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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따라간사람들] 토마스 아퀴나스

영성묵상훈련 오명희 전도사............... 조회 수 2287 추천 수 0 2013.01.24 17: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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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inbora.com/bbs/board.php?bo_table=board13&wr_id=90&page=62 

기독교역사에 길이 빛나는 신학의 거장,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재발견, 중세 고등 교육 체제의 한 혁명으로 일어난 대학의 등장, 학문에 끼친 탁발 수도원의 기여는 13세기를 찬란한 스콜라주의 시대로 인도하였다. 이 시기에 있어서 어거스틴, 칼빈과 함께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주요한 신학사상을 체계화하기에 일생을 불사른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중세 교회의 최고의 위치를 차지한 신학자이며 일명 천사 박사로 불리우는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어린 시절 신앙의 토대와 경험

 

“당신은 인간의 이성으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중세 스콜라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가 일생동안 고민했던 문제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1225년경 이탈리아 아퀴노 교외 로카세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시칠리아의 호헨슈다우펜 왕국의 귀족인 란돌프 백작이었고 황제 프레드릭에게는 조카가 되고 하인리히 6세는 종형제에 해당되었다. 그의 대부는 교황이었다. 이처럼 훌륭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토마스는 어려서 죽음의 공포를 알게 되었다. 네 살이 되던 여름 어느 날, 그가 누워 자던 성 위로 벼락이 떨어졌다. 순식간에 바로 옆에서 자던 동생과 유모가 타서 죽었다. 그리고 망루가 무너져 내리면서 그 밑의 마구간에 있는 말들이 모두 깔려 죽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그러한 와중에도 기적적으로 토마스는 살아났다. 후에도 어린 시절의 이 사건을 항상 기억하며 자신에 대한 진정한 생의 의미를 신앙 안에서 찾고자 하였다.

 

그는 다섯 살 때 근처에 있는 몬테 카 지노의 베네딕트 수도원에 들어가서 조기 영재 교육을 받았고 부친의 정치적인 영향력으로 장차 수도원 원장 자리도 보장받을 수가 있었다. 토마스는 1239년부터 5년간에 걸쳐 프레드릭 2세가 설립한 나폴리 대학교에 가서 수학, 천문학, 음악과 변증법을 배웠다.

험난한 수도회의 첫걸음

 

그러나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귀족 학자는 1244년 어느 날 갑자기 부모와의 기대와는 다르게 탁발수도사가 되고자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문하였다. 그는 자신에 대한 지적인 소명을 확신하고 모든 세속적인 부귀와 영화에서 떠난 청빈을 벗으로 삼는 수도사가 될 것을 결단하였다. 이러한 그의 태도에 부모의 진노와 가족들의 반대는 극에 달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교황은 대수도원 원장 자리로 취임하라며 회유를 하였지만 뜻을 꺾는 데 실패하였다. 그의 부모는 그를 15개월 동안 지하 감옥에 가두고 겨우 마실 수 있는 물과 빵만을 허락하였다. 그리고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수도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설득하며 심지어는 매력적인 여자를 방에 들여보내 유혹케 하였으나 실패했다. 토마스의 견고한 의지와 경건한 생활에 감동된 그의 형제들이 하루는 밤중에 토마스를 광주리에 숨겨 성의 창문을 통해 도망가게 했다. 형제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탈출하여 자유의 몸이 된 그는 건강이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미니코 수도회에 다시 가입하였다. 그의 길이 험난한 만큼 그의 의지는 하나님께로 더 확고해져 갔다. “주 예수님이시여 주의 권능으로 세속적인 욕망을 극복하게 하소서.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다가 이 세상에서 죽게 하옵소서.”

깊은 침묵 속에서 다져지는 영성생활

 

1245년 여름 정치적인 상황의 변화에 따라 도미니코회는 교황 인노첸시오 4세(1243년-1254년)를 통해 토마스의 해방을 종용하고 있던 터라 양친도 부득이 그에게 수도생활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토마스는 오직 주께 대한 불같은 열정을 가슴 속에 태우며 수도회의 방침에 따라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서 알프스를 넘어 파리까지 문전걸식하며 나아갔다. 그곳에서 1245년 가을부터 1248년에 이르기까지 생자크 수도원에서 거주하며 파리대학 신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던 당대의 유명한 석학 중의 하나인 알베르토의 제자가 되었다. 거기서 토마스는 침묵과 근면으로 연구에 투신하며 기도에 헌신했다. 토마스는 스승인 알베르트 밑에서 공부하는 중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이며 논리적인 정신을 배워서 하늘의 법까지도 수학 공식처럼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토마스는 주위에서 감탄할 정도로 말 수가 적고 침묵을 지키기 시작했다. 급우들은 몸집이 크고 말이 적었기 때문에 벙어리 황소라고 놀렸다. 하지만 스승 알베르토는 “우리는 이 사람을 ‘벙어리 황소’라고 불렀지만 그가 앞으로 가르치게 될 때 그 소리는 세계로 울려 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그의 영감에 찬 예언은 바로 실현되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에서 비롯된 열정적인 저술활동

