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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티일기244】오늘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
신년산행으로 전라북도 경상북도 충청북도가 만나는 지점에 우뚝 솟은 삼도봉(三道峰1178m)에 올랐습니다. 전국에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 밖에 나가보니 6시 전후하여 약간의 눈발이 날렸습니다. 이 정도면 아주 멋진 설경(雪景)을 보는 황홀한 산행이 될 것 같았습니다.
청주의 김경배, 김성경을 청원 나들목에서 만나 최용우의 차로 합체하여 최좋은, 최밝은까지 모두 5명이 신나게 출발하니... 좀 일찍 일어났다고 다들 비몽사몽 꿈나라를 헤매네 그려. 나도 졸리는 것을 눈꺼풀을 손으로 뒤집어 까면서 황간나들목까지 오니 그때부터 퍼붓기 시작하는 눈.
미끄러운 눈길을 엉금엉금 기어 물한계곡까지 와서 아무데나 차 주차시켜놓고
9시46분부터 인증 사진한장 박고 바로 산에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새벽 4시에 올라갔는데 날씨가 흐려서 일출을 보지 못하고 내려오는 중이라네요.
쭉 뻗은 잣나무숲을 지나 민주지산 갈림길을 지나 그냥 떠먹고 싶은 물이 좔좔 흐르는 계곡도 건너고 푸른 잎을 자랑하는 조릿대가 눈속에서 삐쭉삐쭉 고개를 내밀고 있고 석간수가 오솔길로 흘러나와 눈을 녹입니다.
산토끼 발자국이 선명한 눈밭길을 기어올라 능선을 타니 그때부터 온 세상은 나니아의 세상입니다. 어디선가 얼음마녀가 나타나 달콤한 사탕으로 유혹할 것 같습니다. 사탕으로 넘어갈 것 같냐? 돈뭉탱이라면 모를까...
삼도봉의 눈꽃은 다른 산보다 약간 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상고대도 아니고 눈꽃도 아닌 그 중간형태의 더 화려하고 오밀조밀한 맛이 있었습니다. 하긴 아침이 다르고 저녁이 다르니 오늘,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보는 눈꽃은 이 순간이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눈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이 풍경은 오늘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인 셈이지요.
12시 45분에 드디어 3시간만에 삼도봉 정상에 도착 정상은 역시 찬바람이 부는 곳..
컵라면에 뜨거운 물 부어 먹으려던 계획은 취소하고 따끈한 커피 한잔타 마시고 바로 하산 시작!
내려오는 길은 여기저기서 비명소리인지, 환호소리인지, 좋아 죽겠다는 소리인지, 재미있어 살겠다는 소리인지 엉덩이 썰매를 타며 그렇게 정신없이 내려와 주차장에 도착하니 2시30분이라 올라가는 시간의 반 밖에 안 걸렸네요. 올라가기는 어려워도 떨어지기는 쉬운 법이라니까요.
추위에 꽁꽁 얼었던 몸이 차에 타고 따땃한 히터가 솔솔 나오니 다들 눈을 꿈뻑꿈뻑하더니 그냥 눈꺼풀을 붙여버리네요. 심지어 옆좌석에 앉은 목사님까지... 거의 김연아 선수가 피겨를 해도 될 만큼 빙판길을 사이드 브레이크 반쯤 올리고 시속 10km로 잔뜩 긴장하며 슬금슬금 슬금슬금 횡간나들목까지 1시간을 운전하여 나왔습니다. 아휴~ 살았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펄펄 김이 나는 우동을 사 먹어야 하는데 잠에 빠진 백성들이 도무지 깰 생각을 아니하여 다음 휴게소, 다음 휴게소 하며 올라오다 보니 그냥 집에 다 와버렸습니다. 내내 꿈속에서 롤러스코트를 타던 밝은이가 아빠 운전 대박이었다며 엄마에게 죄다 일러바칩니다.
운전석 옆에서 잔소리하는 사람 없다며 신나게 운전을 했더니 생각지 않은 스파이가 있어서 운전 잘 못했다고 마누라에게 엄청 깨졌네요. 연초부터 이게 뭐야. ⓒ최용우 20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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