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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문화일보] 천둥 번개는 곧 그쳐요 -김혜옥

신춘문예 김혜옥............... 조회 수 1434 추천 수 0 2013.01.24 17:42:15
.........

천둥 번개는 곧 그쳐요 -김혜옥-

 

뺑뺑이가 돌아갑니다. 온 세상이 뱅글뱅글 돕니다. 나랑 지수는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빙빙 돌다보니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느 새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해미야, 네 오빠 데리러 갈 시간 아니야?”

뺑뺑이를 돌리는 서연이 목소리가 들립니다.

“아직 시간 있어. 조금 더 놀아도 돼.”

나는 눈을 꼭 감았습니다.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미야. 네 오빠 끝날 시간 다 됐어. 늦게 가면 안 되잖아.”

이번엔 지수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뺑뺑이가 천천히 돌다가 멈췄습니다. 서연이가 더 이상 뺑뺑이를 돌리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멀리 학교에서 6교시가 끝나는 것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리 오빠 데려다 주고 올 때까지 여기서 더 놀 거지?”

나는 지수와 서연이를 보고 말했습니다.

“아니, 우린 이제 영어 학원 가야 돼.”

서연이가 지수를 보고 ‘맞지?’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지수도 서연이를 보고 빙긋 웃었습니다. 둘이 마주 보고 웃는 모습을 보니 가슴에 싸아한 바람이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아참, 그렇지? 내일 봐.”

나는 학교를 향해 뛰어가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서연이와 지수가 놀이터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둘이 귓속말을 주고받더니 곧 깔깔거리고 웃습니다. 얼마 전까지 서연이는 나랑 가장 친했는데 요즘 들어 지수와 더 친해진 것 같습니다.

학교 교문에 도착하니 오빠가 창백한 얼굴로 교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해미 2시 35분에 와요.”

오빠가 나와 손목시계를 번갈아 보며 말했습니다. 불안해서 이로 물어뜯었는지 손등이 빨갛습니다.

“오빠, 미안. 너무 늦게 왔지?”

나는 오빠에게 다가가 무심코 팔을 잡았습니다. ‘아차’하는 순간 오빠가 내 손을 거칠게 밀어냈습니다. 오빠가 몸에 손대는 걸 싫어한다는 것을 깜박했습니다. 얼음왕자인 오빠지만 좀 서운한 마음이 듭니다.

“천둥 번개는 곧 그쳐요?”

오빠가 하늘을 보며 말했습니다. 잿빛 하늘이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쏟아낼 것 같습니다. 오빠는 천둥 번개를 아주 무서워합니다. 날씨가 흐리기만 해도 몹시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면 ‘천둥 번개는 곧 그쳐요?’라는 말을 주문처럼 해댑니다. 같은 말을 여러 번 듣는 건 몹시 힘든 일이어서 오빠가 그 말을 시작하면 우리 가족은 한숨부터 내쉽니다.

“오빠, 오늘은 비 안 와. 내일 비나 눈이 온댔어. 그리고 겨울에는 비가 와도 천둥 번개는 별로 안 친대.”

“천둥 번개는 별로 안 친대.”

오빠가 내 말을 따라하더니 조금 안심이 되는 듯 걸음을 옮겼습니다. 나는 서둘러 오빠의 뒤를 쫓았습니다. 지금부터는 오빠를 잘 봐야 합니다. 오빠는 차가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잘 피하지 못합니다. 어렸을 때는 차로 뛰어든 적도 있습니다.

복지관 가는 길에 있는 이발소는 오빠가 꼭 들르는 곳입니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광고등을 좋아하거든요. 핸드폰 대리점 앞은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야 합니다. 스피커에서 쾅쾅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를 몹시 싫어하기 때문이지요.

빠른 걸음으로 핸드폰 대리점 앞을 지나쳐 저만치 앞서가던 오빠가 갑자기 멈췄습니다. 그러고는 팬시문구점 앞에 세워진 크리스마스트리를 신기한 듯 보고 있었습니다. 트리에 달린 자그마한 불빛들이 깜박깜박 하며 자기들을 봐달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날씨가 흐려서인지 낮인데도 불빛들이 환하게 잘 보였습니다.

나와 오빠는 크리스마스트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사탕 막대기와 내 얼굴이 비치는 예쁜 색깔 방울들. 나는 트리 장식들을 살짝 만져보기도 했습니다. 오빠는 꼬마불빛들을 오래도록 봤습니다. 꼭 꼬마불빛들과 이야기라도 나누는 것 같았습니다.

