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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는 십자가

요한복음 김남준 목사............... 조회 수 2164 추천 수 0 2013.01.11 21:4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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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9:34-35 
설교자 : 김남준 목사 
참고 : 2008-03-09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다시 찾는 십자가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를 본 자가 증거 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요19:34-35)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실 때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릴 것을 이미 예수님이 예고하신 것이었습니다. 3년 동안이나 정성껏 제자들에게 진리를 가르치시고 사랑하시고 삶에 모범을 보이시고 그들을 돌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예수님을 버렸을 때 인간적으로는 예수님의 마음이 많이 아프셨을 것입니다.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의지할 수 없는 자기 혼자 가야 하는 십자가의 길이 있음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평상시에는 많은 사람이 함께 어울려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 같아보여도 결국 자기 혼자 져야 할 십자가의 시간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떠나게 하시고 그 십자가가 누구와 나누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혼자 져야 하는 십자가라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처럼 큰 환난과 어려움, 때로는 주님을 위해 가야하는 고통스러운 사명의 길에서 우리 홀로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십자가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한 분만을 앙망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이렇게 홀로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십자가가 있게 마련입니다. 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 길은 누구도 동참할 수 없는 외로운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매 순간 우리가 순전한 마음으로 당신만을 의지하면서 주님이 세워주신 그 길에 서길 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십자가를 지실 때 모든 제자들에게 버림을 받고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도록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은 당신이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많이 사랑하되 의지하는 사람은 또한 동시에 그 사랑 속에서 언제나 쓰라린 상처를 받는 것이니, 사람을 의지하는 그 사랑이 순수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만을 의지하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연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갈 때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 한 번도 당신이 십자가를 질 때에 당신 곁에 있어 주지 못하고 당신을 버리고 도망간 제자들을 향한 미움이나 원망의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고 오히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큰 능력과 은사로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섬기며 봉사하던 제자들은 도망가고 오히려 이름 없는 여인들, 예수의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십자가 곁을 지켰습니다. 틀림없이 예수님과 한패로 몰리고 함께 고난을 받을 위험이 있었는데도 이 여인들이 누구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님의 뒤를 따르고 마지막에 그 십자가 옆에서 주님의 죽음을 지켜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이 여자들 마음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내어 좇는 것이니 주님께 붙어 있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던 이 여자들, 죽음의 위협이 핍박의 두려움이 예수님의 곁으로부터 도망치게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신앙의 본질은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한 사랑입니다. 사도들처럼 권능을 받았어도 주님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들에게는 귀신을 내어좇을 능력이나 죽은 자를 살려 낼 수 있는 성령의 은사 같은 것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이 여자들에게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실한 사랑이었습니다. 존귀와 영광 받으시고 높임을 받으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과 찬송을 받을 때에만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예수님은 죄인으로 몰려 강도들과 함께 수치스런 죽음을 죽어가고 있었는데도 이 여자들 마음 안에 있는 사랑이 그 십자가의 부끄러운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을 갖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신앙에 있어서 대의와 본질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더 소중한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이고 진실한 사랑입니다. 내게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없고 병든 자를 일으켜 세울 능력이 없어도 고난당하는 그 고통의 현장에 있어줄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 그분이 받으시는 영광의 자리에서만 그분과 한패가 되길 원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사랑하는 것이 주님이 자기에게 주시는 물질이나 번영이 아니라 주께서 고난을 당하고 모욕을 받으시는 현장에서도 주님 곁에 있어 드릴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주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회개해야 할 가장 커다란 죄, 우리들이 뉘우쳐야 할 가장 가공할 악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 말고 다른 것을 사랑한 죄, 주님이 사소하게 보이리만치 우리에게 가치 있는 것이 있었다고 하는 것, 우리의 사랑이 주님을 향한 올곧은 온전한 사랑이 되지 못한 것보다 더 큰 죄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른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아마 예수님이 먼저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리를 꺾일 필요가 없었고 두 강도는 다리를 꺾여서 완전히 죽인 것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했을 텐데 어떤 악한 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에 긴 창을 넣었고, 이 창은 옆구리를 지나 허파를 뚫고 심장을 터뜨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아있던 물과 피를 모두 쏟아내셨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도대체 그분이 무엇을 잘못하셔서 저주의 상징인 나무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당하신 것만으로 모자라, 마지막 죽으신 후에도 옆구리를 찔러 심장을 터트려 물과 피를 모두 쏟으신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분이 하나님 앞에 저주 받을 만한 어떤 못된 일을 하셨습니까?

