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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따라간사람들] 보니페이스

영성묵상훈련 오명희 전도사............... 조회 수 2519 추천 수 0 2013.01.19 00: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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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inbora.com/bbs/board.php?bo_table=board13&wr_id=87&page=62 

선교의 불꽃을 태운, 독일의 사도 보니페이스

콘스탄틴의 313년 칙령 이후 기독교는 박해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점차로 국교회 시대로 접어들면서 박해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지금까지 교회 밖에서 교회를 위협했던 교회의 적들이 이제는 교회 안으로 들어와 내부적인 공격을 시작하였다. 그것은 교회의 생명력을 약화시키고 믿음의 순수성과 예배의 소박성을 차차로 무너뜨리면서 교회의 타락을 가중시켰다. 상대적으로 이러한 일들에 대한 반응으로 선교에 대한 열정과 활동이 쇠퇴해 갔다. 당시 세계정세는 진정 선교가 필요한 때였다.

 

동북쪽으로는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급기야 476년 서로마의 멸망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한편 서북쪽에서는 바이킹족의 침입으로 기독교 국가였던 연안의 많은 나라들이 회교국으로 전환되었다. 결국 지중해 지역 전체가 이슬람으로 넘어갈 무서운 손실에 직면하였다.

 

이에 영국의 교회는 유럽을 복음화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파송된 영국 선교사들에 의해 독일 국민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많은 수도원과 교회들이 세워졌다. 그러나 이런 이면에는 초기 선교사들의 피나는 수고와 평생을 바친 헌신이 뒤따랐다.

어린시절부터 꿈꾸었던 선교사

 

중앙 유럽의 위대한 선교사로서 독일의 사도라고 부르는 윈프리스(보니페이스라는 이름은 나중에 교황이 지어준 이름이다)는 680년에 영국 데본의 크레디톤에서 귀족 가문의 그리스도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아주 어릴 때 스스로 자원하여 엑서터에 있는 수도원에 들어간 그는 선교사가 되기를 결심했다. 그는 몹시 호감이 갈 뿐 아니라 아주 똑똑한 생도였다. 열네살 때 이미 그 수도원 정회원으로 인정받을 만큼. 22세 때 엑서터에서 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되어 선진 학문을 배우기 위해 윈체스터 근처에 있는 네슬링으로 갔다. 거기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유명해졌다. 처음에는 집사로 30세에는 사제가 되었다.

715년 35세 때 그는 대수도원장에게 자신의 소명을 필역했다. 해외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겠노라고. 그러나 동료 수사들은 크게 당황하며 만류를 하였다. 훌륭한 학자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였다. 그는 여러 해에 걸쳐서 윌리브로드 등 선교사들의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하나님께서 자기도 복음전파에 일익을 담당하기 원하신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몇 달간 기도하며 수도사들을 설득하였다. 마침내 그의 끊임없는 기도와 열정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들의 축복을 받으며 그토록 바라던 선교 길에 올랐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곳에는 엄청난 장애물이 있었다. 그는 프리질랜드 왕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아무런 모험도 감행치 못했다. 낙심한 그는 마치 패잔병처럼 영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첫 번째 선교여행은 실패였다.

 

본국에서는 그에게 수도원장의 자리를 주고 안주를 권했다. 그러나 선교의 뜻을 버리지 않았다. 새로 선출된 그레고리 2세가 그의 소문을 듣고 로마로 찾아 왔다. 교황은 그에게 한눈에 매료되었고, 깊은 감화를 받았다. 교황은 독일을 복음화하려는 그의 열심과 하나님 나라를 향한 그의 불타는 사랑을 보았다. 718년 12월 마침내 교황의 재가를 받았다. 원래 그의 이름인 윈프리스를 보니페이스로 개명시켜 주었다. 그는 프리지아(네델란드)로 파송되어, 윌리브로드와 함께 2년 간 머물면서 사역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의 언어를 익힌 후 또 다른 곳으로 전도여행을 시작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독일을 복음화

 

보니페이스는 독일로 들어가 12년 동안 그곳에서 사역하면서 많은 이교도들을 개종시켰다. 사역이 진척되면서 교회들이 세워지고 믿음이 재확립되었으며 성직 서임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는 담대하기 이를 데 없었다. 대륙 안쪽 깊숙한 곳 헷세에까지 들어가 과감한 선교활동을 벌였다. 교황은 그에게 현지의 주교 자리를 수여했다. 양떼들을 더 잘 보살피고 격려해주라는 뜻에서였다.

