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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관계

요한일서 신윤식 목사............... 조회 수 1578 추천 수 0 2013.02.21 23: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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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일4:19-21 
설교자 : 신윤식 목사 
참고 : 은석교회 http://onlycross.net 

(46강) 요한일서 4:19-21 사랑의 관계

 

<본문>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한일서 4:19-21)

<설교>

사도가 언급하고 있는 형제 사랑은 윤리와 도덕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실천으로 가능한 행위의 문제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에게서는 자연히 보이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보여지는 문제를 스스로 보이려고 하다보니 항상 성경이 계시하는 믿음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을 구별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과 들지 않는 사람으로 구분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런 성품을 이미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에 싫은 사람을 형제로 여기며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라는 말씀을 합니다. 이 내용이 여러분께 어떻게 들립니까? ‘형제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말로 들립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너희들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는 말로 들립니까? 저에게는 후자의 뜻으로 들립니다. 내 마음에서 형제를 미워하는 미움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가 말하는 형제는 물론 혈육의 관계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같은 교회에 출석하는 관계도 아닙니다. 그럼 누가 여러분의 형제입니까? 누가 여러분의 형제이기에 형제를 미워하는 것을 아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말 자체를 거짓말하는 여기는 증거물로 삼는 것입니까?

 

사도가 말하는 형제는 인간과 인간의 단독관계로 맺어진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즉 같은 종교, 같은 교회, 이러한 것이 조건 되어 맺어진 관계가 아니란 것입니다.

 

3:14-15절을 보면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말합니다.

 

요한일서를 보면 알겠지만 사도는 형제를 사랑하는 문제를 아예 생명과 직결되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덕목이 아니라 믿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도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생명이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가능한 것은 분명 아닙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생명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사도는 형제를 예수님의 위치에서 세워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형제를 사랑하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여겨주겠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형제를 사랑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형제 사랑이 곧 예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신자를 낮아진 마음이 되게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그는 분명 마음이 낮아진 사람입니다. 이러한 낮아진 마음으로 만나는 관계를 형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의 관계에서 만나는 신자라면 남을 지배하거나 지시하려고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형제를 미워한다면 그것은 곧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내가 곧 낮아진 마음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낮아진 마음이 아니라면 예수님의 십자가와도 상관이 없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를 미워하는 그것이 곧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는 것입니다.

 

19절에서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심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사랑할 가치가 없는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만 생각하지 마시고, 죽어 마땅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가치를 안다면 ‘나를 사랑해 주세요’라는 사랑의 요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런 나를 사랑하십니까?’라는 사랑에 대한 고백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해 사랑을 요구할 수 없음을 아는 신자라면 형제에 대해서도 사랑을 요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형제에 대해 사랑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가?’를 묻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물음에 우리는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탄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다 이런 존재들입니다. 형제를 사랑해야 하나 사랑하지 못하는 자들이 우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서 나올 것은 탄식뿐입니다. 이처럼 사랑 없는 자신에 대해 탄식하는 마음으로 만나는 그 관계가 바로 형제의 관계인 것입니다. 서로가 낮아진 자리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교회가 아니겠습니까?

 

20절을 보면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고 단호하게 언급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가 없다’는 말로서 그 어떤 가능성도 배제를 해버립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가를 물을 때 필히 ‘내가 형제를 사랑하는가?’를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봉사하고 수고하는 종교적인 행위를 조건으로 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도가 이러한 말을 하는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사도는 지금 우리로 하여금 다른데 시선을 두지 않고 오직 일방적으로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에 모든 관심과 시선을 두도록 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말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우리들임을 보게 합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그 사랑에 관심을 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나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거둬 버리고 하나님이 행하신 사랑만 가슴에 담게 될 때 형제 사랑이 가능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1절을 보면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형제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물을 것은 ‘형제를 사랑합시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가?’입니다. 너무 쉽게 ‘하나님 사랑합니다’라고 떠벌렸던 우리의 입을 다물게 하면서 다시금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게 하고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여러분에게서 형제 사랑이 보여진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신앙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셨기 때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게서 보여진 사랑 또한 자랑할 조건이 못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할 만한 가치도 이유도 없는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서는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누구에게서든 사랑할만한 이유와 가치를 찾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신자는 하나님이 나를 보시는 것처럼 형제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형제의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자는 누군가에게 ‘당신은 이것을 고쳐야 해’라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고쳐서 용납하신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그가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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