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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7: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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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성홍모 목사 |
참고 : | 2009. 6. 10(수) 영주교회 [서울시 후암동] http://youngjoo.co.kr/ |
모세를 사용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 당신의 택하신 민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모세를 불러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여러 차례, 그가 해야 할 일을 가르쳐주시고, 큰 능력도 부어주시고, 재삼 용기를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 한번 말씀해주신 것으로 끝내지 아니하시고. 다시 불러 사명감을 확실하게 하시고, 확인시키시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장이 모세의 소명장인데, 출3:10에서 처음으로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의 해방자로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 다시 보면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여기서 “내가”라고 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너로”, “너에게” 이 사람은 모세입니다. “바로에게 보내고”, 애굽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이요, 그것도 애굽의 군주인 바로에게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이 말씀을 보면 모세는 사실 들러리 서는 것이요, 하나님, 하나님 자신이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겠다는 말씀입니다. 모세를 보내시지만, 사실은 모든 주도권은 하나님이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능력을 주시고, 이적을 행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도 모세는 자기는 그 일에 합당한 사람이 아니라고 거절하는 말을 드립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출 4:10) 이 말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음성에 간접적으로, 우회적으로 거절하는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바로에게 들어가면 말을 유창하게 잘해야 하고, 설득력이 있어야 하고, 호소력 있어야 하고, 말이 질서가 있고, 정연해야 하고, 또 상대방이 감동받게 말해야 하는데, 자기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어서 이스라엘을 해방하는 일에는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고 거절하는 말입니다. 지금 하나님 앞에 있으면 직접 거절하는 말을 할 수는 없고, 자기의 부족한 점을 들어 간접적으로 못하겠다고 거절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달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출 4:11) 이 말씀은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겠느냐? 네 입을 새롭게 하고, 말을 하는데 조리 있게 하고,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게 말할 수 있도록 할 것인데,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모세는 애굽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한두 번 말하는 것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내어주고, 돌아가게 할 그런 신사적인 사람들이 아니고, 무지막지한 사람들이요, 자기네만 알고, 노예의 서러움이나 고통 같은 것을 전혀 몰라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모세는 아예 처음부터 거절하고 그런 큰 사명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는 자기는 아니라고 강변합니다.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출4:13)라고 하였습니다. 사실은 모세 한 사람으로도 충분한데, 모세가 자꾸만 거절하는 바람에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더 낫다는 생각으로 모세의 형 아론을 대변인으로 붙여주셨습니다.
세상에 말 잘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서 모세의 대언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가 된 사람이 모세의 형 아론입니다. 그는 모세가 살아 있을 때에는 형인데도 항상 2인자였습니다. 모세의 옆이나 뒤에 서 있어야 하는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출6:1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출 6:1)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바로가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백성들에게 무서운 노동에 처하고, 괴롭게 할 때에, 또 다시 하나님 앞에 자기는 이 큰 일에 합당한 사람이 아니라고 지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쓰시라고 거절하는 말씀을 드립니다. 출6:10-12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들어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하라 모세가 여호와 앞에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않는데, 바로라는 자가 어찌 내 말을 듣고 보낼 것입니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이 말은 입이 둔한 사람이라는 말을 하면서 나는 이 큰 사역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입이 둔하다는 말은 예레미야 선지자도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과 바로 사이에 본격적으로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시금 바로에게 들어가서 내가 너에게 들려준 말을 다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출6:28-29입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바를 너는 애굽 왕 바로에게 다 말하라” 거의 같은 명령의 말씀입니다. 이때에 모세는 다시금 주저주저 합니다. 자기는 이 큰 하나님의 일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다, 모자라는 사람이다, 실패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소극적인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때에도 모세는 전과 같은 말을 합니다.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아뢰되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출 6:30) “입이 둔한 자”라는 말은 모세의 전매특허와 같은 말입니다. 이 말은 “할례받지 못한 입술”이란 뜻으로 허다한 인간적인 실수를 저지를 우려가 있는 미천한 입술, 무능한 입술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 말은 모세의 겸양을 보여주고, 하나님의 일은 크고 막중한 일인데, 자신의 능력은 한 없이 부족함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능한 자가 어떻게 바로 앞에 설 수 있느냐 하는 탄식과 좌절감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세상에 모세를 나무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사실 엄청나게 크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명은 막중한 사명인데, 그 자신을 되돌아보면 한 없이 부끄럽고 부족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입술은 지으신 분이 누구입니까? 겸손도 좋고, 사양하는 것도 미덕이지만, 계속해서 부족하다고 하며, 못한다는 말을 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좋은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요, 하나님의 능력이라면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이기고 간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모세는 여러 번 하나님 앞에 “죄송합니다.” “입술이 둔한 사람입니다.”,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소서”라고 하였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다시금 용기를 주시고, 해야할 일을 분명히 알려주시고, 다시금 힘을 실어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시작하셨을 때에 실패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모세에게 힘을 실어주시고, 형제가 연합하여 사역을 감당하라고 일러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 해방자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어떻게 사용하시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모세의 손을 들어주시고 있습니다.
