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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3:1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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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주청환 목사 |
참고 : | 2006년 평택제일감리교회 http://www.pfmc.co.kr/ |
출3:14-19
믿음의 계단을 올라갑시다.
미국에 한 신학연구소에서 아주 이상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한 열가구 정도가 사는 동네인데 그 동네에 이른 아침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각 집집마다 대문에 가서 그 집 대문 앞에서 100달러짜리 지폐를 놓고 지나갑니다. 100달러 굉장히 큰 돈이에요. 아무 소리 안하고 그냥 100달러 짜리 지폐만 놓고 가니까 사람들이 반응이 아주 다양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돈을 들더니 “여보슈.” 불러요. 왜 이걸 놓고 가냐. 그랬더니 아무소리 안하고 지나가요. 또 어떤 사람은 보자마자 주위를 둘러보더니 얼른 집어서 주머니에 놓고 집에 쏙 들어갑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 돈을 보자마자 이것을 갖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하다가 그 사람을 향해서 ‘아 이사람이 아마 나를 도와주려는 모양이구나’ 하면서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사람이 있는데 그 다음날 아침에 또 같은 시간에 이 사람이 그 동네에 나타나서 또 각 집집마다 100달러짜리 지폐를 하나씩 놓고 갑니다. 또 나타나서 또 돈을 주고 가니까 사람이 그날도 이상했어요. 또 역시 처음처럼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도 있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얼른 주어서 집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셋째날 같은 시간에 또 이 사람이 돈을 넣고 갑니다. 이젠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었어요. 고맙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돈을 주니까 자연스럽게 그 돈을 집어서 주머니에 넣고, 얼굴 표정도 바뀌지 않고 가져갑니다.
그렇게 열흘쯤 되니까 이 사람들은 이제 아침에 100달러짜리 돈이 생길 것을 알고 있고 아마 어떤 부자가 우리를 매일 도와주는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돈을 받습니다. 20일쯤 지나니까 이제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어요. 기다리고 있다가 그 사람이 가까이 오면 손을 내밉니다. 그리고 돈을 주면 무표정하게 받아서 챙깁니다. 그렇게 29일 동안을 했어요. 그리고 실험의 마지막 날인 30일째 되는날. 이제 그 사람이 또 그 동네에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다 나와서 기다리고 있어요. 이 사람이 그 동네 첫 번째 집에 갑니다. 도착하니까 기다리던 사람이 얼른 손을 내밀어요. 그런데 이 날은 돈을 주지 않아요. 그냥 지나가요. 손을 내밀었던 사람이 ‘어..’ 하고 어이 없다는 듯이 쳐다봅니다. 두 번째 집으로 갑니다. 역시 거기서도 그 사람이 손을 내밉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주지 않고 그냥 지나가요. 그런데 거기 반응은 색달라요. ‘여보슈,’ 부르는거에요. 왜 돈을 안주고 가느냐 그런 얘기죠. 마치 내 돈을 맡겼는데 왜 내 돈을 안주냐 그런 얘기입니다. 그런데 그냥 지나갑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애걸복걸 하는 사람도 있어요. “오늘 100달러 없으면 내가 망신을 당하게 되는데 제발 오늘 한번만 더 주고 내일부터 안줘도 됩니다. 제발 좀 100달러 오늘 한번만 더..” 달라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애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동네 10사람 모두가 다 그동안 그 돈이 한 달 동안 생겼다는 것에 대해 감사했던 사람이 없었던거에요. 도대체 오늘은 왜 안 주는건지 그거에 대해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왜 안주냐고 오히려 따지는 사람이 있었을지언정 그 동안 준거에 대해서 감사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는 겁니다. 오늘 이 실험의 결과를 말씀드리는 것은 오늘 맥추감사절 이 아침은 하나님 앞에서 저와 여러분 혹시 실험에 참가했던 그 사람들의 모습처럼 우리도 그렇게 어느 사이엔가 감사를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지 않은지요. 맨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에 감사한 적도 있고 고마워한 적도 있는데 어느샌가 그만 거기에 길이 들어서 ‘다른 사람도 똑같이 사는건데 모..’ 열사람이 다 똑같이 하루에 100달러씩 생기는거니까 특별히 나만 감사할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은지요.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100달러를 주는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 놀라운 복과 축복을 주셨습니다. 