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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왕가의 권력쟁투

사무엘하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487 추천 수 0 2013.01.17 23: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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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삼하13:1-6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2.4.6 

다윗 왕가의 권력쟁투 1
삼하13:1-6


교회에 오래 다닌 교우들이라 해도 구약성서의 인물들에 대해서 바로 아는 게 그리 만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인물이 놓여 있는 역사적인 배경과 환경을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오늘 나에게 유익한 대목만’ 골라서 편식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중에 한 사람인 ‘다윗 왕’에 얽힌 부정적인 개인사와 가정사를 약간 만 들춰보려고 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압살롬의 누이 다말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13장에는 주로 암논이라는 이름과 다말, 압살롬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모두 다윗의 자녀들입니다. 물론 배가 다른 이복형제들이지만 말입니다. 삼하 3장에 보면 다윗이 헤브론에 살 때 낳은 자녀들의 명단이 나오는데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임이라는 여자에게서 낳은 아들이 암논입니다. 다윗의 장자죠. 그 다음에는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에게서 길르압을 낳았지만 일찍 죽었습니다. 셋째 부인인 그슬 왕 달매의 딸인 마이가에게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압살롬이고 서열 3위입니다. 넷째 부인인 학깃에게서 아들을 낳고 아도니아 라고 짓습니다. 다섯째 부인 아비달에게서 스바댜를 낳았습니다. 여섯째 마누라 에글라에게서 아드라암을 낳은 다음에, 예루살렘으로 건너와서 다시 부인을 얻는데 그가 우리가 잘 아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입니다. 거기서 낳은 아들이 바로 솔로몬이니, 아들로는 일곱째 아들이고, 왕위 서열 7위에 해당합니다.

사실 한 어미 밑에 아들 한 명씩만 기록하고 있지만, 다윗의 이런 생식능력으로 보아 딱 한명씩만 낳았을까요? 아닐 겁니다. 그저 상속자만 기록을 했겠지요.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왕위서열 2위인 길르앗은 일찍 명단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어릴 때 죽었는지 아니면 왕위 계승자로서 결격사유가 있어서 뺐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아무튼 무슨 일이 아주 복잡하게 일어난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여러 명의 아들 중에 유독 세 번째 아들인 [압살롬]이 왕의 계승자로 언급이 됩니다. 그리고 그는 특별한 환경 속에 살게 됩니다. 14:25에 보면 그는 아주 잘 생겼습니다.

여러 아들 중에 첫 째 아들인 암논을 제치고 셋째가 다윗왕의 왕통을 이어 받게 되었을 때 첫째 아들 암논의 마음은 어떨까요?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첫째 아들 암논이 그의 이복동생인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강간하는 것입니다. 강간이 일어난 상황은 중계하진 않겠습니다. 그건 여러분이 읽어보셔도 얼마든지 그림이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을 모사한 사람은 요나답이라는 인물인데, 이 사람은 암논의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압살롬의 사람도 아닙니다. 13:32-33에 보면 이 일로 인해서 분노한 압살롬이 또 계략을 꾸며서 결국 제일 큰 형인 암논, 자기의 누이를 강간한 암논을 죽입니다. 그 때 이 요나답이라는 인물이 냉큼 다윗에게로 가서 그 소식을 아주 냉정하게 보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적확하게 말하면 이 요나답이라는 인물은 다윗의 충복으로 다윗 아들들 간에 벌어지는 권력쟁투를 조정하는, 다윗왕의 의중을 따라 왕을 세워가는 책사와 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요나답의 행동거지로 볼 때 다윗왕의 입장에서는 첫째 암논도 셋째 압살롬도 모두 마음에 두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그게 다윗의 마음이던지 아니면 다윗을 조정하는 다른 이의 의중이던지 여하간, 이 사건 속에 또 다른 음모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다시 드리면, 다윗왕이나 그 주변인물들이 요나답이라는 거간꾼을 내세워 첫째와 둘째 아들들이 치명적인 사건에 말려들도록 해서 일시에 둘을 제거해 버리려는 술책이 엿 보인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암논이 압살롬의 누이를 강간 하도록 내버려 둔 것 같은 정황이 엿보이고, 또 그 일로 인해서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도록 방치한 흔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극적인 일들이 벌어졌는데도 다윗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습니다(삼하13:22).

