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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3:1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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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임덕순 목사 |
참고 : | 2005-08-07 한가람교회 http://www.hankaram.or.kr/ |
최고의 대화
본문은 하나님과 모세가 불붙는 떨기나무 앞에서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본문은 모세가 하나님께 두 번 질문하고, 하나님께서 두 번 대답해 주시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대화를 최고의 대화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이고, 하나님을 알게 되는 대화이고, 자기의 사명을 확인하는 대화이고, 미래를 논하는 대화기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대화는 사람과 나누는 대화보다 천 만배 중요할 수 밖에 없는데, 성도는 그 누구라도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것을 보이리라.” 는 약속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늘 대화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모세와 대화하시면서 당신이 누구신가를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 최고의 대화에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함께 찾아 보십시다.
1. 첫 번째 질문과 대답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어떻게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모세의 질문입니다. 너는 애굽에 가서 거기서 고생하는 내 백성을 이끌어 내라고 하시는 말씀에 “내가 누구라고 그렇게 큰일을 할 수 있느냐" 고 모세가 되묻는 말입니다.
그 질문에 하나님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대답 해 주셨습니다. 모세는 자기가 그 큰 일을 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함께 해 주겠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게 되는데,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과 함께하시는 분 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일을 시켜서 보낸 사람, 사명을 받은 사람들과 언제나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만나 어떤 명령을 하시고 어떤 일을 맡겼다면, 하나님이 그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내내 함께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책임을 일군에게 전가하는 분이 아닙니다. 당신이 명령했으면 일이 되게도 하시고 결과에 책임도 지시는 분입니다. 책임을 지시기 위해서 일을 하는 과정에 동참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말씀을 들을 때 담대하게 순종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사명도 받지 않고 저 혼자서 생각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명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명하신 일이라면, 하나님이 정녕 함께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불러 일을 맡길 때 마다 하신 말씀이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는 약속이었습니다. 모세에게, 여호수아에게, 기드온에게, 언제나 이 약속을 해 주셨고 실제로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은 사람은 처음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면서 우선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모세만 아니라 다윗도 사무엘도 여호수아도 처음에는 다 놀라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시자 그 사실을 알고는 이내 담대해졌고 결국 그 일을 감당해 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하는 사람과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함께 하실 뿐 아니라 그 일을 이루게 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일을 맡은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치고 그 일을 두려움 없이 맞이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안 다음에는 또한 모두 두려움을 내어버렸습니다. 처음 자기에게 하나님의 일이 맡겨졌을 때는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님의 종이고, 하나님을 안 다음에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종들의 특징인 것입니다.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라고 명령하셨을 때에도 너무 두려워서 그는 도피를 생각했고 결국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난 일은 사람이 도망친다고 해서 도망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일을 포기하시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바다에서 책망하고 다시 니느웨로 보내셨고, 요나는 사명 때문에 니느웨에 가서 외쳤습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그런데 하나님은 한쪽에서만 일하는 분이 아닙니다. 요나를 보내실 때 니느웨 안에서도 일을 준비 하셨습니다. 그는 하루를 다니며 마지못해 외쳤지만 요나가 외치자 반응은 즉각 나타났습니다. 온 백성이 통곡하며 회개했고, 왕은 온 국민에게 금식하며 회개하라고 선포했습니다. 이 사실은 요나에게만 사명을 주어 보내신 것이 아니라, 그가 와서 전하면 반응하도록 니느웨에서도 준비를 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지으신 분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분입니다. 세상을 만드신 분이고 세상을 관리하는 분이십니다. 시간을 만드신 분이고,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주관하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나에게 무엇을 명령하셨다면, 그것은 내가 순종해야만 하는 일이지만, 그 일은 나 혼자, 내 힘으로 해야 하고, 실패할 경우 내가 혼자 책임져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내 함께 하시며, 내가 일할 때 거기에 합당한 결과가 나오도록 저쪽에서 더 큰 일을 직접 진행하시며, 그 결과도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과 동행하시는 분이고 책임지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들이 이 사실을 알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침략해 왔을 때, 하나님은 기드온 이라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하시어 그에게 32000명의 군인 중에서 단 300명만을 데리고 싸우러 가게 하셨습니다. 적에 비하면 너무나 적은 숫자였지만 하나님은 그 숫자만 가지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두려운 기드온은 몰래 적진에 가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적들이 자다가 꾼 꿈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꿈을 꾼 병사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진에서 보리떡 한 덩이가 굴러오더니, 그것이 우리 진을 다 부숴버리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곁에서 듣던 병사가 하는 말이,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 기드온의 칼날을 의미하는 꿈이야, 하나님이 우리를 기드온의 손에 붙이신거야’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숨어서 그 이야기를 듣던 기드온은 힘이 났습니다. “아하, 하나님이 나에게만 300명만 데리고 가라 하신 것이 아니라, 적군의 마음을 이미 두려움으로 얼어붙게 만들어 놓으셨구나.” 하고는 용기가 나서 돌아가 그 밤에 진격을 했고, 기드온 군대의 기습나팔을 들은 적들은 허둥대다가 자기들끼리 쳐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명하시고 동행하시고 책임지시는 분입니다.
