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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부산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방귀걸 한다진 / 임선영
모든 사람에게는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능력이 있어. 예를 들어 저기 운동장 구석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는 민진이 보이니? 사실 저건 줄넘기 줄이 아니라 민진이의 왼쪽 검지손가락이야. 또 계단에 걸터앉아 혼자 실실 웃고 있는 용대는 지금 운동장 곳곳에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몰래 듣고 있는 거야. 또 누가 있을까? 앗, 방금 뭔가 휙 지나가는 게 느껴졌니? 바로 철수가 달려간 거야.
"넌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니?"
다진이가 5학년 2반에 전학을 와서 친구들에게 처음 들은 이야기였어. 순간 다진이의 머릿속이 복잡해졌어. 엄마아빠가 해 준 이야기가 생각이 났지.
"그건 절대 부끄러운 게 아니야. 아마 그런 능력을 가진 애는 너밖에 없을 거야."
다진이는 침을 한번 꼴딱 삼켰어.
"내, 내 능력은 바, 바……."
"바? 바 뭐?"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목까지 차올랐던 말이 다시 쑥 들어가 버렸어.
"아니, 없어, 그런 거……."
아이들이 수근 대기 시작했어. 몇몇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키득거렸고, 몇몇은 이해할 수 없다며 다진이를 둘러싸고 고개를 갸우뚱거렸지. 그런데 그때,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얼굴에 심술이 잔뜩 묻은 윤주였어. 다진이는 당황스러웠어.
"그, 그럼 넌? 넌 뭐 할 줄 아는데?"
다진이의 말을 듣고 윤주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발로 교실바닥을 한번 가볍게 쿵 내리쳤어. 그러자 교실 전체가 흔들거렸어. 윤주는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댔어.
전학 온 지 며칠 흘렀어도
친구 한 명 사귀지 못한 다진이
위기에 처한 윤주를 구하는데…
전학 온 지 며칠이 흘렀지만 다진이는 친구를 한 명도 사귀지 못했어. 교실에 앉아 있으면 몇몇은 다진이를 무시하는 농담들을 해 댔고, 몇몇은 의심의 눈초리로 쏘아 보았어. 다진이는 그런 아이들의 따가운 시선을 교과서를 보는 척하며 애써 외면했지. 가끔은 급하지도 않은데 화장실에 갈 때도 있고 말이야.
오늘도 여전히 가시방석 같은 교실이 불편해서 화장실 안에 들어가 있을 때였어. 변기 위에 앉았는데 뭔가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지.
"지진이야!"
"모두들 진정해!"
밖에서 난리가 난거야. 다진이도 얼른 화장실 밖으로 나가려는데 갑자기 화장실 바닥이 흔들리면서 넘어지고 말았어.
"아야~ 뭐야 이마에 피나잖아?"
다진이가 급히 이마를 짚으며 복도로 나갔는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정말 엉망진창, 혼비백산이었어. 소윤이는 귀가 찢어질 듯한 사이렌 같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미주, 미아 쌍둥이는 몸을 공처럼 웅크려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어. 태현이는 개구리처럼 펄쩍펄쩍 뛰면서 어디로 가야할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마구 흥분한 나머지 다진이의 머리에서 피가 나고 있는 것도 보지 못했어. 다진이는 흔들거리는 벽을 두 손으로 더듬거리며 걸었어. 그러다 우연히 창밖을 보게 됐지. 바깥세상은 너무나 고요했어. 학교와는 달리 말이야. 나무에 앉은 새들은 학교 안 사람들을 보며 호들갑을 떤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는 듯했어. 다진이가 다시 조심스럽게 한 걸음을 뗀 순간 창밖에서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되었어. 누군가 학교 건물 벽을 오른발로 마구 걷어차고 있는 거야. 윤주였어. 윤주가 발길질을 할 때마다 벽이 움푹 패이면서 학교가 흔들리고 있던 거였어. 다진이는 얼른 말려야겠다고 생각했지.
다음 날 체육시간 100m 달리기
다리 깁스한 윤주는 다진이에게
"어제처럼 뛰면 일등할거야"
"유, 윤주야 그만해!"
