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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피 남편이 된 사연

출애굽기 김흥규 목사............... 조회 수 3436 추천 수 0 2013.01.08 20: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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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4:18-31 
설교자 : 김흥규 목사 
참고 : 2008-02-15 내리교회[기감] http://naeri.org 

출4:18-31

모세가 피 남편이 된 사연

  

 하나님께서 불러주셨건만 모세는 집요하게 거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화를 내실 정도로 완고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듭된 설득으로 순종했습니다. 애굽으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과 모세 사이의 밀고 당기는 긴 대화는 끝났습니다. 본문은 미디안 생활을 청산하고 애굽으로 돌아가는 전환기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1. 장인 이드로에게 애굽 귀환을 알리다(18-20절)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떠나는 길이기에 그냥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동안 많은 신세를 진 장인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갑니다. 아내와 자식들을 얻었습니다.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모세가 이를 잊을 리 없습니다. 갈 길이 멀고 바쁘지만 작별인사를 고합니다.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18절). 휴가를 내겠다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사명을 직고하지 않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늙으신 장인어른이 걱정하실까봐? 모세에게는 아내와 아들들이 되지만 이드로에게는 딸이요 외손자들의 안전에 대해 염려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말씀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19절). 모세는 아직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를 배척하고 죽이고자 했던 애굽인들과 히브리 동족들이 아직도 살아있을까봐 걱정했습니다. 그 두려움이 아직도 마음 깊숙이 잠복하고 있었기에 출애굽 사명을 장인에게 밝힐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제 모세는 안심해도 됩니다. 모세는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모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미디안을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죽었기 때문이지요.


20절은 모세가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 등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갔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다고 했습니다. 양을 치는 데 쓰는 아주 흔하고 천한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를 쥐었다는 것입니다. 의심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이 이적을 보이시기 위해 손에 든 것을 물으셨습니다. 지팡이였습니다. 그 지팡이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했을 때 놀랍게 쓰여지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 사로잡힐 때 지팡이는 그냥 양이나 모는 흔한 지팡이가 아니었습니다. 능력있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지식과 기술과 경험과 재능과 물질이 하나님께 바쳐질 때 하나님의 것이 되어 거룩하게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그냥 내가 움켜잡기만 하면 내 것으로 머무르고 맙니다. 초라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성별하여 바치면 놀라운 능력을 얻습니다. 모세가 손에 쥔 지팡이는 더 이상 양이나 모든 지팡이가 아닙니다! 홍해를 가르고 바윗돌을 쳐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지팡이입니다.


2. 모세가 피 남편이 된 사연(21-26절)

 

모세의 귀환길에 하나님은 바로의 완고함을 예언하십니다. 숱한 이적을 보여줘도 고집을 부리며 출애굽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순순히 이스라엘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지요. 여기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케 한 주체가 누군가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21절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완악케 하셨다고 했기 때문이지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주장하시기에 우리의 주인이시지만 우리를 자동 인형이나 로봇트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바로가 고집을 부리는 것은 자신의 왜곡된 자유의지를 그릇되게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을 다 미리 아시기에 바로의 의지까지도 하나님이 아신다는 차원에서 하나님의 통제 안에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장자라고 선언하십니다. 이와 같은 부자관계의 이미지는 바로 다음에 나오는 할례 사건과 연결 지을 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먼저 22-23절을 보실까요?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첫 아들은 부모에게 가장 소중합니다. 축복권을 계승받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장자라는 비유는 그만큼 소중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므로 바로가 하나님의 장자인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만들지 않을 경우 바로에게 가장 소중한 장자를 죽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장자를 출애굽시키지 않을 경우 바로의 장자를 손보시겠다는 말씀이지요. 하나님의 장자와 바로의 장자가 함께 맞물려 있는 것이지요!


정말 흥미로운 구절이 있습니다. 24-26절입니다.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


전혀 뜬금없이 갑자기 등장한 삽화이기에 당황스럽습니다. 이미 하나님은 모세를 죽이려고 했던 세대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이 안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전혀 안전하지 않습니다. 모세의 안전을 지켜주시겠다던 하나님이 거꾸로 모세의 목숨을 위협하십니다! 바로에게 목숨을 위협받기 전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위협을 받지 않습니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애굽을 향하여 한 참 길을 가다가 밤이 되어서 숙소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시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왜요? 아마 하나님과 모세 사이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중대한 문제가 하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할례 문제였습니다. 모세의 아들이 아직 할례를 받지 않았던 것이지요. 히브리 사내아이는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언약의 표시였지요(창 17: 10-14절 참조). 그러므로 모세의 아들들도 할례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것도 출애굽의 귀중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애굽으로 돌아갈 때 더더욱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계율을 반드시 지켜야만 했지요.


