다.
또한 우리는 불신자들에게 어느 기도원이 나쁘다느니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렇잖아요? 그런 말을 하게 되면 그들의 주관적인 사상을 인정하는 결과가 돼 버리고, 도무지 덕스럽지 못한 일이 돼 버리지요.
진리의 여부는 인간들의 인정여부에 있지 않다는 것. 즉 진리는 자체적인 가치를 갖고 있고, 독자적인 가치를 갖고 있는 거예요. 그 면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진리는 타의 인정여부에 따라 변동이 되지를 않습니다. 타의 인정여부에 뭐가 변동이 안 돼요? 진리는 변동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천국의 차등성에 대해 생각해 보면 천국은 영광 면도 다 다르다는 것. 고전15:39-, 단12:3에 있지요. 그러니 우리가 예수 믿고 천당 간다고 하는 그 말만 하며 살 것이 아니라 천국을 개발을 하고 살아야 된다. 남이 개발한 것을 내가 배우고 써먹을 수도 있고! 그러면 내가 성화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거지요.
그리고 소돔성의 전쟁은 하나님께서 일으켰는데 왜 일으켰느냐? 원 목적은 아브라함을 위해서 일으켰다. 두 번째 목적은 후대의 성도들을 위해서 일으켰는데, 모형계시적으로 형식계시적으로 일으킨 겁니다. 세 번째는 롯을 위해 일으켰다.
롯이 개발을 할 것은 남의 것을 빼앗지 말아라! 네가 남의 것을 빼앗으면 너도 빼앗긴다. 롯이 남의 것을 빼앗으니까 군인들이 와서 ‘그건 내 거다’ 하고 빼앗았단 말이요. 삼촌 것을 ‘내 거다’ 하고 빼앗으니까 4대 연합군이 와 가지고 ‘롯아, 그거는 내 거다’ 하고 또 뺏는 거란 말이요. 빼앗으면 뺏깁니다.
그 다음에 롯이 자기 소유가 아닌 것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을 하니까 ‘천국에 저축이 안 된 것은 네 것이 아니다’ 하는 이것도 가르쳐 줍니다. 그러니까 롯이 천국에 저축이 되지 않은 것을 ‘내 거다’ 하고 살지만 현재가 과거가 되고, 미래가 현재가 되는 그 날에는, 즉 빼앗기는 그 날이 올 때는 ‘아, 이게 내 것이 아니구나’ 하고 알게 되더라 그 말이요.
그 다음에 롯이 또 깨달을 게 뭔가 하니 포로 된 원리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면적 포로를, 영적 신앙적 포로를 모르고 살고 있으니까 그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표면적 포로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이 그렇게 살면 그런 결과가 온다고 하는 것! 우리가 그 점에 대해서 알아야 되겠습니다. 성경 66권 전부는 우리로 하여금 롯과 같이 살지 말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천국저축 주의로 살라는 이 말을 하나님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로 듣기 쉽다 그 말이요. 물론 잘못된 것도 많습니다만 교회 목사님들이 하나님 앞에 감사헌금하고 십일조를 내라고 자꾸 강조를 하면 불신자는 그 소리를 어떻게 알아들을까? 목사 제 먹고 살려고 그런다고 하겠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위해 그런 말을 하는 것으로 들리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불만이 나오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지 말아라’ 하는 그 말은 그걸 인간이 하게 되면 하나님 당신에게 영광이 안 되니까 하지 말라는 말입니까, 인간 내가 망하니까 하지 말라는 그 말입니까? 내가 망할까 싶어서 그런 말씀들을 하시는 거지요.
사실 우리가 롯처럼 산다고 해서 하나님 당신에게는 손해가 되고, 안 되고 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지요. 악한 자들이 죄를 짓고 산들 하나님 자신에게는 상관이 없어요. 모두는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 당신처럼 영광자로 만들어 주려고 우리에게 명령을 하는 겁니다.
전쟁이 일어났는데 아브라함을 위해서 일으켰다. 아브라함이 헤브론 산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전쟁소식이 왔지요. 롯이 잡혀갔다는 그 소식이 왔을 때에 아브라함이 믿음이 없는 사람 같으면 롯을 향해서 어떤 생각이 날까? 좋은 생각이 나올까, 나쁜 생각이 나올까?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사고나 뭘 당했을 때 ‘아이, 고소하다’ 하지요? 그럴 수 있지요? 그렇게 생각이 되면 그거는 다 악한 마음이지요.