아무튼 다윗의 의중이 모호한 가운데 사태는 벌어졌고, 그 일로 인하여 왕위 계승서열 1-3번이 일거에 불손한 사건에 휘말리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명확하게 이 사건을 보면 이 사건에 얽힌 이들은 모두 피해자에 해당됩니다.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라는 구분 없이 모두 손해만 보고 끝난 사건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무슨 일이든 그 일로 인해 손해를 본 사람이 있으면 이득을 보는 사람이 이어야 하는데 여기선 그런 법칙이 예외 됩니다.  

이상에서 나는 다말 강간 사건이 단지 암논이라는 다윗의 첫째 아들이 이복 여동생을 강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말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왕실 내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권력 쟁투의 양상인 것입니다. 다윗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여도 보면 이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걸 보려고 하지 않은 채 신앙생활을 해 온 것입니다. 아주 이기적인 해석만을 하면서 말입니다.
삼하13:20에 보면, 그렇게 정치적인 희생양이 된 다말은 그 이후로 오라버니 압살롬의 집에서 처량하게 살았다고 전해질 뿐입니다.

이제 다말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읽은 본문성서의 주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야를 전환해야 합니다. 다말, 압살롬, 암논에게 멈추어 있는 시선을 바꿔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뭔가를 암시하고 지시하는 주변적인 사건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초점을 맞춰야 하나요?

그렇습니다. 이 사건을 이리저리 조종한 요나답이라는 인물과, 전면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요나답을 통해 배후의 인물로 지목되는 다윗왕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우리의 시선을 이들에게 고정해 봅시다. 요나답이 다윗왕에게 절대 충성을 다하는 충신중의 충신이라고 한다면, 그의 술책과 정보력은 다윗의 의중이나 이해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아들들이 벌인 일들은 다윗에게 유리하도록 유도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가운데 셋째아들인 압살롬이 일찍이 왕위계승자로 점 찍혀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생겼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 그 다음의 여러 형제들, 특히 맏아들인 암논으로서는 여간 불쾌한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디 그 뿐일까요? 왕위를 노리는 여러 아들들, 그의 어미들 또한 불꽃 뛰는 쟁투가 벌어졌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다가 다윗왕은 다윗왕대로 다른 생각을 두고 있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대결구도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죠. 압살롬은 앞에서도 본 것처럼 잘 생겼는데다가, 그의 어미인 그술 왕국이 압살롬의 외척 노릇을 하게 된다면 이 또한 다윗으로서는 골치 아픈 일입니다. 잘난 아들 압살롬이 다윗왕을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요나답과 다윗은 이걸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거기다가 막내로 태어난 솔로몬의 어미 밧세바, 그 여자를 우리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인데, 이 여인 또한 살아남기 위해 궁중의 권력쟁투에 끼어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밧세바의 처신을 본다면 그렇습니다. 그러면 아마 다윗왕은 이 여인의 간교한 전략에 시달리고 있었거나, 마음을 솔로몬에게 빼앗겼을 개연성이 큽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방책으로 압살롬을 왕위경쟁에서 탈락시키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말 강간 사건의 배후에는 압살롬이 표적이 되고, 솔로몬의 배후가 암약하는 복잡한 정치적인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바로 우리가 우러러 보고 있는 다윗왕인 것입니다. 그런데요 그렇게 거세를 하려고 했던 압살롬은 영리하게도 살아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후 압살롬의 권력은 더욱 커집니다. 결국 삼하 16:21-22에 압살롬은 반란을 일으켜 다윗왕을 도망하게 만듭니다. 다윗이 걱정하던 일들이 현실로 이루어 진 것입니다. 부자지간의, 형제간의 권력쟁투였던 것입니다. 이게 다윗의 면면입니다.

