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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하나님 - 그 이름의 의미

출애굽기 피영민 목사............... 조회 수 4496 추천 수 0 2013.01.15 17: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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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6:1-9 
설교자 : 피영민 목사 
참고 :  

전능의 하나님 - 그 이름의 의미

 

여호와 하나님의 또다른 이름은 ‘엘샤다이’다. 아브라함에게 약속과 후사를 주신 엘샤다이의 하나님은 이제 출애굽의 절망하고 있는 이 모세에게 나는 ‘엘샤다이’라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다시 한 번 가르쳐 주신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을 더하므로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을 더하므로 바로가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리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로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가나안 땅 곧 그들의 우거하는 땅을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이제 애굽 사람이 종을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찌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하셨다 하라.”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역사의 혹독함을 인하여 모세를 듣지 아니하였더라. 출애굽기 6장 1-9절

 

어떤 할머니 두 분이 평생 친구로 지내시다가 노년기가 되니까 치매가 왔습니다. 한 할머님이 친구에게 묻습니다. “여보게 내가 자네하고 평생 친구인데 한 가지 질문이 있네. 뭔가 자네 이름이 뭔가?” 그러니까 상대방 할머니가 가만히 생각하더니 “아이고 그거 나도 잊어버렸네. 언제까지 가르쳐 줘야 되나?”

 

목회를 하다보면 치매가 안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대하다가 이름을 잊어버릴 때 제일 곤란합니다. ‘이 분을 알긴 아는데 이름이 뭐더라?’ 이름을 모르면 상대편이 빤히 보이는데도 부를 수 없습니다. 그때는 참 괴롭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을 정의하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사람도 이름이 있듯이 하나님에게도 이름이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바로의 왕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오히려 나빠졌습니다. 바로가 더욱 분노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통을 주었으며 이스라엘의 패장들도 모세를 원망하게 되어 모세 자신도 혼란에 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모세가 기도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고하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으로 학대를 당케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함으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출 5:22-23).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말했는데도 하나님이 구원하지 아니하시니 이것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모세는 그렇게 좌절 섞인 기도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모세야 네가 너를 구원하지 않는 것 같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이제 네가 이 일이 성공하리라고 확신을 가져도 좋을만한 네 가지 근거를 이야기 하겠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구원의 네 가지 근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는 첫 번째 근거는 과거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 때문입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가나안 땅 곧 그들의 우거하는 땅을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출 6:3-4). 즉, 모세가 확신을 가져도 좋은 근거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조상과 언약을 맺었다는 것인데 이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후손에게 영영히 주기로 한 언약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애굽 땅에 영영히 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언약한 대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으로 먼저 확신을 시키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는 두 번째 근거는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애굽 사람이 종을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출 6:5).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이 신음하며 기도하면 그것을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했고 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틀림없이 출애굽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이 단호하게 결심을 하셨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리라”(출 6:6). 또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으로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하셨다 하라”(출 6:8). 즉, 빼어내고, 건지며, 구속하며, 인도하고, 주어, 그 땅을 기업으로 삼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단호한 결심과 의지가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구구절절이 하나님의 결심이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 지금 이 구원의 역사를 지금 안 이루십니까?” 하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내가 너희 조상과 언약을 맺었고 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기고 그리고 내가 틀림없이 구원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내 이름 자체가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고는 견딜 수 없는 존재니라” 하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6장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두 가지로 나오고 있습니다. 첫째는 여호와라는 이름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대표이름입니다. 다른 이름을 가진 존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알라도 하나님이 아니요, 부처도 하나님이 아니요, 공자도 하나님이 아니요, 맹자도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이 뭐냐고 묻지 않았습니까? “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 할 때 그들이 우리 조상의 하나님의 이름이 누구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합니까?” 라고 했을 때 스스로 있는 자, 여호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의 의미

 

여호와의 이름은 의미가 두 가지 입니다. 첫째는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시작하신 일을 완성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약속한 것을 꼭 성취하기를 바랍니다.

