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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히 여기는 자

마태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555 추천 수 0 2013.03.04 19: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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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5:1-12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2013.1.6 주일 http://charmsarang.onmam.com/ 

긍휼히 여기는 자     마 5:1-12

 

팔복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성품들입니다. 이중 어느 하나라도 사람이 본래부터 타고 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그 누구도 믿음이나 하나님 백성다운 성품을 타고 나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특별히 좋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보다 그리스도인이 되기에 유리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죄인입니다. 우리는 한결같이 복음에 합당치 못하고, 하나님께 합당치 못하고, 이 팔복에 합당치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복된 일입니까?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천하고 적용하는 것을 의미할까요?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의미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행하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상태의 사람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죄의 본성을 가지고 온통 죄 가운데서 살면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의 대상이었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께 사랑 받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사람이 달라지는 것, 그의 마음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된 다음에야 그리스도인다운 생활과 행동이 따르게 됩니다. 이 팔복이 본래부터 타고 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에게 나타나는 특성들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지금까지의 네 가지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즉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니 오직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받을 죄밖에 없음을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것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죄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지는 것 때문에 가슴 아파하며 우는 것입니다. 온유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절실히 깨달은 사람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의지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음을 절감하며, 그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보게 될 네 가지 복(긍휼히 여기는 것, 마음이 청결한 것, 화평케 하는 것,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리스도인의 성품이 어떠한가를 보여줍니다. 흥미 있는 것은 앞의 네 가지 복이 뒤의 네 가지 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요,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는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요, 하나님 앞에서 온유한 사람이 사람들 사이를 화평하게 하는 자요, 하나님 앞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곧 사람들 앞에서 의를 위하여 고난과 핍박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데까지의 연속성

 

심령이 가난하게 되어 나에게는 아무런 의가 없고, 나는 무능하며 소망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은 자기의 죄 때문에 슬퍼합니다. 그리고 애통하는 사람은 나의 모습을 바로 보게 된 이상 그 누가 나를 비난한다 해도 대꾸하거나 억울해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기를 원하며 주님을 닮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된 사람은 이제부터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르게 할 수 있게 되는데, 그 중의 첫 번째가 바로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긴다는 뜻

 

긍휼이란 불쌍히 여기는 것, 동정, 자격 없는 자들이나 죄가 있는 자들에 대한 연민입니다. 그것은 범죄하거나 잘못을 범하고 있는 사람에 대하여 그저 괜찮아!’라고 말해주거나, 괜찮게 생각하는 것 이상의 일입니다. 그것은 죄의 비참한 결과를 보고서 불쌍히 여기며 그 고통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값없고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해 주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바로 그 사람이 긍휼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강도만난 사람을 보았을 때 제사장이나 레위인도 동정심이나 측은한 마음을 가졌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냥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불쌍히 여겨 상처를 싸매주고 여관에 데리고 가서 보살펴 주었으며, 비용을 내어서 치료를 부탁하고 갔습니다. 이 사람이 보여준 것이 바로 긍휼입니다. 긍휼이란 단순히 동정이나 측은한 감정이 아니라, 그 사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의 일과 이익을 잊어버리고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정반대되는 경우, 즉 긍휼을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젊고 부자인 한 관리가 예수님을 찾아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사람은 어렸을 적부터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이 관리는 예수님께 아직도 무엇이 부족한지를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있는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19:21) 이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19:22)

 

주님께서는 이 청년에게 긍휼을 베풀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재물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기심과 탐심 때문에 가난한 자들에게 긍휼을 베풀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사람은 젊었고 부자였으며 관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긍휼의 세 가지 특징

 

