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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출애굽기 오주철 목사............... 조회 수 2110 추천 수 0 2013.01.08 21: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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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4:1-9 
설교자 : 오주철 목사 
참고 : 2002.11.24. 언양영신교회 http://www.youngsin.org 

출4:1-9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 나라에서도 여러 책이 소개된 바 있는 세계적인 경제학자 피터 드러커는 14살 때 받은 선생님의 질문을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자네들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아무도 대답하지 못할 때 그 선생님은 빙긋이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자네들이 대답을 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어. 하지만 말이야, 자네들이 50세가 되어서도 이 질문에 대답할 말이 없다면 인생을 낭비한 것이야." 이 말씀은 그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았고 현재 자신의 모습이 되기까지 깊은 영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나이만큼이나 세월을 살아오신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온 여러분의 삶의 결과는 어떤 것입니까? 지금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기억되기 원하는 모습으로 오늘 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기억되고 싶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자신을 깊이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사람이 어떤 일을 하려면 그 전에 갖추어야 될 것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건강도 있어야 하고, 지식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얼마간의 경험도 있어야 하고, 지도력도 있어야 합니다. 물론 지혜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보다 더 중요하고 더 근본적인 것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나를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신념이라고도 하고, 혹은 확신이라고도 합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남이 나를 믿어 주어야 합니다. 이것도 역시 믿음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를 믿지 않는데 남이 나를 믿어 줄 리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는 나 자신입니다. 내가 내게 확신이 있어야 남들 눈에도 '그는 믿을 만하다'고 믿음이 가는 인격으로 비쳐지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믿고 남이 나를 믿어 준다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설 수 없습니다. 또 남이 나를 믿어 주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다 망하고, 다 무능력해지고 만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 말씀에 보면, 바로 이 믿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하나의 사건이 있습니다.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지금 모세의 처지를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기왕이면 모세가 좀 젊었을 때 부르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말입니다. 모세의 나이가 한 40세쯤 되었을 때, 바로의 궁전에서 한참 공부도 많이 하고, 공주의 아들로서 권세를 행사하고 있을 그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서 세우셨더라면 어땠을까? 왜 하필이면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40년 동안이나 양을 치면서 살아왔던 인생 실패자를 부르셨을까? 같은 값이면 왜 40세의 원기 왕성한 청년 모세를 부르시지 않고 80세에 이른 무기력한 목동인 모세를 부르셨을까?

 

하나님께서는 그 양치는 현장에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이제는 기력도 없고, 의욕도 없습니다. 무엇을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일은 너무나도 엄청난 일입니다. 430년 동안이나 노예생활에 길들여진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건져내는 일입니다. 노예로 태어나서, 노예생활에 익숙하고, 노예적인 사고방식에 젖어버린 사람들…. 이 불가능한 사람들을 건져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한 두 사람이 아닌 장정만 60만 대군입니다. 또 이들을 건져서 바로 이웃으로 옮겨놓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홍해를 건너서, 시내 광야를 지나서, 저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 인도하라. 이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인간적인 상식이나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사실 이것은 모세 자신으로 볼 때에는 간절한 소원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모름지기 오랫동안 기도해 온 기도 제목이요, 그의 소망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그 기도의 응답이, 그 간절한 소원에의 성취가 이루어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너무 늦었습니다. 8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인간적으로는 아무리 불가능한 일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는 가능하다는 것을 믿는다고 칩시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모세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을 하신다고 하더라도 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나를 통해서는 될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는 너무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너무 늙었고, 나는 좋지 못한 과거를 지녔습니다. 애굽에서 사람을 쳐죽인 그런 살인자입니다. 도망자에다 실패자요, 그리고 다혈질이라서 성미가 급하고 불같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다 포기한 상태에 있는 그런 헛점 투성이의 인간입니다.

 