오빠를 복지관에 데려다 주고 나는 혹시나 하고 아이들과 놀았던 놀이터에 가보았습니다.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엄마, 오빠 그냥 특수학교로 전학 보내면 안 돼? 특수학교는 통학 버스가 있어서 데리러 다니지 않아도 된다며?”

퇴근하고 집에 온 엄마가 제대로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저녁식사 준비를 했습니다. 나는 엄마 옆을 졸졸 따라다니다 입에서 맴도는 말을 툭 뱉었습니다. 엄마는 내 얼굴을 힐끔 보더니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해미야, 오빠는 비장애 아이들 하고 같이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잖니? 너랑 같은 학교에 다니니까 엄마가 맘 편히 일도 할 수 있잖아.”

“난 오빠 때문에 애들하고 맘대로 놀지도 못한단 말이야.”

내가 볼멘소리로 말했습니다.

“너는 친구랑 놀 수도 있지만 오빠는 친구도 없어. 네가 오빠 위해서 조금만 더…….”

엄마는 더 말을 이으려다 부엌 창문 너머 하늘을 봤습니다. 엄마 얼굴이 금세 바깥 하늘처럼 우중충해졌습니다. 난 엄마가 그런 얼굴이 되는 게 싫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 자주 봐왔던 표정입니다.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봤을지도 모릅니다.

“엄마, 그럼 나…… 서연이랑 지수가 다니는 영어 학원 보내주면 안 돼? 걔네들은 영어 학원 같이 다니더니 더 친해진 것 같아. 나만 빼고 둘이 너무 친해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좀 그래.”

나는 어리광을 부리며 말했습니다.

“영어 학원 비쌀 텐데……. 오빠한테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고, 게다가 네가 영어 학원까지 다니면 오빠는 누가 챙겨?”

“…….”

“엄마가 우리 해미한테 진짜 미안하다. 다음에 영어 학원 꼭 보내줄게. 엄마가 동사무소에 활동보조인 신청해놨다고 얘기했지? 그때까지 조금만 참자. 응?”

“알았어.”

나는 힘없이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활동보조인을 지원 받으면 내가 오빠를 데리러 다니지 않아도 되고 방과 후에 오빠를 돌보고 있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오빠는 장애 2급이라 언제 지원 받게 될지 모른다고 엄마가 친구랑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차피 영어공부 하고 싶어서 학원 보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뭐. 서연이랑 지수가 너무 친해진 것 같으니까 나도 학원 같이 다니고 싶어서 그런 건데 뭐.’

나는 스스로 마음을 달랬습니다. 하지만 서연이와 지수가 다정하게 웃는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내가 어른이 된 후에도 난 항상 오빠를 데리고 다녀야 하는 걸까?’

돌덩이 하나가 가슴에 얹혀 있는 것 같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학교가 끝나자마자 나는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놀이터로 서둘러 갔습니다. 서연이랑 지수가 놀이터에 먼저 와서 놀고 있었습니다.

“해미야, 얼른 와.”

지수가 나를 불렀습니다. 내가 다가가자 서연이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요즘 들어 종종 그렇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나는 서연이에게 어젯밤 휴대폰에 다운받은 최신게임을 보여줬습니다. 아이들이 재밌어하며 게임을 했습니다. 나는 휴대폰을 아이들에게 주고 옆에서 구경만 했습니다. 날씨가 추워서 덜덜 떨렸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이들과 같이 놀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으니까요.

“서연아, 지수야!”

놀이터 입구 쪽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서연이 아줌마가 우리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너희들 아직까지 놀고 있으면 어떡해? 영어 학원 늦었어.”

지수와 서연이가 가방을 챙기는 사이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일어섰습니다.

“해미구나? 네 오빠는?”

서연이 아줌마가 굳은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습니다.

“학교 아직 안 끝났…….”

그 순간 내 머리에 벼락이 번쩍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영어 학원에 가기 전에 오빠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아, 오빠! 어떡하지? 얘들아, 갈게. 안녕히 계세요.”

나는 다급하게 소리치고 학교를 향해 뛰었습니다. 뛰어가는 내 귓가에 목소리를 낮춘 서연이 아줌마의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쟤네 오빠 요샌 소리 지르고 울고 안 그러니? 집에 불도 질렀다며? 웬만하면 같이 놀지 말라고…….”

나는 뛰다 말고 고개를 홱 돌렸습니다. 서연이 아줌마가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을 멈췄습니다.

“불 지른 거 아니에요.”

