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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4:2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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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임덕순 목사 |
참고 : | 2005-09-25 한가람교회 http://www.hankaram.or.kr/ |
아론의 영접을 받는 모세
여러 차례의 핑계를 거듭하던 모세는 결국 하나님의 설득에 순종하여 애굽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애굽으로 가던 길에 하룻밤을 길에서 노숙하는 중, 아들 게르솜에게 할례를 행하지 아니한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시자, 모세의 아내가 신속히 차돌을 취하여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여 모세는 위기를 모면합니다. 그리고 그 날 모세는 아내와 아이들을 처가로 돌려보내고 새로운 각오로 하나님이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인간적인 생각, 육체적 자아를 죽이고 그리스도와 피로 연합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셨으며, 누구든지 자아가 죽지 않고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임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 함께 자아를 죽이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영의 사람으로 부활해야만,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이며, 그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그의 육체와 함께 그의 정과 육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고집, 자존심, 자기체면, 자기의 유익추구, 자기 보호본능을 죽이지 못하면 교회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만이 주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자기가 제일이라며 자기를 알아주지 않고 자기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고 다른 길을 가고, 누구에게 상처받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자기는 아직도 할례를 받지 못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고 광고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할례 사건으로 자기의 육신을 죽이는 일을 다시 생각하게 하신 후에 모세를 그의 일터로 보내셨습니다. 사람은 있어야 할 곳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각기 그 사람의 자리와 그 사람의 일터로 보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나에게는 니느웨로 가라 하셨고, 아브라함에게는 가나안으로 가라 하셨으며, 모세에게는 고난 받는 백성들이 있는 애굽으로 가라 하셨습니다. 그곳이 그들이 있어야할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이 있어야 할 곳에 있습니까? 지금 하는 일에서 보람을 얻고 있고, 하나님께 충성하고 있다는 확신을 얻고 있습니까?
모세가 애굽으로 가고 있을 때, 하나님은 모세가 도착하기 훨씬 전에 애굽에서 모든 일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아론에게 모세를 마중하도록 하신 일이 그 구체적 사건입니다. 그들이 만난 곳은 하나님의 산(3:1) 이라고 하는 호렙산 이었습니다. 애굽에서 가나안 까지는 걸어서 1주일쯤 걸립니다. 그런데 호렙산은 그 길 중간의 시나이 반도에 있는 산입니다. 시나이반도는 가나안에서는 곧바로 올수 있지만, 애굽에서는 삥 돌아서 와야 하는 관계로 가나안에서보다 더 멉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출발하기 전에 아론이 먼저 출발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시기 전에 하나님은 아론에게 먼저 모세를 맞으러 나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는, 같은 날 출발하여 중간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두 형제가 중간지점에서 딱 만날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모세가 핑계를 앞세워 순종을 주저하고 있을 때, 그가 결국은 순종할 것을 미리 아시고, 애굽에 살고 있던 아론에게 명을 내려 동생을 만나려고 먼저 출발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모세에게는 애굽으로 가라 하셨고, 아론에게는 네 동생 모세가 오니 너는 어서 마중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일 하시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얼마나 치밀하고 완벽하십니까?
우리가 그분의 자녀로서 그 아버지를 믿는 한, 걱정할 것이 없고, 그분이 명하셔서 그의 종으로 일을 하는 한,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요, 섭리자라는 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만사를 섭리하시는 만왕의 왕이시다 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 하십니까?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앉아서,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문제가 터질 때마다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대통령 짓 못해먹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그런 사람 정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보다 조금은 낫고, 그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에게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셨습니까?
세상의 창조주이시고 역사의 주관자이신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천지만물을 말씀 한마디로 움직이시고, 사람과 사건과 역사를 전체로 파악하시며, 통제하십니다.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고, 이쪽과 저쪽을 주관하시며, 피해자와 가해자, 가는 자와 마중 오는 자, 원고와 피고, 청하는 자와 따라가는 자 모든 편의 마음과 행동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볼까요?
