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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손을 드시면

출애굽기 임덕순 목사............... 조회 수 2125 추천 수 0 2013.02.05 00:3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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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7:14- 25 
설교자 : 임덕순 목사 
참고 : 2005-11-06 한가람교회 http://www.hankaram.or.kr/ 

하나님이 손을 드시면  

 
요즘 들어 상수원이 오염되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공장들에선 산업폐수들을 여과 없이 흘려보내고, 가정에서는 세제를 남용하여 하수로 보내고 있으며, 농촌에서는 가축 분뇨들이 여과 없이 버려지는 상황이 전국적인 현상이고, 농사를 위해 지하수를 뽑아 올리느라고 여기저기에 파이프우물을 뚫고는, 나중에 비가 오면 그 관정을 덮지 아니하고 그대로 방치하기 때문에 땅위의 오염된 물이 맑은 지하수 속으로 흘러들어서 지하수마저 오염되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없게 되는 것 같습니다.


폐비닐이나 깡통, 은박지 알미늄 캔 등이 여기저기에 버려져 쌓이고 농약병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지며 무서운 수은과 납 등이 든 건전지가 아무데나 버리는 바람에 이것들이 땅과 물과 하늘의 공기까지 무차별 오염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는 산성비와 그보다 더 무서운 산성 눈이 내리고, 쇠가 삭아들고 나무들이 고사하며 물고기가 기형이 되거나 떼죽음을 하고, 삼림이 훼손되며,  강물과 지하수가 죽은 물이 되어 모든 사람들은 서서히 병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수자원 오염은 우리의 미래를 망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어디서든지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해서 앞장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질오염사건이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 애굽에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내라 하셨지만 그들이 듣지 아니하자  하나님은 모세의 지팡이 끝으로 강물을 건드리게 하셨고,  애굽의 모든 강물과 샘물은 피가 되고 말았습니다.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에게 내 손을 들어 친 후에야 그들이 너희를 내보내리라.” 고 하셨는데, 그 말씀처럼 하나님이 드디어 당신의 손을 애굽 사람들 위에 높이 드셨습니다.  그것은 재앙이 시작된다는 의미였습니다. 

  

  모세가 아론에게 지팡이를 주면서 "이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애굽의 물들과 하수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위에 펴라"고 명령 하였습니다. 

아론이 그렇게 하자 애굽의 온 강물들이 피가 되어 비린내가 나고 먹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 내린 첫 번째 재앙이었습니다.  그들이 물을 먹으려고 떠 입에 대면 시뻘건 피가 되어있었고, 손을 씻으려고 물을 뜨면 시뻘건 피였으며, 세탁을 하려고 빨래를 담가놓으면 핏물에 담근 것이 되었으니  애굽 사람들이 얼마나 겁에 질렸겠습니까?  


하나님이 진노하시면 사람이 자랑했던 것이 재앙거리가 됩니다.

애굽의 나일 강물은 애굽 사람이 자랑하며 신성시 하는 물입니다. 그 나일 강은 풍요의 상징이었고, 애굽 사람들의 생명의 젖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일 강에 제사를 드리며 그 강에 풍요를 달라고 빌었고 강을 신처럼 섬겼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신성시했던 강인데, 하나님이 애굽의 사람들을 싫어하시고 진노하시자 그들이 섬기던 강이 그들을 괴롭히는 물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날마다 마시던 물이 마실 수 없게 되었고, 그들이 자랑하던 물이 그들을 두렵게 하였으며, 보기조차도 무서운 물건이 되고 만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 사람을 찾아와서 화목하게 만들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고 모독함으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싫어하시면, 그래서 하나님이 그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시면, 그 사람이 자랑하던 그것이 그 사람을 해치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그 사람이 자랑하던 건강이 그를 실망시키고, 그 사람이 자랑하던 돈이 그 사람을 고통에 빠뜨리고   그 사람이 자랑하던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패망하게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자랑하던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인데, 받은 것을 좋아하느라고 주신 하나님을 등지니, 하나님께서 그로 정신을 차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무엇이 과연 중요하고 무엇을 의지해야 하는 것인지를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을 거역하면 그가 자랑하던 것이 그 사람에게 고통의 원인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귀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에게 자존심을 갖게 해 주고,  누구에게도 기죽지 않게 만들어 주는 그것이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지금 돈이 남보다 넉넉해서 자랑스럽고 교만할 근거가 되고 있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보다 돈을 좋아하고 사랑하여 하나님을 노엽게 한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싫어하실 것이고, 그럴 경우 그동안 내게 자랑거리였던 돈이 나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재앙이 되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건강이 자랑거리입니까? 남보다 빨리 회전하는 머리가 자랑거리요 자만의 원인입니까? 당신의 직장과 가문이 자랑거리입니까? 그것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없거나, 더디 순종하게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것을 의지하느라고 하나님을 덜 의지했다면, 그것을 자랑하느라고 하나님을 자랑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크게 잘못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시간과 생명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의 자세는 더욱 아닙니다.

