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하늘에 이르는 층계(Stairs to Heaven)

요한복음 김영봉 목사............... 조회 수 2737 추천 수 0 2013.01.24 23:51:09
.........
성경본문 : 요1:43-51 
설교자 : 김영봉 목사 
참고 : 2011년 2월 13일 주일 설교 

2011년 2월 13일 주일 설교
와싱톤한인교회 김영봉목사

<강림절과 주현절을 위한 연속설교 ‘내 곁에 온 하늘’(12)>
“하늘에 이르는 층계”(Stairs to Heaven)
요한복음 (John) 1:43-51

 

1.
오늘 우리는 예수님과 나다나엘 사이에 오간 대화에 초점을 두고 그 의미를 묵상해 보려 합니다. 나다나엘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나다나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주셨다’ 혹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 빌립의 절친(confidant)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다나엘이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인 바돌로매와 동일인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열 두 제자의 명단에 빌립과 바돌로매가 항상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돌로매라는 이름은 ‘돌로매의 아들’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실제 이름이 따로 있었을 것입니다. 그 이름이 나다나엘이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빌립이 예수님을 만난 후, 그분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안드레가 예수님에게서 메시야를 발견한 후 형 시몬을 찾아갔던 것처럼, 빌립은 예수님에게서 메시야를 발견한 후 절친 나다나엘을 찾아간 것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데리고 자신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아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없다.”(47절) 예수께서 누군가를 보고 이렇게 칭찬하시는 것은 아주 드문 일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나다나엘이 죄 없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도 허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만 보아도 그가 편견에 묶인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빌립이 그에게, 자신이 만난 메시야가 나사렛 출신이라고 말하자,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46절)라고 대답합니다. 나사렛은 이스라엘 역사 상 한 번도 중요한 역할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미천한 동네에서 어떻게 메시야가 나올 수 있느냐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어느 지역이나 사람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평가절하 하는 것은 꽤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는 진실하고 순수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듣자 나다나엘이 묻습니다.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48절)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48절)

여기서 “내가 보았다”라는 번역은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전하지 못합니다. 의미를 담아 풀면 이렇게 됩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눈여겨보았다.

2.
왜,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나다나엘을 예수께서 눈여겨보셨을까요? 그 대답은 미가서 4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메시야가 오실 날을 내다보면서 예언자 미가는 이렇게 예언합니다.

주님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원근 각처에 있는 열강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사람마다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 살 것이다.
이것은 만군의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다. (미 4:3-4)

스가랴 예언자도 비슷한 예언을 했습니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 날이 오면,
너희는 서로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이웃을 초대할 것이다. (슥 3:10)

 

이스라엘은 우리 조국과 많은 점에서 닮았습니다. 주변에는 항상 강대국들이 있었고 또한 서로 세력 다툼을 벌였습니다. 그 와중에 이스라엘은 항상 피해를 입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땀 흘려 가꾼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자신의 손으로 따먹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자주 쫓겨 다녔기 때문입니다. 예언자 미가와 스가랴는 메시야가 오시면 참된 평화가 올 것이며, 그 때가 되면 자신이 땀 흘려 가꾼 과실을 자신의 손으로 따먹을 수 있으리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나다나엘은 시원한 그늘이 필요해서 무화과나무를 찾은 것이 아닙니다. 메시야가 오실 날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민족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 그곳을 찾은 것입니다. 그에게도 개인적인 기도의 제목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가 더 절실했고 간절했습니다. 그는 예언자 미가와 스가랴의 예언을 묵상하면서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기도했습니다. 메시야를 속히 보내 주셔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주목하여 본 것입니다.