그런고로 비록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구원의 엄청난 역사가 오늘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바로 나 모세는 아닐 것입니다. 나는 예외입니다. 나를 통해서 될 일은 아닙니다."라고 오늘 성경 말씀에 보면 모세는 거듭거듭 거절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단순한 겸손이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모세가 자격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내가 나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내 안에 있는 아무 것도 믿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능력도, 건강도, 지식도, 지도력도 아무 것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말씀에 보면 계속 변명하는 말이 백성들이 나를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사실이 그럴 수 밖에요.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데 누가 나를 믿어 주겠습니까? 누가 나를 믿고 따라와 주겠습니까? 이 비참하고 초라한 나를 누가 따라 주겠습니까?그래서 모세는 "안 된다"고 하나님 앞에 극구 사양을 합니다. 10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모세는 말을 할 줄 모른다는 핑계까지 댑니다. 아마도 모세는 입이 어눌해서 말을 좀 더듬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언지하(一言之下)에 나무라십니다."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도대체 누구 앞에서 변명을 늘어놓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모세가 결국 하나님의 손에 강제로 붙들려 쓰임받는 것을 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인의 궁극적 관심, 오늘 믿음의 사람인 저와 여러분의 궁극적인 관심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그 무엇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모세에게는 또 하나의 고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해서 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워낙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설령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하더라도 나 같은 사람과 함께 하실 리가 없고, 또 나 같은 사람이 감히 하나님의 일을 할 수는 없다고 지레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끝내 모세를 포기하지 않으시며 계속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고 말씀하시고, 16절에 보면 "너는 그에게 하나님같이 되리라"고 엄청난 축복의 말씀을 하십니다.하나님께서 할 말을 다 가르쳐 주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모세를 볼 때에 그를 하나님처럼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가라, 이제 가라, 훌훌 털고 일어나 어서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소명(召命)입니다.

 

이렇게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소명을 우리는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먼저

 

첫째로, 그 분은 인간의 부족과 허물을 묻지 않습니다. 이미 다 알고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나보다도 더 나를 속속들이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약한 것과 부족한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그 앞에서 감히 "나는 부족해서 못한다"고 거부할 수가 있겠습니까?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가능하게 하도록 부르십니다. 가능하고 못하고는 하나님께 속한 문제이지, 모세에게 속한 문제가 아닙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가능하게 하시는 능력을 가지고 부르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좀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지혜로 부르십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오묘한 섭리 중에서 효과적으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넷째로, 하나님의 큰 구원의 경륜 속에서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엄청난 역사를 경륜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어떻게 구원하시리라는 뜻 안에서 모세를 이 땅에 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경륜 안에서 이제 모세라는 한 사람을 들어 쓰시고자 하십니다. 모세가 있고 나서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엄청난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쓰임 받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부족하든 말든, 자격이 있든 없든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하시니 쓰임 받을 뿐입니다.

 

다섯째로, 최종적인 승리는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꼭 이루어지도록 그 최종 승리, 그 종말론적 역사는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그 약속이 있고 그 보증이 있습니다.이렇게 해서 마침내 모세를 부르십니다. 이제 모세는 아무 말도, 아무 변명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강하게 나오시니까 모세도 이제는 도리가 없는 줄 깨닫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모세에게는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게 무엇을 좀 주세요. 희한 한 것, 좀 굉장하고 깜짝 놀랄만한 능력과 표적을 주세요." 굉장한 것, 마술적이며 초자연적인 것, 초인간적인 것, 그런 기적적인 무엇을 원하고 있습니다.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뜻밖입니다. "모세야,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이 질문 앞에 어쩌면 모세는 굉장히 실망하여 대답을 했을 것입니다. "지팡이 입니다."이야기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모세가 기대하고 있던 바와는 너무나도 기대에 어긋나는 것입니다."모세야,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 입니다."그 다음 말씀을 조금 추리해서 생각해보면 성경에는 없습니다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요지는 아마도 이것이었을 것입니다. "됐어! 그것이면 됐다."지팡이, 그 이상의 것을 주시려고 하지 않습니다. 네게 있는 것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 네게 있는 것, 이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경륜에 속한 것임을 모세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모세의 생애는 출생부터 매우 비상했습니다. 비상한 시점에 태어나 갈대 상자에 담겨져서 나일강에 떠내려간 것도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였습니다. 다시 건져져서 바로의 궁전에 들어가 40년 동안 애굽의 문물을 다 공부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다시 그를 미디안 광야로 내쫓아서 양을 치면서 겸손을 배우고, 인내를 배우고, 지도력을 키우게 된 그런 일련의 과정도 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80년이라는 긴 과정을 준비시키시고 오늘 모세의 손에 지팡이를 들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팡이는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평범한 지팡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마른 나무 막대기, 그것을 들고 있는 모세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다.

"모세야,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 입니다""됐어! 그것이면 됐다."이 순간이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오묘한 경륜 속에 오늘의 이 마른 막대기, 이 지팡이가 모세의 손에 들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소박하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의 존재됨의 의미를 바로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을 이 아침에 이곳 영신교회로 불러내셨습니다. 우리는 어쩌다가 부모님의 실수로 이 땅에 온 것이 아닙니다. 어쩌다가 주를 믿게 된 것이 아닙니다. 우연히 이곳에 온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고 주를 믿게 된 것은 태초부터 예정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였습니다. 우리가 영신교회, 이곳에 모여 믿음의 공동체를 만든 것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섭리였습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깨닫는 자만이 주 앞에서 소명자로 설 수가 있습니다. 나의 나됨을 깨닫는 자만이 주 앞에서 헌신자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소유의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지식이건, 재산이건, 건강이건, 지위건, 이 모든 것이 가지는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구원의 역사 속에 이 사건 하나가 여기에 있고, 그리고 내가 있습니다. 그 옛날 에스더가 이방 나라에 가서 이방 왕의 왕후가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에 그 삼촌 모르드개가 에스더를 향하여 하는 말 가운데 이런 말을 우리는 귀담아 들을 수 있습니다.

