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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벧전4:1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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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고난 중에도 즐거워하라
본문: 베드로전서 4장 12~19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3) 음식을 먹을 때 단 것을 먼저 먹으면 다른 것은 맛이 없습니다. 달콤한 과자나 감주를 먼저 먹고 밥을 먹으면 밥맛이 없습니다. 음식은 처음에는 달지 않은 것, 맛이 강하지 않은 것부터 먹어야 합니다. 과일도 배를 먹고 다음에 사과를 먹어 보십시오. 맛이 없습니다. 사과를 먼저 먹고 배를 먹어야 합니다. 어느 것을 먼저 먹느냐애 따라서 다음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도 있고 맛없게 먹을 수도 있습니다. 인생에서 오늘 고난의 쓴 물을 마시고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은 내일의 삶이 맛이 있습니다. 고난을 거친 후에 옷을 입으면 입는 맛이 있고, 가정은 행복의 맛이 있고, 신앙은 영적인 맛이 있어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너무 단 것만 골라 먹으면 나중에는 아무리 좋은 것을 먹어도 맛이 없습니다. 고난을 모르는 사람의 인생은 모든 것이 의미기 없고 기쁨 없이 살아가는 불행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양(羊)이 고(苦)를 겪으면 선(善)이 됩니다. 참그리스도인은 고난 중에도 기뻐하고 세상에 빛을 발합니다. 십자가의 고난 뒤에 영광의 부활이 있습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 67)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1:6~7) 한 시골 청년이 캔사스 시티에 들어왔습니다. 출판사와 신문사를 찾아다니며, 자기가 그린 만화를 실어달라고 부탁하였으나 한군데도 상대해 주지 않았습니다. 마침 주일이 되어 아무 교회나 길거리에 보이는 교회로 들어갔지만 예배내용은 머리에 들어 올리 없고 눈물만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청년을 보고 사정을 들은 후 교회 창고에서라도 자겠으면 일을 구할 때까지 묵으면서 교회 일을 해달라고 말씀하시며, 「용기를 잃지 말게. 하나님이 자네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말게」하고 격려했습니다. 이 교회 창고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쥐가 많이 나다녔습니다. 먹을 것을 조금씩 주자 쥐들은 도망가지 않게 되었고 쥐를 관찰하는 중 세계를 사로잡은 미키 마우스의 아이디어가 탄생한 것입니다. 이 먹을 것도, 잘 곳도 없던 청년이 월터 디즈니였습니다. 고난은 천국으로 인도하는 채찍이며, 고난은 기쁨과 승리의 전주곡입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약5:13) 북미의 나이아가라 폭포나 남미의 이과수 폭포는 그 위용이 거대합니다. 이들 폭포는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의 폭과 높이가 세계적인 폭포입니다. 아마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한 해 수백만 명은 될 것입니다. 만일 이렇게 물줄기의 폭이 넓지 않고 낙차가 없이 고요히 흐르기만 한다면 구경거리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물이 바위에 부딪혀 굽이치고 물줄기가 곤두박질쳐 폭포를 이루는 모습이 장관이기 때문에 보고 싶어합니다. 텔레비전이 방영하는 인생극장의 주인공들은 모두 거친 삶을 경험한 인물들입니다. 부딪치고, 꺾이고, 떨어지고, 망가진 곳에서 다시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감동을 줍니다. 고통은 인간에게 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덕을 주는 것입니다. 고통은 또 다른 은혜입니다. 마이클 몰리노스는 그의 책에서 「고통은 영혼을 깨끗하게 한다. 고통을 통한 영혼의 정화는 인내를 낳는다」고 말했습니다.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고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5:9)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8:17)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믿음이 좋은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서도 고통스러운 인생을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요셉은 고난의 사람이었습니다. 욥도 다윗도 모두 고난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 속의 위대한 인물들은 이렇게 고난 속에서 인생을 꽃피운 사람이었습니다. 인생의 성패를 순경 속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성패는 순경 속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면 고난 극복의 힘은 무엇일까요. 용기입니다. 용기야말로 고난의 벽을 뛰어넘게 하는 삶의 동력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용기 때문입니다. 용기는 고난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극복의 대상으로 보게 합니다. 그리하여 고난과 당당히 맞서 싸우게 합니다. 문제는 이 용기가 믿음에서 온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삶의 용기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에서 우러나옵니다. 과연 믿음은 삶의 용기를 주고 용기는 삶에 변화를 줍니다. 그리하여 고난의 바다를 기쁘고 당당하게 항해하도록 삶에 힘을 줍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우리는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향하여 하는 말이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 도다.」(고후7:4) 예레미야 또한 역사상 가장 큰 고통을 경험했던 사람 중의 한 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이유로 평생 동안 고난당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형통한 삶을 살았던 솔로몬도 이 세상을 슬픔의 현장으로 보았고, 바울도 이 세상을 피조물이 함께 탄식하면서 고통하는 곳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온 우주 만물이 고통하고 탄식하는 현장에 태어난 사람이 어떻게 고통을 모르고 생을 마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이 세상에는 필연적으로 고통을 피할 수 현실적 요인이 있습니다. 불변하는 자연법칙과 무엇이든지 더 나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려는 인간의 욕구, 즉 진화론적 법칙이 그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택의 능력으로 인한 도덕적인 책임, 그리고 복잡한 인간관계 때문에 우리는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만 좋으면 하나님이 무조건 고통을 제거해 주신다는 철부지 같은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고통을 불행으로 보는 사고방식도 버려야 합니다. 다시 말해 고통의 긍정적인 면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통을 당할 때 참고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주께서 고통을 메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라 할지라도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며 인내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고통에 대해 긍정적인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통을 선하다고 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가요? 첫째, 무엇이나 인생의 가치 있는 것들은 땀과 눈물을 통하여 오기 때문입니다.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니」(시119:71)라고 한 다윗의 고백은 우리에게 엄청난 힘을 줍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지 않는 자는 결코 기쁨의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둘째, 고통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메워주신 멍에이기 때문에 선한 것입니다. 우리가 설령 실수를 해서 끌어들인 불행이라 할지라도 그 뒤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불가항력으로 다가오는 고난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햇살뿐 아니라 구름과 폭우가 있어야 자연이 풍요로워지듯이, 고통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요, 선한 것이요, 보람된 것일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고통을 비관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당하는 고통 뒤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선하신 하나님이 당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고난 중에도 즐거워하며 승리하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나를 위해 고난당하신 주님, 절망의 죽음을 헤치고 희망의 부활을 가져오신 예수님은 영원한 희망의 씨앗이 되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언제나 그리스도를 모시고 희망을 보며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환경을 바라보고 좌절하거나 절망하여 부정적인 사람이 되지 말고, 우리 속에 심겨진 희망의 씨앗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꿈을 갖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사람으로 삶을 일구도록 도와주옵소서. 마음이 상할 때, 어려움이 있을 때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기억하며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갈릴리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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