이런 아름답지 않은 다윗왕조사가 성서 속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회복’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뭡니까?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하비루들, 가나안 땅에서 종노릇하던 하층민들이 뭉쳐서 만들어진 공동체, 새로운 나라의 이름이 아니었습니까? 하나님만이 주인이 되고, 모든 사람은 서로에게 평등하며, 누가누구보다 더 많은 재물과 땅을 소유하므로 지배와 피지배의 불균형이 없이 화목했던 ‘하나님 나라’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나라의 유지를 위해 평등법인 ‘십계명’을 하늘로부터 받았고, 그것이 실현되는 과정에서도 발생하는 불요불급한 불균형을 극복하기위해 시형제 결혼제도, 안식년, 희년의 제도를 만들어 물질과 정신의 평등을 이루던 이들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사울 왕 이후 다윗에 이르러 극심하게 이 모든 하늘의 제도와 종교적인 가치관들이 파괴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출애굽과 광야생활의 모세를 통해 성취된 ‘하나님의 나라’가 ‘다윗의 왕국’로 바뀐 이후에 벌어지는 참혹한 장면이 고스란히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오늘 우리에게 이 역사적인 사건들은 어떤 의미와, 신앙적 교훈이 있는 것일까요?

 

다윗왕가의 권력쟁투 2
열상1:11-14

두 주를 연속으로 다른 설교를 듣느라 약간 맥이 끊긴 감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수요일 성서강좌와 맞물려 구약성서의 흐름을 짚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는 다윗왕의 자녀들인 암논과 압살롬에게 일어난 불행한 사건들을 보면서 과연 이 일들이 누구에게서 모의되고, 어떻게 진행된 사건인지를 알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늘 막연하게 추앙하고 있는 ‘다윗’이 결코 야훼신앙의 전통을 이어받은 착한, 모세와 같은 존재는 아니리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었죠.

오늘은 여러분이 좀 더 잘 아는 사건 속에서 다윗왕의 면면을 읽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 예루살렘으로 다윗이 옮겨와서 얻은 7번째 아들 솔로몬의 엄마와 관계된 이야기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밧세바! 우리는 그녀를 마태복음이 전하는 예수의 족보에서(마1:1-17)먼저 만나게 됩니다. 여기에는 네 명의여자가 등장을 하죠. 라합, 룻, 밧세바, 마리아가 그녀들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매춘녀이자 종족의 배신자, 이방인이자 과부, 남편을 죽인 상관의 아내가 된 여자, 혼전 임신한 여자라는 사회적인 굴레를 쓰고 있는 여자들입니다. 이들은 일반적인 사회 규범 속에서는 아름답게 포장되기 어려운 여자들입니다. 그러나 마리아 외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어서 그녀들에 대해 정확한 이해와 해석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마도 후대의 기록자들은 예수와 다윗을 어떻게든 연결해 보려고 이런 무리수를 두었던 듯싶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밧세바를 말할 때, 예수의 족보에 들어있는 여인으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밧세바는 무엇입니까?

우리아의 아내 정도거나, 목욕하는 장면을 다윗에게 들켜 왕후가 된 여인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로 기억한다는 것은 ‘비운에 숨져간 그의 남편의 비극적인 운명과 맞닿아 있는 여자’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왕권에서는 결코 이 여인이 그렇게 비운의 여자거나, 골방에 갇혀 일평생을 죽은 남편에 대한 죄의식으로 어두운 인생을 지낸 불운한 여인이 아닙니다. 그녀는 당당하게 다윗의 왕통을 승계한 솔로몬의 어미로 존재합니다. 그 험난한 권력투쟁에서 살아남아 아들을 왕의 자리에 앉힌 왕후인 것입니다. 밧세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찌그러진 인생을 산 여인이 아닙니다.

성서는 이 여인에 얽힌 두 개의 이야기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녀가 다윗의 후궁으로 입적하여 솔로몬을 출산한 경위를 기록한 것입니다(삼하11:1-12). 다른 하나는 그이 아들 솔로몬이 어떻게 그 험난한 세자들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하여 왕으로 즉위 했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열상1:1-2, 25장).

먼저 첫 번째 이야기를 봅시다. 삼하11:1절에서 12:25절까지를 재현하면 이렇게 됩니다.