윤주는 다진이를 한참이나 쏘아보았어.
"야 어제 그거 윤주가 한 거래."
"왜?"
"모르지."
"어쩐지. 한두 번도 아니고."
"선생님한테 엄청나게 혼났데. 교장실에도 불려 갔다는데?"
교실 뒤편에서 몇몇 아이들이 모여 수군덕대고 있었어. 다진이는 조용히 앉아 이마에 붙인 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지. 그때였어. 윤주가 갑자기 들어온 거야. 오른쪽 발에 깁스를 하고서. 아이들은 저마다 윤주를 흘끗흘끗 훔쳐봤지. 다진이도 윤주를 한번 돌아봤다가 아무 말도 않고 다시 고개를 돌렸어. 몇 분이나 지났을까, 윤주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어.
'6시, 학교 뒤 공터'
약속시간이 훌쩍 지났는데 윤주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어. 공터 구석에 있던 다진이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한숨을 한번 쉬고는 집으로 가려고 일어났어.
"한다진!"
드디어 윤주가 왔어.
"30분이나 늦었어."
다진이가 입을 빼죽거리자 윤주가 뜬금없이 화를 내기 시작했어.
"네가 꼰질렀지? 어제 일 말이야. 너 때문에 어쩌면 전학가야 될지도 몰라. 너 때문이야."
다진이는 너무나 어이가 없었어.
"뭐? 그게 왜 내 탓이야? 게다가 난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거짓말하고 있네. 날 본 사람이 너 말고 누가 있어? 고자질이나 하니까 친구가 없지. 능력도 없고 친구도 없는 고자질쟁이!"
"말이 너무 심하잖아! 도대체 무슨 심보가 그렇게 못돼 먹었냐? 도대체 왜 그런 건데? 이 상처 안 보여? 너 땜에 넘어졌단 말이야. 그리고 친구는- 자기도 없으면서!"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윤주가 다시 입을 뗐어.
"……짜증 나서 그랬다 왜! 다 나보고만 뭐라고 하잖아! 난 뛰지도 않았는데 복도 울린다고 뭐라고 하고, 축구공 터질까 봐 축구시합에도 안 끼워 주고, 내 오른쪽 다리만 굵고 못생기다고 수군덕대고! 네가 내 맘을 알아?"
이를 바득바득 갈며 화를 내는 윤주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어.
다진이는 무슨 말을 꺼내야 될지 몰랐어. 위로를 해야 될지 화를 내야 될지 헷갈렸거든.
"어쨌든 내가 고자질 한 거 아냐. 그거 확인하려고 나 부른 거면……, 집에 갈래."
다진이가 몸을 획 돌려 집으로 가려던 그때였어.
"야, 꼬맹이들아. 시끄럽잖아!"
무서워 보이는 중학생 언니들이었어. 다진이는 순식간에 몸이 굳어 버렸어.
"야, 너네 돈 좀 있냐?"
한 언니가 윤주의 머리를 툭툭 쳤어. 윤주가 소리를 빽 질렀어.
"없다 왜!"
언니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더니 갑자기 눈을 무섭게 치켜떴어. 그러더니 한 언니의 머리카락이 스멀스멀 길어지면서 윤주의 온몸을 칭칭 감아버렸어.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지. 그리고 다른 한 언니는 호랑이 발톱처럼 뾰족한 손톱을 휘두르며 가까이 다가왔어.
다진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온몸에 힘을 주기 시작했어.
"으으으~"
다진이의 엉덩이가 움찔 움찔거렸어. 언니들이 다진이를 보고 마구 비웃었어.
"얘 좀 봐, 넌 엉덩이 실룩대는 게 특기니?"
그 순간,
뿌~우~~웅!
다진이가 하늘로 날아올랐어. 모두들 그 모습에 넋이 나가고 말았지. 밧줄 같은 머리카락에 붙잡힌 윤주조차도 말이야. 다진이는 다시 조심히 땅 위로 내려왔어. 언니들이 다진이에게 달려들었지. 위험한 상황이었어. 다진이보다 두 배는 덩치가 큰 언니들이었거든. 윤주는 피하라고 소리를 질러댔지.
