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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를 던져라

출애굽기 이민재 목사............... 조회 수 1967 추천 수 0 2012.12.20 22:3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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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4:1-9 
설교자 : 이민재 목사 
참고 : 20070708 은명교회 HTTP://WWW.SUMBIT.OR.KR/ 

지팡이를 던져라

 

요즘 날씨가 덥습니다. 한 조각의 그늘이 고마운 계절입니다. 어떤 사람이 늘 자기 그림자를 벗어던지고 싶어 했습니다.하지만 아무리 해도 그림자는 떨어질 줄 몰랐습니다.마룻바닥에 뒹굴어도 보고, 물속에 뛰어들기도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그림자는 여전히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한 현자가 그의 고충을 전해 듣고 말했습니다."조금도 걱정할 것 없네. 세상에 그처럼 쉬운 일은 없다네." 그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 현자는 그를 큰 나무 그늘 아래로 데려가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가면 된다네." 굉장히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한 번 더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나무에 대한 상상의 길잡이로만 사용하고자 합니다.

 

날이 더울 때 그늘은 참 고마운 존재입니다. 나무가 클수록 큰 그늘을 만듭니다. 큰 그늘일수록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큰 쉼과 안식을 줍니다.그런데 나무를 생각할 때 우리가 종종 잊는 것이 있습니다. 뿌리입니다. 큰 그늘을 만들어 더위에 지친 사람들을 쉬게 하는 큰 나무일수록 뿌리가 깊은 나무입니다. 나무의 높이는 나무의 깊이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즉 대지에 깊이 뿌리를 박은 나무만이 높이 자라 큰 그늘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요즘 수백 층 되는 높은 건물들이 많습니다. 건물이 그만큼 높이 솟으려면 기초가 깊고 튼튼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높이에 대해 경탄할 줄은 알지만 깊이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높은 사람이 되려고는 애쓰지만 ‘깊은’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높은 사람도 좋지만 깊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깊이 없이 높아진 사람은 경박합니다. 뿌리 없이 높기만 한 나무처럼, 기초가 얕은 건물처럼 위험합니다. 언제 그 높은 자리에서 떨어질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높이 계신 하나님은 익숙한데 ‘깊이’의 하나님은 낯섭니다. 높이 계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며 ‘깊이’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높은 자리는 권력을 동반합니다. 따라서 높이의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여리고를 무너뜨린 하나님, 갈멜산에서 불을 내리신 하나님, 높이의 하나님입니다.

 

 

[깊이의 하나님]

 

깊이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요? 나이 팔십이 된 모세의 입장을 한 번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나이 팔십이면 이제 인생을 마무리할 시점입니다. 모세의 경우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참으로 허무했을 것 같습니다. 살인자, 도망자, 은둔자, 실패자, 낙오자, 처가살이 하면서 평범한 양치기로 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 그의 심정은 참으로 허탈하고 쓸쓸했을 것 같습니다. 한 순간의 혈기만 참을 수 있었다면 지금쯤 애굽의 왕이 되어 천하를 호령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의 인생의 여정 중에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나는 양치기로 내 인생 끝내서는 안 되는데…’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하여 생존의 노예로 살아서는 안 되는데…’ ‘뭔가 다른 것이 있는데…’ ‘나만이 할 수 있고, 나만이 해야 하는 어떤 궁극적인 사명 같은 것이 있는데…’ ‘이건 아닌데, 정말 삶이 이렇게 끝나버리면 안 되는데…’ ‘이런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동포 이스라엘 백성도 바로의 학정에서 해방되어야 하는데…’ 하지만 모세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내가 뭐기에’ 하면서 그런 생각들을 떨쳐버렸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이게 뭡니까? 그게 내면의 소리요, 마음 가장 깊은 곳, 내면의 중심에서 다가오시는 깊이의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저는 지난 주에 ‘삶에 대한 근원적이며 직관적인 느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냥 ‘깊은 느낌’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이 깊이의 하나님, ‘삶의 근원적 느낌’으로 현존하시는 하나님과 성서에 계시된 하나님이 연결될 때 성서의 하나님은 바로 ‘나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은 나와 동떨어진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나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 즉 나의 삶을 가능케 하는 삶의 근거,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 없이는 삶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그리고 그때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으로서 나의 삶을 이끌어 가시는 목자요, 아빠로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국교회가 성도의 수는 많은데 왜 힘이 없는 줄 아십니까? 성경에 계시된 높이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많지만, 그 하나님을 ‘삶에 대한 깊은/근원적인 느낌’과 관련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깊이’의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삶과 분리됩니다. 하나님 따로 나 따로입니다. 신앙 따로 삶 따로인 것입니다. 그러니 힘이 없을 수밖에요.