100달러의 건강을 주셨습니다. 100달러 같은 행복을 주셨습니다. 100달러 같은 내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내 가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사랑하는 남편을 주셨고 아내를 주셨고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세월에는 처음에는 감사했던 이 조건들을 그만 감사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그냥 지나치지 않았나요.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남편이 세상에 있지 않을 때, 어느 날 갑자기 내가 건강을 잃어버렸을 때, 어느 날 갑자기 큰 문제거리를 만났을 때 그때서야 “도대체 하나님 왜 내게 이런일이 나타나는 겁니까. 왜 내 건강이 이렇게 문제가 생겼습니까.”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께 원망을 할찌언정 그동안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치 못하는, 어느새 감사를 잃어버린 우리가 아닌지요. 이 맥추감사주일 이 아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잃었던 감사를 회복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사이에 100달러 생기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였으면서, 어느새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 29일째 100달러 받은 은혜를, 그 감사를 잊어버리고 왜 안주느냐고 항의하고 따지는 그 모습. 그 어리석은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닌가요. ‘왜 내게 이런일이 생깁니까.. 하나님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합니까.’ 하면서 하나님을 향해서 혹 원망하지 않나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은혜를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하나 돌아보면서 이 맥추감사절 아침에 감사의 조건을 찾아볼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의 계단을 올라갑시다. 출애굽이 23장 14절. 오늘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믿음생활이 단계가 있어요. 믿음의 단계가 있는데 오늘 세 단계를 정하고 그 믿음의 세 계단을 올라서자하는 것이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스로 마음속에 나는 지금 믿음의 계단의 몇 번째 계단에 올라가있는지 스스로 평가하고 깨닫고 믿음의 계단을 올라서는 성숙한 성도가 되는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 번째, 억지로 하는 계단. 억지로 한다는 것은요 마음속에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시켜서 마지못해서 신앙 생활하는거에요. 내가 스스로 원해서 교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끌려서 억지로 교회 나오는 것. 안할 수 없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하는 것. 이게 다 억지로 하는 믿음의 단계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단계는 여기에 머물러 있지 않은지요. 저 아프리카 북부 지역에 흑인 한 사람이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 유월절 축제를 구경하러 갔습니다. 유월절에는 예루살렘에 각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엄청난 축제를 벌이거든요. 그래서 아프리카 북부지역에 사는 이 흑인도 유월절 날에 신기한 구경을 하려고 예루살렘에 간겁니다. 정말 갔더니 각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아주 진귀한 구경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이 흑인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진귀한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저쪽편에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몰려있어요. 그래서 달려가서 봤습니다. 보니까 그 가운데 어떤 사형수가 사형당하기 위하여 사형장에 끌려가고 있던 거에요. 허리에는 십자가 형틀을 지고서 로마군병이 채찍질하는 것을 맞으면서 골고다 사형장으로 걸어갑니다. 그것을 쳐다보면서 흑인이 ‘야,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길래 저렇게 고통을 당하면서 사형장으로 끌려갈까, 아마 엄청난 죄를 진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쓰러지고 가다가 쓰러지고 하는걸 보면서 이 흑인은 생각하기를 ‘저렇게 약한 사람이 저 무거운 십자가 형틀을 지고 가다가는 아마 얼마 못가서 못 일어날껄’ 하고 생각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조금 이따가 그 사람이 쓰러지더니 아무리 채찍을 맞아도 일어서질 못해요. 그러니까 로마군병이 난감해하면서 구경꾼들을 여기저기 둘러봅니다. 