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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악함

출애굽기 연재선 목사............... 조회 수 3828 추천 수 0 2013.02.05 00: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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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7:8-13 
설교자 : 연재선 목사 
참고 : 2009년11월22일 새생명교회 http://nlc1.cafe4.com/ 

완악함

 

하나님은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셔서 바로 앞에 서게 하셨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당신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실 것이므로 바로가 모세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본래 바로의 마음은 부드러웠는데 하나님께서 억지로 바로로 하여금 악한 마음을 품도록 바꾸셨다는 뜻이 아니다. 바로는 처음부터 “여호와가 누구이기에”(5:2)라고 말하던 사람으로서 이미 하나님을 무시하며 살던 악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완악하게 한다는 것은 유기(遺棄)의 의미로써 ‘죄악된 인간의 마음 상태로 그대로 내버려두신다’는 의미이다(롬 1:24).

 

완악함의 특징은 자기가 정해놓은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이다. 바로는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세상에는 본래 완악한 자와 부드러운 자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세상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존재할 뿐이다.

 

강한 사람은 말할 나위도 없고, 부드러운 자라고 하여 자기의 뜻을 굽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강한 사람은 과연 누구를 위해서 강하며, 부드러운 사람은 과연 누구를 위해서 부드러운 것인가? 강하든, 부드럽든 모두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없이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면 강한 사람은 벌써 부드러워졌어야 했고, 부드러운 사람은 벌써 강해져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은 인간에게는 모두가 자기를 보호하려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완악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때론 우리 주위에 변화된 사람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안에도 자기를 보호하려는 인간의 본성이 숨겨져 있을 수밖에 없다. 남의 눈을 의식한 나머지 변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변하는 것일 뿐이다. 변하지 않으면 누가 알아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윤리나 도덕이라는 것도 서로에게 손해가 끼치지 않도록 서로 보호하는 방편인 것이다. 그러므로 윤리나 도덕을 지킨다고 해서 사람의 완악한 마음이 근본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모두 완악하다. 결국은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신앙인이라 할지라도 자기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가령 어떤 교인이 자기 아들을 결혼시키려 한다고 하자. 그는 사람들에게 말로는 자기 며느리가 될 사람은 아무 것도 필요 없고 그냥 믿음만 좋으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 정말 믿음만 좋은 아가씨라면 되는가? 나는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정말 믿음만을 보고 며느릿감을 찾는 것은 보지 못했다.

 

아가씨가 좀 싹싹한 맛이 있어야 하고, 어른을 섬길 줄도 알아야 하며, 살림도 잘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런 것들은 당연히 믿음 안에 포함돼야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있다.

 

그러면 앞에 언급한 것들이 다 갖춰졌으나 여자가 못생겨도 너무 못생긴 사람이라면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부모가 있든, 없든 아무 상관도 하지 않겠는가? 그런 것들은 사실상 신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믿음만 좋은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맘에 맞는 좋은 배우자’가 나타나기를 원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거나 자기 맘에 맞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엔 그것을 하나님의 응답이며,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신 증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말 하나님만을 바라본다면 내 아들이 누구와 결혼하든 상관없어야 하는데, 자기의 기준에서 미달된 며느릿감을 만나면 결혼을 반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나름대로 정해놓은 기준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굽히지 않고 계속 기도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것이 완악함인 것이다. 자녀가 학교에 들어가는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볼 때 세상에 완악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팡이를 던져서 뱀이 되게 했다. 그러자 애굽의 요술사들 역시 그렇게 했다. 그러나 아론이 던진 지팡이가 애굽의 요술사들의 지팡이를 삼켰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도 바로는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았다고 말씀한다(13).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완악이란 자기도 할 수 있거나 자기가 처한 어려움을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마 바로 왕은 자신이 직접적으로 당하는 고통이 아니기 때문에 나름대로 견딜 수 있다고 판단되어 결코 하나님의 백성들을 놓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바로는 자기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뜻을 포기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포기되어지지 않는 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란 있을 수 없다.

 

모세 역시 완악했다. 그런데 다른 점은 하나님이 완악함을 그대로 두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애굽 사람들은 못돼먹어서 벌을 받아도 싸다.’라고 막연히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스라엘이나 애굽은 똑같이 완악한 자들이었다.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고역으로 힘들어지자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던 자들이었다. 모세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계속 자기 고집을 부렸던 자였다.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팔십 세였고 아론은 팔십삼 세였더라(7)

 

계속 자신의 고집만 피우던 모세가 비로소 바로 앞에 가서 이적을 행했을 때의 나이는 80세였고, 그의 형인 아론의 나이는 83세였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끝까지 그와 함께 하신 결과였다. 인간적으로는 어떤 일을 해낼 것을 기대할 수 없는 나이였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간의 능력이 끝난 자리에서 모세를 부르셨다.

 

사람이 가장 불행한 것은 버림을 받는 것이다. 싸우기라도 하는 것은 그나마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마저도 없으면 불행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아 마땅한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는 완악함에서 벗어나게 하시기 위하여 계속하여 일하신다. 그대로 방치하신 것이 아니라 택하시고 부르심으로 이루어진 결과인 것이다(롬 9:11).

 

모세가 지팡이를 던져 뱀을 만든 것처럼 바로의 요술사들도 동일하게 행했다. 그러나 아론의 지팡이가 술객들의 지팡이를 삼켜버렸다. 인간은 한계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스스로 행할 수 있고, 어려움이 있어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멸망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일을 했는가 하는 것을 심판의 기준으로 삼으시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자신의 완악함을 깨닫고 인간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복이란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전능자의 손에 이끌려 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완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은혜로 인간의 죄악을 덮어주신 결과로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믿는 것이 믿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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