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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부자가 되십시오

요한계시 이한규 목사............... 조회 수 1700 추천 수 0 2013.02.14 23:5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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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계13:16-18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http://www.john316.or.kr 

의로운 부자가 되십시오 (계 13:16-18)

 

< 가난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물질과 담 쌓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즉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이 어렵다(마 19:23).”고 하며 부를 미워하셨고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눅 9:58).”고 하며 찢어지게 가난하게 사셨기에 가난한 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물질을 외면하라고 하신 적도 없고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지도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장 11절 말씀을 보면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이 출생하고 일정 시점 후에 예수님이 마구간이 아닌 집에 있을 때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경배한 후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그 3가지 예물은 예수님의 존재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미의 예물로만 생각하지만 실제로도 큰 가치가 나갔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2살도 되기 전에 이미 재산이 많았다는 추론도 가능합니다.

 그 동안 어떤 사람들은 값싼 동정을 유발하는 말을 합니다. “오! 불쌍하신 예수님! 이 땅에 오셔서 돈도 없고 집도 없이 거지처럼 사시며 얼마나 고생했을까?” 그러나 예수님은 집 없는 홈리스(homeless)처럼 살지 않았습니다. 일부 유대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의 부친 요셉은 많은 목수들을 거느린 기업형 목수였고 나사렛에서 비교적 큰 집에 살았다고 합니다. 또한 나중에는 갈릴리 지역의 중심도시인 가버나움에서 비교적 큰 집에 살았습니다.

 마가복음 2장 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예수님은 가버나움 집에 살면서 각처를 다니며 복음 사역을 행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유명했기에 한번 전도 여행을 떠나면 오랫동안 집을 비울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그 소식을 듣고 가버나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무수히 예수님의 집으로 몰려온 것입니다.

 그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집이 가득 차고 예수님을 볼 수 없자 몇몇은 지붕에 올라가 지붕을 뜯어내고 거기서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그 집이 누구 집인가에 대한 학자들 사이에 여러 이견이 있지만 만약 그 집이 예수님의 집이 아닌 남의 집이었다면 지붕을 뜯는 것을 예수님은 허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좋다! 예수님은 가난하지 않았다고 해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거의 거지처럼 인식하지만 그것도 그릇된 이미지입니다. 분당과 같은 신도시인 가룟 출신의 유다나 세리 출신인 마태는 말할 것도 없고 마가복음 1장과 누가복음 5장 말씀을 보면 어부 출신인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도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출신들이 아니었습니다.

 마가복음 1장 20절에는 야고보와 요한의 부름과 관련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군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 가니라.” 여기에서 ‘삯군’이란 ‘고용된 종’을 뜻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고용된 종이 있을 정도로 꽤 규모 있는 어로 가정 출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길거리에서 집 없이 떠도는 거지같은 몇 사람을 불러 제자를 삼고 물질도 없이 비천하게 사역한 줄 알고 가난을 영성의 지표처럼 여기지만 그것은 그릇된 이미지입니다.

 마가복음 6장에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옵니다. 그때 여성과 미성년자들을 합해 약 만 명 이상 되는 엄청난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광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지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곳은 빈들이고 날도 저물어가니까 무리를 보내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소서(35-36절).”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37절).”

 제자들이 다시 물었습니다.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일까요?” 이 말은 제자들에게 만 명 이상을 먹일 수 있는 현금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아니다. 너무 늦었구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그러자 제자들이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가 있다고 하자 그 오병이어로 남자만 5천 명, 전체 만 명 이상을 먹이신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킨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일행은 탁발승처럼 구걸하며 사역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복음 사역을 음지에서 도운 사람도 많았습니다. 누가복음 8장 3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이 구절에 나오는 요안나는 헤롯왕의 측근으로 부와 권세를 가졌던 구사의 아내였습니다. 그녀가 자기 재물로 예수님의 사역을 도왔으니 얼마나 돕는 규모가 컸겠습니까? 또한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도 자기 소유로 예수님의 일행을 섬겼습니다.

 그처럼 예수님의 사역에 헌신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거부였다는 말이 아니라 물질을 죄악시하지 않고 오히려 필요로 했다는 말입니다. 그처럼 물질 축복을 받고 그것을 바르게 사용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성경에서 “욕심을 버리라!”란 말은 “힘써 나누라!”란 말이지 “가난을 추구하라!”란 말이 아닙니다.

 살면서 물질만 추구하는 물질주의자가 되지 마십시오. 반면에 물질이 없어 항상 꾸는 신세가 되어 누군가에게 속박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려는 순수한 마음과 열정이 있다면 하나님은 물질 문제에서도 큰 은혜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그처럼 물질적인 축복을 받아서 선교와 나눔에 활용하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함으로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면 얼마나 그 삶이 복된 삶이 되겠습니까?