  자신의 미모나 인기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중단시켰고, 하나님앞에서 멀리 떠나게 했습니까?  하나님은, 내가 의지하고 내가 자랑하는 그것,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등지게 만드는 그것을 치시는 분이고, 하나님이 치시면 그것은 더 이상 나의 자랑이나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진절 머리가 나도록 나를 괴롭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얕잡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평안하고 자랑할 것 있을 때, 그것을 주신  하나님 앞으로 다가서시기 바랍니다.


  오늘 너무 평안하고 풍요해서 하나님이 필요 없는 것처럼 생각될 지라도, 내 생각이 아무리 옳고 정확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이 필요 없는 것 같을 지라도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역사와 환경의 주관자이십니다.  하나님이 교만해진 나를 더 이상 사랑하시지 않고, 용서하지 않기로 작정하신다면, 하나님이 내게 대하여 분노하신다면 그렇게 자랑스럽고 좋았던 것들이 나에게 무서운 재앙이 되며  진절머리의 원인이 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 백성과 바로 왕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자랑하고 섬겼던 나일 강물이 그들에게 절망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게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본문에 나타난 재앙입니다.   


그때 바로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바로는 즉시 자기의 생각이 악했고 하나님앞에서 교만했다는 것을 깨닫고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마음이 강퍅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살했습니다.  바로는 자기의 마술사들을 불렀고, 그들도 한 컵의 물을 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무릎을 쳤을 것입니다. “아하, 물이 피가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라, 모세의 술법에 불과하구나.” 바로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모세의 말과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을 아주 시시하게 생각하고는 모세를 더 이상 거들떠보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재앙과 인간의 술법을 분간 못한 바로는, 더욱 큰 재앙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금년가을에는 미국 동남부에 강력한 태풍이 불어와 뉴올리온즈라는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지난달에는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는 진도 7.8의 강진이 발생해서 근 8만 명이 숨지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지난해 말에는 태국과 인도네시아에 쓰나미라는 지진해일이 일어나 15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습니다.  남아시아 전역을 초토화시킨 이 참사는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지각판중에서 인도ㆍ호주판이 유라시아판의 아래쪽을 파고들면서 규모 9.0의 강력한 해저 지진을 일으켜 거대한 해일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이 주일이었습니다. 주일날 교회가지 않고 휴양지로 휴가 갔다가 참변을 당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서울의 유명한 목사님이 이번 쓰나미는 하나님의 재앙이었다고 말했다가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볼 일입니다.  쓰나미의 피해를 본 지역은 인도네시아, 태국, 스리랑카, 인도 등인데,  ‘세계 종교의 자유 보고서 2004’를 보면 최대 피해지역인 인도네시아 아체 지역은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하게 이슬람법인 샤리아에 의해 통치되고 있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임을 당하는 곳이고, 스리랑카도 목사를 구타하거나 교회를 방화할 정도로 기독교인에 대한 핍박이 드센 곳이며, 인도의 상당수 주에서는 아예 법적으로 기독교 개종이 금지되어 있고,  태국 푸켓의 경우 이슬람교뿐 아니라 중국계 무속 등 미신이 팽배하여 기독교 선교가 어려운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판단입니다.  암3:2하에 “그런즉 내가 너희의 모든 불법으로 인하여 너희를 벌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요즘 여기저기서 지진과 자연재해가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일들을 그냥 자연의 활동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경고요 심판이라는 말을 하면, 비난을 면치 못하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모세 시대 바로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보면서도 우연발생이거나 환경을 잘 못 다스린 결과라는 식으로 생각해 버립니다.  하나님을 일부러 잊으려는 태도입니다. 