 

에스더서 4장 14절에 보면, "에스더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너 잘 살라고 왕후가 된 줄 아느냐? 네 민족이 어려운 경우를 당하였을 때에 민족을 건지라고, 나라를 건지라고 왕후가 된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내게 주시고 준비시켜 놓으신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하여 역사하시고, 하나님은 그것을 쓰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게 없는 것을 불평하지 말고,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가장 부요한 사람은 자기가 소유한 것으로 만족한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어떤 집에 살든, 무슨 물건을 가졌든 간에 그것이 가장 좋은 줄로 아는 사람이 제일 부자입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의 뜻을 아는 사람, 그리고 그 가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가장 유능한 사람은 자기가 가진 바를 은사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 이 가진 바를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아는 그 사람이 가장 유능한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의 의미를 깨닫게 하십니다. 이제 그 지팡이를 바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말씀이 많습니다만 이것을 몇 가지만 열거해 보면 여기에서 재미있는 특징을 찾아낼 수가 있습니다.던지라, 잡으라, 넣으라, 내어라, 취하라, 부으라, 치라, 건너라, 들라, 낮추라…. 전부 이런 이야기입니다. 아주 간단한 문장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주께서 던지라 하시면 던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왜 던져야 하느냐고 물을 것이 없습니다. 잡으라면 잡고 건너라면 건너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내가 가진 것을 통하여 역사하실 때에는 언제나 내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과 순종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주 앞에서 믿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지팡이 사건을 보십시다. 하나님께서 지팡이를 던지라고 하십니다. 모세는 두말 않고 던집니다. 그랬더니 지팡이가 뱀이 되었습니다. 또 그것을 다시 잡으라고 하셔서 잡으니 도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꼭 마술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사건에는 엄청난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표징입니다. 믿음을 주기 위한 표적이요, 이 표적은 모세를 향하신 구체적인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모세의 생애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명령이요, 그에게 주시는 지시입니다. 보십시오. 아주 지극히 평범한 지팡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할 때에 양을 지키는 목자의 지팡이가 이제는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지팡이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마른 막대기 같은 몸이지만 하나님께 붙잡힘 바가 된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능력있는 자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내가 여기 섰습니다. 나를 받아 주시옵소서. 성령이여, 내 안에 역사하셔서 주님의 일을 이루게 하옵소서. 모세의 지팡이를 들어 사용하셨던 하나님, 나도 사용해 주시옵소서"어찌 생각하면 모세의 일생은 이 지팡이로 시작해서 이 지팡이로 끝났습니다. 이 지팡이로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지팡이를 가지고 이적을 행하면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 지팡이로 홍해를 쳐서 육지같이 건너가게 했습니다. 이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먹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 가서는 이 지팡이를 잘못 사용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 민수기 20장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고 하셨을 뿐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을 보자 부지불식간에 욱하는 성정이 되살아납니다. 그래서 패역한 백성이라고 저주하면서 신경질적으로 반석을 쳤습니다. 조심스럽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믿음으로 순종했어야 할 자리에서 자기 감정을 터뜨렸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20장 12절에 보면,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너는 나를 믿지 아니하고 나의 거룩함을 들어내지 아니 했으며 나를 거역했느니라. 그래서 너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무서운 심판입니다. 안타깝게도 모세는 여기에서 끝나버리고 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시키시는대로 정확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지팡이 사건에는 바로 이러한 의미가 있습니다. 네 손에 있는 것, 그것을 던지라고 할 때 던지고, 잡으라고 할 때 잡아야 하겠지만 정확하게 말씀하신 대로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기 이 지팡이 사건을 좀 더 깊이 해석을 해보면 다스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지팡이를 던지라 해서 던졌더니 지팡이가 뱀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지팡이를 잘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네가 가진 지팡이를 잘 다스리라. 지팡이를 잘 다스리지 못하고 놓으면 이것이 뱀이 된다. 원수가 되고 악이 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다음 장면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뱀을 보고 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하니까 무섭지만 그 꼬리를 잡았더니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무서워도 잡으라고 하실 때에는 잡아야 합니다. 잡으면 나를 돕는 지팡이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원수라도 잡으라고 하실 때에 그 꼬리를 잡으면 은인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를 이롭게 하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역경이라고 하더라도 잡으라고 할 때에 바로 잡으면 그 역경도 축복의 계기가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실패, 이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똑바로만 들으면 엄청난 성공의 디딤돌이 됩니다.이제 문둥병이 발한 손의 의미를 살펴보십시다. "네 손을 품에 넣으라", 또 "네 손을 내어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네가 손을 사용할 때마다 가슴에 대어 보아라. 손과 마음이 따로따로 놀면 안 된다. 마음이 나쁠 때에는 네 손도 문둥병처럼 악해지고, 마음이 바를 때에는 네 손이 손됨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지난날처럼 사람을 쳐죽이는 손이 아니라 한번 더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에 합당하게 손을 써야 하는 것이다" 라는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이제 모세는 걱정합니다. "저들이 나를 믿지 않고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3장 18절에 보면,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가만히 보면 이 대화가 매우 심각합니다. 모세는 안 들을 것입니다 하고, 하나님은 들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듣는다면 듣는 줄 알아라!"하고 호통치시는 것 같습니다. 출애굽기 4장 41절에는 "백성이 믿으며……"하는 말이 나옵니다. 모세는 "믿지 않을 겁니다" 라고 했지만 결과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 백성이 믿었습니다.

