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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전병금 목사............... 조회 수 1815 추천 수 0 2012.12.22 20: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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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2:23-3:10 
설교자 : 전병금 목사 
참고 : 2000-03-04 

고통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수는 발칸산맥의 장미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산업자들은 발칸산맥의 장미를 가장 춥고 어두운 시간인 자정에서 새벽 2시에 딴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장미는 한밤중에 가장 향기로운 향을 품어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향기도 가장 극심한 고통 속에서 풍겨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절망과 고통의 한밤에 비로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베개에 눈물을 적셔 본 사람만이 별빛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에 처하여서도 절망하지 않는 것은 그때에 우리 영혼의 향기가 발산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서 430년간 노예생활을 하였습니다. 처음에 애굽으로 내려갈 때는 요셉이 총리대신이었기 때문에 안정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을 모르는 새로운 왕조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날이 갈수록 크게 번성하게 되자 이집트 왕들은 이를 시기하고 두려워 한 나머지 종족번성의 억제책으로 강제노동을 시키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구가 계속 증가해가자 마침내 산파들을 명령하여 태어나는 아이들 가운데 여아는 살려두되 남아들은 모두 죽이라고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윤리와 상식을 가지고서는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잔인하고 끔찍한 명령이었습니다.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탄식하며 울부짖었지만 그 누구도 그들의 한 맺힌 호소를 들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건져주시고자 손을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고통의 골이 깊은 만큼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덧입기가 쉬운 법입니다. 우리는 내 자신이 편안하고 즐거우면 마음이 교만해지고 강퍅해져서 하나님을 잊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환난과 고난의 골짜기를 지나게 될 때 그때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이렇게 간사한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가 당신 앞으로 나오기를 간절히 기다리십니다. 이스라엘의 탄식과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고통소리도 들으시며 우리에게 다가와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믿음으로 겸손하게 말씀을 받는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역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어떤 신비한 종교적 의식이나 기적의 체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기독교는 주술의 종교나 신비주의의 종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요,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창 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을 뿐만 아니라(요 1:14)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원래 말은 의사소통을 위한 매개체로써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두 인격체를 연결시켜주는 기능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의 종교'라는 표현 속에는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말씀을 듣는 인간 사이에 상호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대화)은 하나님만 말씀하시고 사람들은 듣기만 하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우리도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우리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듣는 쌍방적인 관계입니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 이 두 가지는 기독교의 특성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개념들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탄식과 기도도 듣고 응답해주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활동에 대하여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며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고아와 같이 버려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을 통하여 가장 좋은 길을 가르쳐 주시며 우리가 문제에 봉착했을 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삶에, 인류의 역사에 동참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에 순종하며 끊임없이 기도하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애굽 궁중의 왕자로서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 세상에서 일신상의 편안함을 누리는 것보다 학대받는 자기 백성들과 함께 고난 당하는 것을 더 큰 즐거움으로 알고 젊은 패기와 권세를 앞세워 그들을 구원코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세의 용기와 헌신은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는 과연 민족의 지도자다운 신념과 결단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민족을 구원코자 하는 그의 꿈은 한 순간의 실수로 말미암아 무참하게 깨어져 버리고 맙니다.

 

동족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모세는 어느 날 공사장에서 애굽 감독이 노역에 지쳐 고통스러워하는 이스라엘 형제를 때리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본 모세는 젊은 혈기를 참지 못하고 그 감독을 쳐죽여서 몰래 모래에 감추었습니다. 이튿날, 다시 밖에 나가보니 이제는 같은 이스라엘 형제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싸움을 말리면서 모세는 그중 못된 사람에게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고 책망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가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출 2:13-14)고 오히려 큰소리를 외쳤습니다. 이 말을 듣고 모세는 너무도 당황하여 황급히 자리를 피했지만 이 소문이 바로 왕에게 들어가서 그는 결국 바로의 칼을 피해 멀리 미디안으로 도망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미디안으로 쫓겨간 모세는 그곳의 제사장 이드로의 딸과 결혼하여 양을 키우는 목동이 되었습니다. 꿈과 패기가 만만했던 이집트의 왕자가 하루아침에 볼품없는 양지기로 전락해버린 것입니다. 그후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모세는 이 긴긴 40년의 세월을 무슨 생각을 하며 보내었을까요? 어느덧 모세의 나이 여든이 되어 이제 인생의 황혼 길에 접어들었을 때 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는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세의 생애를 보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세의 인생에 있어서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물론 여기에는 모세를 광야에서 훈련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모세는 이 미디안 광야 40년의 세월 동안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으로 다듬어지는 영적 훈련을 받게 되었고 또한 현실적으로는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걷게 될 광야생활의 적응훈련을 철저히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꿈과 야망으로 가득 찬 젊은 모세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경솔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의 지위와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던 모세의 불신앙을 보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이 지연된 것은 모세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각도를 달리하여 이스라엘의 모습을 살펴보면 그들 역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만한 준비가 안되어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시는 동기가 23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한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부르짖는 소리가 비로소 하나님께 상달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통으로 인해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전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상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만큼 간절하게 부르짖었어야 하고 또한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겸손한 부르짖음이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 속에서 더욱 낮아지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했습니다. 그랬더라면 하나님은 더욱 속히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매하고 고집이 센 백성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힘으로 견뎌보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늘을 향해 울부짖을 때 하나님께서 그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 때에 이미 선택을 받았다면 우리도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우리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 겸손하게 무릎꿇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겸손하게 부르짖을 때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때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한번 부르짖고 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가 하늘 보좌를 움직이기까지 간절하게, 지속적으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 하나님은 과연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2. 하나님은 떨기나무 같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모세가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고 있는데 호렙산 기슭의 한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그 떨기나무가 불에 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이상하게 여긴 모세가 그 광경을 보려고 가까이 가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떨기나무(thorn bush)는 아카시아류의 가시덤불로서 아무 쓸모가 없는 나무였습니다. 그래서 광야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습니다. 이런 나무 가운데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나무는 노예민족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430년이나 애굽에서 처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처량한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광야의 떨기나무처럼 그 누구도 도와줄 장수나 나라가 없는 노예민족 이스라엘은 버림받은 민족이었습니다.

