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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양인순 목사............... 조회 수 5263 추천 수 0 2013.01.15 18: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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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6:1-9 
설교자 : 양인순 목사 
참고 : 20050814 성지교회 http://sungjii.or.kr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이 민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온 생애를 불살랐던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1878-1938)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일본이 아니요, 이완용도 아니요,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요. 내가 왜 일본으로 하여금 내 조국에 손톱을 박게 하였으며, 이완용으로 하여금 조국을 팔도록 내버려 두었소? 그러므로 망국(亡國)의 책임자는 곧 나 자신이오. 자손은 조상을 원망하고, 후진은 선배를 원망하고, 민족 불행의 책임을 자기 이외로 돌리려 하니, 왜 남만 책망하시오? 우리 나라가 독립이 못되는 것이 '아! 다 나 때문이로구나!' 하고 가슴 두드리며 뉘우칠 생각은 왜 못하고, 어찌하여 그 놈이 죽일 놈이요, 저 놈이 죽일 놈이라고만 하시오? 진정 내가 죽일 놈이라고 왜들 깨닫지 못하시오?”

 

그러면서 청년학생들에게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 농담이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꿈에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통회(痛悔)하라.”또 안창호 선생님은 나라사랑과 나라의 진정한 독립을 위하여 흥사단 운동을 전개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나는 밥을 먹어도 우리 나라의 독립을 위해 밥을 먹으며, 잠을 자도 우리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잔다.” 그는 자나깨나 나라를 사랑하며 나라를 걱정하시던 민족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옥중 심문 때 일제 관헌에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대한 민족 전체가 대한의 독립을 믿으니 대한이 독립될 것이요, 세계의 공의가 대한의 독립을 원하니 대한의 독립이 될 것이요, 하늘이 대한의 독립을 명하니 대한은 반드시 독립할 것이다.”비록 안창호 선생님은 이 나라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그의 간절한 소원대로 이 민족은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기쁨과 감격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35년간의 일제 식민지의 역사는 처참했습니다. 당시 우리 젊은이들은 중국으로, 러시아로, 동남아로 전쟁터에 끌려갔습니다. 젊은여자들은 군대 위안부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적 노리개감이 되었습니다. 이 땅은 35년동안 철저하게 유린을 당했습니다. 말을 빼앗겼습니다. 천황숭배를 강요당했습니다. 모든 곡식은 공출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무기를 만들기 위해 숟가락 젓가락까지 빼앗아 갔습니다. 교회는 불태워졌고, 신앙인들은 핍박을 당했습니다.

 

1919년 4월 화성에 있는 제암리 교회에서는 23명의 교인들이 무참히 죽임을 당했습니다. 교회 안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 놓았습니다.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불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뜨거움을 참지 못하고 뛰어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23명이 순교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을 가옥 30여채를 불질렀습니다. 당시 기록에의하면 사람의 살이 타는 냄세가 10Km 밖에까지 진동했다고 합니다.

 