이토록 간절하게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던 나다나엘이기에 빌립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자마자 친구에게 찾아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었기에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가 메시야를 기다리고 소망한 것은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선민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이방인들을 쓸어버리고 싶은 복수심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이 땅에 자리 잡고 하나님의 정의가 모든 사람들에게 실현되는 것을 보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에게 기대하시는 것을 나다나엘에게서 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나다나엘만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을 것입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과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친구 빌립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자신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임에 틀림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이렇게 고백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49절) 나다나엘이 볼 때, 예수님은 과연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였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한 말씀을 더하십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내가 너를 보았다고 해서 믿느냐? 이것보다 더 큰 일을 네가 볼 것이다. (50절)

그런 다음, 나다나엘과 빌립을 함께 보면서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51절)

3.
성경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생각나는 성경 이야기가 있습니다. 벧엘에서 야곱에게 일어난 사건입니다.

야곱, 그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와 함께 항상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세계에 하나님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그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아는 세상은 물질만이 전부였고, 그가 아는 세상은 힘 있는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지는 비정한 세상이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성공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싸워 이겨야 했습니다. 그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나오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승리와 성공과 번영을 위한 야곱의 투쟁은 정반대로 갈등과 원한을 증폭시켰습니다. 결국, 그는 아버지와 형에게 속죄하기 어려운 잘못을 저지르고 피신하게 됩니다. 멀리, 외삼촌의 집으로 이민을 떠나는 길에서 야곱은 루스라는 곳에 이릅니다. 이곳에서 그는 돌을 베개로 삼아 잠시 피곤한 몸을 눕힙니다. 잠이 올 리 없습니다. 그 밤도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뜬 눈으로 지새울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는 깜빡 잠에 빠집니다.

그 잠에서 야곱은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보니, 층계가 하늘에 닿았고, 그 위에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습니다. 천사들 가운데 누군가가 서 있는데,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주,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요, 너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다. (창 28:13)
‘이런 낭패가 있나! 할아버지가 그리고 아버지가 예배하던 그 하나님이 정말 계셨단 말인가?’ 야곱은 꿈을 꾸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다른 우상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만들어 섬기는 대상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단 말인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직하게 믿고 그분의 뜻을 찾고 행하기 위해 애쓰던 아버지가 어리석어 보이기만 했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정작 내가 아니었던가?’ 야곱은 심한 충격을 받습니다. 그의 세계관에 천지개벽이 일어납니다. 꿈에서 깨어난 야곱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이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그리고는 혼잣말로 이렇게 외칩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 (17절)

아침이 되자, 야곱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집에서 수 없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마음에서 스스로 우러나와 예배를 드린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살아 계시다고 믿고 예배드린 적도 없었습니다. 억지로 예배의 자리에 나와 앉아 있거나, 어려울 때 도움을 구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청했다고 해서 하나님을 진짜 믿은 것은 아닙니다. 그냥,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해 보는 것입니다.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이고! 그나마 예배의 자리를 벗어나면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원치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그 스스로 베고 자던 돌을 세워 놓고 제사를 준비합니다. 유랑을 떠나는 길이니 많은 것을 갖추어 제사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감사와 감격과 찬양으로 그의 마음은 터질 듯했습니다. 제사를 드리고 나서 그는 그곳 이름을 루스에서 벧엘이라고 고쳤습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 이후로, 야곱은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믿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섬겼습니다. 자신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믿음을 빈정거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실체를 본 것은 바로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아는 것은 바로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면서 그의 삶은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그의 세계 안에 하나님의 자리가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4.
야곱의 이 이야기를 생각하시면서 예수님은 빌립과 나다나엘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야곱은 꿈에서 천사들이 층계 위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인자’가 ‘하늘에 이르는 층계’(stairs to heaven)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인자라는 층계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인자라는 층계를 통해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인자를 통해 하늘에 이르는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것이 빌립과 나다나엘 그리고 모든 믿는 사람들이 장차 보게 될 ‘더 큰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인자’라고 자주 부르셨는데, 왜 그렇게 부르셨습니까? ‘인자’는 사람 ‘인’에 아들 ‘자’가 합해진 말입니다. ‘사람의 아들’이라고도 번역합니다. 영어로는 the Son of Man입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인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이렇게 불렀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인자’라는 어구는 아주 깊은 종교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자라는 칭호의 뿌리는 다니엘서 7장 13절에 있습니다. 다니엘은 환상 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를 봅니다. 그 존재는 겉으로 보기에 사람 같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그를 ‘인자 같은 이’라고 부릅니다. 그 분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나라를 이어받아 영원히 왕으로 다스릴 분입니다. 다니엘의 예언 이후로, ‘인자’라는 말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가리켜 ‘인자’라고 부른 이유는 당신의 인성을 강조하려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당신의 숨겨진 정체 즉 우주의 영원한 통치자로서 당신 자신을 강조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늘과 땅 사이의 막힘없는 소통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비유하자면,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잇는 층계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보실 때 그분은 ‘땅에 이르는 층계‘가 되고, 우리 편에서 보면 ’하늘에 이르는 층계‘가 되십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은 그분 안에서 우리를 만나십니다.