갑자기 다진이가 뒤돌아섰어. 그리곤 다시 엉덩이를 움찔거렸어.
핏! 핏! 핏핏!
다진이가 엉덩이를 요리조리 움직이며 쏘아 대는 방귀 공격에 언니들은 힘없이 쓰러졌어. 이제껏 본 적 없는 요상한 공격에 윤주를 괴롭히던 언니가 잔뜩 화가 나 머리카락을 다진이에게로 뻗었어.
다진이는 얼굴이 뻘게질 때까지 몸에 힘을 주다가,
빡!
하고 아주 센 방귀를 날렸어. 언니들은 모두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지. 다진이는 마지막으로,
프스스스스~
아주 냄새가 심한 방귀를 마무리 공격으로 날렸지. 모두들 정신이 혼미한지 코를 틀어막고 해롱거렸어. 그때를 놓치지 않고 다진이는 윤주를 업고 아주 빠르게 달렸어. 방귀를 봉봉봉봉 뀌면서. 방귀 덕분에 더욱 빠르게 달릴 수 있었지. 마치 제트 엔진이라도 달린 것 마냥 말이야.
다음날, 다진이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뒤에 앉은 윤주를 흘긋흘긋 훔쳐봤어. 어제 일에 대해서 아무런 얘기도 하지 못했거든. 윤주는 그저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었어.
3교시는 체육 시간이었어. 100미터 달리기를 할 참이었지. 몇몇 아이들이 출발선에 섰고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입에 물었어.
삑!
출발신호가 떨어진 순간 민진이가 팔을 쭈욱 늘렸어. 철수는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다리가 안 보일 정도로 달렸고, 태현이는 개구리처럼 펄쩍펄쩍 뛰었어.
"내가 일등이야!"
민진이가 어깨를 으쓱대며 말했어. 그러자 태현이가 화를 내며 말했지.
"뭐? 말도 안 돼. 네 몸은 이제야 들어왔잖아! 손가락 먼저 들어온 게 왜 일등이야!"
그 말을 들은 철수가 이죽거리며 말을 이었어.
"그렇게 따지면 내가 일등이야. 진짜 두 발로 뛰어서 들어왔잖아. 이건 엄연한 달리기라고!"
그때, 용대가 숨을 헐떡이며 결승선을 밟았어.
"헥-헥-. 너희들 모두 말이 안 돼. 내가 저 멀리서부터 너희들 얘기를 들었는데 말야, 민진이랑 태현이는 두 발로 뛴 게 아니니까 달리기를 한 게 아니야. 그리고 철수는 원래 네 능력이 빨리 뛰는 건데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거라고. 이 경기는 전적으로 불합리하고 부정당한 거라고. 헥- 헥-."
용대의 말에 철수, 민진, 태현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어.
"야 꼴등은 저리 빠져 있어!"
"꼴등 아니야! 불합리한 경기라고 했잖아! 불합리 뜻도 모르나 보지?"
"남의 말이나 훔쳐 듣는 주제에! 그 말도 어디서 훔쳐 들은 건가 보지?"
"그 말이 거기서 왜 나와 이 개구락지야!"
네 명의 아이들이 순식간에 엉겨 붙어 싸우기 시작했어. 다음 달리기 순서를 기다리던 아이들과 선생님은 네 명의 아이들을 떼어 놓느라고 진땀을 뺐지. 하지만 그 모습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다진이와 다리에 깁스를 한 윤주만이 저 멀리 출발선에 가만히 앉아 있었어. 윤주와 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다진이는 조금 어색해했지. 그런데 갑자기 윤주가 아주 작은 소리로 키득거리는 거야.
"킥킥."
다진이가 물었어.
"왜 웃어?"
윤주가 다진이를 바라보며 이렇게 대답했어.
"아니 그냥. 어제 네가 나 업고 뛸 때 생각나서. 좀 있다가 뛸 때 어제처럼만 뛰면 분명 일등 할 거야. 킥킥.