당시 우리 민족의 선구자들은 중국에 임시정부를 세우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독립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요 해방이었습니다. 이 때의 상황을 함석헌 옹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아무도 모른 것은 아무도 꾸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꾸미지 않고 온 것은 하늘의 선물이다. 이것은 하늘에서 직접 백성에게 준 해방이다. 아무도 여기 공로를 주장할 중간적인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졌을까? 그 까닭의 하나는 진정한 백성의 해방이 되기 위하여서다. 그담 또 하나는 백성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기 위하여서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온 해방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그것은 우리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 민족이 이런 역사의 의미를 바로 깨달아 알았다면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이스라엘 민족처럼 하나님의 역사로 보지 못하고 단순히 운명 혹은 숙명으로 돌려온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역사의식이 없다는 말입니다. 역사의식이란 하나님을 역사의 주권자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목표를 가지시고 이 역사를 이끌고 계신다는 믿음입니다. 역사의식이 없는 민족은 도덕 의식도 약할 뿐 아니라 역사에 대한 책임 의식이 없으며, 또한 역사의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게 마련입니다. 역사를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진정한 역사의식이 생기고, 그 속에서 도덕적인 교훈과 역사의 방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해방 60주년이 되는 뜻깊은 광복절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전쟁과 여러 차례의 혁명을 거듭하면서 고난의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그 모든 역사의 교훈은 하나님께서 우리로하여금 이 민족의 역사를 새롭게 보도록 촉구하는 각성제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뼈아픈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 보며, 이 민족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신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향한다면 더 놀라운 역사를 이룩해 나가는 위대한 민족이 될 것을 믿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은 애굽의 압제아래 신음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430년동안 애굽의 종살이를 하고 있는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모세를 부르십니다. 바로 왕 앞에 나아가 이 민족을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갈수 있도록 요청을 합니다. 그러나 강퍅해진 바로는 오히려 더 억압하고 착취를 합니다. 백성들은 모세를 향하여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괜히 종에서 풀어달라고 요청해서 미움을 받게되고, 죽을 고생만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때 모세는 하나님께 다시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부르짖습니다.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으로 학대를 당케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함으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치 하니하시나이다.”(출5:22-23)

 

모세가 하나님께 푸념을 늘어 놓고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 오늘 본문 내용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분명한 구원의 계획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나는 여호와로라.” 여호와는 자존자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이 아니라 태초부터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전능하신 하나님’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시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라고 합니다.

 

그리고 5절에서는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임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십니다.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이 400여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약속하셨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약속을 잃어버렸지만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만약 하나님의 약속이 확실하지 않다면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억압받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바로의 학대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건져내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키는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인줄 너희가 알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를 당신의 친백성으로 삼으시고, 모든 무거운 짐에서 자유케하셔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우리의 사랑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신실합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5절 말씀을 보십시오."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소리를 내가 듣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3장 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과 아픔을 주실까요? 왜 우리의 삶 속에는 고통과 실패와 눈물의 아픔이 항상 존재할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시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아픔과 고통의 눈물을 통하여 우리를 향하신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고난이 없는 편안한 삶을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아이 하나가 길에서 뛰어 놀다가 넘어져서 무릎에서 피가 납니다. 약을 발라 주는 엄마에게 아이가 울면서 말합니다. "엄마! 온 세상이 스폰지로 되어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넘어져도 안 다칠 것 아네요?" 그때 엄마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온 세상이 스폰지로 되어있으면 저 꽃과 나무들은 어디서 자랄 수 있겠니? 농부는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지? 우리 자동차는 어디로 다니면 좋을까?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생을 살다 보면 행복과 기쁨의 시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과 실패의 늪에 빠질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철부지 아이처럼 실패 없는, 고난 없는 세상을 상상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쿠션 좋은 스폰지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때로 이런저런 고난과 실패들이 우리의 인생 속으로 파고 들어와 상처를 입히고 삶을 위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고난과 실패를 부정적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고난과 실패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고난과 실패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어 주고, 자신을 재발견케 하여 재도약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신앙의 사람들은 고난과 실패를 통해서 낙담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성찰하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언제나 우리 인생 앞에 열려져 있던 하나의 문이 닫혀질 때 하나님은 또 다른 인생의 문을 우리를 향하여 열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인생의 고난과 실패는 정지와 멈춤의 신호가 아니라 방향 전환의 신호일 뿐입니다.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새롭게 시작하고 도전하라는 싸인입니다.

 

"도스토예스프스키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간질병과 사형수의 고통이었습니다. 생텍쥐페리를 위대하게 만든 것도 그를 일생 동안 대기 발령자로 살아가게 한 평가 절하의 고통이었습니다. 베토벤을 위대하게 만든 것도 끊임없는 여인들과의 실연과 청신경 마비라는 음악가 최대의 고통이었습니다. 링컨을 위대한 미국의 최고 대통령이 되게 한 것은 끊임없는 질병과 낙선이라는 불행의 그림자였습니다. 사도바울이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쓰임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찌르는 육체의 가시였습니다.