그러다가 이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바로 이 사람을 탁 보더니 쫓아와서 그 사람을 끄집어 냅니다. 그리고는 그 사형수의 십자가 형틀을 대신 지게하고 그리고 대신 끌고 가는거에요. 흑인이 소리를 칩니다. “나는 아무 죄가 없다. 나는 십자가를 질만한 죄를 진 사람이 아니다.” 나는 구경꾼이다. 그러면서 소리를 쳤어요. 아무리 싫다고 해도 칼과 창으로 위협하는데. 할 수 없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사형장까지 도착을 했어요. 우리가 잘 아는대로 그 사람 이름이 구레네 시몬이죠. 구레네 하는 것은 아프리카 북부지역에 있는 한 동네 입니다. 구레네라는 동네에서 온 시몬이라는 사람. 구레네 시몬은 구경하라 왔다가 그만 억지로 로마 군인에게 끌려가서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간 사람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억지로 십자가를 지었지만 시몬과 가정과 그 자손들이 얼마나 복을 받았는지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결론은 모냐. 억지로라도 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나 억지로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 낫다고 해서 억지로 하는 믿음의 단계 이 첫단계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억지로 교회 나오고 억지로 봉사하고 ‘집사기 때문에 속장이기 때문에 권사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장로인데.’ 억지로 했지만 그러나 안하는 것보다 낫지만 그러나 이 단계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믿음이 성숙할 수 없어요. 사실 예수믿는 사람 모두가 다 처음에는 누구나 다 첫 번째 단계, 억지로 하는 믿음의 단계를 거치는겁니다. 맨 처음에 예수 믿을 때는 아무 것도 모르고 또 억지로 끌려서 하기도 했잖아요. 안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만 그 믿음의 첫 번째 단계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단계에 오를 수가 없어요. 믿음의 계딴을 올라가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의 계단을 올라갑시다. 두 번째, 두려워서 하는 계단. 다른 말로 말하면 무서워서 하는 믿음의 단계에요. 물론 억지로 하는 믿음보다는 조금 나요.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신앙생활을 아주 열심히 하는 사람인데 그만 나태해지고 게을러졌어요. 그랬더니 이 사람이 말하기를 ‘아휴 내가 말이야 믿음생활을 게을리 했더니 요새 되는 일이 없어. 하는 일마다 꼬이고 사업이 왜 이렇게 힘든지 몰라. 내가 요새 새벽예배 안하고 게을렀더니 왜 그렇게 집안에 일이 많이 생기는지 몰라. 요새 내가 믿음생활 게을리 했더니 집안에 애가 갑자기 아프지 않나. 큰일났어. 내가 하나님께 더 큰 매를 맞기 전에 힘을 내야지.’ 하고 열심히 믿음생활 하는지 몰라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두 번째 계단에 머물러 있는지 몰라요. 물론 억지로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할 수 없이 억지로 하는 신앙생활보다는 한 단계 높은 신앙생활이에요. 이 사람은 적어도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니까요. 적어도 이 믿음의 단계 때에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에 적어도 이 두 번째 두려워서 하는 믿음의 단계는 자기의 잘못을 깨닫기도 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억지로 하는 단계보다는 한 단계 높은 단계지만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두 번째 무서워서 하는 믿음의 단계에서 오래 머물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한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들이 에돔 땅을 둘러행하려 했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민수기서 21장 4절의 말씀인데 무슨 얘기냐면. 에돔 광야를 지나가는데 그 애돔 광야는 다른 곳보다 길이 험했어요. 그 에돔 광야는 물이 거의 없어요. 물이 없으니까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어서 그곳에서 어떻게 버텨요. 보통 고통스러운게 아니에요. 그리고 곡식을 재배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양식이 떨어집니다. 할 수 없이 몰고 다니던 가축을 잡아먹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죠. 참고 참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디어 한,두사람 모세를 향하여 막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원망하는거에요. ‘이놈의 모세야 차라리 우리를 애굽 땅에 그냥 두지 왜 우리를 끄집어내서 이 광야에서 굶어죽게 하느냐.’ 모세를 향해서 막 원망을 하던 저들이 급기야 이번에는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원래 원망과 불평은 처음에는 교인들끼리 원망,불평하죠. 그러다가 교회로 옮겨갑니다. 그 다음에는 목사님을 향해서 원망합니다. 