 

여러분, 나는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나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게 있는 것을 물으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역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내게 있는 것의 목적과, 그 놀라운 의미를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제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쓰여지면 엄청난 역사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물고기를 잡는 어부 시몬을 불러서 사람 낚는 어부 베드로로 만드셨습니다. 핍박자인 청년 사울을 불러서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로 만드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게 있는 것을 그대로 내놓는 것입니다. 던지라 할 때 던지고, 바치라 할 때 바치셔야 합니다. 내 마음에 안 들어도 잡으라고 할 때에 잡고, 가라 할 때에 가고, 치라 할 때에 치셔야 합니다. 그리하면 기적이 있고,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

뇌성마비로 태어나 전신을 움직이지 못하는 송명희씨는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사랑하는 여러분, 공평하신 하나님은 남에게 주지 않고 나에게만 주신 은총이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한해의 결실을 바라보는 계절입니다.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보시는 주님의 질문을 생각하면서 짧게는 금년 한 해와 지나온 삶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보다 충성된 자로 주 앞에 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 설교의 저작권은 언양영신교회에 있습니다.Copyright(c) June 2002, youngsin. All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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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 사도행전 성령강림과 방언을 통해 증거된 그리스도 행2:1-4  소재열 목사  2008-01-21 2965
478 사도행전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 행17:16-34  길희성 형제  2007-12-17 2135
477 사도행전 천사이야기 행12:5-10  한태완 목사  2007-11-27 2334
476 사도행전 <제자분석10> 십자가를 위해 칼을 포기한 사람 -시몬 행1:6-14  전병욱 목사  2007-11-22 2983
475 사도행전 성전의 안과 밖 행3:1-10  한완상 형제  2007-11-20 2367
474 사도행전 아레오바고 영성 행17:24-26  김경재 목사  2005-05-28 7962
473 사도행전 관용의 기억 file 행15:1-12  정경일 형제  2004-03-11 2357
472 사도행전 예수 그 이름을 높이자 행4:5-12  한태완 목사  2007-11-10 2432
471 사도행전 참된 교회의 모습 행2:42-47  한태완 목사  2007-11-07 2889
470 사도행전 예수 재림의 가능성 행1:9-11  강종수 목사  2007-09-04 2223
469 사도행전 인생 밑바닥에서 통과해야할 세 가지 훈련 행25:1-12  김필곤 목사  2006-09-13 3589
468 요한복음 믿는자가 되라 요20:24-29  이재철 목사  2009-02-27 2500
467 요한복음 우리가 보았노라 요20:24-29  이재철 목사  2009-02-27 1493
466 요한복음 내 손과 옆구리 요20:24-29  이재철 목사  2009-02-27 1890
465 요한복음 뉘 죄든지 요20:19-23  이재철 목사  2009-02-27 1488
464 요한복음 숨을 내쉬며 요20:19-13  이재철 목사  2009-02-27 2052
463 요한복음 나를 보내신 것같이 요20:19-23  이재철 목사  2009-02-02 1489
462 요한복음 너희를 보내노라 요20:19-23  이재철 목사  2009-02-02 1683
461 요한복음 평강이 있을찌어다 요20:19-23  이재철 목사  2009-02-02 3988
460 요한복음 주께서 말씀하셨다 요20:1-18  이재철 목사  2009-01-13 1671
459 요한복음 내가 주를 보았다 요20:1-118  이재철 목사  2009-01-1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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