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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3:17-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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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임덕순 목사 |
참고 : | 2006-06-04 한가람교회 http://www.hankaram.or.kr/ |
출3:17-22
인도하시는 하나님
사람이 새 집을 짓고 나서는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쓸고 닦고 관리하기 때문에 집이 깨끗이 유지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는 가만히 계신 것이 아니라 당신이 창조하신 것을 지키고 유지하고 계십니다. 아마 만들어 놓기만 하고 그냥 놔두셨다면 이 우주는 이미 폐허가 되고 말 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다의 거대한 물을 항상 싱싱한 물이 되게 하기 위해서 물속에 염분을 넣어 두셔서 쉽게 썩지 않게 하셨고, 달에게 끄는 힘을 주어서 오늘도 바닷물을 하루에 두 번씩 휘젓게 하십니다. 이렇게 당신이 창조하신 것을 계속 유지시키고 간섭하시고 붙드시는 것을 섭리라고 합니다.
이 섭리는 구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노예가 되어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던 사람들을 구원하신 뒤에는 방치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보내어 그들을 날마다 간섭하시며 보호하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감당 못할 시험이 오면 미리 막아주시고,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헤맬 때는 분명히 가닥을 잡도록 도와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이 본문입니다.
1. 이스라엘의 출애굽 장면은 참으로 당당했습니다.
1) 군대같이 항로를 갖춘 모습이었습니다.
18절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올 때에...” 라는 말씀이 기록되었는데 항오를 지어 나왔다는 말은 질서 있게 열을 맞추어서 나왔다는 말입니다. 보통 어디서 탈출한다고 하면 질서도 방향도 없이 뒤죽박죽이 되어서 자기만 살려고 빠져나오느라고 아우성인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이스라엘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치 군대가 국군의 날에 행사를 하듯이 열을 맞추어 질서 있게 나왔다는 말입니다. 정말로 군대 같은 모습입니다. 출 12장 41절에 “사백 삼십년이 마치는 그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땅에서 나왔은즉” 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들은 과연 군대 같았습니다.
2) 요셉의 해골을 취하여 나왔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불러들여 번성할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해준 공로자 요셉은, 죽기 전에 유언하기를 우리 민족이 언젠가는 여기서 나가 하나님이 주신 고향땅 가나안으로 가게 될 터인데, 그때는 여기에 묻힌 내 유골을 메고나가라고 유언했었습니다. 창50: 24-25에 보면, "정녕 여호와께서 너희를 권고하사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하시리니 그때에 내 해골도 메어 올리라."고 하였고, 그들은 그렇게 하기로 약속한 바가 있었습니다.
요셉은 유산문제를 가지고 어떻게 나누어 가지라고 유언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유골을 메고 가나안으로 가라고 유언했습니다. 그 이유는 애굽은 너희 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너희가 사는 집이 있기는 하지만 여기는 너희 땅이 아니고, 너희가 가서 살아야 할 곳은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땅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유언이었습니다. 자기가 죽은 후에도 후손들이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살게 하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긴급히 해방을 받은 그 경황없는 시간에 요셉의 유언을 생각하고 요셉의 유골을 수습해서 관에 담아 메고 출발했습니다. 관을 메는 사람들에게는 자기 가족이 없었겠습니까? 가져가야할 살림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모세는 요셉의 관을 메어가게 하였고, 그들은 자기의 살림을 어깨에 메거나, 자식들의 손을 잡고 나간 것이 아니라 요셉의 유골을 메고 갔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 신앙의 길을 나설 때, 메고 나가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 살림걱정이 아닙니다. 우리의 경험이나 지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 제 땅 한 평도 없고, 제 집 한 채가 없지만 여러분은 땅도 있고 집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땅이 있고 집도 있을지라도 지금 우리가 보는 이 땅에 있는 재산이나 기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히 누리라고 주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일컬으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소망이요 재산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메고 가야만 하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출발하던 날, 그렇게 당당하게 출애굽 했습니다.
2. 하나님은 그들을 친히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탈출하기는 했지만 어떤 길로 가야할 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들이 애굽은 벗어났고, 가나안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막연히 알았지만, 어떤 길로 가야만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들이 가장 가기 쉬운 길은 흔히 카 라반이라고 하는 해변 가의 장사꾼들이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 길은 가나안으로 가는 지름길이었고 거의 유일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길로 인도하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쉽고 편하기는 하지만 길목을 지키는 불레셋 이라고 하는 강력한 적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런 사실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편하고 빠른 길로 인도하는 대신에, 힘들고 거친 광야길, 길을 잃어버리기 쉬운 길, 도대체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길도 없는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만약 해변 가의 길로 그들을 인도했더라면, 길목을 지키는 블레셋의 침략을 받을 것이고, 그러면 전쟁이라는 것은 처음 당해보는 그들이 두려워서 애굽으로 발길을 돌려 도망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노예 노릇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그렇게 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광야 길로 인도하고, 거기서 하나님을 체험시키려고 하셨습니다.