벧후 3:5에 보면,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일부러 잊으려 한다고 기록하였고,  마 24:38-39에는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둔감하리라는 예고입니다.


바로의 생각에는 나일강물이 피가 된 재앙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모세가 마술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이것이 모세가 믿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할지라도, 그 능력이란 자기나라의 술객들도 모방할 수 있는 정도의 시시한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모세의 마술이나 모세가 믿는 신의 능력이 과연 어느 정도나 되겠느냐고 생각하면서  한번 버텨보자고 모세의 말을 묵살 했던 것입니다.


이 시대에 배웠다는 사람들 중에는 세상만사를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우연으로 돌려서 묵살하는 사람도 많고, 사람들이 꾸민 일로 간주해버리고 매도하기까지 하는 경우도 많이 있으며, 혹은 신에게서 온 것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도대체 신이 나를 어쩌겠느냐 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되는 것일까요?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두려움으로 순종하거나,  거역하거나 묵살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행위에 대하여 선 악간에 그대로 심판하십니다. 전 12:14에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 악간에 심판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왜 하나님을 향하여 대항할 생각을 할까요?  무식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과학은 알고 사회는 알지만, 과학과 사회의 바탕인 이 세상의 자연법칙과 도덕률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손바닥위에서 살면서 그분의 손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제 눈에 하나님의 전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또 하나는 어리석은 자존심 때문입니다.  내가 대 제국의 황제인데 누가 나더러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는 바로처럼 이 시대의 사람들도 내가 대학을 나왔는데, 내가 학위를 받았는데, 내가 내 힘으로 세상을 오십년 살아왔는데, 나도 주관이 있고 생각이 있는데 누가 나더러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 하는 어리석은 자존심 때문에 하나님을 거역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장 심각한 무식이요, 최악의 자존심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존엄성을 지키는 길은 그런 교만이 아니라, 생명과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바로가 순종하지 아니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동안 애굽에서 수백년 동안 온갖 궂은일을 다 해주었는데,  만약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스라엘을 모두 석방시키면 앞으로 누가 그들의 궂은일을 담당해 주겠습니까?  바로는 자기나라의 이익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수가 없기도 했을 것입니다.


  오늘 한국의 3D업종은 거의 외국 근로자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엊그제는 그들을 단속하여 강제출국 시키자 그들이 일하던 회사가 모두 가동이 중단되고 사장들이 데모를 하였습니다.  어느 날, 그들이 어떤 이유 때문에 한꺼번에 한국을 떠나게 된다면, 우리나라의 공장들이 마비되지 않겠습니까?

단 몇 년 동안 외국인들이 궂은일을 해준 한국도 그러한데, 수 백년 애굽의 모든 궂은일을 도맡았던 이스라엘이 다 떠나면, 애굽의 궂은일은 누가 해내겠습니까? 그러니 아무리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할지라도 나라의 통치자인  바로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을 내 보낼 수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할지라도 내게 물질이나 어떤 것에 손해가 올 것이라고 예상되면 우리는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바로의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23절에, 바로가 돌이켜 궁으로 들어가고 그 일에 관념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바로는 하나님의 뜻을 일부러 모르는 척 해보려고 하는 태도가 보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고, 나를 향하여 다가오는 하나님의 섭리가 보일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당장 유익하지 않은 명령이면 우리는 일부러 외면하려고 해봅니다.  뻔히 알면서도 고개를 돌립니다.  전도와 선교의 명령을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인 것을 알만큼 알지만 그것이 내게는 힘만 들고 유익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고개를 돌립니다. 주일을 성수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알지만 그것을 실행하면 경제적인 손해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로의 모습은 오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고, 그의 명령은 언제나 선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이 분명하다면, 사람은 자기에게 싫고 좋고 간에 그 섭리와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생명과 환경의 주인이십니다.  그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명령과 재앙을 외면했습니다.  자존심을 앞세우고 고집을 부리며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견뎌 냈습니까?   온통 피가 된 강에서 먹을 물을 구해보려고 아무리 고생을 했지만 노력은 허사였습니다.  어디서도 맑은 물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물 한모금도 만들어 마실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공기 한 모금도,  물 한 모금도, 양식 한 톨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마실 수가 없고 먹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누구나 살아남지 못합니다.  인간끼리는 자존심 싸움도 가능하고, 버티기도 가능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하고,  버티고 외면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다만 순종만 가능합니다.