첫째, 긍휼은 대상이 누구인지를 보지 않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지 않고, 절대로 도움이 필요하다는 그 형편을 보는 것이 긍휼입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이 누구인가를 보고 따진 후 도와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둘째, 긍휼은 자기 자신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일 사마리아인이 자기의 이익과 체면을 생각했더라면 강도 만난 사람을 돌보아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이익과 상관없는 일에 시간과 돈과 힘을 다 쏟아 부었고,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그리고 돈이 더 필요하면 돌아올 때 갚아주겠다고까지 했습니다. 자신에게는 손해가 되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셋째, 긍휼은 감정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긍휼은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어떤 사람은 눈물을 많이 흘리고 감격도 잘합니다. 어려운 사람들에 대하여 부드러운 말도 잘하고 태도도 따뜻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긍휼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긍휼은 반드시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이러한 긍휼을 하나님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결과로 가련한 상태에 빠져있는 인간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이 가련하고 비참한 상태에서 구원해 주시려고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 아들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우리의 비참한 상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긍휼입니다. 긍휼은 단지 죄를 눈감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공의와 조금도 모순이 되지 않습니다. 십자가가 이것을 보여줍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우리를 대신하신 아들을 심판하시고, 사랑으로 우리를 용서해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긍휼히 여겨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받았으므로 마땅히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긍휼은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가지며, 실제로 희생을 치르고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용서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확신을 가질 수 없을 것이며 응답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18:32-35)

 

긍휼히 여기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통째로 나타내는 선언이 됩니다. 즉 내가 어떤 사람인가, 과연 나는 참된 그리스도인인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다른 팔복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긍휼 입은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2:4-5)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풍성하신 긍휼을 입었으므로 우리는 마땅히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생각에만 머물지 말고 긍휼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아무리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해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긍휼이 아닙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2:15-17).

 

긍휼히 여기려면 다른 사람을 헐뜯거나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긍휼은 죄는 미워하고 단호히 거절하되 정죄하거나 비판하지 않습니다. 긍휼히 여겨야 할 사람들은 우리의 위로와 격려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긍휼히 여기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용서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어서 좌절할 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힘과 은혜를 주셔서 긍휼히 여길 수 있게 해주실 것입니다. 나에게 실수한 사람이나 고통과 손해를 끼친 사람도 내가 긍휼히 여겨야 할 대상이며 이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얼마든지 가능해집니다.

 

  축복의 통로

 

언제부턴가 교회 안에서 축복의 통로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축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그런데 당신은 과연 축복의 통로가 되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을까요?

 

긍휼히 여기는 자야말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맛본 사람들은 너무나 행복해서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면 자신은 더욱 행복해집니다. 그러므로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남을 행복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자신도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려면 긍휼히 여기는 성도가 되어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한대의 은혜와 축복을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7:37-38)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생수가 흘러들어옵니다. 생수의 강이 그 안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서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로 생수가 흘러나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받은 자들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 축복과 은혜를 이웃에게 나누어주게 됩니다. 물이 들어오기만 하고 나가지 않는 웅덩이는 썩어갑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과 은혜를 이웃과 나누지 않으면 그의 신앙이 정체되고 부패해집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과 은혜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21:13)

 

  긍휼히 여기면 행복해진다.

 

어느 부인이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는 올해 예순 다섯입니다. 아이들은 모두 출가했고 남편도 죽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입니다.” 목사님은 이 부인에게 자신의 신앙과 소유를 주위 사람들과 나누는 법을 찾아보라고 권했습니다. 몇 주 후 그 부인에게서 이런 편지가 왔습니다. “저는 동네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웃과 나누는 데서 새로운 기쁨과 행복을 찾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긍휼히 여기는 것이 얼마나 귀한 축복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긍휼히 여기는 것은 남을 행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행복하게 만듭니다. 긍휼히 여기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길입니다. 그래서 한 번 이 맛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렇게 긍휼 베푸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긍휼이 얼마나 크고 풍성한가를 더욱 알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긍휼히 여기는 사람들은 심판 날에 긍휼히 여기심을 받게 됩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2:13)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한 그대로 갚으신다면 누가 그분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그날에 우리는 모두 긍휼히 여기심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긍휼을 행치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긍휼히 여기는 자는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성도는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긍휼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긍휼히 여겨주셨는지를 깊이 깨달은 성도는 이제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을 긍휼히 여길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더욱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그래서 더욱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말로 다할 수 없는 크신 사랑과 긍휼을 기억하며 남을 긍휼히 여기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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