5.
성부 하나님은 당신과 당신의 나라에 대한 모든 비밀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땅에 이르는 층계가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8절은 말합니다.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버지의 품속에 계신 외아들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려주셨다.

인간으로서 그 누구도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알 수는 없습니다. 피조물이 어떻게 창조주의 세계를 안단 말입니까? 물속에서 헤엄치는 올챙이로서는 개구리의 세계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연구하여 하나님을 찾고 이해하려는 것은 마치 올챙이가 개구리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올챙이가 개구리의 세계를 알 수 있으려면, 개구리의 세계에서 올챙이에게 계시를 해 주어야만 합니다.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말입니다.

나사렛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개구리의 세계를 올챙이에게 알리기 위한 특별한 계시의 통로였습니다. 그분은 삼위일체로서 성부 하나님과 함께 영원 전부터 동행하셨습니다. 그분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분을 통해 우리는 성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합니다. 그분을 알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머리로 분석하여 받아들일 수 있는 진리가 아닙니다. 경험하여만 인정할 수 있는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분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성령을 통해 그분과 교제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을 드러내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체험을 하고 난 사람에게는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상태에서 이것을 머리로 따지다 보니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2천 년 전에 살았던 유대 청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고백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분들에게 저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그 사실을 머리로 따지기를 멈추고 그분 앞에 무릎을 꿇어 보십시오. 그분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고 그분을 만나기 위해 진실되게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마음에 초청해 보십시오. 이것은 머리로 이해할 대상이 아니라 무릎으로 이해할 대상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기 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하늘에서 우리가 선 땅으로 이어진 층계를 걸어 오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으로서 볼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큰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분과 더불어 살아감으로 하늘에 이르는 층계를 걸으시기 바랍니다. 예배로써, 기도로써, 찬양으로써, 말씀 묵상으로써, 사랑의 섬김으로써 우리는 그 층계를 걸어 오릅니다. 오르면 오를수록 하나님 나라의 신비가 우리를 사로잡을 것입니다.

 