 

[하나님 체험의 강화]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에 가까이 계십니까? 아니면 멀리 계십니까? 하나님이 점점 친밀해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냥 설교 시간에 듣는 낯선 존재일 뿐입니까? 하나님은 주일예배시간에만 필요한 장식품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배 시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한 가운데에서도 활동하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하나님 체험이 점점 깊어져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님 체험이 깊어질까요? 몇 주째 묵상하고 있는 모세 이야기가 해답을 줍니다. 하나님을 만났으면서도 자신의 체험에 확신이 없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두 가지 이적을 보여주셨고, 한 가지 이적을 약속하셨습니다.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 하셔서 그렇게 했더니 지팡이가 뱀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깜짝 놀라 피하자 이번에는 꼬리를 잡으라 하십니다. 그대로 했더니 뱀이 다시 지팡이로 변했습니다. 그러더니 손을 품에 넣으라 하셔서 그대로 했더니 손에 문둥병이 생겼고, 다시 품에 넣으라 하셔서 그렇게 했더니 문둥병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나서 하나님은 덧붙이셨습니다. 만일 이 두적을 행하고 났는데도 말을 듣지 않으면 나일 강물을 떠다가 땅에 부어라. 그러면 그것이 피로 변하리라.

 

이것이 하나님 체험에 확신이 없는 모세를 다루신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난주에는 이 모든 이적의 공통점이 ‘변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체험은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없습니다. 변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하나님 체험을 할 수 없습니다. 이 변화의 한 복판에 다섯 개의 명령이 있습니다.

 

[지팡이를 던져라]

 

모세에게 지팡이는 뭡니까? 이제까지 자신을 지탱해온 삶의 방식입니다. 그걸 땅에 던지라는 것입니다. 어떤 삶을 살아왔습니까? 살인자, 도망자, 은둔자, 실패자, 낙오자의 삶이었습니다. 하루 하루 살기에 급급한 생존의 노예였습니다. 그 중심에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그걸 던지라는 것입니다. 생존의 노예, 죄의 노예, 욕망의 노예, 상처의 노예로 살아온 과거의 삶을 청산하라! 그것과 결별하라!

 

하나님을 따르려는 사람들은 지팡이를 버려야 합니다. 삶의 근원적 느낌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도 지팡이를 버려야 합니다. 스스로 있기 원하는 사람들도 지팡이를 버려야 합니다.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도 지팡이를 버려야 합니다. 새로운 삶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지팡이를 버려야 합니다.

 

지팡이를 버리지 않으면, 즉 과거의 삶을 청산하지 않으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인간적이며 세상적인 방식을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지팡이를 버리면 그것인 뱀이 됩니다. 전혀 새로운 현실이 창조됩니다. 뱀의 특징이 꿈틀거리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듯, 지팡이를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기 시작한 사람은 모든 것이 꿈틀거리시 시작합니다. 살아납니다. 꿈이 살아나고, 감수성이 살아나고, 관계가 살아납니다.

 

그러나 지팡이를 버린다는 것을 두려운 일입니다. 팔십 노인이 어떻게 지팡이를 버릴 수 있습니까? 평생 의지해온 삶의 방식을 어떻게 버립니까? 평생 갖고 살았던 삶의 방식, 자신을 지켜온 방식을 어떻게 버릴 수 있습니까? 두렵습니다. 불안합니다. 차라리 그냥 노예 상태에서 안전하게 사는 게 낫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또 다시 명령하십니다.

 

[꼬리를 잡아라]

 

뱀은 머리를 잡아야 다스릴 수 있습니다. 꼬리를 잡는 순간 뱀은 머리를 홱 돌려 꼬리를 잡은 손을 물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꼬리를 잡으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용기를 내라는 것입니다. 모험을 하라는 것입니다.

 

돈 되는 일도 아닌 것 같지만 끝까지 가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의 부름을 따라 가보라는 것입니다. 삶에 대한 근원적인 느낌을 따라,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따라 계속 가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험이요, 모험이기에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겁쟁이들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팡이를 버릴 수 있는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뱀이 다시 지팡이로 변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현실적인 삶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팡이를 버리라는 게 해서 남편을 바꾸고, 마누라를 바꾸고, 부모를 바꾸고, 자식을 바꾸라는 얘기였겠습니까? 방식을 바꾸라는 얘깁니다. 물론 평생 길들여진 삶의 방식, 사고방식, 감정방식을 바꾼다는 것은 힘들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힘들더라도 용감하게 버리고 나면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전에 만나던 사람들인데 새롭게 보입니다. 감사하다는 마음이 조금씩 들기 시작합니다. 이따금 삶에 대해 감격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꽃을 보면서도 눈물이 핑 돌기도 하고, 귓가를 스치는 바람에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감수성이 회복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전과는 다른 문법 다른 논리로 삶을 재편성하게 됩니다.