< 666이 의미하는 것 >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초점은 두 짐승입니다. 첫째 짐승에 대한 묘사는 1-10절에 있고, 둘째 짐승에 대한 묘사는 11-18절에 있습니다. 첫째 짐승은 열 뿔과 일곱 머리를 가진 표범처럼 생겼는데 사탄의 영을 가진 적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둘째 짐승은 두 뿔을 가진 어린 양처럼 생겼는데 적그리스도를 경배하게 하는 거짓 선지자를 상징합니다.

 그 거짓 선지자가 어떤 행동을 합니까? 14절 말씀을 보면 이적을 행하고, 그 이적으로 사람을 미혹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첫째 짐승, 즉 적그리스도의 우상을 만들게 합니다. 또한 그 짐승의 우상에 생기를 주어 말하게 하고, 그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다 죽이게 했습니다(15절). 그런데 그가 적그리스도를 경배하는지를 알려고 어떻게 합니까?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합니다.

 본문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이 표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계속해서 본문 17-18절 말씀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이 육백육십육이 무엇일까요? 알파벳에 설정된 고유의 숫자를 더해 666은 “교황이다! 히틀러다!”란 주장도 하고, “컴퓨터다! 바코드다!”란 주장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숫자를 비밀을 풀려고 하는 ‘수비학’을 진리처럼 맹신합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처럼 수비학과 시한부 종말론을 맹신해서 스스로는 선택된 존재인 줄 믿지만 실제로는 영혼이 사탄에 팔려가거나 사로잡힌 상태임을 깨닫지 못하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왜 이단 교주가 수비학과 어설픈 과학적 근거와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를 내세워 시한부 종말론을 강조합니까? 1단계로는 호기심으로 영혼의 문을 열고 2단계로는 두려움으로 그 영혼을 속박해서 자신을 영험하게 보임으로 추종자들의 삶과 재산과 노동력까지 통째로 말아먹기 위한 전략입니다. 그러므로 건전한 종말의식을 가지고 종말의 날을 힘써 대비해야 하지만 어설픈 시한부 종말론에 빠지지는 말아야 합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썼다는 문서에 나오는 1999년 종말 예언에 의거해서 7년 대환난을 빼고 시간적으로 엉성하게 뜯어 맞춘 1992년의 예수님 재림 및 휴거설로 한국교회가 얼마나 웃음거리가 되고 전도가 막혔습니까?

 작년 2012년에는 마야 달력이 끝나기에 세상에 끝난다는 종말론이 기승을 부렸고, 심지어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이름을 빌어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는 3행시를 내세워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가 유튜브에서 10억 명이 보면 종말이 온다는 유치한 종말론까지 등장했습니다. 이제 그런 얘기들에 호기심을 가질 때는 지났습니다. 종말 및 예수님의 재림은 사람이 신기한 해석으로 정한 때가 아닌 하나님이 정한 때에 이뤄집니다.

 자기 종교 및 추종자를 만들려는 악한 종교인은 끊임없이 시한부 종말론과 위기설을 조장해 심약한 대중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만듭니다. 그렇게 종말론으로 심약해진 사람들이 종말의 때를 착실히 준비해 나갈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허무주의와 쾌락주의와 나약주의에 빠져 통제하기 쉬운 대중들이 됩니다. 그것을 악한 종교인들이 노려서 영혼을 지배하고 노예계층으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지배계층의 제일 신조가 무엇입니까? “대중들이 지배당함을 깨닫지 못하게 하라!”입니다. 결국 영혼을 나약하게 만드는 것은 악한 종교인이 그 영혼을 소리 없이 지배해 혼자 잘 먹고 잘 살려는 전략입니다. 그러므로 호기심과 두려움을 유발하는 유치한 해석들로부터 자기 영혼을 지키십시오. 신기한 종말 해석이 잘 끌리는 것은 신앙의 초보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고 그런 호기심을 통해 신천지와 같은 이단이 기생함을 잊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666표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짐승을 나타낸 상징적인 수’라고 아는 정도로 넘어가십시오. 그처럼 666표의 정확한 실체는 잘 몰라도 이 표가 어디에 쓰이는지는 성경이 분명이 말합니다. 실제로는 그 사실이 더욱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 표가 어디에 쓰입니까? 본문 17절 말씀에 나오는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란 말씀에 의하면 이 표는 경제적 권리를 박탈하는 힘을 가진 표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의로운 부자가 되십시오 >