6.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알지 못하던 세계를 보고 나면, 이미 보아 알던 세계도 새롭게 보입니다. 이것은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분과의 하나 됨이 깊으면 깊을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더 밝히 보게 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이 땅의 실상이 더욱 밝히 보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매일 아침 새 세상에 눈을 뜨게 됩니다. 우리의 세상 안에 천지개벽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늘에 이르는 계단에 오르다 보면, 항상 하던 일이 어느 날 거룩한 성직으로 느껴져서 손이 떨립니다. 하늘에 이르는 계단을 오르다 보면, 늘 대하던 배우자 혹은 가족이 어느 날 내 곁에 찾아온 천사로 보여서 정신이 번쩍 듭니다. 그래서 귀하게 대하고 정성껏 섬기게 됩니다. 하늘에 이르는 계단을 오르다 보면, 늘 대하던 밥상인데, 어느 날 문득 그것이 하나님께서 차려 주신 거룩한 성찬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늘에 이르는 계단을 오르노라면, 늘 걷던 골목이 어느 날 하늘로 가는 길처럼 보여서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습니다. 하늘에 이르는 계단을 걷다 보면, 매일 지나는 길에서 보던 나무들이 어느 날 나를 향해 춤추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창밖에서 들리는 새의 노래 소리가 하나님을 찬미하는 음악처럼 들립니다. 백일몽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약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본 것입니다. 하늘에 이르는 층계 위에 올라선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습니까? 이 지상에 인간에게 드러나지 않은 비경이 아직도 많다 하지만, 하늘에 이르는 층계 위에서 보는 비경에 비하겠습니까? 여행을 해 본 사람들은 다 경험했겠지만, 산은 높이 오를수록 더욱 놀라운 경관이 드러납니다. 하늘에 이르는 층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층계를 오를수록 우리는 더 큰 일을 보게 됩니다. 그 층계 곳곳에 숨 막히는 절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상황에 있습니까?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선 땅에 이르는 층계가 드러났는데도, 그것을 무시하고 그저 땅만 파고 살아가겠습니까? 돼지는 체형 상 하늘을 볼 수 없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목이 굳어서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면, 혹은 그분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돼지처럼 환히 드러난 하늘을 없는 듯 여기고 땅만 파고 살아가게 됩니다. 먹는 것이 전부인 인생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벧엘 이전의 야곱처럼 갈등과 분열과 원한으로 얼룩진 인생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여 하늘에 이르는 층계에 오르시기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은 이미 하늘에 이르는 층계에 오르셨습니까? 어디쯤 가고 계십니까? 혹시 몇 계단을 오르다가 멈추어 선 것은 아닙니까? 혹시 처음의 열정이 식어 다시 내려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 층계는 가고 가도 끝이 없습니다. 그 층계를 오르는 것이 때로 힘들 때도 있지만, 오르는 만큼 더 드러나는 절경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내려가고 있었다면 돌아서시기 바랍니다. 멈추었다면 다시 걸어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꾸준히 걸어 오르고 있었다면, 그 걸음을 지속하시기 바랍니다.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다나엘에게 주신 약속이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멘.

하늘을 여신 주님,
땅과 하늘을 잇는 층계가 되신 주님,
저희로 하여금 주님 안에 있게 하시어
하늘을 보게 하시고
하늘을 맛보게 하시며
하늘의 소리를 듣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땅을 새롭게 보게 하시고
만나는 사람들을 새롭게 대하게 하시며
매일 같이 새 날을 살게 하소서.
아멘.

<속회 자료>
2011년 2월 20일 주일 설교
<강림절과 주현절을 위한 연속설교 ‘내 곁에 온 하늘’(12)>
“하늘에 이르는 층계”(Stairs to Heaven)

1. 찬송을 부르며 시작합니다. 542장
2. 한 사람이 대표로 기도합니다.
3. 요한복음 1:43-51을 다시 읽습니다. 예수님과 나다나엘의 대화를 읽고 그 뜻을 살펴 봅니다. (10분)
4. 말씀의 나눔 (한 질문에 대해 15분 정도를 할애하십시오. 전체 나눔 시간이 90분을 넘지 않게 하십시오.)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한 가지씩만 나누어 보십시오.
2)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에게는 ‘땅에 이르는 층계’이며, 우리에게는 ‘하늘에 이르는 층계’라는 비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십시오. 예수님에 대해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3) ‘하늘에 이르는 층계’에 대해 당신은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아직 그 층계에 오르지 않았습니까? 올랐다면 어떻게 걷고 있습니까?

