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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거절

출애굽기 이성희 목사............... 조회 수 1865 추천 수 0 2013.01.08 19:3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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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4:10-17 
설교자 : 이성희 목사 
참고 : 2002년 05월 19일 연동교회 http://www.ydpc.org 

출4:10-17, 고전1장26-29

모세의 거절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 중인 스즈키 이치로(28)가 작년에 '국민 영예상'을 고사했습니다. 이치로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관방장관에게 "국민 영예상은 최고의 상이며 역대 수상자는 훌륭한 인물뿐이었다. 야구 인생이 끝난 상태에서 상을 준다면 고맙겠지만 아직 나이가 젊다"며 수상을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겸손도 역시 MVP 감입니다.

 

사람에게는 필요한 거절이 있고, 불필요한 거절이 있습니다. 거절은 겸손일 수도 있지만, 교만일 수도 있습니다. 토마스 머턴은 '고독 속의 명상'에서 "교만과 겸손은 둘 다 내적인 침묵을 찾는다. 교만은 조작된 부동성으로 하나님의 침묵을 흉내내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은 순수한 생명의 완성인 반면 교만의 침묵은 죽음의 침묵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교만은 겸손과 닮은꼴이지만 끝내는 죽음입니다.

 

모세의 네 번째 거절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다시 가서 백성을 구하라는 명령에 다시 사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론을 세워 해결하십니다. "아론과 함께 가라, 내가 함께 할 것이다"는 것이 하나님의 해법이었습니다.

모세의 거절은 입으로의 거절이 아니라 진심의 거절이었습니다. 모세는 "오, 주여"(아도나이)라고 합니다. "오, 주여"라는 그의 절규는 그의 사퇴가 감정적인 순간적인 느낌이 아니라 진심이었던 것을 의미합니다. 모세의 겸손한 인격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는 정말 자신은 갈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네 번째 거절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첫째, 나는 말을 못합니다.

 

이 말은 "말의 사람이 아닙니다"라는 뜻입니다. 나는 졸변입니다라는 말입니다. 입이 뻣뻣하다고 한 것으로 보아 언어장애가 있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단순히 말을 잘 하는 은사를 받지 못했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라는 말을 보아서 이전에도 졸변이었지만 지금까지 하나님과 대화하고 있지만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도 졸변이었습니다. 능력 받은 후에도 여전히 졸변일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장수하고 글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단명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말도 못하면서 120세를 살았습니다. 말을 못했지만 장수한 사람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4:20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합니다. 말을 잘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는 전혀 관계없습니다. 무디는 구두수선공이었습니다. 회심의 체험을 가진 후에는 전도자가 되어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한번은 어느 곳에 가서 15분 동안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 때 그의 설교를 들은 어느 대학 교수가 "무디선생, 당신이 지금 15분간 설교하면서 문법에 맞지 않는 것이 16군데나 되어요"라고 하였습니다. 무디는 "내가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이라 그러합니다. 나는 비록 무식하지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데, 당신은 그 많은 학식을 가지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소"라고 되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능력에 있습니다. 말과 능력은 아무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세가 말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알고 계시는 것을 굳이 변명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미리 다 아시고 가라고 하시면 갈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약점을 늘어놓는 것은 핑계이며 가기 싫은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실 때 보십시오. 하나님은 아예 아브라함이 핑계대지 못하게 하십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들을 바치라"고 했으면 아브라함은 얼른 이스마엘을 바쳤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핑계나 변명하지 못하게 막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다음날 아침 일찍 이삭과 두 종을 데리고 떠납니다. 사라를 데리고 가지 않습니다. 사라가 갔으면 절대 아들을 바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리아까지 다 갔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두 종을 산 아래 기다리게 하고 이삭만 데리고 갑니다. 젊은 두 종과 함께 가서 바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얘기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변명거리, 핑계거리를 미리 제거한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믿음이 조상이 된 비결입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 보시면 마지막에 온 사람이 먼저 된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먼저 된 까닭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일체 말이 없습니다. 먼저 온 사람은 할 말이 많습니다. 주인에게 따지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온 사람은 너무 감사해서 할 말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먼저 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말이 없어야 일을 잘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 못하는 모세를 일부러 택하셨을 것입니다. 만일 모세가 말을 잘 했더라면 백성을 다 출애굽한 다음에 "내 말 멋지게 했더니 바로가 내어 주었지"라고 자랑했을 것입니다. 아론은 모세보다 세 살 위인 형인데 왜 아론이 아니고 모세가 지도자이겠습니까? 말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은 좀 못해야 하나님을 의지할 것입니다.