목이 콱 막혀 이 말만 겨우 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 소리가 작아서 서연이 아줌마가 듣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학교로 뛰는데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그동안 서연이가 나를 피하는 것 같았는데 그래서였나 봅니다. 가슴 한 쪽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학교로 쏜살같이 달렸습니다. 왜 6교시 끝나는 종소리를 듣지 못 했을까요!

 

‘오빠가 없다!’

헉헉거리며 학교 앞에 도착했을 때, 교문 앞에 서 있어야 할 오빠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교문 주위도 몇 번 씩 살펴보고 오빠네 교실에도 가봤지만 오빠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팬시문구점을 향해 달렸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저 혼자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트리에 정신을 쏙 빼고 있을 오빠가 있기를 바랐는데……. 온 몸에 기운이 쭉 빠졌습니다.

나는 다시 복지관으로 달렸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 도착했을 때 복지관 선생님이 엄마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빠가 오지 않았다고 말하는 중이었습니다.

복지관을 나와 나는 다시 학교를 향해 달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엄마, 오빠가…… 안 보여. 교문 앞에 없어.”

“어떻게 된 일이니? 제 시간에 데리러 간 거야?”

엄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습니다.

“…….”

“도대체 어쩌다가…….”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목까지 넘어오는 울음을 꿀꺽 삼켰습니다.

“엄마는 집에 가 볼 테니까 복지관 가는 길 찾아봐. 아빠도 곧 갈 거야.”

엄마가 조금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엄마랑 통화가 끝나자마자 휴대폰 전원이 꺼져버렸습니다. 아까 아이들이 휴대폰으로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배터리가 나가버린 것입니다.

‘오빠가 갈 데는 학교랑 복지관밖에 없는데. 오빠는 정해진 길로만 다니는데.’

매일 오빠와 다니는 길을 따라 뛰어다니며 오빠를 불렀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학교에 도착해 놀이터와 운동장 여기저기를 찾아봤지만 오빠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다시 복지관을 향해 걸으며 찬찬히 살폈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는 팬시문구점도 들어가 봤습니다. 물건을 사지 않고 두리번대다 나가는 나를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았습니다.

나는 혹시나 하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 어디에도 오빠는 없었습니다. 내가 모퉁이를 돌았을 때 엄마가 급히 대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오빠가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게 분명했습니다. 숨이 턱 막히고 심장이 터질 듯이 헐떡였습니다.

‘또 나 때문이야.’

나는 그대로 뒤돌아섰습니다. 그러고는 무작정 뛰고 또 뛰었습니다. 이대로 지구 끝까지 뛰어서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고만 싶었습니다.

“쟤네 오빠 요샌 소리 지르고 울고 안 그러니? 집에 불도 질렀다며? 웬만하면 같이 놀지 말라고…….”

서연이 아줌마가 했던 말이 자꾸만 귀에 맴돌았습니다.

몇 달 전,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에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날, 복지관 수업이 끝난 후 나는 오빠랑 같이 집으로 왔습니다. 잠시 쉬는데 서연이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모둠 숙제 같이하게 놀이터로 나와.”

오빠를 데리고 갈까 생각했지만 아이들이 싫어하면 어쩌나 싶었습니다. 결국 오빠를 집에 혼자 두고 나왔습니다.

‘바로 집 앞인데다 아주 잠깐일 테니까.’

우리 모둠 아이들과 한창 사회 숙제 얘기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해미야, 저기 봐, 너희 집!”

서연이가 소리쳤습니다. 아파트를 올려다보니 우리 집이 있는 6층 복도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순간 불안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나는 집으로 뛰어갔습니다. 아이들도 나를 따라 달려왔습니다. 집 가까이 갈수록 타는 냄새가 복도에 가득했습니다. 나를 보자 집 앞에 있던 이웃집 할머니들과 아줌마가 소리쳤습니다.

“해미야, 너 집에 없었냐? 야야, 큰일 났다.”

“오빠만 혼자 두고 나간 거니?”

사람들 소리가 마이크 소리처럼 귀에서 윙윙거렸습니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집 열쇠를 꺼냈습니다. 하지만 손이 떨려서 열쇠 구멍에 열쇠를 제대로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간신히 현관문을 열었을 때 매캐한 연기와 타는 냄새가 훅 몰려왔습니다. 좁은 거실 귀퉁이에서 오빠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전자레인지 주변이 시커멨습니다. 그제야 내가 냉장고에서 떡을 꺼내 식탁에 두고 나온 것이 생각났습니다. 배가 고픈 오빠가 포일도 벗기지 않은 떡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렸나 봅니다.