헷세에서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헷세에는 우레의 신 토르를 위한 매우 오래된 참나무를 마을 사람들이 섬기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한 사람의 회심자도 생기지 않았다. 보니페이스는 독일민족의 전통을 제거할 때만이 진정한 선교가 이루어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는 담대히 그들을 꾸짖었다. “당장 그만두시오. 나무를 숭배하는 것은 하나님께 크나큰 죄입니다.” 그리고 그는 외쳤다. “나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이 악한 우상을 쓰러뜨리겠소.” 힘껏 도끼를 내리쳤다. 이 장면을 보고 이교도들은 무서워 벌벌 떨었다. 토르신이 당장 그를 쳐 죽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강한 한 줄기의 바람이 그 나무를 네 부분으로 잘라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아무런 탈도 생기지 않았다. 이 광경을 목격한 수많은 사람이 기독교로 개종하고, 세례를 받으러 그에게 나왔다. 그 후 쓰러진 나무토막들을 주워 바로 그 장소에 교회를 세웠다. 이곳은 훗날 독일의 교회를 위해 큰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 후 여러 해 동안은 선교여행을 다녔다. 특히 성장하고 있는 독일교회를 조직하고 튼튼히 하였다. 이따금씩 믿음에서 떠났거나 지하로 숨어버린 기존 그리스도인 그룹들을 만나면 믿음에 굳게 서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그들 자신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그의 사역은 영국에서 선교사들의 관심을 끌었다. 많은 수도사와 수녀들이 그와 함께 일하고 싶어 했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강한 조직력을 갖춘 교회를 독일 전역에 세웠다. 그의 선교의 불꽃은 이곳저곳으로 옮겨 붙었다.

이때쯤에는 그의 선교현장도 상당히 넓어졌다. 서쪽으로 라인강을 넘어 프랑스 왕국으로까지 확장되었다. 또 가장 아끼던 종족인 색슨족들과도 접촉하게 되었다. 자기 양떼가 수천 명에 이르렀으므로 그는 그들을 끊임없이 보살펴야 했다. 그러면서 복음전도도 계속하고 독일교회를 관리하는가 하면 혼란에 빠진 구역들도 재정비했다. 그의 열정은 식을 줄 모르고 계속 타올랐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선교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수도원 짓는 일은 벌써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일이 계속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수도원과 수녀원을 지었다. 그는 주민 성직자들을 훈련시키는데 주력했다. 그의 사역에는 여인들이 적극 참여했다. 744년에는 헤센에 풀다 수도원을 세웠다. 이 수도원은 오늘날 까지도 독일 내의 로마 교회의 중심이 되고 있다. 보니페이스가 회심시킨 사람들은 선교사가 되어 중부 유럽을 휩쓸었고, 그가 세상을 떠날 무렵에는 400명의 수도자들이 그 곳에서 사역하였다.

황혼에 빛나는 프리지아에서의 순교

 

그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독일교회를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아 사역을 하였다. 747년에 그는 다시 로마로 갔다. 그곳에서 마인쯔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나이가 70세가 넘으면서 못다 이룬 선교사역을 마치려는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다. 753년에 대 주교직을 사임한 뒤 다시 프리지아(네델란드)로 갔다. 그 곳의 종족들은 아직도 대부분 이교도들이었다. 이미 노인이 된 그는 책들뿐만 아니라 수의까지도 가지고 갔다. 아마도 이는 자신의 생애가 순교로 끝날 것을 예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755년 오순절 주간의 수요일에 보른 강가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이방 광신자들이 그들을 습격했다. 그의 일행이 싸우려하자 만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형제들이여, 싸우지 마시오. 겟세마네 동산에서 보여주셨던 주님의 모범을 따릅시다. 육체만 죽일 수 있을 뿐 영혼을 죽일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 마시오.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기 위해 이 순간의 죽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입시다. 우리는 곧 그 분을 영광 중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꿇어앉아 기도를 드렸다. 폭도들은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들었다. 보니페이스는 아무런 동요도 일으키지 않은 채, 하늘만을 주시했다. 보니페이스를 비롯한 그의 동료 51명은 장렬한 순교를 하였다.

 

생애 말년에 순교를 당함으로써 그는 자기 사역에 독특한 인을 남겼다. 그는 헌신과 힘든 고역, 신앙을 옹호하는 영웅적 기상 등의 유산을 남겼다. 이러한 영웅적 기상은 그가 사라진 후에도 오랫동안 존속하며 독일 교계에 독특한 호전적 성격을 주게 된다. 그리고 이런 호전적 성격이 나중에 중세의 기독교 기사도와 군사 단체에 반영된다. 그는 죽음으로써 그가 평소에 했던 말을 성취시켰다. “우리는 조상들의 거룩한 법을 위해 죽자. 벙어리 개, 침묵하는 방관자, 이리를 보고 도망치는 삯꾼이 되지 말자. 그리스도의 양떼를 잘 보살피는 충성스런 목자가 되자.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이 힘주시는 대로 높은 자와 낮은 자, 부자와 가난한 자, 모든 계급, 모든 연령에 하나님의 뜻을 다 전파하도록 하자.”

역사가 라투렛의 말을 들어보자.

 

“기독교 선교사들 가운데 보니페이스 만큼 기독교 신앙의 이상을 삶으로 정확히 보여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는 고위 성직자로서 그만큼 유혹도 많았을텐데 지극히 겸손했다. 조금도 불명예스러운 행동을 한 일이 없으며 사랑이 넘치는 사람으로서 여러 방면의 친구를 사귀었다. 기도를 열심히 하고 일평생 자기 희생적이며 의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지니고 살았다. 일찍이 교육받아 학문에 상당한 권위자였고 해박한 성서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행동가로서 비범한 조직가이며 행정가였다. 여러면에 있어서 그는 유능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위대한 일을 하라고 권면하기보다는 자신이 솔선해서 먼저 실천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실로 그는 기독교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던 탁월한 본보기였다.”

 

오명희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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