 

또 여호와라는 이름은 ‘시작하신 일을 완성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쓰인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가 아닙니다. ‘엘로힘’입니다. ‘엘로힘’은 복수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로힘 하나님이 하늘도 지으시고 땅도 지으시고 인간도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엘로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기를 마치시고 난 후에 사용된 이름이 바로 ‘여호와’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구약성경에 6,800번 사용되었습니다. 그 이름이 처음 쓰인 것은 창세기 2장 4절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 하나만 해도 설교를 열 번도 더 할 그런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와라는 이외에 본문에 나타난 또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에서 사용된 ‘전능의 하나님’을 의미하는 히브리어로 ‘엘 샤다이’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이름은 바로 엘 샤다이의 하나님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 엘 샤다이’라고 하는 이름의 기원은 창세기 17장 1절입니다.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이르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엘 사댜이)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에 택하셔서 약속을 주셨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 12:1-2). 아브라함이 75세 때의 일이고 그 후로 100년을 더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네 몸에서 아들이 있으리라 약속을 주시자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래의 배를 봅니다. 오늘 있으려나, 내일이나 있으려나, 그런데 배를 자꾸 봐도 아무 일도 없습니다. 날씬하기만 합니다. 1년을 봐도 소식이 없고, 2년을 봐도 소식이 없습니다. 약속을 받기는 받았는데 10년을 봐도 소식이 없자 아브라함이 10년 만에 조바심이 나서 드디어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을 합니다. 그래서 86세에 사래의 여종인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사래는 하갈을 핍박하고 내 쫒게 됩니다. 이스마엘로 인해 심각한 가정문제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깨닫습니다. ‘아하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도 아니고 하나님의 때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주신 아들도 아니구나’ 아브라함이 86살 때 실수를 한 결과로 이삭의 후손이 대대로 핍박을 받고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다시 기다립니다. ‘내 아내 사래에게서 자식을 주시려나?’ 오늘도 바라보고 내일도 바라봅니다. 그렇게 13년의 세월이 더 흘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99세가 된 것입니다. 75세에 약속을 받아서 99세가 되었으니까 몇 년이 지났습니까? 24년이 지났습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나친 칭호가 아닙니다. 사라도 경수가 떨어졌습니다. 아브라함도 늙었습니다. 아무 낙이 없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잉태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아들을 주시리라’ 이것을 믿고 의심치 아니했습니다.

 

99세된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가르쳐 주신 이름이 전능한 하나님 ‘엘 샤다이’입니다. 그리고는 “네가 명년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엎드려 있다가 웃었습니다. “아이고 하나님, 농담도 잘하시네” 하고 웃은 것 아니겠습니까? ‘어찌 내가 믿기는 믿지만 그런일이 있겠습니까?’ 아브라함도 웃고 그 아내 사래도 장막문 뒤에서 웃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사래의 배가 자꾸 불러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드디어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었을 때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이 이삭, 그가 웃었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도 웃었고 사래도 웃었습니다. 하나님은 엘 샤다이의 하나님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고 늙고 노쇠하고 아무리 낙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태의 문을 여시면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네 가지 알고 있었습니다. 엘로힘, 여호와, 엘엘리온(지극히 높은 자), 엘로이(감찰하시는 하나님)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아브라함은 한 가지 이름을 더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출애굽의 절망하고 있는 이 모세에게 나는 ‘엘샤다이’라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다시 한 번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엘 샤다이의 어원적 의미

 

엘 샤다이는 어원적으로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샤다이’라는 말은 여자의 젖가슴을 의미하는 ‘샤드’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어머니의 젖가슴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가장 배부르고 가장 평화스럽습니다. 어머니 젖가슴에 묻혀 있을 때에 늘 배부르고 제일 행복하고 제일 평안한 것이 아닙니까? 애를 낳아서 조선호텔에 갖다 놓은 들 애가 좋아하겠습니까? 아이들에게는 어머니의 젖가슴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기를 낳으면 자기 젖으로 먹여야 합니다. 안 그러면 유방암 같은 병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젖으로 먹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좋은 젖은 다 짜서 버리고 아이는 소젖을 먹이니까 애들이 소처럼 되고 사람에게 병이 생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젖가슴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중합니까? 어머니의 사랑, 따뜻함, 양육의 상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 샤다이’는 젖가슴의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분, 모든 필요를 충분히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All sufficient God)이시라 하는 것입니다. 엘 샤다이, 충분하신 하나님, 그러므로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는 엘 샤다이의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입니다.

 

시편 23편 기자인 다윗의 고백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뭐가 부족하다 뭐가 부족하다 불평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하는 우리는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필요에 따라 공급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엘 샤다이의 두 번째 의미는 ‘샤다드’ ‘능력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엘 샤다이는 전능한 하나님(Almighty God)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무한대의 능력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가 200만을 이끌고 홍해 앞에 섰을 때에도 모세는 두려움이 없었던 것입니다.