 결국 본문을 통해 어떤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까? 마지막 때에 사탄의 주공격 통로는 경제문제임을 유추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말 때라고 느낄수록 더욱 경제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선교와 나눔을 선도하는 의로운 부자의 꿈을 가지십시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돈을 영혼의 적처럼 생각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인식입니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돈 자체를 탓한 곳은 없습니다.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딤전 6:10).”고 말했지 돈 자체를 나쁘게 보지 않았습니다. 돈의 성격은 소유자의 인격과 마음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돈을 자기만 위해 쓰고 과시와 허영을 위해 쓰는 자가 가진 돈은 악한 것이지만 돈을 선교와 나눔을 위해 잘 사용하려는 자가 가진 돈은 선한 것입니다. 선의 수단이 충분히 될 수 있는 것을 악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인간이 잘못이지 돈은 잘못이 없습니다. 인간의 악한 의지가 개입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어떤 창조물도 함부로 저주스런 딱지를 붙이지 마십시오.

 욕심을 버린다고 해서 돈을 외면하면 그 돈이 누구에게 갑니까? 악한 사람에게 가서 악하게 이용됩니다. 결국 의로운 성도가 돈을 외면하는 것은 마지막 때에 있을 사탄의 경제적인 통제를 방조하는 셈이 됩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돈을 추구하지 말되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돈을 추구하십시오.

 지금 불신자들은 자나 깨나 돈 생각만 하면서 수많은 검은 수단들을 동원해 돈을 벌고 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면서 그저 기도만 하고 사탄에게 경제적인 영역을 다 빼앗기면 하나님이 어떻게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영육 간에 최선을 다하는 최선책을 기뻐하시지 영적인 삶에만 최선을 다하는 차선책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의로운 부자가 나오기를 바랍니다. 지금 믿음이 좋다는 성도들이 팔짱을 끼고 있는 사이에 너무나도 아까운 돈이 돈을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의 수중으로 넘어가기에 사회의 고통과 상처가 더 심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때에 의로운 부자들이 많이 일어나야 선한 미담들도 많아지고, 의로운 사회가 되고, 더욱 선교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일하게 지내면서 건전한 재산 증식을 외면하는 소극적인 삶을 버리십시오.

 주일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삶’도 중요하지만 주중에 경제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생활 중에 예배를 드리는 삶’도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부자 되기를 마다하지 마십시오. 의로운 사람이 경제권을 쥐고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개인 영역에서 사회 영역으로 확대시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모두가 잘 사는 사회로 가는 길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목적이라면 돈 버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돈을 버십시오. 그렇게 실제 삶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하나님께 더욱 쓸모 있는 나무로 헌신될 수 있습니다. 그처럼 의로운 부자의 꿈을 꾸고 기도함으로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위대한 일을 준비하십시오 >

 얼마 전 통계에 의하면 미국인 중 99퍼센트가 각종 빚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위험한 일입니다. 종말이 임박한 증거 중의 하나가 적그리스도의 경제체제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666표가 없는 사람의 매매를 금지시킨다는 것은 적그리스도가 경제권을 쥔다는 뜻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빚을 지면 적그리스도의 경제체제에 속박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래서 성도는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빚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빚을 지면 적그리스도의 경제체제에 저항할 수 없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생각합니다. “나는 절대 적그리스도의 경제체제를 절대 안 따를 거야.” 그러나 빚을 지면 어쩔 수 없이 적그리스도의 경제체제에 예속됩니다. 그러므로 ‘빚지는 빚’ 가운데 살지 말고 ‘비취는 빛’ 가운데 살기를 추구하십시오. 예수님이 복음으로 자유를 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는데 빚에 눌려 그 영혼이 다시 속박당하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빚 없이 살겠다는 선한 의지를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결국 물질적인 은혜를 받는 것도 복음의 일부분입니다. 그 은혜를 받아 위대한 비전을 후원하고 나눔을 선도하고 인물을 키워 자신의 영향력이 죽은 후에도 펼쳐지게 하십시오. 위대한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대한 일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느 날, 노년의 다윗이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의미 있는 일을 남긱도 천국으로 갈까?” 깊은 묵상 중에 성전 건축을 작정했습니다. 그 작정을 하나님도 기뻐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 외로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다윗아! 너는 전쟁을 많이 하고 피를 흘렸으니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겠다(대상 28:3).”