 

예수님 생애 전체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 생애였습니다. 서른 세 해 사시는 날 동안에 한편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에게 탁월한 사랑을 받으셨고, 그렇게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 때문에 예수님은 이 땅에 있는 동안에 모든 인간을 온전히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 모든 것을 드리셨습니다. 짧지 않은 생애를 사셨지만 그분의 생애 전체는 고난의 연대기였습니다. 그분의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분의 것은 모두 주님이 사랑하시는 이 세상에 있는 우리와 같이 길 잃은 양떼들의 것이었습니다. 일평생을 고난과 수고로 섬기시고 마지막 남은 것은 호지 않은 옷 한 벌과 십자가에서 죽으실 수 있는 몸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호지 않은 옷은 군병들에게 주시고 하나 밖에 없는 당신의 육체는 구원받아야 할 우리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깨뜨려 드린 화목제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매 맞으신 큰 피자국과 쓰신 가시면류관과 못 박히신 그분의 손, 마지막에 창을 찔러 쏟으신 물과 피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가득 찬 것이 죄 뿐이고 하나님 앞에 악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거스르며 살았던 범죄 한 우리 모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용서 받을 수 없는 우리 모든 사람들의 죄를 위해서 그분이 십자가에서 자기를 다 버리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첫걸음은 예수를 만나는 것이며, 신앙의 두 번째 걸음은 그 예수를 사랑하는 것이며, 신앙의 마지막 세 번째 걸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에게는 분명한 십자가 신앙이 있었으니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으니 이제 나의 생명은 내 것이 아니요 주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그 큰 사랑 때문에 이번에는 내가 죽어야 할 차례라고 하는 예수 죽음의 신앙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참된 기독교의 본질로부터 너무나 멀어진 교회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위해 울기 전에 교회를 위해 먼저 울어야 하고 세상이 변한 것 때문에 놀라기 전에 교회가 변한 것 때문에 우리가 먼저 놀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간 곳이 없고 오직 자신의 번영과 행복과 자아의 실현이 우상이 되고 최고의 가치가 된 시대, 인간이 자신 스스로 행복하도록 살아가는 인생을 돕는 한도 안에서만 하나님도 경배 받으실 수 있는 인간 중심의 기독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지막에 주님의 나라에 들어갔을 때 이 참된 십자가의 복음, 나같이 비참하고 더러운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그 큰 사랑을 가슴에 인처럼 품고 그분을 위해 죽기까지 살아야 한다는 이 단순한 진리의 복음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교회는 기웃거렸으나 구원을 얻지 못하고 영생을 얻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을 지옥의 불길 속에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때, 얼마나 오늘날 이 안일한 신앙을 후회하게 될 것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자 물과 피가 모두 쏟아져 나왔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분의 가슴 속에 있는 가장 큰 소원은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지만 그 사랑을 스스로는 알지 못하는 이 비참한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죄 없으신 그분이 마지막 찔리신 옆구리를 통해 흘러나오는 물과 피의 한없는 흐름을 보며 그대들의 마음이 녹지 않습니까?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구원의 은혜, 오늘 내가 바라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 이렇게 주님을 경배할 때 나의 마음에 밀려오는 하나님의 큰 사랑,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리신 예수 때문에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좋은 신자의 눈에는 항상 그리스도의 큰 사랑 때문에 흐르는 눈물이 있고, 가슴에는 교만하고 싶어도 교만할 수 없는 십자가 앞에서 발견하는 자기, 아무 좋은 것이 없고 그 비천한 모욕의 길을 걸어가신 그리스도 때문에 용서 받은 황공함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 있습니다. 이것이 신자의 눈에서 마르는 순간 그는 하나님을 등질 수밖에 없고 세상을 향하여 달려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굳이 하지도 않아도 될 이야기를 꽤 길게 첨가합니다. “이를 본 자가 증거 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말하는 것이 참 인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옆구리에 창을 찔리실 그때에 물과 피를 모두 쏟으셨는데, 생생한 광경을 누군가가 목격을 하였다는 것이고, 이렇게 굳이 여기에 증언을 하는 이유는 이 서신을 읽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이 그들을 위해 죽으신 것이 참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복음서 속에는 마가복음에서도 그렇고 요한복음에서도 그렇고 복음서를 기록한 사람 자신을 삼자처럼 위장해서 감추는 문학적 묘사가 등장합니다. 여기에서 바로 그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요한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 56절에 보면 예수님이 체포되어 끌려가실 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어떻게 그 현장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볼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떠오릅니다. 그것에 대한 대답은 이렇습니다. 처음에 요한은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다른 제자들과 함께 섞여 체포당하여 끌려가는 예수님을 두고 도망갔었습니다. 