광야의 사정은 하나님이 다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되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을 광야에서 훈련시켜야만 했습니다. 그래야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속히 도착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준비하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훈련을 받을 장소인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들이 해야 하는 선택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편하고 넓은 길로 갈 것이냐, 아니면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한분 하나님을 의지하고 갈 것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남들이 다 가는 길, 뻔히 아는 길을 따라 갈 것인가, 아니면 그길로 가도 결국 내일은 모르는 일이니, 차라리 하나님 한분만을 따라 갈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은 구원받은 백성들을 어떤 식으로 인도하시는가를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순종하여 광야로 접어들자마자 자신을 상징하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기 시작하셨는데 밤에는 불기둥이 앞을 비취며 인도하기 때문에 길을 잃지 않았고, 낮에는 구름기둥이 인도하기 때문에 그늘로만 가면 되었습니다. 길은 없었지만 하나님이 아주 분명하게 인도하셨기 때문에 밤에는 불빛을 따라서, 낮에는 그늘 속으로만 가면 되었습니다.광야로 들어가기 전에는 두려웠지만 막상 들어가고 보니 하나님의 신기한 인도를 체험하는 행복하고 신기한 여행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백성들에게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하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책임한 선동이 아니라 그가 순종하여 따라 나설 때 어떻게 책임져 인도하실 것을 작정하시고 하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의지하고 세상 사람들이 다 가는 길로 가던 삶을 이제 접고 자신의 앞날을 전부 하나님께 맡기고 따라 나서기로 결심하고 나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결심이 있습니까?
3. 하나님은 그들의 체질을 아셨습니다.
그들은 군대처럼 열을 지어 애굽을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열을 지었다고 해서 다 싸움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싸움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사는 동안 전쟁이란 것을 몰랐습니다. 애굽 왕들은 전쟁이 나면 이스라엘이 적의 편에 가담할까 두려워서 그들의 손에는 전쟁무기를 주지 않았고, 노예처럼 일만 시켰고 박해만 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군대처럼 항오를 지어서 행진했지만, 실상은 노예의 무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이지, 무엇 하나 자기가 책임지고 해 본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만약 전쟁을 만나면 오합지졸이 되어 애굽으로 도망쳐 버릴 것을 하나님은 이미 다 아셨습니다.
17절에 보면,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예수를 믿기로 결심했을 때, 그 한 번의 결심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앞으로는 모든 것이 다 잘되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을 받기는 했고, 겉모습은 군대처럼 열을 맞추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노예 무리였던 것처럼, 우리가 주님 앞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우리 성품은 아직도 여전히 변화되지 않은 채, 자신도 원치 않으면서 남들이 가는 대로 따라서 살아온 노예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금만 시련이 닥쳐오면 마음이 흔들리며, “예수 믿으면 다 잘된다더니 이게 뭐야, 나 이제 예수 그만 믿을래” 하면서 떠나버릴 수 있는 연약한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체질을 아셨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치르면서라도 가나안으로 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그들이 불레셋 사람들과 싸울 힘이나 용기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불평이나 원망뿐이지 어떤 어려움이든지 뚫고 나갈 각오나 결심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그들은 크고 넓고 쉬운 길을 원했습니다. 아무 부담 없이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다가, 안 되면 되돌아오면 되는 그런 길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 그 길로 인도하실 리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빨리 가나안으로 데리고 가시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그들이 정말로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체력이 아니라 믿음이 강해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직접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하기에 가장 합당한 장소로는 아무 대책이 없는 광야가 제격이었습니다. 그리고 광야는 길도 없기 때문에 그들이 되돌아갈 길을 알 수 없는 광야가 제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해변 길로 가려는 것을 막으시고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위험을 미리 아셨고, 그들이 그길로 가지 못하도록 막으시며 친히 하나님을 체험하여 강한 믿음을 갖도록 훈련시키기 위하여 광야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가 있는지를 아십니까? 대부분은 모르고 지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지 않으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대신에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가지지 않는다고 해서 답답해하고, 자기가 가고 싶은 길로 가야만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면서 넘어지고,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자기를 힘들게 하신다고 생각해서 기쁨을 잃고 원망도 절망도 합니다.