 

지팡이를 내미니까 홍해가 갈라지고 물이 벽처럼 되서 마른 땅처럼 홍해를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광야에서 200만을 먹일 것이 없고 입힐 것이 없고 마실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반석을 치면 물이 나오고, 먹을 것이 없으면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오고, 고기가 없으면 메추라기 떼가 내려오고, 신발이 닳지도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40년 닳지를 아니했습니다. 아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능력입니까? 모자람이 없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99세가 되었든, 999세가 되었든, 9999세가 되었든 아브라함이 몇 살이 되었든지 간에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면 전능하신 능력으로 이루신다는 말입니다.

바로왕이 얼마나 강퍅할까? 애굽 군대는 얼마나 많고 무서울까? 이런 것들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엘 샤다이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엘 샤다이의 하나님은 어머니의 젖가슴 같으신 하나님이며 엘 샤다이의 하나님은 능력이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엘 샤다이의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실제적인 의미가 있습니까?

 

엘 샤다이의 실제적 의미

 

첫째로 엘 샤다이의 하나님은 이 세상 어떤 세력보다도 강하고 능력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엘 샤다이의 하나님을 이길 존재는 없습니다. 왜 우상숭배하는 자가 망합니까? 우상들도 신이 있지 않습니까? 그 붙어 있는 신들은 귀신이라 하고 잡신이라 하고 악신이라 하는 열등한 신입니다. 왜 우상숭배하면 망합니까? 그 이유는 열등한 잡신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능력이 없는 신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 신을 참신이라고 섬기는 자들은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그들보다 때문에 더 강한 엘 샤다이의 능력 앞에 패배하고 말뿐입니다. 그들이 살 길은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뿐입니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우상숭배의 잔재를 버려야 합니다.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전 10:14).

 

대한민국이 지난 4-50년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압축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것이 ‘역대 어느 대통령의 공헌이다’ 이야기들을 하기도 하지만, 진실은 우리 백성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기 때문에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망하는 길입니다. 우상에는 악신이 붙어 있고 악신은 열등한 신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안에 나타난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사람에게는 엘 샤다이의 능력이 역사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우상숭배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을 모시고 귀신에게 절합니까? 우리가 절을 하면 하나님이 귀신에게 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집안에 어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우상숭배는 천지가 개벽을 해도, 하늘이 무너져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엘 샤다이의 하나님은 우상과 싸움이 안 되는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그러나 우상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시 115:3-8).

 

두 번째로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 기뻐하시는 뜻은 무엇이든지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서 4장 35절은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 말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바벨론의 왕 느브갓네살이 교만했습니다. 바벨론 제국을 바라보면서 다 내 능력으로 한 것이라며 교만을 떠니까 하나님께서 느브갓네살을 치셨습니다. 명철을 빼앗아갔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들짐승 가운데 거하면서 7년 동안이나 소처럼 풀을 먹고 살았습니다. 때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느브갓네살에게 명철을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그가 제정신이 들고 나서 고백한 말이 바로 방금 살펴본 다니엘서 4장 35절 말씀인 것입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상 뒤에 있는 악신들이 조화를 부리는 것입니다. 우상은 자기 뜻대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악신들은 자기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뻐하신 뜻을 무엇이든지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엘 샤다이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들입니다. 엘 샤다이,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어디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날 때에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사람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도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최저점을 지날지라도 엘 샤다이의 하나님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아니하시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엘 샤다이 하나님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엘 샤다이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먼저 하나님은 모든 만물에게 존경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나는 “엘 샤다이다”(창 17:3)라고 계시하셨을 때에 아브라함은 엎드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납작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교만 떨고 하나님을 꾸짖고 하나님을 가르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내 인생을 왜 이렇게 만드셨습니까? 하나님이 만드셨나요?” 이에 대해 로마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롬 9: 20-21).