1. 모세는 신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높이 들어 사용하시는데, 마치 바로 앞에서는 신 같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신이라고 하면, “엘로힘”이라고 하여, 그 뜻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모세만 나타났다 하면 마치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처럼 보이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바로는 한 없이 작은 인간에 불과하고, 모세는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저 사람이 과연 사람인가, 하나님인가, 사람이라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그렇게 위대해 보일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이것은 모세 자신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모세의 인격이나 신앙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모세가 하는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모세를 높여주시고 있습니다.
모세 안에 하나님이 계신가, 모세와 함께 하나님이 계신가, 아니면, 정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인가 별의별 생각을 만들었습니다. 모세만 나타나면, 벌벌 떨었습니다. 떨지 않으려고 오기를 부리고, 더 완악하게 대적해보아도 한없이 작아 보이고, 모세는 하나님 같아 보이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던지면 뱀이 되고, 물을 쏟으면 피가 되는데, 정말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능력입니다.
우리 주님도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고 하셨습니다. 막16:17에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쓰시는데, 모세의 손을 들어주시고 있습니다.
2. 모세에게는 아론을 붙여주셨습니다.
아론으로 모세의 대변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모세에게는 아론이라는 형이 있는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힘을 실어주시면서 대변인을 붙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은밀한 것을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모세는 다시금 아론에게 알려주어 백성에게 선포하게 하시고, 애굽의 바로에게 전하게 하셨습니다.
대언자란 히브리어로 ‘나비’라고 하는데, “영감에 의해 말하다.”라는 나바에게 나온 말인데, “예언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모세는 아론에게 전해주고, 그 다음에 아론이 외치는데, 위대한 능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대변인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KJV에서는 프로페트(prophet)라고 하여 예언자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영감을 받은 예언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다스리는데, 천국천사를 동원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을 사용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선택하시고 있습니다.
후에 모세의 누이 미리암과 아론이 함께 모세를 비방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에도 하나님은 모세의 손을 들어주시고, 앞장서서 비방한 미리암을 책망하시고 잘못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사용하시고, 손을 들어 주시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지금 모세와 아론을 세우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의지가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이적을 행하여 이스라엘을 건져내겠다고 하십니다.
본문 3-6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매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출7장에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애굽에 큰 심판을 내리시기로 작정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괴롭히고 있는 애굽을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큰 심판으로 치신 후에 이스라엘을 이끌어내시려고 합니다.
3-6절의 말씀은 이미 4장에서 말씀하신 것을 재론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니,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인간은 아무리 고집을 부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대적한다고 해도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에 순종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대적하고 대들로 반대하는 자들은 심판을 내리시고, 군대를 보내어 무찌르면서 하실 일은 하시고야 맙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대적할 사람이나 사상이나 이념을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바로가 강퍅한 사람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번 말해서 순수하게 들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강퍅하다”는 말은 “목이 곧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고, 자기 민족의 이익만 생각하고, 내가 왕으로 있는 동안에는 철권통치를 이루고, 명령에 불복종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만 두지 않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나 방법을 동원하는 사람입니다. 강퍅한 사람은 강퍅한 대로 내버려두신다는 뜻입니다. 강퍅한 사람도 아닌데, 선한 사람을 완악하게 만들어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완악한 사람은 완악한대로 대하시고, 강퍅한 사람은 강퍅한 대로 사용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출9:20-21을 봅니다. “바로의 신하 중에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 종들과 가축을 집으로 피하여 들였으나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사람은 그의 종들과 가축을 들에 그대로 두었더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여호와의 말씀을 향하여 마음을 정하지 아니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게 여기는 사람은 그들의 가축을 집으로 피하여 끌어들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사람은 가축을 들에 두어 재앙을 얻어맞게 하였습니다.