해변 길로 가면 만나게 되는 블레셋은 이스라엘이 맞장 떠 볼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블레셋은 원래 크레타 섬에서 이주한 민족으로, 이미 스파르타 등으로부터 고도의 훈련을 받은 바 있었기 때문에, 이제 갖 해방된 이스라엘이 당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삼손 때까지 블레셋을 전혀 상대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무시무시한 적이 있습니다. 혈과 육이 아닌 영적인 세력인데, 하나님께도 대드는 사단입니다. 이 사단과 싸우려면 힘을 길러야 합니다. 말씀으로 자라야 합니다. 말씀을 순종하여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신다는 확고한 체험을 얻어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서는 제법 신자구실을 잘 한다고 하면서도 밖에 나가서는 전혀 신자구실을 못하고 신앙까지 잃어버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상태가 어떠하고 또 밖에서 기다리는 원수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모르고 하룻강아지처럼 덤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겨우 주일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면서 성경지식이 조금 있으면 믿음이 좋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러나 세상은 우리에게 결코 그런 문제를 내지 않습니다. 전혀 이해 할 수도 없고, 신앙을 지키고자 한다면 망하고 죽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될 그런 상황으로 몰고 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경책을 끼고 당당하게 교회로 걸어 들어가는 것으로 모든 것이 다 되었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네가 이 세상을 향하여 당당하게 나는 그리스도인이야, 라고 밝히기만 하면 모든 것이 겁을 먹고 네 앞을 비켜 줄 거야” 라고 말씀하신 적도 없습니다. 도리어 우는 사자같이 사단이 삼킬 자를 찾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권세 잡은 자라고 묘사된 사단은 그렇게 어리석거나 시시하지 않습니다. 사단은 가장 지혜롭고 효과적으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훈련을 받아야만 합니다. 훈련 없이는 결코 사단을 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런 훈련을 위하여 우리를 가보지 않은 길, 우리의 지식이나 경험이 아무 쓸데없는 길로 가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여 믿음의 힘을 기르라는 것입니다. 그 훈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 보는 순종의 체험입니다. 그 순종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체험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4. 하나님은 광야의 사정을 아셨습니다.
이들이 가는 광야는 사막입니다. 사막에는 특별한 사막기후가 있습니다. 낮에는 머리가 벗겨지도록 뜨겁고 밤에는 너무나 차갑습니다. 온도를 보관하고 유지할만한 숲이나 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풀 한포기 찾아보기 힘든 사막에는 낮과 밤의 기온차가 물과 숲이 있는 땅보다 훨씬 더 심각합니다.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광야가 그런 상황이라는 것을 아셨고, 그래서 하나님은 직접 도우시느라고 낮에는 구름기둥을 주어 시원하게 보호하며 가야할 방향도 알려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을 주어 따뜻하게 보호하실 뿐 아니라 불기둥이 있는 쪽을 향하여 가도록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불과 구름기둥을 그들이 광야 길을 걷는 40년 동안 하루도 쉼 없이 그들의 위에서 덮어 보호하고 앞에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길도 없는 광야로 걸어갔지만 길을 잃어버린 일이 없었고 열사에 해를 받은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들을 광야 길로 인도하신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이미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길을 인도하시기도 하지만, 그 길에서 만날 상황에 대한 준비까지도 미리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데 정말로 치밀하신 분이십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만 그들 곁에 두신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직접 그들의 위에서, 곁에서 함께 하시며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주밀하신 하나님, 구원받아야할 처지를 아시고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후에도 여전히 나약한 존재임을 아시고 그들의 길을 보호하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오늘 나와 함께 동행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믿음이요, 신앙생활이란 이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남들이 가지 않는 익숙하지 않은 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가는 삶을 말합니다.
롬8:14에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세상을 탈출하여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시작하는 신자의 삶에 성령을 보내어 인도를 시작하십니다. 광야에서 불기둥으로,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던 그 하나님은, 이제는 성령님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인도하십니다. 광야의 상황을 아시고, 이스라엘의 체질을 아시는 하나님이 당시에도 완벽하게 인도하셨듯이, 오늘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이 시대의 상황을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 개개인에게 맞는 맞춤형 인도를 해 주시기 위해서 각자에게 성령을 파송하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가라 하셔서 순종의 고난의 길을 가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모셔라 하셔서 없는 살림에 늙은 부모님을 모시고 고생하는 분이 있습니까? 스스로 자립할수 없는 형제를 책임지며 수고하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라 하셔서 구제헌금과 선교헌금을 드리기 위해서 돈 한번 넉넉히 써보지 못하며 힘들게 헌신하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이 이 길로 가라 하셔서 순종의 가는 사람들이 가는 길을 아시는데, 그가 그 순종의 길을 가다가 그 길에서 어떤 일을 만날 것인지와, 그것을 어떻게 도울지를 이미 다 아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영인 성령을 우리 안에 보내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깨우쳐 주시며 감동시켜 주시고, 상황을 당신이 직접 주관하여 우리를 철저하게 도와주십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순종하는 길을 가면서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어려움을 통해서는 "또 어떤 하나님의 인도를 체험 할 것인가" 하는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의 여행을 즐길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인생은 여행입니다. 미지의 장소를 찾아가 풍경을 감상하고 그곳 사람들이 사는 모습과 풍습을 보고, 그곳의 음식을 먹어보면서 즐기는 것이 여행입니다. 그러나 여행 자체가 좋은 것이긴 하지만 누구와 함께 여행하느냐 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여행을 하느니 차라리 안하는 게 낫습니다. 누구와 함께 하는 여행이 가장 즐겁고 신날까요? 여행 중에서 만날 모든 문제를 다 아시고, 또 그때마다 척척 해결해주실 창조주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여행이 아닐까요? 여행 중에 최고의 여행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여행입니다. 믿음으로 최고의 여행을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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