당시는 다윗이 암몬을 정벌하려고 전쟁을 벌였을 때입니다. 그런데 삼하 10:6-19에서 보듯이 시리아 다머스커스의 소바 왕국의 왕 하닷에셀이 다윗을 견제하려고 이 전쟁에 개입합니다. 그리하여 전쟁의 상황이 만만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10장과 11장 사이의 선후 관계를 추정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다윗의 군대는 치열한 전투를 거듭한 끝에 시리아 용병들을 격파했고 암몬을 정복하는데 성공합니다.

우리아는 헷 족속 출신의 용병대장입니다. 본시 이스라엘의 야훼 전통은 왕이 직접 전쟁에 나가야 했지만, 다윗은 이미 가나안의 왕권으로 바꿔 놓았기 때문에 부하들만 전쟁에 보내고 그는 왕궁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아가 전장에 있는 동안, 그의 아내 밧세바는 생리가 끝난 다음에 정결 의례를 치루고 있을 때 옥상을 거닐 던 다윗의 눈에 띕니다(삼상11:2-4). 여기서 우리는 밧세바가  다윗의 눈에 들려고 모종의 의도된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있는 증거를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성서 본문은 다윗왕의 즉흥적인 욕정을 불러일으킨 밧세바의 목욕장면이 우연인 것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그러나 성서가 그렇게 증언한다고 하더라도 밧세바의 행동이 계획된 것이었다는 가정을 배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밧세바의 행동을 우연인 것으로 느낄 수 있다면, 반대로 우연이 아니라고 느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 이후의 일은 그렇고 그렇게 흘러갑니다. 아이를 가졌고, 그걸 은폐하려고 우리아를 전쟁터로 다시 내보냅니다. 그런데요, 그 일이 있은 다음에 밧세바라는 여인이 한 처신을 보면 그녀의 처음 행동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어색한 구석이 있습니다. 남편이 전쟁에 끌려가 죽었는데도 밧세바는 분노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다윗을 거부하거나 항거하지 않습니다. 은근슬쩍 수용할 뿐만 아니라 적극 그 기회를 활용합니다.

사실 당시의 군인의 아내란 그리 행복한 운명을 선사받은 처지가 아닙니다. 끈임 없이 벌어지는 왕의 전쟁에 참전해야 하는 남편은 목숨을 언제나 주인의 손에 담보로 걸어 놓은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니 그런 이들의 아내가 무슨 행복감을 가질 수 있었겠어요. 삶 그 자체가 불안정하고 불안했습니다. 더구나 전쟁을 앞두면 장군의 부인들은 부정을 탈까봐 엄격히 몸을 절제해야 했으니, 그녀의 넘치는 욕구는 돌파구가 없었을 것이고, 욕망의 통제는 병이 되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녀의 나이는 많아야 20대고 대략은 10대 후반이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권태로운 생이었을까요? 그러니 얼마쯤은 현실에서 벗어날 날을, 일을 기대하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적극적으로 그런 일을 꾸밀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가 이방인이자 군인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도 그녀의 처지를 짐작케 합니다. 당시 대부분의 가족들은 가난에 못 이겨 딸들을 팔았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이방인 용병이라는 것이 밧세바의 개인적이고 가족적인 상황을 짐작케 해줍니다. 아니면 군인의 눈에 들 만큼 그녀의 미모가 뛰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다윗의 눈에 들었다는, 그리고 지속적으로 밧세바의 이야기에 다윗이 귀를 기울였다는 사실에 우리는 ‘밧세바의 미모론’에 무게를 두게 됩니다.