 

래리 킹이 쓴 '대화의 법칙'에 보면 말 잘하는 사람들의 8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

(1)우리에게 익숙한 주제라고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사물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

(2)폭 넓은 시야를 가지고 일상의 다양한 논점과 경험에 대해 생각하고 말한다,

(3)열정적으로 자신의 일을 설명한다,

(4)언제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말하려 하지 않는다,

(5)호기심이 많아서 좀더 알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6)상대에게 공감을 나타내고 상대의 입장이 되어 말할 줄 안다,

(7)유머감각이 있어 자신에 대한 농담도 꺼려하지 않는다,

(8)말하는 데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다". 말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고 말 바르게 하는 사람을 부러워해야 합니다.

 

둘째,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가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셨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하나님은 하나님이 입을 지은 자이심을 밝히십니다. 지으신 분이 입을 모르겠습니까? 입의 능력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누가복음 21:15에는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고 하십니다. '구재'란 말재주입니다. 하나님은 필요한 자에게 말재주를 주십니다.

 

이사야 50:4에는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라고 하십니다. 여호와는 학자의 혀를 주십니다. 학자들에게 말 잘하는 은사를 주십니다. 시편 45:2에는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영히 복을 주시도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입술의 은혜도 주십니다. 우리가 필요하면 말도 할 수 있고 능력도 있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마태복음 10:19을 보십시오.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적절한 때에 적절한 말씀으로 주십니다. 한국 초대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신학교를 갓 졸업한 전도사님이 조그만 시골 동네 교회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전도사님의 생각에는 작은 마을에 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교장선생님이 예수를 믿게 되면 동네 사람들을 전도하는데 가장 효과적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매일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예수 믿으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교장선생님은 전혀 믿을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도사님은 끈질기게 매일 가서 졸라댑니다. 교장선생님은 너무 귀찮고 싫어서 숨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숨어도 소용이 없을 듯 싶어 하루는 또 전도하러 온 전도사님에게 내기를 했습니다. "전도사님도 매일 나한테 오느라 고생하고 난 예수 믿을 마음이 도무지 없어서 피곤한데 이러지 말고 내가 문제를 하나 내겠는데 그 답이 나를 시원하게 해주면 내가 교회에 가겠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내게 오지 말기로 합시다". 전도사님은 이 제안에 선뜻 대답을 했습니다.

 