 

더욱이 떨기나무에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뼈만 남은 앙상한 떨기나무에 설상가상으로 불꽃마저 타오르고 있으니 그 나무는 이제 곧 타 없어질 존재였습니다. 나무에 불이 붙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처참한 생활을 표현한 것입니다. 성경에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 가운데 불 시험이 있다고 했습니다. 불 시험은 인간으로서 이기기 어려운 시험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노예생활 역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런데 떨기나무에 불은 붙었는데 그것이 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광경이었습니다. 본래 떨기나무는 불만 붙으면 그냥 사르르 타 없어지는 법인데 이 나무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그 무서운 애굽의 억압 가운데서도 멸절되지 않고 살아남은 모습을 상징합니다. 성경은 오히려 그들이 더욱 번성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요? 그것은 곧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것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래 요셉이 총리대신이 되어 그 아버지 야곱과 그 자손들이 애굽에 올 때 그들은 70명밖에 안되었습니다. 역사가 진행되면서 애굽왕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민족에 동화시키려 하고 또 그것이 여의치 않자 남자아이는 다 살해하려는 정책까지 실천했는데도 그들은 살아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시대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AD 70년에 로마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지만 곧 진압을 당하고 그에 대한 보응으로써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국외로 추방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유랑생활이 근 2천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민족성과 신앙, 그리고 언어와 풍습까지 보존하였고 마침내 1948년 예전의 땅을 차지하여 독립국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실로 대단한 민족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보다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대단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고난을 주셔서 겸손하게 부르짖도록 하시면서 그들과 항상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어려운 처지, 눈물의 현장, 고통의 자리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시들지 않습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부르짖기만 하면 우리의 고통을 해결해 주십니다.

 

3.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발의 신을 벗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불꽃 속에서 모세를 두 번 부르시더니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5절)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밟고 있는 땅은 모세가 지금까지 양을 키우면서 다녔던 평범한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이 거룩한 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 이 세상 만물의 처음과 나중이 되십니다. 그는 이 세상, 아니 온 우주 삼라만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다른 신과 비교하거나 많은 신 가운데 하나로 아는 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타락과 사회의 부패는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날 때 인간은 태초에 지음 받은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상실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라고 고백했습니다. 죄인인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때 신비한 두려움에 싸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우리의 타락한 모습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한 사람은 겸손해집니다.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간구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거룩한 삶을 사모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더러운 죄악을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회개하지 않고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회개했다고 하면서도 더러운 생각과 악한 마음을 품고 사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이런 죄악의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이 더러운 신발을 신고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무속종교에서는 그 어떤 죄가 있어도 그것을 문제삼지 않습니다. 그저 열심히 빌기만 하면 복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전에 먼저 회개할 것을 가르칩니다. 마음속의 죄가 해결되지 않고는 그 어떤 기도도 결코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을 분명히 합니다. 회개는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통하여 죄사함을 주시고 그를 다시 거룩하게 해주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맑고 깨끗한 심령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모세가 발의 신을 벗었을 때 하나님은 그를 민족을 구원하는 지도자로 쓰셨습니다. 우리들도 깨끗한 마음과 양심으로 주님을 섬겨 하나님의 쓰임을 받아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오늘 그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지 않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우리의 어려움을 가지고 부르짖읍시다. 겸손하게 낮아져서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가 더러운 죄를 벗어버리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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