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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3: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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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노경모 목사 |
참고 : | 2005-10-16 초대교회 http://www.chodai.org/ |
출3:1-12
비젼과 야망
출 3:1-12
(본문) “[1]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8]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9]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요즈음처럼 비젼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는 시대는 없는 것 같습니다. 비젼이라는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미래에 대한 구상'입니다. 그리고 야망이라는 말은 영어로 'ambition',그 의미는 '원해서는 안되는 일을 바라는 지나친 욕망, 또는 '분에 넘치는 큰 포부'입니다.
비젼과 야망이라는 말의 차이를 사전적인 의미로 설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서 그 차이이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비젼과 야망과 무엇이 다른가를 살펴 보면서 우리의 비젼을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우선, 비젼과 야망은 출처를 통해서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비젼은 하나님께로 온 것임에 반하여 '야망'은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요엘서 2:28의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는 말씀이 오순절 성령의 강림을 통해서 이루서 집니다. 여기는 젊은이가 보게 되는 '이상'을 모든 영어 성경은 '비젼'으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 비젼은 젊은이들이 자기 스스로 노력과 연구와 간절한 바램을 통해서 갖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임할 때 그 비젼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를 한 번 생각해 볼까요? 모세는 왕궁에서 학문과 무예를 연마하고, 모든 면에서 자신 만만한 젊은 40세에 그 민족을 구원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는 애굽 사람을 쳐죽이지만 그는 실패하고 도망가는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민족을 구하겠다는 생각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진정한 비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야망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뒤의 모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양을 치는 목자로 늙었습니다. 그의 머리는 백발이 날립니다. 그는 보잘 것 없는 80세의 촌부에 불과합니다.그 때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납시다.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바로 손에서 구원해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비젼입니다. 모세는 5번이나 이 하나님의 명령을 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에게 비젼을 주셨기에 모세는 결국 그 비젼을 받게 됩니다.
바울의 비젼, '이방인에 대한 복음 전파'의 비젼도 바울이 생각해 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습니다.(행 13:47)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하나님이 주신 비젼이었기에 바울은 이 비젼을 위해서 환란을 기쁘게 받았고 순교도 마다하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젼'은 전혀 내 생각과 상관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고, 바라던 것이 아닐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에 나의 비젼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야망을 마치 하나님이 주시는 비젼인양 선전하고 실현시키려고 갖은 노력과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지만 인간의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속지를 않으십니다.
또한 비젼과 야망은 실현 과정에서 차이가 있습니다.야먕은 내 자신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내가 이루려고 노력을 합니다. 물론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노만 빈센트 필의 '적극적인 사고방식'이란 책이 서점가를 휩쓸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마치 성공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교과서처럼 되어 버린 책이기도 했습니다.그 책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성공과 실패 여부는 나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적극적인 사고로 나아가면 성공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다.'는 논리가 도리어 모순을 낳게 되는 역작용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하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거짓말도 하게 됩니다. 눈가림의 속임수도 쓰게 됩니다.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불의한 일을 행하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인간의 연약성과 한계성을 간과하기 때문에 실현이 되지 않을 때에는 극심한 좌절감과 절망 속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아무리가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아도 인간의 연약성과 한계 때문에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자기의 학문과 지식과 권력과 배경과 애국심 등을 볼 때, 자기 민족을 구원할 것 같았지만 인간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광야로 도망을 가서 숨어서 양을 치는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모세는 광야생활에서 극심한 좌절감으로 생긴 우울증 때문에 상당 시간 고생을 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80세의 촌부에게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비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셨기에 모세의 능력과 환경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그 비젼을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요셉을 '꿈의 사람' '비젼의 사람'이라고 하지만, 요셉의 비젼은 전혀 자기의 의지와 소원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가 형들에 의해서 애굽에 팔려가서 노예 생활을 하고, 누명을 뒤집어 쓰고 감옥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생각과 환경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그 비젼을 이루셨습니다.
요셉은 그 형들에게 애굽을 다스리고 당신들이 내 앞에서 절을 하는 비젼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오, 그 비젼을 이루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창 45:5-6은 우리의 가슴을 뭉클케하는 말씀입니다.(창 45:5-8) “[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비젼이 무엇인지를 말합니다.'하나님의 당신들과 당신의 후손을 이 땅에 두시려고 나를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고 애굽 온땅의 치리자로 삼으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비젼을 어떻게 이루어셨는가를 말합니다.'당신들의 손을 통해서 애굽으로 팔려가서 노예 생활하고 감옥 생활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렇게 애굽의 치리자로 삼으셨다'고 말을 합니다.
비젼의 실현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젼을 받은 사람은 잠잠히 인내하며 충성하면 되는 것입니다. 요셉처럼 말입니다. 그러먄 하나님의 반드시 이루시고 맙니다.
마지막으로, 비젼과 야망은 결과 즉 열매에서 차이가 있습니다.야망은 안 이루어 질 수가 있습니다. 이루어져도 그것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마 7:22의 주님의 단호하신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는 이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 7:22-23)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나 하나님의 주신 비젼에는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빌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하나님이 시작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분은 중간에 포기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분은 실패하는 법도 없으십니다.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마 7: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열매로 압니다. 그러므로 무성한 잎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가 있는가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통찰력, insight가 필요합니다. 열매 없는 나무는 시간이 가면 반드시 그 본성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눌 우리는 연금술사처럼 기발하고 탁월한 아이디어와 테크닉이 비젼을 만드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 있어야 합니다. 즉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비젼이 내 속에서 싹트게 됩니다. 드러나게 됩니다.비젼은 프로그램으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비젼은 내 경험과 능력과 내 소유물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권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내가 할 수 있다는 신념하고 다릅니다.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라고 선포하고 의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간, 모든 것, 내 생각, 내 목표, 내 계획, 내 전략, 내 야망, 다 내려놓읍시다. 내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비웁시다. 그리고 성령님이 내 속에 오셔서 나를 채우소서.. 성령으로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간구하기를 바랍니다.그리하여 내가 갖고 있는 비젼이 하나님이 주신 진정한 비젼인가를 분별해내고,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비젼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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