 

[손을 품에 넣어라]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이 생깁니다. ‘아,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삶이란 이렇게 벅찬 삶이로구나. 감동이 있는 삶이로구나. 이전에는 배불리 먹으면서도 불평과 불만이 끊이질 않았는데, 지금은 먹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것 같아.’ 이쯤 되면 하나님 믿는 일이 점점 신이 납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누구든 용서할 수 있을 것 같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그렇게 살기 시작합니다. 새로워진 삶에 대해 벅찬 가슴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하나님을 따르라고, 당신의 삶에 대한 근원적인 느낌을 따르라고 충고도 합니다.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옛 사람을 버리는 모험을 감행하면, 하나님은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신다고. 그 삶을 기쁨과 감사와  은혜가 충만한 삶이라고 간증까지 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단한 사람, 삶에 대한 근원적인 느낌을 따라 살겠다고 다부지게 결심한 사람들은 그런 삶을 삽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또 다른 현실이 닥칩니다. 예기치 않은 시련이 닥칠 때가 있는 것입니다. 품에 손을 넣으라 하셔서 기대감을 갖고 넣었더니, 이게 웬걸, 문둥병이 걸린 것입니다.

 

아아, 이럴 수가, 모든 것 버리고 하나님 따랐는데, 세상 사람들 가는 길 버리고, 삶의 근원적 느낌을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 문둥병이라니, 시련이라니, 고통이라니, 실직이라니, 암이라니…. 이때 갈팡질팡합니다. 모세도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또 다른 명령이 떨어집니다.

 

[다시 품에 넣어라]

 

실망 속에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삶에 대한 근원적인 느낌을 따라갑니다. 힘듭니다. 신앙생활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나서지 않는 것인데… 후회막급(後悔莫及)입니다. 그래도 기어갑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하나님은 또 다른 은총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아, 어느 틈엔가 내 손에 나 있던 문둥병이 사라진 것입니다. 내 살이 다시 깨끗해진 것입니다. 시련을 통하여 마침내 내가 ‘정화’된 것입니다!   

 

이것은 또 다른 은총입니다. 내가 정화되고 있다는 느낌, 내가 이전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내가 되고 있다는 느낌, 이것처럼 나 자신을 자신 있게 하고, 이것처럼, 나 자신을 충만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여기서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감각이 싹틉니다. 감격입니다. 이런 감격 속에 있는 나에게 하나님은 또 다른 약속을 하십니다.

 

[물을 땅에 부어라]

 

강물을 땅에 부으면, 그것이 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물이 피로 변하는 것! 완전한 질적 변화가 나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삶의 차원이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이것은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것 같이 새로운 기쁨과 감동으로 가득 찬 삶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피는 뜨거움입니다. 열정입니다. 피는 창조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이제 삶에 대한 근원적인 느낌을 따르지 않는 삶이란 물처럼 맹숭맹숭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면서 생존의 노예로 살던 삶이 현실이요,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모든 생의 염려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모든 감정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하나님이 사십니다. 삶에 대한 근원적인 느낌이 바로 나입니다. 이때 비로소 스스로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완성된 느낌입니다.

 

[요약합시다]

 

하나님 체험에 확신이 없어 주저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다섯 가지 명령을 하셨습니다. 지팡이를 던져라, 꼬리를 잡아라, 손을 품에 넣으라, 다시 품에 넣어라, 물을 땅에 부어라!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지팡이를 던지라는 것은 청산하라는 것입니다. 결별하라는 것입니다. 뱀꼬리를 잡으라는 것은 용기를 내라는 것입니다. 모험을 하라는 것입니다. 손을 품에 넣으라는 것은 시련이 와도 견디라는 것입니다. 다시 품에 넣으라는 것은 시련을 통해 정화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강물이 피로 변할 것이라는 것은 질적으로 새로운 삶, 생명으로 가득한 삶, 진정한 자유인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런 신앙의 모험을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과 일치된 삶,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삶, 삶의 모든 염려를 초월한 삶, 언제 어디서나 자족하는 삶,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진정으로 용서하고 그들과 하나되는 삶, 오히려 그들로 인하여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는 삶, 삼라만상과 친구가 되고, 온 우주와 하나 되는 삶, 결국 모든 존재와 형제 자매가 되어, 고통받는 작은 자들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증여하는 삶, 멋지지 않습니까? 이것이 기독자의 길입니다!

 

주님,

우리도 지팡이를 버리게 하옵소서.

생존의 노예살이, 죄와 욕망의 노예살이를 청산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도 뱀의 꼬리를 잡게 하옵소서.

용기를 내어 신앙의 모험을 하게 하옵소서.

 

주님,

문둥병이라는 시련에 놀라지 않게 하옵소서.

삶의 시련까지도 품게 하옵소서.

 

주님,

다시 손이 깨끗해지게 하옵소서.

시련을 통해 정화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삶도 피처럼

질적으로 달라진 삶을 뜨겁게 살게 하옵소서.

마침내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 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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