 순간적으로 실망했지만 곧 그는 그 조치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확신하고 성전 건축을 못해도 성건 건축을 위한 준비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물자와 재정을 준비했습니다. 결국 아들 솔로몬이 어려움이 없이 성전 건축에 집중해서 마침내 솔로몬 성전을 건축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성전은 솔로몬 성전이라고 불리게 되었지만 그 성전 건축을 위해 준비했던 다윗의 음지의 헌신은 하나님 앞에 크게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작품 인생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품 인생의 길을 예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당대에 이름을 날리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은밀하게 후대의 역사를 위해 준비하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인물이 되는 것도 복된 일이지만 인물을 키우는 인물이 되는 것도 복된 일입니다. 그처럼 당대에 모든 승부를 지으려고 하지 말고 후대의 축복을 준비하고 후대의 인물을 준비하십시오. 바로 그것이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혹은 현재 여건이 부족하다고 해서 결코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인물이 되든지 아니면 인물을 만들든지 2가지 중에 하나는 하십시오. 또한 작품을 만들든지 아니면 작품을 만드는 것을 돕든지 2가지 중의 하나는 하십시오. 구원받아 영생을 얻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재원, 재능, 재주, 지식, 그리고 지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영속적인 영향력을 가지는 꿈을 품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장 가치 있는 일에 쓸 수 있는 지혜와 믿음을 구하십시오.

 저도 이제 53세가 되니까 동료 목사님들과 종종 은퇴 얘기를 합니다. 우리보다 조금 앞선 연배의 목사님들은 실제로 은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화려한 자리에 있던 대형 교회 목사님들의 은퇴 과정을 보며 아름다운 은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합니다. 인간의 영화는 짧습니다. 대형 교회 목사 자리는 화려한 자리지만 교회는 개인 것이 아니기에 어차피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고 그렇게 물러나면 쓸쓸한 처지가 됩니다.

 그런 쓸쓸함이 두렵고 다 내려놓는 것이 싫어서 무리하게 세습을 강행하는 목사님들도 종종 있습니다. 이제까지 수고해서 일궈놓은 것이니 얼마나 놓기 싫겠습니까? 한편으로는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래도 놓고 떠나야 되는 것이 순리입니다. 그러면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하나님은 그의 후대를 더욱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혹시 인간적인 축복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하늘나라의 상급이 큰 것으로 만족하면 됩니다.

 한때 큰 교회를 일궜다가 쓸쓸하게 퇴장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쓰럽습니다. 그렇게 되려고 그렇게 교회건축을 밀어붙이고 이 땅의 것을 붙들려고 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처음에는 비슷한 또래의 큰 교회 목사님들이 부러웠지만 몇 년 전부터는 그것이 별로 부럽지 않습니다. 비록 큰 교회를 담임하지 않아도 후대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성경 66권 전권파일>과 <네트영어>의 거대한 비전이 점차 구체화되기 때문입니다.

 일전에 수도권에서 약 3천 명 정도의 교회를 이룬 한 지인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이 목사님! 저는 교회는 크게 부흥시켰지만 오히려 이 목사님이 부럽습니다. 교회는 개인 소유가 아니기에 이제 저는 10여년만 지나면 은퇴해서 다 놓고 떠나지만 목사님은 반영구적인 문서를 목사님 이름으로 남겨놓으니까 은퇴해도 사실상 은퇴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 부럽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비전 유지에 얼마나 큰 격려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자신의 땀과 소유를 통해 후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작품을 남길 수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지금 어떤 꿈을 품고 나가고 있는데 그 꿈대로 다 이루지 못하면 어떻습니까? 그래도 후대의 누군가가 꿈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준비한 것으로 만족하면 됩니다. 거룩하고 찬란한 꿈을 이루도록 길을 준비한 것도 사실은 꿈을 이룬 것과 같습니다. 결국 ‘꿈을 이룬 것’만큼 ‘꿈을 이루도록 준비한 것’도 가치 있는 일입니다.

 이제 주어진 시간과 물질과 재능으로 찬란한 꿈을 이루든지 아니면 그 꿈을 이루도록 길을 준비하십시오. 자기 물질로 선교사를 돕고 그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수많은 인물을 만든다면 그 물질은 가장 효율적으로 쓰임 받는 물질이 되고 그의 영향력은 보이지 않게 영속되는 셈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선교와 나눔의 축복입니다. 항상 가난하게 욕심 없이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 ‘부족한 만족’에 안주하지 말고 많이 벌고 많이 나누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충일한 만족’을 추구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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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53 데살로전 성적인 죄를 멀리하십시오 살전4:1-8  이한규 목사  2013-02-14 2126
8352 데살로전 가장 복된 관계 살전3:9-13  이한규 목사  2013-02-14 1965
8351 잠언 복을 부르는 5대 말의 원리 잠25:9-15  이한규 목사  2013-02-14 2489
8350 요한복음 사랑의 3대 정의 요21:11  이한규 목사  2013-02-14 3098
8349 데살로전 네가 살 때 내가 산다 살전3:1-8  이한규 목사  2013-02-14 2055
8348 데살로전 좋은 성도가 되는 길 살전2:13-20  이한규 목사  2013-02-14 2167
8347 데살로전 좋은 리더의 4대 자세 살전2:9-12  이한규 목사  2013-02-1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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