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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시련

출애굽기 임덕순 목사............... 조회 수 2290 추천 수 0 2013.01.13 0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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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5:1-23 
설교자 : 임덕순 목사 
참고 : 2005-10-02 한가람교회 http://www.hankaram.or.kr/ 

모세는 형 아론을 만나 그의 도움을 받으며 애굽으로 가서 왕 바로 앞에 섰습니다. 손에는 하나님이 그에게 맡기신 권능의 지팡이를 들고 섰습니다.  과연 모세는 하나님이 맡기신 사역을 감당해 낼 수 있을까요? 


1. 바로와 모세의 첫 대면   (1- 5) 

 

모세는 바로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여호와가 누군데 나더러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고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서 명령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에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 제사를 드려야 하니, 가기를 허락해서 여호와의 재앙이 우리를 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모세의 태도가 좀 이상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은 내 백성이니 당장 해방시키라." 고 하는 요구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한 것은 바로에게 가서 내 백성을 놓으라는 당당한 요구였으며, 온역이나 칼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릴 것이 아니라 바로가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애굽땅에 내릴 재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가 말을 듣지 않는데 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재앙을 내리시겠습니까?  그런데 모세는 말도 안 되는 이상한 말을 바로에게 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왜 그렇게 했을까요?

 

모세의 판단에, 내 백성을 내놓으라고 말해서는 어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바로는 대 제국 애굽의 왕인데, 내가 가서 아무리 강하게 나온다고 해도 왕이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이고 나만 잡혀가서 고된 고문을 당할 것 아니냐, 그러니 왕이 이해가 되도록 말하자.’ 이것이 언제나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한 대로 말한 것입니다.  사흘 길 쯤 광야로 가서 제사를 드린다고 해 놓고, 허락해 주면 광야로 갔다가 거기서 멀리 도망칠 계획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게 아닌데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분석해보고, 사람들은 아마 이 말은 믿지 않을 거야, 그러니 믿을 만한 말로 바꾸어 말하자. 전도를 해도 그렇고 봉사를 해도 그렇고 항상 자기 생각대로 분석하고 변경해서 합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안하십니까? 


그러나 그게 통하겠습니까?  바로의 마음을 움직이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나 아론의 말솜씨나 재량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염려와 방법이 하나님의 일에 개입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하라면 말씀하신 그대로 해야 일이 풀리는데, 우리가 괜히 염려가 앞서 그러면 안 될 것만 같아서 말을 바꾸고 방법을 바꾸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내 삶에서 얼마나 하나님의 역사가 가로막히고  감쇠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는 일이 잘 안됩니까? 해도 해도 길이 안보입니까?  될 듯 될 듯하다가 끝에 가서는 일이 꼬입니까?  그렇게 잘못된 결과만 오는 이유가 혹시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에 맞게 수정하며 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능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옛날에도 통했고 지금도 통하고 영원히 통하며, 그 어떤 시대, 누구에게나 통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님의 제품이고,  지금도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과 행동을 통제하시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바로를 만나는 첫 걸음부터 완전히 잘못 접근했습니다.


2.  바로의 반응   (6- 14)

 