다니엘을 바벨론에 보내실 때에도, 다니엘을 돌봐주어서 바벨론에서 성공하게 하려고 사람을 준비시킨 뒤였고, 요셉을 애굽에 보내실 때에도 하나님은 현지에서 정지작업을 해 놓으신 뒤였습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요셉은 남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고 종으로 팔려가서도 그 나라의 정권을 쥐고 큰일을 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명하시는 분이고, 명령받은 자와 동행하시고 책임지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가람교회에는 어떤 사명을 주셨습니까? 한국교회가 사치와 명예다툼에 빠져 있으니까, 교회 본연의 자세로 돌아오게 하는 모범이 되라고 세우셨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오직 복음을 이웃과 온 세상에 전하는 일이고, 그 일을 위해서 교회는 딴 짓 할 여유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라고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정도 한분의 선교사를 책임지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벅찬 사명입니다. 그래서 왠지 불가능할 것 같기만 하고 자신감이 없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담대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사명을 주셨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만 그런 사명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일을 하는 과정에 늘 함께 계시고, 또한 저쪽, 우리가 달성해야 할 목표 쪽에서도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터널을 굴착할 때 양편에서 굴착하여 중간에서 딱 맞닥뜨려 개통이 되게 하시듯이, 우리에게 선한 목표를 주신 하나님은 저편에서 그 일들이 우리향하여 다가오도록 조치하시는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주신 명령에 의해 의로운 목표가 생겼다면 비록 그 일이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할지라도 염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절반이상을 하실것이고 우리는 순종하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선한 일을 명하시고, 그 일을 행하도록 조건을 조성하시며 동행하면서 책임져 이끄시고, 결과도 책임지시는 분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현실이 보이고 주님의 능력이 역사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2. 두 번째 질문과 대답
모세는 하나님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구원하라고 보내셨다. 라고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 하리이까?” 라고 질문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하나님은 두 가지로 대답하셨습니다.
첫째,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스스로 있는 자가 너를 보냈다 하라"
바위틈에 의지해 살아가는 못난 나무는 아무도 돌보지 않아도 자라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것에게 최소한의 흙과 물이 없으면 살지 못합니다. 식물은 물과 흙에 의존하여 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에 의존하여 존재하는 분이 아니고 스스로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의존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분은 영원히 존재 하실 수 있고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분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이 순간까지 이스라엘은 지난 430년 동안 하나님을 잊고 살아왔습니다. 처음에는 애굽의 금은보화가 마음을 빼앗아서 돈을 사모하며 살았고, 나중에는 애굽의 우상들을 섬기는 쾌락적 종교가 매력적이어서 하나님을 잊고 살아왔습니다. 애굽인들은 농업을 주로 했는데, 농산물의 소득을 많게 해주고 자식을 많이 낳게 해준다는 신을 섬겼습니다. 그들의 신전에는 창녀들이 사제로 있었고, 그들이 신을 섬기는 방법은 남녀 간의 음란한 행동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런 애굽인들과 어울려 그들의 신을 섬기는 동안 하나님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일도 없었고, 제물도 바친 일도 없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섬기는 조상신처럼 자손에게 제사를 얻어 잡숴야만 사는 신이었다면, 하나님은 굶어서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셨고, 도리어 배반한 그들을 구원할 계획을 세우고 계셨습니다.
거짓신은 인간의 섬김을 필요로 하지만, 참 신은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물질에 의해 생명이 유지되는 인간과 같지 않아서 그 누가 섬기지 않는다고 하여도 영향 받지 않고 영원히 자존하시며 도리어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밥과 공기와 물에 의존하는 존재이고, 그래서 환경의 영향을 받아서 늙고 병들고 죽으며 상황 따라 변합니다. 그래서 믿을만한 존재가 못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 가지가 섞인 물질이 아니라 순수한 영이시고, 순수한 존재는 변하지 않는 법이며, 변하지 않기에 믿을 만한 분입니다. 자존자이시고, 자존자이기에 불변하시며, 불변 하시기에 믿을 만 한 분이십니다.
"스스로 있는 자"에 대하여는 다음에 다시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둘째, “나를 너희에게 보낸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여호와는, 사람들이 영원히 기억하고 존경하며 부를 하나님의 대표이름입니다. 여호와란 이름 안에는 자존하시는 하나님, 인간을 불쌍히 여겨 구원을 약속하신 언약의 하나님, 약속대로 독생자를 보내주시고 구원하신 은혜의 하나님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그 이름 앞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덧붙이신 것은 무슨 뜻일까요?