여하튼, 그런 그녀가 권태로워 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그녀를 찾게 됩니다. 이 시대도 돈 많은 이들이나 권력 있는 이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여자들이 많다고 하는 세상이니, 다윗 당시의 상황은 달리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그가 왕의 유혹을 받은 것이고, 그녀는 그 유혹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월경 직후라서 그녀는 곧 임신을 합니다. 당황한 다윗은 그의 남편을 사지로 내 보내기로 합니다. 그리고 남편은 죽습니다. 곡하는 일정 기간을 끝내고 곧 왕궁으로 밧세바를 데리고 옵니다(삼상11:27). 안전가옥 담당이었던 요압의 주도면밀한 작전에도 불구하고 이 소식이 널리 퍼집니다. 선지자 나단은 아주 공격적으로 다윗의 잘못을 비난하게 됩니다. 그만큼 다윗이 밧세바를 아내로 취하는 일이 단순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아주 난처한 상황에 빠집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밧세바는 아무런 비난도 받지 않습니다. 왕이 곤궁에 처해졌는데, 다윗과는 상대할 수도 없는 신분의 밧세바는 아무 상처도 받지 않고 살아남습니다. 그러면서 둘째아들을 낳습니다. 첫째 아이는 죽죠.  

밧세바에 대한 다음 이야기는 열와기상에 나오는 솔로몬의 등장에서입니다.

다윗은 이제 늙어서 직무를 처리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권력 암투로 죽은 윗대의 아들들, 암논, 압살롬을 빼면, 생존한 왕위계승자는 아도니야입니다. 아도니야는 군대 사령관이 요압과 사제인 아비아달의 응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이들이 아도니야파입니다. 그는 왕실이나 대다수 고관들의 후광을 등에 업었을 뿐만 아니라, 고관들과 정무를 공동으로 담당하는 일종의 공동 통치자였습니다. 열왕기상 1:5-7에 보면 나옵니다. 아도니야는 지파동맹적 전통과 군주제적 대안을 절충하는 정치철학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주류인 아도니야가 왕의 후계자로 부상했을 때, 그들과는 반대의 세력이 되었던 ‘비주류’들은 사독 제사장, 외인부대 사령관인 브나야, 선지자 나단 같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제사장 사독은 아비아달과 경쟁관계에 있었던 사제이고, 브나야 장군은 요압의 2인자로 외인부대를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나단은 선지자로 다윗의 측근이었지만 비주류에 밀려나 있었습니다.

바로 이 비주류 인사들이 아도니야의 반대세력으로 뭉쳐서 솔로몬을 옹위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 시점에 누가 등장하는가하면, 밧세바가 등장을 합니다. 열상1:11-14에 보면 나단과 밧세바가 이 비주류 세력들을 다윗에게 연결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근위대 역할을 했던 용병사령관 브나야와 사독은 군대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늙어서 사리 판단이 흐려진 다윗에게서 이들이 칙령을 받아냅니다. 솔로몬 일파는 밧세바, 나단, 사독, 브나야입니다. 이들은 이것을 명분 삼아서 대신들의 검증도 받지 않고, 지방 장로들의 추인도 없이 솔로몬의 왕위 승계를 선포해 버린 것입니다. 마치 야곱이 이삭을 속이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군부의 힘을 빌려 왕실 쿠테타를 일으킵니다(열상1:15-40). 이로써 왕위 쟁탈전이 끝이 나고 아도니야 일파는 제거됩니다.

아도니야와 같은 전통주의자들이 거세된 탓에, 다윗 왕국, 솔로몬 왕국은 보다 더 강력한 군주국가로 이행을 합니다. 이것이 열왕기 상에 등장하는 솔로몬의 승계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배후 세력으로 비춰지는 이가 바로 밧세바인 것입니다.

이제 다시 밧세바에게 집중해 보겠습니다.

다윗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여인, 그러나 그녀도 세월을 거스를 수 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그녀도 뒷방으로 나앉는 신세가 되었겠지요. 사랑도 욕망도 왕의 관심도 점점 사르러들고 생존해야하는 그녀에게 유일한 희망은 솔로몬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사람이 필요했고, 다윗과 가까웠던 나단을 자기의 사람으로 포섭할 수 있었습니다. 아도니아가 즉위하면 모든 게 끝장입니다. 자신의 시대와 아들의 시대가 끝나는 겁니다. 열상1:11-14에 보면, 솔로몬을 옹립하는 궁중 쿠테타는 선지자 나단이 밧세바에게 귀 뜸해 줌으로 시작이 됩니다.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욍이 전에 저더러 네 아들을 왕이 되게 해 주겠다고 하셨는데 지금 아도니야가 왕이 되어가니 어쩐 일이란 말입니까? 이대로 두고 보시고만 있으실 겁니까?”그러면 나단도 쫓아 들어가 그게 참말이라고 거들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야곱이 그 어미와 짜고 늙은 아비를 속이는 장면과 흡사합니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 어쨌는지는 우리가 그의 침실에 있지 않아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결국 밧세바는 나단의 말대로 늙은 다윗에게로 가서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다윗에게 말 합니다.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아들 압살롬과 암몬까지 제거했던 다윗 왕으로서는 참으로 시시한 말 한마디에 그만 왕위를 솔로몬에게 넘겨  주었다는 것입니다. 결