할례받지 않은 아들이 장자인 게르솜인지 차자 엘리에셀인지 명확치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앞에 나오는 하나님의 장자인 이스라엘 對 바로의 장자라는 도식을 전제할 때 이 역시 장자인 게르솜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옳습니다. 바로가 하나님의 장자인 이스라엘을 내놓지 않을 경우 자신의 장자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모세 역시 자신의 장자를 확실히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인쳐놓지 않을 경우 자기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이지요! 모세의 아들을 비롯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장자인 까닭에 피할례를 통하여 성별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부랴부랴 십보라가 부싯돌을 가지고 게르솜의 포피를 잘랐습니다. 포경수술, 즉 할례를 단행했던 것이지요. 그 포피를 잘라서 모세의 발에 대고 당신은 나에게 '피 남편'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식으로 '발'이라는 말은 '성기'의 완곡한 표현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할례가 남성의 성기와 관련된 의식이므로 그냥 발이 아니라 성기에 대고 말했다는 해석이 더 그럴 듯 하지 않습니까? 또한 할례 예식을 행하면서 아들이 피를 많이 흘렸을 것이 틀림 없기 때문에 피 남편이라고 외친 것도 이해가 되지요.


여기서 우리는 이방 여인, 히브리인이 아닌 미디안 여인 십보라가 하나님과 모세 사이에서 중보자(mediator)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만 합니다. 십보라가 모세의 목숨을 구했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모세의 생명을 구한 여인들과 연결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줍니다. 십브라와 부아라는 히브리 산파,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과 누이 미리암, 바로의 딸 공주, 다섯 명의 여인들이 모세의 목숨을 건져주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여기 제6의 여인 십보라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두 명은 히브리 여인이 아닌 이방인들입니다. 다른 다섯 여인들과 십보라가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다섯 여인들은 바로의 위협으로부터 모세의 목숨을 건져주었지만 십보라는 하나님의 위협으로부터 구해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중보자의 역할을 하듯이 십보라는 하나님과 모세 사이에서 중보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연약한 여성들을 하나님의 구원도구로서 쓰십니다. 성경은 결코 가부장주의적인 편견으로 가득차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한 가지 피구원이라는 주제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장자인 이스라엘→바로의 장자→모세의 장자는 서로 사슬의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연결고리의 정점에 '할례'라는 피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가면 히브리인들의 집 문설주 위에 바른 어린양의 피와 직결됩니다. 양의 피를 바른 집은 하나님의 장자인 이스라엘 집안이기 때문에 살아남습니다(출 12: 13, 22-23절 참조). 그러나 애굽의 장자는 피가 없으므로 다 죽습니다. 모세가 아들의 할례받은 피로 살아남은 것은 장차 이스라엘 자손들이 피로 인하여 살아남는 것의 한 예표(豫表)가 되지 않습니까?


피에는 생명이 있습니다(레 17: 11). 생명은 구원입니다. 모세의 아들의 피, 어린 양의 피는 나중에 가면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완결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 13: 12).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히 13: 20). 모세가 아들의 피로서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에 어린 양의 피로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통하여 구원과 영생을 얻은 줄로 믿습니다!


3. 본문이 주는 영적 교훈

 

모세는 아론을 만났습니다. 마침내 두 사람은 애굽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불러모았습니다. 아론을 통해서 주님께서 하시려는 일들을 일러주니 백성들이 믿었습니다. 31절은 해피엔딩입니다.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영어로 말하면 "So far, so good."'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세가 애굽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등장한 피할례 사건의 의미를 짚어봐야 할 것입니다. 왜 하필 이 사건이 모세가 애굽으로 가는 도중에 일어났을까요? 이것은 야곱이 자기를 죽이겠다고 에서가 쳐들어오는 상황속에서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는 장면과 흡사합니다. 야곱은 에서를 대면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자와 생사를 건 씨름을 해야만 했습니다. 야곱을 연단시키고 정화시키는 과정이었지요.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애굽은 생사가 왔다갔다하는 중대한 사역입니다. 하나님은 그토록 중차대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애굽으로 들어가는 모세를 긴장시키십니다.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하나님의 장자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식, 할례를 통하여 정신이 번쩍 나게 하셨던 것이지요!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하게 쓰시기 위해서 반드시 갑자기 혹은 서서히 우리를 시험하시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 때 우리는 영적인 촉수를 예민하게 해서 신속하게 대처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일꾼은 항상 준비하고 긴장해야만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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