사도행전 10장에는 예루살렘교회 중심인물인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를 찾아가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 사건은 이방인과 유대인의 장벽을 한꺼번에 허물어 버린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날, 하나님은 가이사랴의 고넬료에게는 욥바의 베드로를 청하라고 명하시어 베드로를 초청하고 친지를 다 모으고 준비하게 하시고, 욥바의 베드로에게는 세 번 네 번씩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너희가 상종하지 않던 이방인에게로 가라고 강권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중간에 역사하시는데 고넬료와 베드로가 만나러 가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베드로가 아무리 고지식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방인을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막겠느냐.”고 그날의 사건이 성령에 의한 불가항력적 사건이었음을 고백했습니다. 아무리 무식한 이방인 고넬료라 할지라도 성령이 임하시고 감동시키시는데 성령 받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고넬료의 집에 모였던 모든 이방인이 오순절의 성령 충만과 같은 역사를 다 체험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 모든 사건을 주관하십니다. 장사하는 사람과 손님의 마음을 주관하십니다. 회사의 사장과 직원의 마음을 주관하십니다. 여러분이 장사를 하든 직장생활을 하든 간에 하나님을 염두에 두십시오. 고객과 주인, 직원과 사장의 마음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 상대의 마음도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진실하라고 명령하셨는데,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하면, 장사를 한다면 고객에게 여러분의 가게로 갈 마음을 주시는 분입니다. 직장인이라면, 사장에게 여러분을 알아주는 마음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상대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주님은 예루살렘교회의 사도들에게 만방에 나가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파한단 말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명령하셨으면,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하실 리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시 교회를 그렇게 핍박하고 사도들을 그렇게 괴롭히던 사울이라는 사람을 거꾸러뜨려서 교회로 들여보내셨는데, 그 사람은 당시에 가장 유능한 율법학자요 최고의 지식인으로서 말과 글에서 당할 자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울을 당신의 사람으로 삼아버리시고 교회에 들여보내어 주님이 명하신 그 일을 앞장서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알고 보니 사도들에게 명령 하시기 훨씬 전에, 만세전에 그를 택정하셨고, 때가 되어 그를 불러 쓰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무리하게 보이는 일인 것 같아도, 하나님이 하라 하시면 틀림없이 대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틀림없습니다. 그것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오던 날,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400명의 군사를 데리고 마주 온다는 정보를 듣고는, 얍복 강가에서 밤을 새워 하나님께 매달려서 간구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하시며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만을 위로하고 만 것이 아니었습니다. 동생에게 장자의 명분을 빼앗기고 아버지의 축복도 빼앗겨서 내가 지금껏 이렇게 고생만 했다고 생각하여 야곱에게 원한을 품고 달려오던 형 에서의 마음도 하나님이 그 밤에 녹여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그 두 형제가 만나게 되었을 때 어떤 광경이 벌어졌는지 아십니까? 형과 동생의 혈투가 벌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형 에서가 눈에 눈물을 가득히 담고 동생 야곱을 향해 달려와서 와락 끌어안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고 서로 화해하고 동생 야곱의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이쪽에서도 일하시고 저쪽에서도 일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일이 생각지 않은 방향에서 풀어지게 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내가 할일은 다 했는데 어떻게 될런지 몰라서 불안하십니까? 내가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일했다면, 저 쪽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난 월요일에 중국 북경에서 북핵문제로 모였던 6자회담이 타결되었고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는데,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사찰을 받겠으며,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으며, 적당한 시기에 북한에 경수로를 가질 수 있는 권리를 주겠고, 남한은 북한에 200만 Kw의 전기를 공급해준다는 내용이 핵심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한 타결이 된 것 같았고, 한국은 우리 외교의 승리라고 자랑했습니다. 저는 뭔가 의심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 다음날, 단 하루도 못가서 북한이 성명을 발표했는데, ‘우리가 먼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경수로를 지어주기 전까지는 핵을 포기 못하며, 사찰도 받지 않겠다.’ 는 내용이었습니다. 미국은 버럭 화를 냈고, 한국은 우리가 조정할 수 있다고 여유를 부렸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전 세계가 들어붙어도 북한 핵 하나를 풀지 못합니다. 회담장에서는 이 말하고 돌아가서는 저 말하는 사람들을 제압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면 아주 쉽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시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그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상황을 조정하시고 환경을 만드시며 마음을 바꾸어 내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일은 어떤 환경에서도 꼭 성공합니다.