과적으로 밧세바는 성서의 표현대로라면 늙어 찌그러져 살다가 나단의 말 같지도 않은 이 한마디에 일약 왕모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금새 이해가 되십니까? 아니면 궁중 사극의 그 술수와 모함과 담합의 그림이 보이십니까? 이 다윗왕조사의 주인공이 바로 밧세바라는 여인인 것입니다. 밧세바라는 여인은 별반 한 일이 없습니다. 옷 벗고 목욕 한 번 잘 한 것으로 시작해서, 소리 소문 없이 살다가 어느 순간에 왕모의 자리에 올라 길이길이 이름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밧세바에 대해 우리는 아는 게 없습니다. 그녀가 한 일도, 성품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서 속에 면면히 숨어있는 장면들은 그녀가 결코 수동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간 여인의 전형인 것입니다. 이렇게 그녀가 착하지만은 않다는 것은 전형적인 ‘요부’에 해당한다는 뜻이고, ‘팜므파탈’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다윗 왕실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었던 여인인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야훼전통을 무시하고 군주국가를 이룩했던 다윗왕은 결국 이렇게 지배적인 인습적 가치의 틀을 견고하게 하면서 막을 내립니다. 이 틈바구니에 ‘하나님’의 통치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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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6 누가복음 그리고 전도 눅12:2-3  허태수 목사  2013-01-17 2019
8155 민수기 성서를 넘어서서 성서로! [1] 민27:1-5  허태수 목사  2013-01-17 1955
8154 사사기 사사 입다를 둘러싼 어둠 삿12:5-6  허태수 목사  2013-01-17 3442
8153 사사기 예수의 눈으로 삼손 보기 삿14:5  허태수 목사  2013-01-17 2702
8152 출애굽기 왜 모세인가? 출2:11-15  허태수 목사  2013-01-17 2096
8151 창세기 야곱을 통해 알아야 되는 것 창12:1-3  허태수 목사  2013-01-17 2146
8150 창세기 하나님의 본심은 무엇일까? 창3:3  허태수 목사  2013-01-17 1979
8149 창세기 이제는 창조신앙이어야 합니다. 창1:28  허태수 목사  2013-01-17 1963
8148 요엘 꿈과 비전을 가지세요 욜2:28  한태완 목사  2013-01-17 2946
8147 출애굽기 세 번 반복 출6:2-9  조주희 목사  2013-01-16 1797
8146 출애굽기 나는 여호와로라 출6:2-9  조주희 목사  2013-01-16 1993
8145 출애굽기 나는 여호와라 출6:1-13  연재선 목사  2013-01-16 1769
8144 출애굽기 상처보지 말고 주님을 보라 출6:2-9  양의섭 목사  2013-01-16 2495
8143 출애굽기 명령을 받은 자 출6:13~7:7  곽면근 목사  2013-01-16 1588
8142 출애굽기 제사 중심의 삶 출6:14-30  연재선 목사  2013-01-16 1806
8141 출애굽기 하게끔 역사하시는 하나님 출6:28-77  최세창 목사  2013-01-16 1878
8140 출애굽기 고난을 축복으로(광복기념주일) 출6:2-8  김희수 목사  2013-01-16 2300
8139 출애굽기 기억하시는 하나님 출6:2-8  양의섭 목사  2013-01-16 2290
8138 출애굽기 성공! 도전하는 자의 몫입니다. 출6:28-7:7  김종민 목사  2013-01-16 1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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