“오빠, 일어나. 밖으로 나가야 돼.”

집에 연기와 나쁜 냄새가 꽉 차 있어 나는 오빠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오빠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어른들이 달려들어 나를 도왔지만 겁에 질린 오빠는 아무나 때리고 발로 찼습니다.

다행히 큰불이 나지는 않아 아무도 다치지 않고 잘 마무리되었지만 그 사건은 금방 온 동네에 화제가 되었습니다. 오빠를 무서워하는 아이들도 생겼지요.

그 사건 이후로, 우리는 더 이상 그 집에 살지 못하고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같은 아파트 사람들이 항의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오빠가 쿵쿵거리고 소리를 질러서 아래층에서 여러 번 우리 집을 찾아왔었습니다. 그때마다 엄마 아빠는 무조건 죄송하다며 고개를 조아리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 아빠도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우리는 버스로 세 정거장 정도 되는 옆 동네로 이사를 왔습니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 힘들어 하는 오빠 때문에 학교와 복지관은 그대로 다녀야 했으니까요.

‘나 때문이야, 모든 게 내 잘못이야.’

동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오빠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고 수군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시뻘건 불길이 나를 쫓아오는 악몽에도 시달렸습니다. 원래부터 천둥 번개를 무서워하던 오빠는 그날 전자레인지에서 빛이 파파팍 튄 걸 본 후 번개를 보면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두려워했습니다. 올여름 우리 식구는 펄떡거리는 오빠를 가라앉히기 위해 모두들 땀범벅이 되곤 했습니다.

 

어느 새 거리가 어두워졌습니다. 뛰어다니느라 흘린 땀이 식으면서 몸이 점점 떨려왔습니다.

‘여기가 어딜까? 내가 길을 잃은 걸까?’

낯선 건물과 간판들이 보였습니다. 나는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오빠도 어딘가에서 겁에 질려 떨고 있는 건 아닐까?’

또다시 오빠 걱정에 가슴이 떨려왔습니다.

‘이 바보야, 지금 오빠 걱정할 때가 아니야. 엄마나 아빠가 이미 오빠를 찾았을지도 몰라. 오빠가 없어질 때마다 엄마가 어딘가에서 귀신같이 찾아오곤 했잖아. 파출소에서 연락 올 때도 많았고. 이번엔 네가 길을 잃은 거라고. 네 걱정이나 해.’

가슴 한 구석에서 이런 마음이 불쑥 솟았습니다. 나는 걸어온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걸어도 걸어도 우리 동네로 보이는 건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천둥 번개는 곧 그쳐요.”

어디선가 오빠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사방을 둘러봤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오빠는 없었습니다.

‘비까지 오다니!’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습니다. 나는 비를 피해 패스트푸드점 앞 처마 밑으로 갔습니다. 안을 들여다보니 사람들이 웃으면서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곳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식구들이랑 외식을 가 본 기억도 가물가물합니다. 오빠가 낯선 곳에서 밥 먹는 걸 싫어하니까요.

나는 가게 안의 트리를 바라보았습니다. 투명유리로 가로막히긴 했지만 트리에 걸린 전구 불빛이 바로 내 앞에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빨갛고 파란 여러 가지 색깔 불빛이 반짝거리니 참 예뻤습니다. 문득 선생님이 세상은 다 다른 것들이 서로 조화롭게 살아가서 아름다운 거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다 달라서 아름답다는데…….’

트리의 꼬마불빛들이 왕방울처럼 커지더니 결국 주르륵 흘러내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소매로 후다닥 눈물을 훔쳤습니다. 다시 꼬마불빛들이 작아졌습니다. 꼬마불빛들 사이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푸른색 불빛 하나가 보였습니다. 약이 다 닳아 가는지 간신히 깜박입니다. 혼자만 몹시 지친 것 같아 보입니다.

푸른 꼬마불빛이 나에게 깜박, 안녕, 깜박하고 말을 걸어왔습니다. 나도 깜박이 꼬마불빛에게 ‘안녕’하고 대답했습니다.

‘우리, 오빠, 어디, 갔는지, 아니?’

나는 불빛이 깜박깜박 거리는 것에 맞춰 말했습니다. 꼬마전구 불빛이 ‘몰라, 몰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빠가, 아예, 집으로, 돌아, 오지, 않았, 으면, 좋겠어.’

‘엄마, 아빠, 에게, 나는, 중요, 하지, 않아.’