이 때 아브라함은 13장에서의 ‘종과 횡으로 행하라’ 하는 그 이치를 써먹을 때인데 이 아브라함은 무선보다도 소선, 소선보다도 대선이 생각나는 거지요. 그런 것처럼 악에 있어서도 대악보다도 소악, 소악보다도 무악. 우리는 이런 이치를 가지고 세상에서 살아야 되겠어요.
롯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아브라함이 ‘아이고 가엽어라, 참 안 됐다’ 하는 것은 무선이지요. ‘아이고 참 가여워라’ 하는 것보다 기도하는 것은 조금 낫지요. 이건 소선이고, 기도하면서 가만 생각해 보니까 그걸 가만 놔둬서는 안 되겠다 그 말이요. 그래서 ‘내가 직접 가서 싸워서 구원해 내야겠다’고 하는 이것은 대선이다.
선의 일인데 이 일을 남이 하도록 내버려 둬야 합니까, 내가 해야 합니까? 선이니까 하나님보고 하라고 하면 안 되나? 그런 경우 내가 하는 게 대선이다 그 말이요. 선이면 자기가 해야지 남보고 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되지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이런 걸 깨달았다 그 말이요.
무선보다 소선, 소선보다 대선, 내가 이 진리를 가지고 단순히 걱정하는 것보다, 또한 기도하는 것보다 내가 갈 수만 있으면 가서 정복을 하고 구원해 내는 것!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 없는 거지만 성화구원을 이루는 면으로 표현을 할 때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게 대선이다 그 말이요.
대선을 하려고 하니까 힘이 들지, 돈도 들어가야지, 시간도 내야지, 차도 타야지.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만 선이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지. 이게 종과 횡으로 사는 것이다. 그렇게 네가 살아봐라!
그러니까 내가 실력이 있고, 없고 하는 거는 생각 말고 ‘이게 선이다, 이게 하나님의 뜻이다’ 했을 때는 성화구원의 지식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으니까, 설령 몰랐다 하더라도 아닌 말로 그 사람이 불교 쪽으로 잡혀갔다면 예수 믿는 쪽으로 끌고 오는 것! 이거 좋은 면으로 보면 좋은 겁니다. 자기는 성경을 몰라도 어쨌든 끌어다가 목사님이 가르치도록 하는 그것도 선이 아니요?
자기가 대선을 하려고 하면 자기가 대선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기도를 하지 않더라도 물질에 대한 손해를 따지지 말고, 따질진대 성화구원에 손해를 따지라 그 말이요.
그럴 때에 영에 대한 손해가 나는 것으로 계산이 되면 우리가 그건 할 필요가 없어. 그렇잖아요? 아무리 남이 차비 대 주고, 뭣 대 주며 놀러가자고 해도 내 영에 손해가 나면 갈 필요가 없잖아요. 반대로 내가 물질을 들여서 자타의 영의 일이 산다면 투자할 가치가 있지요. 전도도 그렇고, 모든 게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생각할 건 무선보다 소선, 소선보다 대선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소선이나 무선이 대선에 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알겠어요? 무선과 소선이 대선에 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걸 우리가 또 잘 구별해야 되겠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부딪힌 사건 환경이나,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건 환경이 왜 일어났는지, 하나님께서 왜 일으켰는지?
하나님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종과 횡으로 행해 봐라, 발로 밟는 것은 전부 다 너에게 주겠다’는 말씀처럼 천국저축 소유주의로 사는 자에게는 밟는 곳을 다 주겠다고 했으니 종과 횡으로 천국 점령법을 써나가는 이 신앙을 우리가 아브라함으로부터 배우고 깨달게 해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신앙생활을 해 나갈 때에 그것이 선일진대, 자타의 영에 이익이 있고 구원에 이익이 있을진대 모든 것을 투자해서라도 그 면을 위해 살아갈 수 있도록, 종과 횡으로 그렇게 밟아나갈 수 있도록 저희들에게 지혜를 더해 주옵시고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진리이치를 써먹지 못하면 자기는 실력이 없고, 자기의 천국이 그만큼 축소가 되는 줄 압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제 저희들이 하나 깨달았으면 하나 깨달은 것만큼, 열을 깨달았으면 열을 깨달은 것만큼 어찌하든지 그것을 이용하고 활용해서 받은 것만큼 정복해 들어갈 줄 아는, 그리고 자기 것으로 만들 줄 아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궁하고 극진한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충만하심이 아브라함처럼 살고자 하는 당신의 자녀들 머리 위에 영원히 같이할지어다. 아멘.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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