첫째 반응은,  “여호와가 대체 누군데 나더러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 나는 여호와를 모르므로 이스라엘도 내 놓을 수 없다.” 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신인 여호와가 어째서 애굽 왕인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는 말인데, 신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여호와라는 신은 산골짜기에서 목축하는 사람들이나 다스리는 신인에, 왜 당신의 영역이 아닌 평지 애굽까지 간섭하느냐는 반발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각 지방마다 지배하는 신이 따로 있는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우리나라 사람들도 지역마다 지배하는 신이 따로 있다고 믿었습니다. 부엌에는 조왕신이 있고 곳간에는 업신이 있고 물에는 물귀신, 산에는 토지지신, 바다에는 용왕신이 다스린다고 믿었으니, 4,000년 전의 애굽이 전능하시고 전 세계를 지배하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애굽은 애굽의 신이 다스리고, 가나안 땅은 가나안 신이 지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페루에는 안데스 산맥이 지나가기 때문에 5000미터 이상의 높은 산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 산길을 갈라치면, 위험한 산모퉁이를 돌 때마다 보이는 위쪽에 개집만한 하얀 집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것은 뭐냐고 물었더니 예수님을 모셔놓은 집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왜 저렇게 많으냐고 물었더니, 거기서 보이는 모퉁이를 지키는 예수님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안 계신 데가 없는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길거리의 보이는 한 모퉁이나 지키는 ‘모퉁이 수호신’으로 전락시켜 놓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남미의 카톨릭이 섬기는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도 그렇게 무지한 사람들이 많은데, 당시에 애굽 사람들이 신에 대하여 무지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바로의 말은 그런 무지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또한, 바로의 교만심에서 나온 하나님을 무시하는 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조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큰 나라의 통치자들은 예외 없이 자기가 하나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중국의 황제는 천자라고 부르며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겼고,  일본의 왕은 천황이라 하여 자기를 신으로 섬기게 했으며, 로마의 황제도 자기를 신으로 섬기라고 강요하며 기독교인들을 박해했습니다.  당시에는 애굽이 세계의 최고 큰 나라였으므로 애굽의 왕도 당연히 자기가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군림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신인데 어떤 신이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느냐” 라는 투로 교만한 마음을 나타낸 말이었습니다.  사람들 중에 조금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하나님 앞에서도 교만해서야 되겠습니까?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반응은,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는커녕  그날부터 더욱 심한 노동을 시켰습니다.  흙을 이겨서 벽돌을 찍어 굽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는데, 진흙에 여물을 넣어서 벽돌을 만들어야 벽돌이 튼튼해집니다.  그동안은 그 여물용 짚은 애굽에서 제공해 주었었는데 그날부터는 짚을 주지 않고 너희가 짚을 구해다가 전과 같은 수량의 벽돌을 찍어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지푸라기를 구해다가 같은 양의 벽돌을 찍어내느라고 할 일이 배나 많아졌습니다. 배나 고된 노동을 해야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감독들이 전보다 심하게 압제했습니다. 일의 감독관들은 모두 애굽 사람들 이었고, 패장이라고 하는 조장들은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뽑았는데, 감독들은 이 패장들을 채찍질하면서 압박했고, 패장들은 자기 동족의 등에 채찍을 가하면서 몰아붙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고통은 모세가 오기 전보다 훨씬 더 심하게 되었고 그것은 모세에게 심한 낭패였습니다.  


3.  패장들의 반항   (15- 21)

 

패장들은 자신들이 감독의 채찍을 맞으면서 자기 동족의 등을 채찍으로 때리며 일을 시키다가 양심의 괴로움과 육체적 고통을 견디다 못해서 바로 왕에게 찾아가 호소했습니다.   그들은 “어찌하여 이 같은 고역에 매질까지 하십니까?" 라고 왕에게 호소했더니, “너희가 한 없이 게을러서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구나, 잔말 말고 가서 시키는 일의 분량이나 채워라.” 하고 쫓아 보냈습니다.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에게서 그런 대접을 받고 쫓겨난 패장들은 모세를 향하여 반기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모세를 환영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구원하려고 사람을 보내셨다고 엎드려 경배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와서 바로와 대결을 하기 시작한 날부터 자신들의 일이 더욱 고되어지고, 채찍에 맞기시작하자, 금새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큰 일 앞에는 큰 어려움과 수고가 있기 마련이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고난의 기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좋은 결과는 바라지만 고난은 당하지 않으려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얄팍한 모습입니다.  애굽에서 살던 이스라엘들도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전도하는 일은 크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 일은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들이 수고롭게 전도하여 이루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나가서 전도는 하지 않고, 총동원주일이 되어도 자기 혼자만 달랑 오는 사람, ‘전도를 하자’ 하면 핑계만 많이 하는 사람이, 우리교회는 왜 이렇게 부흥이 안 되냐고 투덜거리기나 하고, 남의 탓이나 하는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수고는 감당하기 싫고  영광은 얻기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쉽게 원망한 이스라엘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되지 맙시다.