3절 말씀에서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 많이 행할 할 것이나” 이 말씀에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다는 말씀을 잘 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일부러 완악하게 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애굽 사람이라도 순종합니다. 그러나 바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순종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은 재앙을 스스로 자초하는 사람이요, 벌을 받으려고 벌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4절입니다.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바로는 모세와 아론이 하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 완악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완악한대로 내버려 두시니 모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큰 심판을 준비하시고, 하나님이 손을 펴서 그 심판을 내리시므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있습니다.
앞으로 10가지 재앙을 일으킨 후에야 바로가 하나님 앞에 항복하고 이스라엘을 나가야 허락합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들어가 말할 때에 모세는 80세였고, 아론은 세 살 많은 83세였습니다. 정말 노익장을 과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늙었지만, 조금도 늙은 내색을 내지 않고, 온 국민들을 통합하여 가나안으로 나아가는 대단한 사람들이요, 정말 훌륭한 인격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애굽에서 40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그리고 이제 이스라엘의 해방자로 40년을 보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연단하신 만큼 귀하게 사용하시고 있습니다. 그가 120세를 살면서, 눈이 흐리지 않게 하시고, 기력이 쇠하지 않게 축복하셨습니다. 병들어 누워본 적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 있습니다. 일한 것이 있는 사람은 복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해야 합니다. 자신을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사용하시고 손을 들어주시는데, 이적을 행하게 하십니다.
4. 하나님은 모세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기를 바로 앞에서 이적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을 믿고, 아론이 나아가서 바로 앞에서 지팡이를 던졌습니다. 그 지팡이는 뱀이 되었습니다. 그 때에 바로는 자기 밑에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고, 애굽의 요술하는 자들을 모아 모세를 대적하게 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지팡이를 땅에 던졌습니다. 애굽의 요술사들도 요술을 부리면서 지팡이를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모든 지팡이가 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론이 던진 지팡이가 애굽의 요술사들이 던진 지팡이를 먹어 삼켰습니다. 여기 뱀이라는 용어는 탄닌이라고 하는데, 뱀, 용, 악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주석가들을 아론이 던진 것을 분명히 나무로 된 지팡이였고, 땅에서는 분명히 뱀이 되어 다녔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요술사들이 던진 것은 나무로 된 지팡이가 아니라, 뱀에게 최면을 걸어 지팡이처럼 딱딱하게 굳게 한 것을 가지고 있다가 땅에 던지면서 뱀으로 정신을 차리고 돌아왔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나무로 된 지팡이를 던졌는데, 그것이 뱀으로 변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애굽 요술사들이 벌인 것은 뱀마술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모방이며 가짜이지, 사탄이라고 해도 창조에 접근할 수도 없고, 창조를 모방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의 능력은 모세에게서 나온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했을 뿐이지, 절대로 자기에게서 나온 능력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능력을 행하게 하시는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분명하신 섭리가 있을 때에, 초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지팡이는 어디까지나 지팡이여야 합니다. 결코 뱀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고와 경험,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모세 시대에 한번 있었던 사건으로 족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가지기에 충분합니다. 어떤 희한한 일을 고대하는 것은 지정의 하나님 앞에서 바른 태도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도 애굽의 요술사들이 지팡이를 던지면 똑같이 뱀이 되는 것을 보면서, 어느 정도 대적할만한 자신을 얻었는지, 바로가 그 마음이 완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을 대적하는 사람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큰 심판을 예비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모세를 한번 선택하시고, 조금 부족하여도 계속하여 사용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에 감사드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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