 

우리는 하나님을 힐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담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을 때 좀 말리시지 그것도 안 말리시고 우리를 원죄에 빠뜨리십니까?” “하나님 나를 왜 이런 고통에 빠뜨리십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려고 할 때 베드로가 “주여 그리 마옵소서” 하고 꾸짖자 주님이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갈 지어다. 너는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주의 일은 생각하지 아니하는자로다”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엘 샤다이의 하나님은 마땅히 우리가 존경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존경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존경하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업신여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아무리 작은 자라도 업신여길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작은 자라도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들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울 때 피난처가 되십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피난처라고 묘사했습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시 91:1-2).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피할 그늘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울 때 그 그늘로 가면 피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피곤 할 때 그 그늘로 가면 쉼을 얻습니다. 새 사냥꾼의 올무와 극한 염병과 밤의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로부터 하나님은 피난처가 되시는 것입니다. 무능한 우상에 피하는 자는 멸망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보호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경배를 받으셔야 마땅하며 그 분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세 번째로 전능하신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잘한 자에게 반드시 상을 주시고 하나님을 대적한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없어서 상도 못주고 벌도 못주는 우상과는 다르다는 말입니다.

 

“너희로 환란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란으로 갚으시고 환란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6-9). 영원한 형벌, 영벌을 받는 곳은 지옥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고 그 힘의 영광을 떠나는 자들은 지옥의 영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며 반드시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모세처럼 어려운 현실 앞에 좌절하고 혼동을 겪는 분이 계십니까? 세상은 피할 곳이 없습니다. 어디가나 멸망의 길이고 더욱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언약의 백성들에게는 엘 샤다이의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엘 샤다이의 하나님은 때가 되면 나의 필요를 공급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전능의 능력으로 나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것을 믿으시고 하나님께로 피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절대 절명의 위기에서도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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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76 빌립보서 관용과 주의 재림 빌4:4-7  정용섭 목사  2013-01-04 4488
17775 누가복음 일곱가지 큰 죄악 -교만 눅18:9-14  장경동 목사  2010-03-22 4486
17774 사사기 겉모습 보다는 본질을 삿14:1-14  최장환 목사  2012-12-19 4485
17773 룻기 보아스와 룻의 두번째 대화 룻2:11∼13  박상훈 목사  2010-10-27 4484
17772 마태복음 자기를 부인하고 주를 따르라 마16:24  한태완 목사  2012-05-23 4483
17771 마태복음 무화과나무 저주와 기도의 능력 마21:20-22  박신 목사  2012-04-05 4483
17770 시편 소중한 시간을 주님께 시90:12  한태완 목사  2013-01-05 4475
17769 마태복음 온유한 자 마5:1-12  이정원 목사  2013-01-04 4472
17768 설교자료 장춘단성결교회 박순영 목사의 설교 설교비평  정용섭 목사  2008-08-09 4471
17767 마태복음 하늘나라는 좁쌀과 같다’ 마13:31-33  허태수 목사  2013-08-25 4463
17766 로마서 이스라엘 회복의 비밀 롬11:25-27  민병석 목사  2013-06-17 4463
17765 마태복음 가나안 여인 마15:21-28  황성현 목사  2013-01-05 4460
17764 고린도전 우리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을까? 고전12:12-27  허태수 목사  2013-08-25 4457
17763 요한복음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요14:16-20  조용기 목사  2008-10-22 4456
17762 사무엘상 한나의 서원 기도 삼상1:1-2:21  이정수 목사  2010-09-08 4455
17761 민수기 하나님의 군대 file 민10:11-28  이정원 목사  2012-02-13 4454
17760 민수기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민14:26-35  이상호 목사  2011-08-24 4448
17759 창세기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창21:8-21  이한규 목사  2010-10-21 4448
17758 마태복음 애통하는 자 마5:1-12  이정원 목사  2013-01-04 4445
17757 마태복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Ⅰ) 마5:1-12  이정원 목사  2013-01-04 4442
17756 마태복음 좁은 문 마7:13-14  황성현 목사  2013-01-01 4437
17755 요한복음 말과 관련된 3대 교훈 요8:48-59  이한규 목사  2010-11-11 4435
17754 마태복음 표적 마4:7  황성현 목사  2012-10-26 4428
17753 마태복음 포도원 품꿈과 품삯 마20:1-16  정형선 형제  2008-08-09 4428
17752 창세기 의인 한 명을 찾아라 창18:22-33  이상호 목사  2013-08-28 4422
17751 예레미야 예레미야의 기도 렘32:16-25  한태완 목사  2012-11-06 4420
17750 출애굽기 성공하려는 자의 자세 출28:31-43  최장환 목사  2012-11-14 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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