‘오빠, 돌보, 라고, 낳았, 나봐.’

내 가슴속 어디에 이런 마음이 숨어 있었던 걸까요? 나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 봤습니다. 아무도 내 마음속 이야기를 듣진 못했겠지만 얼굴이 확 달아올랐습니다.

‘너, 많이, 힘들었, 구나.’

깜박이 꼬마불빛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가 어떤 예쁜 짓을 해도 엄마 아빠는 살짝 웃고 말았지. 하지만 오빠가 뭔가 신기한 말을 하면 엄마 아빠는 손뼉을 치며 뛸 듯이 기뻐했어. 오빠가 미워. 오빠가 자폐증인 것이 싫어. 다른 집 아이들처럼 오빠가 싫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갑자기 울음이 툭 터졌습니다. 언제 이렇게 울어 봤을까요? 나는 언젠가부터 울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오빠가 늘 나보다 더 크게 소리 지르며 울었으니까요. 나는 패스트푸드점 옆에 있는 어두운 계단으로 가서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다행히 빗소리에 내 울음소리가 묻혔습니다.

실컷 울고 나니 며칠 간 내 가슴에 얹혀 있던 돌덩이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 같았습니다. 빗방울이 가늘어졌습니다. 나는 패스트푸드점 앞으로 가서 꼬마불빛에게 ‘잘, 있어.’하고 인사했습니다. 꼬마불빛이 남은 힘을 다해 ‘안녕’하고 인사했습니다.

나는 다시 뛰다가 걷기를 반복했습니다. 비에 젖은 몸이 오들오들 떨렸고 점퍼 속으로 찬바람이 파고들었습니다. 어디 만큼 왔을까. 어둠 속에서 누군가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내 이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얼어붙은 듯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해미야!”

엄마가 달려와 나를 덥석 안았습니다. 우산을 쓰고 있었지만 엄마의 온 몸은 비에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해미야, 핸드폰은 왜 꺼져 있니? 엄마가 얼마나…….”

“오, 오빠는?”

내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오빠는 잘 있어. 비 올 것 같으니까 무서워서 혼자 복지관으로 가려다 길을 잃었나 봐. 크리스마스트리 어쩌고 하는데 트리를 찾아다녔다는 건지 뭔지 모르겠어. 근데 너 눈이…….”

엄마가 다시 나를 꼬옥 안았습니다.

“오빠가 널 얼마나 찾고 있는지 몰라. 해미 없어요, 없어요 이러면서.”

엄마의 말이 따뜻해져가던 내 마음을 순간 얼어붙게 했습니다.

“오빠가 날 찾아서 엄마가 날 찾은 거야?”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말했습니다.

“무슨 말이야, 그게?”

“엄마한텐 항상 오빠가 제일 중요하니까. 뭐든지 오빠 위해서, 오빠는 아프니까. 오빠는 장애가 있으니까……. 오빠가 찾아 달라 해서, 오빠를 돌봐야 하니까 나를 찾은 거냐구!”

“해미야, 너 왜 그래?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엄마가 다가와 내 손을 잡았습니다. 엄마 손이 뜨거웠습니다. 나는 엄마 손을 뿌리쳤습니다.

“집에 불 난 것도 내 잘못이고 오빠 잃어버린 것도 내 잘못이고. 나는 늘 잘못만 해.”

“해미야, 아니야. 네 잘못 아니야, 너는 잘못한 거 없어. 네가 이렇게 힘들어 하는지 몰랐어. 미안하구나, 정말.”

“엄마, 나도 아파. 나도 여기가 아프다고.”

나는 왼쪽 가슴을 손바닥으로 문질렀습니다. 아까 다 울어버린 줄 알았는데 아직 울음이 남아 있었나봅니다. 나는 다시 엄마 품에 안겨 남아 있는 울음 찌꺼기를 토해냈습니다. 엄마가 내 등을 오래도록 다독였습니다. 그 동안 내 몸속 어딘가에 고여 있던 눈물이 오늘 하루 동안 다 빠져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

엄마가 붉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엄마, 그래도……, 천둥 번개는 곧 그치지?”

“천둥 번개?”

“응, 곧 그치겠지?”