그러나가 결국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원망하는거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꼭 그 모습을 닮아갔어요. 하나님께서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아주 괴씸해하셨습니다. 그래서 불뱀때를 저들에게 내립니다. 하루아침에 엄청난 불뱀 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달려들었어요. 닥치는대로 물어요. 이 불뱀이 왜 불뱀이냐면 불뱀에게 한번 물리면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퉁퉁 부어요. 그러면서 온몸이 뜨거워지는데 얼마나 뜨거운지 불에 댄것처럼. 물을 갖다가 벌컥 마시면 마실 때는 괜찮은데 입에서 물을 때자마자 다시 온 몸이 화끈화끈해요. 그래서 불뱀이에요. 이 불뱀에 물려서 도처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사람이 죽어가기 시작해요. 그때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구나.’ 하는걸 깨달아요. 그리고 모세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죠. “모세여 우리가 당신과 하나님께 범죄하였으니 이제 모세여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사 이 불뱀 때를 없애주옵소서.”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저들에게서 불뱀 때를 쫓아내고 놋으로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높이 달아 모세가 시킨대로 합니다. 백성들이 장대 위에 걸린 놋뱀을 보는 자마자 다 살았다고 했어요. 이게 민수기 21장 말씀인데 이 사건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요? 죄를 지려고 하다가 ‘어이쿠 안되지. 하나님께 큰일나..’ 하나님을 무서운 하나님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죄를 지으면 벌을 주는 하나님. 하나님 하면 무서운 하나님. 믿음생활하면서도 두려워서 혼날까봐, 벌 받을까봐 두려워서 하는 믿음생활. 여기에서 벗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이 두 번째 단계에 머물러 있는지 몰라요.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0장 9절에 보면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서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라.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당한 우리의 경계로 기록되었느니라.’ 오늘 맥추감사주일인 오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무서워서 벌받을까봐 그래서 할 수 없이 믿음 생활하는 그런 단계가 아니라 하나님은 벌주시는 무서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이신 줄을 믿습니다. 그 단계에서 벗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감사의 계단.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았습니다. 내가 예수님께 날 지옥에서 구원해달라고 예수님께 때를 쓴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알기도 전에 내가 깨닫기도 전에 주님께서는 나의 수많은 죄를 위해서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몸을 찢으시며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죽으시고 우리를 사망의 권세 지옥에서 구원받아 저 하늘나라 천국에 하늘나라 백성이 된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그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해서, 감사해서 하는 신앙생활. 이것이 바로 믿음의 세 번째 단계입니다. 오늘 그 감사가 회복되는 맥추감사주일 이 아침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도 감사해서 예배해야되요. 우리가 하나님께 봉사할 때도 감사해서 봉사해야되요. 우리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도 감사해서 예물을 드려야 해요. 그게 바로 감사의 계단입니다. 오늘 록펠러에 대한 얘기를 드리면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록펠러. 세계적인 거부죠. 그런데 록펠러 저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나는 처음 교회에 간 나는 그 날 목사님의 설교가 십일조에 대한 설교였는데 감동을 받고 내가 주급 6달러에서 60센트를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림으로 오늘날 내가 100만달러 이상의 십일조를 매주일 받칠 수가 있게 됐다.’ 그렇게 고백합니다. 그 내용은 이런거에요. 록펠러는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공부할 엄두도 안 났어요. 학교는 근처도 가보지 못합니다. 그 록펠러가 어느 날 처음으로 교회 간 날인데 하필 그날 목사님 설교가 십일조에 관한 설교였어요. 왠만한 다른 사람들 같으면 십일조에 관한 설교를 들을 때 믿음이 없으니까 다들 시험에 듭니다. ‘야 교회 갔더니 목사가 돈 내라고 하더라.’ 대부분의 사람이 시험에 들만한데 록펠러는 달랐어요. 