 

고통은 불행이나 불운이 결코 아닙니다. 고통이란 도리어 행복과 은총을 위한 가장 아름다운 번제물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지나치게 행복하다면 그것은 곧 불행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지나치게 불행하다면 그것은 곧 행복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이라는 시험을 통해서 자아를 불사를 용광로 속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됩니다. 그 용광로 속에서 하나님의 손에 의해 아름다운 모습으로 새롭게 빚어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두운 인생의 길을 걸어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랑과 관심으로 주목하시고 다가오십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고통을 아십니다. 우리의 슬픔도 아십니다. 우리가 당한 어려움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십니다. 근심하고 있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픔에 같이 아파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녀의 아픔을 방관하시거나 즐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자식아 아플 때 부모가 더 잠못이루고 아픈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엘리 위젤은 그의 책 “흑야(Night)”에서 죽음의 수용소 아우쉬비츠의 일화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어린 소년이 사소한 수용소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모든 수용자들 앞에서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그의 몸이 밧줄에 매달렸을 때 위젤은 누군가가 묻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그런데 그때 위젤의 마음속에는 이러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가 어디에 계시냐고? 그는 바로 여기에, 지금 이 교수대에 저 소년과 함께 매달려 계신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그분은 고통당하는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고통당하고 계신다는 영감의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아십니다. 함께 고통을 당하고 계십니다.

 

'나의 등뒤에서'라는 복음성가를 지은 최용덕 집사님이란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참 좋은 신앙인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생활의 실패로 인하여 영적인 침체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영적인 침체가 점점 깊어지더니 좌절감이 몰려왔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나를 떠나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1984년 9월 어느 날 새벽이었습니다. 그날도 고민과 좌절가운데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몸부림치다가 새벽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 나를 버리셨나이까?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애타게 기도하다가 젖은 눈으로 하늘을 우러러보았습니다.

 

그 때 최용덕 집사님은 자기의 등뒤에서 안타까이 자기를 바라보고 계신 하나님을 환상가운데 보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음성이 들리는데 "나는 너를 떠난 적이 없었느니라. 네가 나를 등지고 도망가는 그 때에도 나는 너에게서 한번도 눈길을 뗀 적이 없었느니라. 네가 실패하여 울고 있을 때에도 나는 네가 다시 승리하고 일어서리라 기대하고 언제나 잔잔한 미소로 너를 바라보고 있었노라."하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아! 그랬군요 하나님! 그랬군요 하나님! 흐르는 눈물을 두 주먹으로 닦아 내리며 집사님은 가사를 써내려 가기 시작했고, 피아노를 두드리며 곡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노래가 바로 '나의 등뒤에서'라는 복음성가입니다.

 

1.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 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 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2.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평안히 길을 갈 땐 보이지 않아도

  지치고 곤하여 넘어질 때면 다가와 손 내미시네

  OO야 일어나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혹시 고난가운데서 실패하여 좌절하신 분이 계십니까? 고난과 실패는 결코 인생의 낭비가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실패는 새로운 출발이 될 뿐입니다. 실패는 포기하라는 신호가 아닙니다. 방향을 바꾸어 새롭게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실패는 무능력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전능자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실패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버리셨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당신을 향한 더 좋은 생각이 하나님의 마음에 있음을 의미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학대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구원하신 것처럼 이 민족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60년전 해방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 가운데 아직도 눈물과 고통 속에 신음하는 분이 계십니까? 지금이 바로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돌릴 최고의 기회입니다. 하나님은 한쪽문이 닫히면 다른 문을 열어 놓고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더 큰 사랑으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여러분의 모든 아픔과 고통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하나님의 품으로 달려나가는 은총의 기회입니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고 사랑을 베푸시는 주님께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립시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주만 바라 볼찌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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