그때 교장선생님은 아주 야릇한 질문을 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벼락을 쳐서 나무도 부러뜨리고 바위도 깨고 그렇게 합니까? 나무나 바위가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사람이 잘못 했으면 사람을 쳐야 될 것 아닙니까?". 전도사님은 큰 일 났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아 본 적도 없고 질문이 흡족하지 않으면 다시 전도하러 못 올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잠깐 속으로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은 좋은 생각을 주셨습니다. "교장선생님, 선생님들이 공부 시간에 회초리로 칠판을 딱딱 치지요?" "예, 그렇습니다". "왜 죄 없는 칠판을 칩니까? 아이들을 쳐야지요?" "그거야 한 두 아이가 떠들면 한 두 아이를 때리면 되는데 아이들이 다 떠들면 다 때릴 수 없으니까 칠판을 치면서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것이지요" "교장선생님, 맞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한 두 사람이 잘못하면 한 두 사람만 벌주면 되는데 사람들이 다 죄를 짓고 잘못하니 하나님께서 나무도 때리고 바위도 깨뜨리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교장선생님은 무식한 줄 알았던 그의 지혜가 굴복하고 교회에 나왔고 온 마을이 예수 믿는 마을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하나님은 미련한 자를 택하사 지혜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말 못하는 모세를 세워 애굽을 부끄럽게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톰은 주후 2세기경의 교부입니다. 그의 이름은 금입(金口)이란 뜻이었고 그는 당시에 대설교가였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톰이 황제 앞에 붙들려 나와 그의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황후의 부정을 지적하고 올바른 길을 제시하여 황제의 미움을 샀습니다. 황제가 말하기를 "네가 만일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 내가 너를 추방시킬 것이다". 요한 크리소스톰은 태연히 미소를 띄우며 "폐하께서는 결단코 나를 그리스도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결단코 나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사43)"라고 말하였습니다. 황제가 노하여 호통을 쳤습니다. "그래 좋다. 그러면 너의 재산을 모두 몰수하여 버리겠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폐하 그것도 쉽게 안될 것입니다. 나의 보화는 하늘에 쌓아 두었기 때문에 폐하께선 그것에 손도 대지 못할 것입니다(마6:21)." 황제는 노발대발하여 소리쳤습니다. "내가 네 놈을 죽여 버리겠다". 그는 더욱 태연한 자세로 대답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나는 지난 40년 동안 죽어 왔었습니다. 나는 세상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나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 안에 감추었기 때문에 폐하께서는 더더욱 그것을 만나지도 못할 것입니다(갈 2:20)." 황제가 이제 체념하는 듯 "여봐라 아무도 없느냐? 저 놈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금입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필요한 말은 그 때에 하나님이 적절한 말을 주십니다. 우리가 말을 잘 못할수록 좋습니다. 하나님은 입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모세는 더 이상 거절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유 없이 사퇴를 고집합니다. 무조건 가기 싫다는 말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노를 발하십니다. 기어코 보내리라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시입니다. 모세의 불순종에 대한 질책입니다. 찬송가 79장 2절을 보십시오. "이방이 떠들고 나라들 모여서 진동하나 우리주 목소리 한번 발하시면 천하에 있는 것 망하겠네". 하나님이 한번 소리를 발하시면 천하가 다 망합니다.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레위 사람 아론"이라고 하십니다. 아론의 문벌과 그의 맡을 직책을 소개하십니다. 아론은 모세보다 3살 위인 형이었고 그의 이름은 "고상하다"는 뜻입니다. 아론은 모세의 대변인입니다. "너는 그에게 말하라. 그가 너를 대신하여 말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말 못하는 모세를 보내시기 위해 말 잘하는 아론도 준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권위를 주시기 위하여 "너는 그에게 하나님같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동생이 형에게 하나님같이 되는 대단한 은총도 함께 주시는 것입니다. 힘겨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감당치 못할 은총을 함께 주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가기 싫은 애굽 땅을 혼자 가지 않고 형 아론과 함께 갑니다. 모세도 좋고 형도 좋은 일입니다. 모세를 통하여 형에게도 사명을 줍니다.

 

얼마 전 어느 장애인목사님과 대화하는 가운데 참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장애인을 하나님이 훨씬 사랑하시는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상인들은 자기 혼자 천당에 갑니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자기와 함께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갑니다. 시각장애인은 안내인을 데리고 가고, 청각장애인은 수화통역인을 데리고 가고, 지체장애인은 휠체어 도우미를 데리고 갑니다. 그래서 천당을 혼자 가는 정상인보다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가는 장애인을 더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모세도 말을 잘 못하니 언어장애인이었을까요? 그래서 그는 가지 혼자서 가지 않고 형과 함께 간 것 같습니다.

 

결론

 

'고백하다'(confess)는 말은 신약 헬라어의 '호모로게오'(homologeo)에서 나온 말로 '같은 것을 말하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의견이 일치하고 할 말이 일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백이란 하나님과 말이 일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을 내가 하는 것이 고백입니다. 말은 잘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기를 원하시는 같은 말을 해야 합니다. 모세에게 필요한 것은 말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같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어제 아침 장로공부를 마치고 근처 어느 식당에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하여 장로님들과 함께 갔습니다. 그 식당 벽에 "형직즉영정"(形直卽影正)이란 글이 쓰인 액자가 있었습니다. 참 좋은 글이어서 제가 적어 왔습니다. "모양이 곧으면 그림자가 바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자세를 갖추면 우리의 말이 바르게 됩니다. 우리가 말을 바르게 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자세입니다. 곧은 자세만 가지면 바른 말은 하나님이 우리 입에 주시는 것입니다. 말은 자세의 외적 표현입니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교회는 말을 잘 하는 사람을 원치 않습니다. 말을 바르게 하십시오. 그리고 일을 잘 하십시오. 하나님과 의견이 일치되면 우리의 말이 고백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자세가 곧으면 우리의 말은 절로 바르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한 주간도 말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세가 곧은 사람, 일 잘하는 사람으로 사는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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