패장들은 모세와 아론을 몹시 원망했습니다. "너희가 우리를 바로와 애굽인에게 미운물건이 되게 하는 도다!  너희가 가만히 있는 그들에게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한 것이 아니냐?" 라고 원망했습니다.


“위문이 폐문이 되었다”는 말처럼, 모세는 애굽에서 노예화 된 이스라엘을 도와서 구원하려고 갔는데, 오히려 동족들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주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인간적으로 얼마나 미안하고 가슴 아프고 답답했겠습니까?

  모세는 동족들에게 미안했을 것이고, 한편, 조금도 참아주지 못하는 자기 민족이 원망스러웠을 것이고, 하나님께도 원망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왜 나는 적임자가 아니라고 몇 번이나 사양했는데도 나를 잡아다가 되지도 않을 일을 시켜가지고 이런 원망과 고난을 당하게 하십니까?  아마 이런 원망이 모세의 마음에 가득했을 것입니다.  모세가 생각하기에 바로는 완고해서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사람이 아니라고  보였던 것입니다.


  반면, 바로가 생각하기에는, 모세라는 사람이 문제였습니다.  모세가 오기 전까지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말도 잘 듣고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착한 노예였는데, 모세가 와서 선동하니까 그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고 순종하지도 않고 항의하고 대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의 작전은 그들의 일을 전보다 훨씬 무겁게 시킴으로서  모세 때문에  해방은 고사하고 괜히 일만 배나 힘들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이스라엘과 모세 사이를 이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바로의 작전은 성공하는 듯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보다 바로왕의 자비에 기대를 걸었던 모세나, 쉽게 해방을 얻을 줄 알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같이 실망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모세를 원망했고,  모세는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일은 이렇게 꼬여갔습니다.


4.  모세의 원망  (22-23)

 

 22-23 절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놓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습니까? 어찌하여 이 백성들로 학대를 당하게 하십니까? 이럴 줄을 알고 내가 오지 않으려 하니까 억지로 가라 하셔서 왔는데, 내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했지만 바로는 우리를 한층 더 학대하기만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했는데 하나님은 왜 우리를 구원치 아니하시는 겁니까?”


 그러나,  이것은 모세의 착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셨었습니다. “그들이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고 보내지도 아니할 것이다. 그러다가, 내가 여러 가지 재앙으로 그들을 친 후에야 그들이 패물을 너희에게 주며 나가게 하리라.” 3장 19-22에서 아주 명확하게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모자라거나 약속을 위반한 것이 아닙니다. 깊은 뜻이 있어서였습니다.  모세가 아직 모르고 있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었을까요?