바로가 정말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려면, 술객들을 시켜서 모세가 만든 피가 된 강을 다시 정화시키는 일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술객들은 모세의 기적을 무효화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한 컵의 물을 피처럼 되게 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는 모세처럼 강물 전체를 피가 되게 하지는 못했고, 모세가 만든 핏물을 정화시키지도 못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항하려고 하지만 할 수 있는 범위는 제한되어 있습니다. 

말로는 저항할 수 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을 대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입을 막으시고 몸을 마비시키고 생명을 거두시는 창조주 이십니다.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은 세상에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제지당하실 분입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아니지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그 누구라도 저지하지 못하고, 그분의 계획은 선하시기 때문에 중단되어서도 안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저항하고 외면 할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받아야 하며, 우리의 생각을 돌이켜 하나님 편으로 돌아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는 끝내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로와 애굽 사람들은 다음 재앙을 자초하였습니다.  바로의 어리석은 외면과 반항 때문에  그들이  만나지 않았어도 되는 개구리 재앙, 이 재앙, 파리재앙, 온역재앙, 피부병재앙, 우박재앙, 메뚜기 재앙, 흑암재앙, 그리고 애굽의 모든 장자가 다 죽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까지 열 번의 재앙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지도자의 불신앙과 교만이 자기 백성들을 그렇게 망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미련퉁이가  어디 또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명령과 징계는 저항하고 외면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뜻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시면, 사람이 외면하고 저항한다고 해서 중단하는 분이 아닙니다. 


둑을 아무리 높이 막아도 강물은 흘러갑니다. 물은 잠시는 막히지만 제방을 넘고 둑을 무너뜨리고 댐을 헐면서 흐르고 흘러서 바다로 가고야 맙니다. 강물도 사람의 힘으로 막지 못하는데 하나님을 막을 수 있을까요?  바로는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여 함부로 대항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역사를 통해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경고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만큼 알면서도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을 거역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즉시 순종하지 못하고 미적거리거나 거부해 보려고 하다가 손해보고 채찍 맞고 후회 한 일이 어디 한 두 번입니까? 그런데도 아직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당장에 움직이지 않습니다.  미적거리고 회피하고 못들은 척 하고, 거부해 봅니다.  이 시대의 바로들이 동네마다 교회마다 가득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눈에 보이면, 즉시 순종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움직입시다. 우리를 부르시고 권유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복된 길로 인도하려는 사랑입니다. 


베드로는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 한마디에 배와 그물을 그냥 버려두고 즉시 주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세관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마태도 주님이 나를 따르라 하시자 일하던 책상을 박차고 즉시 주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바나바는 교회에 구제할 것이 많아지자 자기의 밭을 다 팔아서 바쳐버렸습니다.  그들은 손해 같았지만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생애를 살았습니다.   나는 주님이 명령하실 때 하던 일 즉시 멈추고, 일어서서 따라나설 수 있습니까? 주님이 필요하다 하시면 그 무엇이라도 즉시 주님을 위해서 내어놓을 수 있습니까? 주님을 거역하다가 징계와 재앙의 손길을 만나지 말고,  주님께 순종하고 헌신하다가 인도하고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만 만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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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0 요한일서 기쁨의 삶 요일1:4  신윤식 목사  2013-02-02 1807
8279 요한일서 기쁨 요일1:4  신윤식 목사  2013-02-02 1843
8278 요한일서 그리스도로 인한 사귐 요일1:3  신윤식 목사  2013-02-0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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