5. 중보기도
1) ‘하늘에 이르는 층계’를 외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2) ‘하늘에 이르는 층계’를 꾸준히 걸어 올라가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6. 찬송을 부르며 헌금을 드립니다. 543장
7. 광고 후 주기도문을 드림으로 마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sort
15614 사도행전 진정한 명문 가문의 길 행18:12-23  이한규 목사  2009-12-05 2745
15613 느헤미야 절망에서 희망을 만드는 사람 느1:1-3  이한규 목사  2009-11-05 2745
15612 이사야 주일을 거룩하게 보내라 사58:13-14  한태완 목사  2007-11-17 2745
15611 요한일서 예수의 현존체험 요일1:1-2  김 진 목사  2003-11-28 2745
15610 누가복음 예수 성탄 이야기 눅2:1-7  정양모 신부  2008-02-26 2745
15609 여호수아 감사를 잊지 말자 수14:1-15  최장환 목사  2013-11-20 2744
15608 마태복음 교회가 살아야 세상이 산다. 마18:18-20  김영봉 목사  2011-04-30 2744
15607 요한삼서 내 영을 위한 황금 씨앗 요삼1:2  이정수 목사  2010-11-12 2744
15606 요한복음 성령 충만한 삶의 2대 실체 요1:29-34  이한규 목사  2010-07-18 2744
15605 전도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전3:1-15  우제돈 목사  2010-03-23 2744
15604 시편 감사의 영적 의미 시22:3  조용기 목사  2008-06-20 2744
15603 여호수아 홍해와 요단. 수3:14-17  김동호 목사  2011-10-30 2743
15602 사무엘상 소망을 가지고 사는 자의 자세 삼상29:1-11  김필곤 목사  2009-12-05 2742
15601 누가복음 희망과 소망의 기다림 눅2:25-39  한태완 목사  2013-12-08 2741
15600 누가복음 희망을 볼 줄 아는 사람 눅2:8-14  이한규 목사  2012-01-12 2741
15599 창세기 행복한 부부생활 창1:27-28  한태완 목사  2011-07-26 2741
15598 창세기 가정2-포기할 때 사랑은 시작된다 창22:1-19  김영봉 목사  2011-04-30 2741
15597 다니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 단7장  이동원 목사  2010-05-25 2741
15596 마태복음 비판하지 말라 마7:1-6  한태완 목사  2007-11-26 2741
15595 고린도전 예수님과 맡겨진 일에 충성하라 고전4:1-2  한태완 목사  2013-12-30 2740
15594 고린도후 나를 위해 살지 말고 예수를 위해 살자 고후5:14-15  한태완 목사  2013-11-24 2740
15593 로마서 양자의 영 롬8:12-15  민병석 목사  2013-05-24 2740
15592 디모데전 경건 연습 딤전4:7-8  김동호 목사  2012-08-23 2740
15591 요한계시 부활의 능력 계3:21  이천수 목사  2009-07-08 2740
15590 누가복음 기도의 신비를 체험하는 길 눅11:5-13  이한규 목사  2009-04-09 2740
15589 마태복음 주님의 심정을 알자 마5:1-20  최장환 목사  2013-07-31 2739
15588 시편 내게 주신 모든 은혜 감사 시116:12-14  김동호 목사  2012-09-15 2739
15587 창세기 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 창28:10-19  김동호 목사  2011-04-28 2739
15586 창세기 하나님의 구원 섭리 창45:1-15  정용섭 목사  2010-07-05 2739
15585 에배소서 술 취하지 말라 엡5:18  한태완 목사  2012-09-26 2738
15584 베드로전 독수리같은 신앙훈련 벧전4:12-13  한태완 목사  2013-11-02 2737
» 요한복음 하늘에 이르는 층계(Stairs to Heaven) 요1:43-51  김영봉 목사  2013-01-24 2737
15582 신명기 자비의 열매 - 작은 자에게 베푸는 친절 신24:19-22  조항목 목사  2012-10-18 2737
15581 마태복음 마태복음의 성탄절 마1:1-2:23  이정수 목사  2012-01-17 2737
15580 열왕기상 나의 삶이 남길 가장 큰 유산 왕상2:1-4  김필곤 목사  2010-01-16 2737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