목사님이 십일조에 대해서 모라고 설명했느냐면 ‘십일조란 축복의 씨앗인데 씨앗을 심지 않으면 어떻게 추수를 할 수 있느냐. 십일조라는 축복의 씨앗을 하늘나라 농장에 심어라. 그게 바로 십일조를 드리는거다. 그러면 엄청난 복을 수확하게 될거다.’ 그런 요지의 십일조 설교였어요. 그 설교를 들으면서 록펠러는 ‘나같이 가난한 사람도 십일조를 심으면 이것이 엄청난 축복을 거두게 되는 씨앗이 된단 말인가. 그러면 내가 십일조 씨앗을 심어야겠다.’ 그러면서 그는 그날부터 아주 열심히 십일조를 드립니다. 그리고 아주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근면성실하게 살아요. 점점 돈이 모여졌어요. 꽤 많은 재산을 모았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와서 그런 얘기를 합니다. “금광업을 하면 큰 돈을 벌수가 있다. 마치 좋은 금광이 나왔는데 사지 않겠느냐.” 그 친구가 제안하는데 금광 가서 보니까 엄청난 사람들이 가서 일하고 있는 큰 금광이에요. 그런데 그 금광을 내놨다는거에요. 그래서 자기 재산 전부를 털어서 은행에 돈을 빌리기도 해서 금광을 인수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까 사기를 당한거에요. 왜냐하면 이제는 금을 다 캐내고 더 이상 캐낼 금이 없는 금광인데 속이고 내놓은겁니다.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거에요. 은행에 엄청난 빚을 진대다가 광부들이 받지 못한 밀린 임금을 달라고 엄청나게 와서 괴롭힙니다. 은행에서 괴롭히죠 광부들이 괴롭히죠. 견딜 수가 없어요. 그리고 자기는 평생 모은 재산을 다 날려버렸잖아요. 살길이 없어요. 차라리 죽는게 훨씬 낫어요. 그리고 죽기를 결심합니다. 자살을 하려고 광산 갱도 속 깊이 들어가서 갱도 한 모퉁이에서 자살을 하려고 하다가 그래도 평생 예수 믿던 사람이라 기도할 생각이 갑자기 났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그 기도는 입에서 이런 기도가 터져나온거에요. ‘하나님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겁니까.’ 왜냐하면 록펠러 자기 스스로 생각해도 처음 교회 나간 날부터 정말 열심히 십일조 띄고 처음 교회 나갔을 때부터 열심히 신앙생활 잘했거든요. 정말 열심히 잘했는데 이게 무슨 꼴이에요. 하나님께 입을 열자마자 하나님께 따지듯이 원망하는거에요. ‘하나님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겁니까.’ 막 따지고 원망하다가 갑자기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났냐면 ‘원망과 불평은 마귀를 부른다.’ 그런 생각이 난거에요. 그리고 ‘감사와 찬송을 하늘의 축복을 불러온다’는 그 말씀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그 순간에도 록펠러는 감사할 기도의 조건을 찾아보자고 생각했어요. 아니 세상에 완전히 쫄딱 망하고 빚을 앉고 있고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는데 무슨 감사할 조건이 있겠어요. 그런데 감사할 생각을 하니까 정말 감사한 것이 있더라는거에요. 왜냐하면 자기는 가난한 가난뱅이 집에서 태어나서 평생 한이 되는게 이 가난뱅이를 탈출해서 부자가 되보는게 소원이었는데 그런데 하나님께 내게 가난을 탈출하고 금광업자 사장이 되게까지 했으니 그게 감사하다는거에요. 그래서 그걸 감사하다 보니까 하나둘 지나간 날들 동안 100달러짜리 지폐를 받았던 마을 사람들이 29일 동안 받았던 걸 감사를 잃어버리고 산 것처럼 가만히 돌아보니까 하나하나 감사했던 일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더라는거에요. 하나둘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하나님께 따질 때는 그 마음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하고 괴로웠는데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하니까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기 시작했다는거에요. 그래서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뜨고 보니까 그 앞에 굴착기가 있어요. ‘이거 작동이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 생각 없이 작동 버튼을 눌렀더니 작동이 되요.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광부들이 파던 자리를 파봅니다. 그런데 몇 번 파다가 갑자기 펑하고 금광이 터진게 하니라 석유광산이 터진 줄로 믿습니다. 록펠러 자서전에 보면 금광을 인수해서 큰 돈을 벌려고 했던 저가 쫄딱 망할뻔했는데 그런데 금광이 아니라 석유광산이 터지는 바람에 엄청난 부자의 길로 들어서는 첫 번째 시작이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가 마지막 자살하기 직전에 원망하기 딱 맞고 불평해도 딱 맞을 그 시간에 록펠러는 위대한 사람이었어요. 거기서도 목사님의 설교를 기억하고 감사할 조건을 찾아갔다는겁니다. 그리고 감사하기 시작하니까 그 마음에 답답함과 원망과 짜증이 물러나고 편안함을 주면서 편안한 마음에 굴착기를 작동시켜 본거에요. 그것이 석유광산을 발견하게 된 엄청난 축복으로 연결된 줄로 믿습니다. 감사는 하늘의 축복을 가져오는 열쇠를 가져올 줄로 믿습니다. 믿음의 계단 세가지 중에 제일 높은 계단은 바로 감사의 계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맥추감사주일 이 아침에 감사가 회복되는 감사의 성도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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