만약, 내 백성을 내 놓으시오, 하는 모세의 말 한마디에 바로가 얼른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선, 하나님이 미리 말씀해 주신 말씀이 틀린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신 것이고,  더구나 바로의 마음을 주관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미래를 알지도 못하고 사람의 마음을 주관하지도 못하면서 괜히 그러는 체 하는 분이라면, 그분은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그들이 순탄하게 애굽에서 나왔다고는 할지라도 가나안까지 인도해 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애굽 왕이 하나님이 두려워서 이스라엘을 보낸 것이 아니라, 바로의 마음이 좋아서 인심 쓰고 보낸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들도 그렇게 주장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의 해방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애굽의 바로가 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그러나 바로는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바로가 굴복하고 그들을 석방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바로도 인정해야 하고 이스라엘 사람들도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쉽게  석방되어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모세의 말 한마디에 이스라엘이 석방되었다면, 앞으로 애굽의 왕이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낼 뿐 아니라 그들이 거주해야 할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먼저 광야에 인도하여 거기서 단단히 훈련하여 당신이 원하시는 백성들로 만들려고 하십니다. 그들에게 먼저 심어져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두려우심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과 두려우심을 보이기도 전에, 모세의 말 한마디에 바로가 인심을 쓰고 당장 내놓은 것이 되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무서우심은 아무도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모세의 첫 번 요구는 거절되어야 마땅했고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이미 작정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모세는 그것을 몰라서 불평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면 불평이 앞섭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몇 번 기도를 하고는 금새 응답해 주지 않으신다고 원망하고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드린 기도가 만일 단번에 응답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응답보다는 우연히 일이 이루어진 것으로 여길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우연히 때가 맞아서 그때 이루어진 것이고, 기도하지 않았어도 일은 거의 다 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권능을 실감 있고 확신 있게 체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갖은 노력을 다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자기의 능력이 바닥을 다 드러내고,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다가 그것도 지쳐서 완전히 두손, 두발 다 든 다음에 해결되면, 그때는 “아, 이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거야, 이건 세상에 별 방법으로도 안 되는 것이었어, 이건 완전히 하나님이 해 주신거야” 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또한, 기도하는 첫날 응답을 받게 되면, 오래 기도하고 오래 연단 받은 뒤에 얻는 하나님의 은혜의 맛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달라는 것을 언제나 즉시 다 해주어보십시오.  아이들은 부모의 은혜를 모르게 되고, 부모는 나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한번 안 해주면 부모를 원망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런 아이는 버릇없는 아이고, 그 사람이 자라면 배은망덕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당신의 백성으로 키우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모세의 첫 번 요구에 바로가 응답 하지 않게 하신 것이고, 도리어 고난이 심해졌던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없었고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원망스러운 호소를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입니다.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에 힘쓰는 성도들이 됩시다.


결론 ;  모세는 일시적이나마 낙심하였습니다. (22,23)

 

그러나 그는 일을 해가면서 점차 하나님은 강한 능력의 소유자이시며, 당신이 하신 말씀대로 이루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참 일군이 되어갑니다. 


모세는 첫 번째 시련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예정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미 3장 19-22절과 4장 21-23절에서 하나님은 재차 말씀해 주시기를, 바로가 처음에는 반발하며 거절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능력에 굴복하고 금은 패물까지 주면서 해방 시킬 것이라고 하신바 있습니다. 모세가 조금만 기억을 더듬었어도 주신 말씀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모세는 위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바로가 쉽게 항복하리라고 말씀하신 일이 없었습니다. 모세가 말 한 마디만 하면, 금방 바로가 항복하고 이스라엘을 광야로 보내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로와 치열하게 싸워서 바로가 하나님 능력 앞에 항복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모세에게도 그렇게 되리라고 이미 말씀해 주신 바 있었습니다.  그러니 모세는 위기 속에서 하나님이 해 주신 말씀을 기억했어야 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위기의 형편에 있습니까? 말씀을 기억합시다.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말씀이 없으면 사람은 낙심합니다. 말씀을 모르면 고난 속에서 방황하고 길을 못 찾습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함으로 인한 필요 없는 염려와 불안과 고난을 얼마나 많이 당하였는지 아십니까?  말씀을 기억해 내지 못함으로 인해서 곁길로 돌아가는 수고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헤아려 보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잊지 않고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때때로 필요한 상황마다 거기에 합당한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떠오르고, 그 말씀이 내 마음을 지배한다면 우리는 그 어떠한 고난 앞에도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고  약속을 의지하고 힘을 낼 수 있으며 결국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경우에도 가장 지혜로운 길을 선택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당장의 현상만 바라보는 사람은 언제나 큰 일 앞에서 좌절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을 바라보고 붙잡는 사람은 시련 앞에도 무릎 꿇지 아니하고 끝까지 견디어 승리를 하는 사람이 됩니다.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중심의 삶으로 범사에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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