 

토마스는 그 후 파리대학에서 규정보다 젊은 나이로 강의를 시작했다. 1257년에는 사상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우정관계를 유지했던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보나벤투라와 같이 교수단에 받아들여졌다. 당시 전 유럽의 청년 학생들이 모여든 파리대학에서 그의 명성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1259년 토마스는 파리를 떠나 이탈리아로 돌아가 9년 동안 여러 교황청 소속 학원과 수도원에서 강의했다. 그가 강의할 때면 온 나폴리의 시민이 거의 다 모였다고 그의 전기 작가는 기록했다. 그의 말은 그만큼 역동적이었고, 사람들의 심령을 파고들었다. 토마스는 1269년부터 1272년까지 다시 파리 대학에서 강의했다. 이 시기에 그의 학문 활동은 절정에 이른다. 모든 사람들에게 겸손과 순명, 정결과 청빈,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덕의 거울로 존경을 받았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정통한 주석자임을 자처하는 아베로스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여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옹호했다.

 

또한 유명한 「신학대전」 저작에 온갖 정열을 쏟았다. 「신학대전」은 그의 천재성이 드러난 책으로 죽을 때까지도 다 끝내지 못한 작품이며 필생의 대작이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토마스야 너는 나에 대해 참 잘 썼다. 그 보수로 무엇을 원하느냐?”는 말씀을 듣고 토마스는 “주여, 당신 외에는 다른 것은 원치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약 100권에 달하는 저술을 남겼다. 그 중에 돋보이는 위대한 신학 작품은 도미니코회 선교사들을 위해 쓴 일종의 변증서 성격의「대이교도대전」과「신학대전」이다.「대이교도대전」은 1259년부터 1264년까지 이교도인 회교도, 유대인, 이단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설교하였던 내용이었다. 그의 작품에는 신학적인 명료성과 논리적인 일관성, 그리고 그에 따른 폭넓은 표현이 특징이다. 그에게 있어서 신학 연구의 목적은 하나님에 대한 그리고 인류의 초자연적 기원과 운명에 대한 참된 지식을 제공해 주는 데 있었다. 그의 주요 사상은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이 되었다.

하나님께 온전히 몰입되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어느 날 조수에게 책의 내용을 받아쓰게 하는 중에 들고 있던 양초가 녹아 자신의 손을 태우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저술 중에 환상에 빠졌을 때 사도 바울이 그에게 어려운 해석을 도와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운명하기 석 달 전 1273년 12월 6일 겨울날, 그는 예배 중에 긴 황홀경에 빠져 들어갔고 그 내용을 발설치 않았다. 그리고 환상 중에 영원한 삶의 기쁨을 맛본 그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다. “이제 내가 그것들을 보니 내가 지금까지 쓴 것은 지푸라기나 다를 게 없다.”

 

토마스는 1274년 3월 7일에 교황으로부터 리용 공의회에 참석하라는 전갈을 받았다. 토마스는 종교적 고행과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몸이 극도로 쇠약한 중에 있었다. 그러나 순종하여 가는 도중 근처의 시토 수도원에서 소천했다. 그의 나이 48세였다. 죽기 직전에 그는 수행원에게 아가서를 읽어 달라고 부탁하고 수행원의 팔에 의지하여 기도했다.
“내 영혼의 속량물 되신 하나님을 영접합니다. 당신만을 사랑했기에 공부했고, 깨어 있으려 했고, 설교하고, 가르치고, 고생도 달게 받았습니다. 당신을 거역하는 말은 일생 동안 입 밖에도 내지 않았습니다. 주여 저를 진정 사랑하시면 이제 만족하시옵소서.”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신학의 거장

 

천사의 박사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해박한 지식을 소유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의 혼돈된 철학과 신학의 문제를 접하며 온생애를 바쳐 진리를 추구하였다. 그리고 일생동안 신학을 체계화하며 기독교 신앙의 교리를 쉽게 설명하고 해석하려는 중세 스콜라 학자로서의 일생을 살았다. 토마스야말로 전심으로 기독교의 합리성, 진실성만을 증명하고자 노력한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진정 그는 그리스도교 최대의 사상가이며 신학자였다. 그는 지금까지도 우리 곁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교회사가 샤프는 말한다.

 

“그는 드물게 보는 천재와 지혜를 가진 사람이며 생활이 순결한 사람이었다. 그의 진술은 질서정연하고 강력하여 가히 견줄 사람이 없었다. 그에 의하여 스콜라주의적 교리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체계 있게 세워졌다. 그는 이 교리를 아주 분명하게 해설하였으며 성서, 전통 및 이성을 통한 유력한 논증으로 이를 변호하였다. 그는 실로 신비스러운 경건과 건전한 지력으로 이루어진 사람이었다.”
오명희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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