하나님은 어느날 아브라함에게, 네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의 한 산으로 데리고 가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명령하신 하나님은 가만히 지켜만 보실 분이실까요? 아니지요? 그럴 분이 아니지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순종하려고 찾아올 모리아 그곳의 한 산, 아브라함이 단을 쌓고 아들을 바칠 그 산위에 먼저 가셔서, 그 산에 뛰노는 산양 한 마리를 잡아 대기시켜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순종하러 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도착해서 단을 쌓고 자기 아들을 결박해서 단위에 올려놓고 막 칼을 들어 아들을 치려는 그 순간, 하나님이 가로막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을 이제 알겠다. 네 아들에게 아무 짓도 하지 말라.” 그래서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보다가 뿔이 수풀에 얽혀 있는 산양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양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치밀성에 놀라면서 “여호와이레” 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은 명령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명령을 순종하는 자를 위하여 미리 다 준비해 두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준비해주신 그 양으로 제사를 드리고 아들과 함께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이야기하며 내려왔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에 독자라도 바칠 수 있는 그런 순종을 한다면 그 다음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빌립에게 이스라엘에서 가사로 가는 광야 길로 가서 전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평소에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입니다. 그렇지만 성령충만한 빌립집사는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니 분명 순종하면 뭔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그 광야 길로 갔는데, 그 길에는 마침 에디오피아의 재무장관이 마치를 타고 가면서 성경을 읽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사야서를 읽고는 있었지만 내용을 알 수가 없는지라, 궁금해 하면서 해석해줄 사람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빌립이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당신이 읽으시는 그 말씀이 이해되십니까?” “아니요, 도무지 뜻을 알 수가 없어요, 당신이 알면 이리로 올라와서 좀 가르쳐주세요.” 그래서 빌립은 마음이 활짝 열려 있는 에디오피아 재무장관에게 아주 쉽게 전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무책임하게 우리에게만 전도하라고 명령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가 철저하게 순종할 때, 전도를 받을 사람도 예비 시켜 놓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옳고, 그분의 명령은 대책 있는 명령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믿는 방법이고, 그분이 하시는일에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리 불가능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하라 하셨다면, 그것은 그렇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양편에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명령하신 하나님은 그 일을 직접 주관하고 계시며, 내 손에 닿지 않는 쪽에서도 그 일을 도와줄 사람도 준비시켜 놓으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모세보다 아론을 더 먼저 출발하게 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것보다 더 먼저, 더 많은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것 하나만을 요구하셨지만, 당신은 천수백년 전부터 독생자를 보낼 것을 준비하셨고, 그를 사람의 몸을 입혀 이 땅에 보내셨고, 우리대신 십자가를 지게 하셨고, 그를 부활시켜 우리의 소망이 되게 하셨으며, 오늘 우리의 삶과 사역을 성령으로 날마다 돕고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고맙게 여기고 달게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일의 백배도 더 많은 일을 이루십니다.
이 위대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헌신합시다.
모세와 아론이 드디어 만났습니다. 헤어진 지 40년 만의 상봉입니다.
그것도 생사를 전혀 모른 채, 소식이 완전히 두절된 채 완전히 격리되어 살다가 하나님의 인도로 신기하게 길에서 만난 것입니다. 얼마나 반가운 혈육의 상봉 이었겠습니까?
더구나 이들의 만남은 형제의 만남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명하신일을 위하여 앞으로 생사를 같이 해야 할 동지의 만남입니다.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입 맞추고는, 모세가 하나님께서 부탁하신 일과 위탁하신 이적을 아론에게 다 말하고 보여줍니다. 여기서부터 이들은 형제를 뛰어넘어 이스라엘의 해방과 인도라는 한 목표를 위하여 생사를 같이할 공동운명체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교회안에서의 만난 성도들의 만남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 하나님 아버지의 자식으로서 만났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함께 전하고 함께 천국의 영광에 참여할 동지로 만났습니다. 잘났다고 튀지 말고, 못났다고 자학하지 말고, 삐지지 말고, 오해하지 말고, 편 가르지 맙시다.
우리가 누구인가를 생각합시다. 우리는 같은 하나님의 자식이고, 똑같이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함께 복음전할 사명을 가진 동지요 고난과 영광에 함께 참여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고후 1:7에,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고 하였고, 벧전 4:13에는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라고 하셨습니다. 서로가 형제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사랑으로 품읍시다. 사랑으로 먼저 섬깁시다.
모세와 아론이 함께 애굽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 장로들을 모으고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려 하신다는 말씀과, 앞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정을 알려주었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이적을 백성들 앞에서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었고 모세를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들을 버리지 않고 감찰하셨다면서 머리를 숙여 경배하였습니다.
미디안에서 모세는 하나님 앞에 뭐라고 핑계했었습니까? 자기가 애굽에 가도 이스라엘 백성들조차 자기를 믿지 않을 것이라고 우기며 순종하지 못하고 망설였는데, 와 보니 하나님의 말씀하시던 대로 그들이 믿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잘 아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더 잘 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자기 생각을 믿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먼저 오래 전부터 준비하셨고, 당신의 준비가 거의 다 된 시점에서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분의 명령만 따르면 됩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줄 알고 내 생각, 내 판단, 내 혈기를 동원하는 순간 여지없이 실패하게 되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순종하면 일이 이뤄집니다.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겁 없이 순종하는 성도 됩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주 자주, 그리고 아주 많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번 기회에 기도를 명하셨고, 기도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눅 11:9에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고전 14:1에는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하셨고,
골 4:3에서는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고 하셨으며,
약 1:5에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의 공통점은 명령이면서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이쪽에서 우리에게 이것을 하라 하시고 저쪽에서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당신이 철저하게 일을 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압니다.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이 당신은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리 없습니다. 기도하라 하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명령에 함께 순종합시다.
하나님께서 저쪽에서 틀림없이 만들고 계시는 응답을 기대하며 기도합시다. 그래서 함께 주의 일을 이루어갑시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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