다른 모든 제자들은 아직도 두려움 속에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예수를 버리고 있었는데,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어린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시 돌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도망간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생각해 보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아직까지 끌려가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계시는데 달려와서 ‘내가 예수님의 제자입니다’라고 말하면 예수님 옆에 못 박힐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는 것입니다. 잠시 주님을 버렸지만 요한의 마음속에서 예수님이 자기 같은 인간을 사랑해 주신 그 많은 사랑의 기억들, 멸시와 욕을 당하고 죽어 가시면서 잃지 않았던 자기들을 향한 큰 사랑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요한은 다시 시작하러 늦었지만 달려왔던 것입니다. 어쩌면 요한이 다시 예수님 만나러 십자가로 달려가고 있을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기적을 기대하였으나 기적은커녕 피투성이가 되어 죄수들과 함께 나무에 매달려 있는 예수를 보고 실망하며 언덕 아래로 내려오고 있는 중이었을 것입니다. 그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눈물을 흘리며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어린 청년 하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요한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그 십자가 아래 간들 자기의 힘으로 예수님을 구해 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요한에게는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예수님을 향한 충성이 무엇인지 압니까? 일을 잘 하는 것도 충성이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주님이 고통 받으시는 그 현장에 같이 있어 드리는 것, 주님의 남은 고난이 교회에 있어서 많이 아플 때 아무것도 해 주는 것 없어도 아파하시는 주님 곁에 있어 주는 것, 그 자체가 충성입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파를 헤치며 예수 그리스도께 달려가고 있는 요한의 마음에는 이제는 아까와 같은 공포와 두려움이 다 사라졌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두려움을 내어 쫓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어린 요한은 언덕을 내려오는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아마 한동안 주님이 고난당하시는 그 광경, 아직 살아계시며 거기서 당신을 버리고 자기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 십자가 아래서 침묵하며 한편으로는 주님을 버리고 도망간 자신의 죄에 대한 후회, 또 한편으로는 다시 돌아와 주님 앞에 있게 된 이 두려움과 떨림 이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한 번도 자신을 배신하신 것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육신의 어머니를 요한에게 맡기셨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버렸지만 요한의 대한 예수임의 사랑이 마음에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요한은 다시 그 십자가 아래서 다시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무엇일까요? 믿음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가장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분 곁에 있어 드리는 것, 그분이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고 죽으셨은 즉, 그분을 사랑하는 것, 두려움과 환난, 핍박과 시련 유혹이 많아도 한 번 붙잡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놓지 않고 꼭 붙들며 행복하고 건강할 때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때문에 모욕을 받고 시련을 만나고 죽어야 할 때까지 주님의 십자가를 꼭 붙드는 것이 신앙입니다.

 

우리는 매순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면서 잊었던 우리 자신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수시로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버리고 자기 멋대로 돌아다니며 주님의 마음에 못을 박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 앞에 설 때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핍박자여 포행자인데 주님께 저주를 받아야 할 같은 인간인데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이 큰 사랑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왔습니다. 예수 죽인 것을 우리의 몸에 짊어질 때 우리 몸 안에 영혼 안에 생명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색적인 고유한 복음,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요한, 우리와는 비교될 수 없는 은혜의 세계를 목격했던 요한, 죽은 자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권능까지도 부여받았던 놀라운 은사의 사람인 요한도 주님보다 자기를 사랑해서 잠시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우리도 연약함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돌아갔습니다. 우리도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본래 있었던 그 은혜의 자리, 어린 아이처럼 십자가 사랑 앞에 감격하던 그 사랑의 자리, 예수만 내 안에 사실 수 있다면 나는 죽어도 좋다는 헌신의 자리, 존귀와 영광은 주님이 홀로 받으시고 멸시와 천대의 십자가는 나 혼지 지겠다는 그 순수한 은혜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모두 쏟으시면서 여러분들이 그 은혜와 사랑의 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008-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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