다진이는 웃는 윤주를 보며 조금 놀랐어. 윤주가 웃는 모습은 처음 봤거든. 다진이도 윤주를 보며 피식 웃었지. 결승선에서의 싸움이 조금 진정됐는지 저 멀리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돌아왔어.
"자, 다음 네 명 출발선에 서도록!"
다진이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조심스레 출발선에 섰어.
"분명 다진이가 꼴등하겠지 뭐."
누군가의 말이 다진이의 귀에 박혔어.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입에 물었어. 다들 결승선을 노려보며 뛸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다진이는 잠시 윤주를 쳐다봤어. 윤주가 또다시 키득대며 웃었어. 다진이는 온몸에 힘을 주기 시작했어. 엉덩이가 움찔움찔.
삑!
출발신호가 울렸고 다진이는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어. -끝-
[2013 신춘문예 - 동화 당선소감] "남녀노소가 오래도록 즐길 동화 쓰겠다" 빈곤한 열정 탓일까 원체 모자란 능력 탓일까, 늘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은 제 글에 낙심해 있을 무렵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한 편을 접수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갑자기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2013 신춘문예 - 동화 심사평] "평이한 이야기 판타지 기법으로 문학성 높여" 114편의 응모작들은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었다. 크게 몇 가지로 분류해 보자면 한 부모 가정의 아이가 겪는 어려움, 성적이나 게임 때문에 벌어지는 부모와의 갈등, 자연이나 동물을 의인화해서 살펴본 어린이의 삶이나 환경 문제 등이다. 소재는 각기 달랐지만 전반적으로 세태와 어린이의 삶을 통해 그들의 현실을 천착하고 있었다. 문학적 완성도와 재미를 기준으로 삼아 심사한 결과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당선작 '방귀걸 한다진'을 비롯해 '고양이 석상의 비밀' '아빠는 진짜 부자다!' 등 세 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뭘 하고 싶은지, 뭘 해야 할지도 모른 채 지내오다 2년 전 동화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 동화를 쓰게 되었을 때는 그저 호기심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동화를 쓰는 것이 참 재미있고 오래오래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이런 마음이 통한 것인지 동화라는 게 저에게 적지 않은 선물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게 해 주고 좋은 글들을 만나게 해 주고 이번엔 이렇게 과분한 상까지 받게 해 주었습니다.
함께 동화 공부를 하고 있는 '마주보기' 선생님들, 언제나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시고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은 설익은 제 글 '방귀걸 한다진'을 좋게 봐 주시고 뽑아 주신 부산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 및 관계자들께 감사 드립니다.
제겐 너무 과분한 이 상이 민망하기도 하고 부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기분 좋게 웃고만 싶습니다. 앞으로 더욱 노력해서 남녀노소 오래도록 즐길 수 있는 동화를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임선영/1985년 제주 출생. 숙명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졸업.
'고양이 석상의 비밀'은 판타지 동화로 평범한 아이 철온과 고양이 석상이 기억을 거래하는 내용으로 매끄러운 문장과 단단한 플롯이 장점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당장의 괴로움을 회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기억을 지우는 조건으로 자기의 좋은 기억을 내준 끝에 결국은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스토리의 도식성이 감점 요인이 됐다. '아빠는 진짜 부자다!'는 아빠가 실직한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을 코믹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냈다.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유머러스한 문장, 재미있는 스토리 등이 흥미롭게 읽히나 실직 가정의 단면을 좀 더 예리하게 포착하지 못한 채 시트콤처럼 그린 점이 아쉽다.
당선작 '방귀걸 한다진'은 자칫했으면 평이해졌을 이야기를 판타지 기법으로 처리해 문학성과 재미를 높인 점이 돋보인다. 아이들에게는 각각의 재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로지 성적 하나로 재단하려 드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노골적인 대사나 문장 하나 없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신선하게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이 가진 장기를 '방귀'로 설정해 어린이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점도 작가의 재능의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떨어진 분들에게는 격려와 위로를 보내는 바이다. 심사위원 이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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