1) 죄인을 선택하여 구원을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 즉 죄인중의 하나였습니다. 우상 숭배하는 부모 밑에 자라났으며, 그렇게 살아가던 보통사람, 즉 죄인 중의 하나가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어느 날 찾아오셔서 그를 불러서 위대한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에게 창대한 자손과 존귀한 이름과 후손 만대에 이를 구원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여러 세기가 지난 뒤에 아브라함의 후손 중 하나인 모세를 찾아오셔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했던 약속을 이루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란, 죄인들을 택하여 과분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너희는 지난 430년 동안, 애굽에서 너희를 번성케 해준 하나님을 잊어버렸지만, 너희는 거기서 나를 버리고 우상숭배에 몰두하여 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을 상실하였지만, 나는 너희 조상을 택하여 약속을 주었기 때문에 나의 약속을 지키겠다, 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택하여 불러 주시고 그에게 주신 약속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말씀은 너희가 악하고 부족할지라도 나를 믿고 따르기만 하면 구원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은혜요,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2) 순종하는 자에게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의 일생을 살펴보면 특별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선택을 받은 후, 생명을 걸고 따라나선 특별한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이삭에게는 그런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황량한 환경에서 굳세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개척한 사람도 아니고, 야곱처럼 복을 받아보려고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는 누구보다도 평안하고 부유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삭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그는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였는데, 아버지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삭 자신을 제물로 바치려고 모리아 산에서 결박하고 칼을 들이댈 때에도 순종하였던 사람이고, 자기 아내를 구하는 일에도 아버지가 데려다 준 사람과 결혼해서 평생 소리 없이 산 인물입니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바보 같은 사람이 이삭입니다. 그런데 그는 아브라함도 야곱도 맛보지 못한 평안과 부요를 한껏 누리고 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은 온갖 꾀를 내며 요령부리는 사람에게가 아니라, 무엇을 명하시던지 예, 하고 순종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평강을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애굽에서 고생하는 이스라엘을 구출하겠는데, 너희들의 판단을 믿고 내 말을 거역하지 않고 언제나 예 하고 순종만 하면, 옛날 이삭이 누렸던 것 같은 평안의 길로 인도 할텐데, 너희는 나를 순종하여 따르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모세의 인도를 순하게 따를 때는 언제나 예비하신 하나님의 인도를 맛보았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의 생수,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언제나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메마른 광야에 있었을지라도 그들이 순종하는 한,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언제나 평안이시고 부요가 되시며 승리가 되십니다. 그 평안 누리도록 순종을 배우고 연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제 뜻을 앞세워 거역하는 자에게는 고난으로 훈련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만들어 주신 환경을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그것을 바꾸어보려고 몸부림친 사람입니다. 그는 아버지 이삭과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진 인물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그렇게 살아갈수록 그에게는 고통이 연속되는 괴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쌍둥이로 태어나면서 형으로 태어나려고 몸부림쳤지만 동생이 되고 만 사람이고, 마음에 드는 여자를 아내로 맞으려고 7년을 머슴살이했지만 엉뚱한 여인과 첫날밤을 보내야 했고, 재산을 늘려보려고 온갖 연구를 다했지만 열 번이나 품삯을 떼었고, 가까스로 모은 재산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얍복강가에서 형에게 상납하고 털털이가 되고 만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순종으로 살려고 하지 않고 제 꾀로 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에게는 고난을 보내어 굴복시키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사실을 ‘나는 야곱의 하나님이다.’ 라는 말씀을 통해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만일 너희가 어설픈 자기 생각을 앞세워 내 말을 거부하고 딴 생각, 딴 짓을 한다면 고생에 빠질 것을 각오하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중에는 모세에게 순종하지 않고 반역하는 무리가 종종 일어나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된 것을 출애굽기와 민수기는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 것은,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고난을 주는 하나님, 그러나 결국 자신을 버리고 순종할 때 그에게도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일찍 자기를 포기하고 순종해야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4)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요 부활과 영생의 주신다는 뜻입니다.
마22:32에 보면, 사두개인들이 사람이 정말 부활하겠느냐는 의심을 가지고 주님께 와서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 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지금도 살아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때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다 죽은 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이 지금 천국에서 살아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옛날의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의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과거만 지배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에 이르도록 과정도 인도하셨고, 현재도 지배하면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고, 당신을 따르는 사람에게 영원히 당신 곁에서 살도록 부활과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시한부 인생을 사는 우리들, 죽음이 다가온다는 사실 때문에 두려움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의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나는 산자의 하나님이요 시간의 주인이다. 나와 동행하는 자는 누구나 오늘을 하나님과 함께 살아서 빛나는 승리자가 되고, 장래 부활하여 영원히 나와 함께 영생을 누릴 것이다.” 과연 하나님은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알아 낼 수 없는 분입니다. 우주를 만드신 분을 우주의 한 파편에도 못 미치는 인간의 지식과 연구로 알아 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이 선택하셔서 당신을 믿게 하신 사람들에게는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뜻을 알려주셨습니다. 알려주신 이유는 얄팍한 지식을 삼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그렇게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사람과 항상 함께하시며 책임지시는 하나님, 죄인을 택하여 당신백성 삼으시되, 순종하는 자에게 평안과 부요를 주시고 거역하는 자에겐 고난과 역경으로 훈련을 시키시는 하나님, 스스로 계시면서 역사와 시간을 주관하시고 믿는 자들에게 부활과 영생을 주시어 영원한 당신의 세계를 맛보게 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알고 믿고 하나님을 아는 자로서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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