내 물음에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다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나도 엄마 눈길을 쫓아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느 새 비가 눈이 되어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가느다란 눈발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끝>

 

 

내 삶의 나침반 문학… 많이 돌아왔지만 결국 그 길로
동화 당선소감


호들갑 떨며 여기저기 자랑하게 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담담합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바쁜 날을 보내고 당선 소감을 쓰려고 책상에 앉으니 이제야 지인들께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축하 전화와 메시지를 받으니 슬슬 실감이 납니다. 이제야 히죽히죽 웃음도 납니다. 고치고 바꾸고 덧붙이긴 했지만 태어나 처음 쓴 동화라는 걸 깨닫고 신기해합니다.

‘문청’ 시절이 있었지요. 새해 1월 1일이면 꼬박꼬박 일간지를 사와서 떨리는 마음으로 신춘문예 수상작품과 작가들을 찾아봤더랬지요. 작품을 쓴 적도 없고 보낸 적도 없으면서 연례행사처럼, 안 그러면 새해가 시작되지 않는 것처럼……. 늘 그 세계를 동경하고 흠모하고 얼쩡거렸지요. 참 많이 돌아서 왔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제 삶의 나침반이 문학을 향해 있었고 결국 그 곳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오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시절 읽었던 시 한 구절이 지금 제 동화의 한 장면이 되어 나타나는 걸 보면 제 속에 무언가 그렇게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나 봅니다. 고마운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동화가 무엇인지 처음 알게 해 준 마리 선생님. 너무도 큰 가르침을 주신 동화세상 김병규 사부님과 선생님들. 저에게 무던히 시달려야 했던 전성현 선생님. 치열하게 합평했던 동기들.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하늘나라에서 보고 계실 엄마, 아부지. 제 글의 첫 독자가 되어 따끔하고 야무지게 평가해주는 딸, 아들. 글 쓴답시고 뭐든 대충대충 하고 사는 나를 견뎌준 가족들. 자기 얘기를 써 달라고 눈 반짝이는 제가 만나 온, 그리고 앞으로 만날 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우리 아이들. 고.맙.습.니.다. 동화를 쓴다는 건 어른이 돼 더 이상 하지 않게 됐던 질문들을 다시 하나하나 꺼내어 묻는 일 같습니다. 늘 저에게 묻고 또 물으며 살겠습니다.


▲ 1969년 전남 고흥 출생
▲ 동화세상 동화학교 수료
▲ 서울상경초등학교 특수학급 교사

 

촘촘하고 결 고운 문장… 힘없는 서사 아쉬움
동화 심사평


올해의 투고작들에는 예년과 다르게 뚜렷하게 눈에 띄는 경향도 없고, 그렇다고 다양한 관심 항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문장, 구성, 서사는 무난하되 무엇을 읽었는지 모를 정도로 남는 게 없는, 힘없는 작품들이 많았는데, 사회 전체가 무기력해진 요즘 세태와 인간 군상이 반영돼 있는 듯해 심사 내내 무거운 마음이었다.

본심에 오른 네 편의 작품 중 ‘엄마의 날개옷을 숨겨라’는 필리핀인 엄마가 자기를 남겨두고 필리핀으로 돌아갈까 봐 걱정하는 아이 이야기다. 서사가 선명하고 문장이 단정하기는 하지만 의례적인 정황 설정과 해피엔딩이 설득력과 공감력을 떨어뜨린다. ‘대박세일’도 비슷한 경우로, 가난한 슈퍼마켓 집 아이인 화자가 짐짓 쿨하고 쾌활하게 살면서 부자동네에서 전학 온 친구와 가까워진다는 이야기에서 상투성을 털어버리는 데 성공하고 있지 못하다.

‘할머니의 비밀 장례식’은 좋은 소재와 날렵한 문장으로 기대를 걸게 했지만, 산만한 구성이 약점이었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중심 모티프라고 할 수 있는 할머니가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리하여 당선작은 ‘천둥번개는 곧 그쳐요’로 정해졌다. 자폐아인 오빠 돌보기에 지친 동생이 어느 날 없어진 오빠를 찾아 헤매는 이야기로, 내성적이고 착한 아이의 마음속 갈등과 분노, 피로, 원망 등의 감정이 세밀하게 짜여 있다. 엄마, 친구, 이웃사람, 선생님 어느 누구와도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혼자 앓는 아이에 읽는 이의 마음이 아린데, 이 마음 아림을 이끌어내는 촘촘하고 결 고운 문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천둥번개’라는 상징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솜씨도 믿음직하다. 다만 에피소드는 많은데 그것들을 굵직한 서사로 세워내지 못하고 독백이나 회상 안으로 희석시켜버림으로써 이야기가 소품화된 면이 아쉬운 점이다.

심사위원 김서정 · 황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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