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꽃씨와 도둑>은 최용우 개인 책방의 이름입니다. 이곳은 최용우가 읽은 책의 기록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최용우 책방 구경하기 클릭! |
정웜 목사님의 <그리스도를 갈망하는 삶>을 읽으면서 각 챕트마다 중요한 부분을 밑즐긋고 옮겨적었습니다.
1. 부흥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람들은 부흥을 사모한다. 그리고 부흥을 구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흥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부흥의 역사를 실제로 목격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하늘이 열리고 성령님의 영광과 권능이 임하는 것을 맛보는 것이다. 그리고 영광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흥이다. 부흥의 시작이다.
그러한 영광의 역사는 인도자의 인도를 따라 전 참석자가 같이 부르짖고 울부짖으며 외치고 하늘의 영광과 임하심을 구할 때 오는 것이다. 여리고성은 여호수아 혼자서 부르짖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 백성이 같이 외칠 때 무너지는 것이다.
2. 경험과 성향은 부르심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부르심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하여 봉사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리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 우리가 우리의 부르심에 순복하고 그 길을 걸어간다면, 우리는 육신의 만족과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행복과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사람의 계획보다 하나님의 계획이 더 놀랍고 아름다운 것이며 육체와 환경을 초월한 기쁨은 곧 천국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물론 고통이나 어려운 환경 자체를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면, 그래서 분노와 억울함을 가지고 있다면, 자기 연민 가운데 빠져 있다면 그는 아직 부르심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부르심과 사명은 자기가 그것을 극복하고 통과했을 때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가 겪은 모든 것의 의미를 알고 감사하고 주님께 순복할 때 비로소 그는 통과하고 빛의 도구로 쓰이게 된다.
3. 바깥의 세계에서 내적 실제의 세계로 가라
오늘날 기독교에는 너무 껍데기가 많다. 외형 중심이다. 그러므로 내면의 실제가 너무 부족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진정한 기쁨과 해방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 주를 바깥에서 만나는 것과 내부에서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 오늘날 기독교는 너무 바깥쪽에 있다. 이제 우리는 안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건물 크게 짓고 사람 숫자 많이 모으면 성공이라는 시각에서 우리는 이제 돌아서야 한다. 모든 실제는 내면에서 온다. 사랑도 초월적인 평화도 기쁨도 영원히 잊어버릴 수 없는 행복도... 다 내부의 영계에서 오는 것이다. 그 영의 실제를 경험해야 한다. 그래야 변화가 오고 자유함이 온다. 실제를 접하지 못하면 잘 가르치고 설명한다 해도 해방이 없고 승리가 없다.
4. 구슬 따먹기와 성장하기
어렸을 때는 구슬을 잃어버리면 운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울지 않는다. 구슬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게임에 이기려고 애를 쓰고 지면 운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울지 않는다. 게임은 게임일 뿐 그저 그 순간에 즐기면 그만이라는 것을 안다. 어린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육적인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에 육신에 속한 자... 그들은 곧 어린 자들이다. 그들은 방언과 기적과 치유와 예언과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을 어리다고 말했다. 잘못되었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이 땅에 많은 문제들과 상처들이 있고 이에 대한 많은 사역이 있다. 가정사역, 내적치유사역, 상처의 치유... 회복...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상담학교... 모든 사역은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다만 나는 진정한 사역은 오직 한가지이며 궁극적으로는 한 방향을 향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영혼을 깨우는 것이며 주를 알게 하는 것이다.
5. 우리는 모두 작은 아가, 작은 강아지
예원아, 너는 영원히... 아빠에게는 한 마리의 아가.. 강아지란다.. 하고 말한 것.. 음.. 그럼.. 나도 주님께는 한 마리의 강아지잖아.. 그렇다. 내가 아무리 영적으로 성장을 하네... 글을 쓰네 하고 난리를 꾸며도 나는 주님 앞에서 작은 한 마리의 강아지다. 음.. 그럼 나도 귀여운 거잖아.. 오늘 밤은 이 생각을 하면서 잠이 들어야 겠다.
6. 영혼의 깨어남과 은혜 안에 잠김
많은 이들이 신앙생활을 하며 천국에 이르는 길을 쉽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구원과 천국에 대하여 너무 쉽고 가볍게 생각한다. 사람들은 피상적인 지식과 믿음을 가지고 있고 천국적인 삶과는 멀리 떨어져 있으며 거의 지옥의 영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영혼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영적 위치가 천국에 있는 줄 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지옥의 영, 지옥의 마음으로 살아가며 미움과 자기 의와 교만과 거짓과 분노와 온갖 악 속에서 살면서도, 그들은 자신의 영혼이 안전한 줄 안다. 그것은 무서운 착각이다. 천국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영혼이 깨어나야 한다. 영혼이 깨어나는 것은 아주 구체적인 것이며, 그로 인하여 천국에 속한 영적인 특성들, 아름다운 특성과 표적이 나타나게 된다.
7. 영혼의 깨어남과 고통의 현상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각 사람 속에 숨겨져 있는 영혼이 그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서 점 점 더 귀를 쫑긋거리다가 나중에는 밖으로 나오려고 움직이게 된다. 그래서 영이 바깥으로 흘러나오면 그 과정에서 몸이 엄청나게 아프게 되어 있다. 아픈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심장이 아픈 것이고, 둘째는 전신이 아픈 것이다. 심장이 아픈 것은 영혼 자체가 깨어나는 것이고, 몸이 아픈 것은 자연적으로 아픈 경우도 있지만 영혼이 깨어나는 과정에서 여태까지 속에 숨어 있던 악한 영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심장이 아플 때는 주님과 같이 교제하고 대화를 나누어야 하고, 몸이 아플 때는 악한 기운이 드러나고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대적하고 쫓아야 된다. 심장은 영혼의 중심이고 주님의 처소이기 때문에 귀신들이 밖에서 누를 수는 있지만 들어오지는 못한다.
8. 심령의 기독교
어떤 현실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먼저 영에서 그 일이 이루어진다. 그것이 영적 원리이다. 설계도가 먼저 있고 그 후에 건축이 있으며 먼저 생각이 있고 그 후에 행동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영계에서 먼저 움직임이 있고 그 후에 물질계에서 그것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사고가 생기기 전에 먼저 사고의 영이 오고 그 일이 생기기 전에 그 영이 먼저 온다. 그렇기 때문에 심령의 느낌은 미래와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심령의 상태가 좋으면 미래에 아름다운 일이 생기는 것이며 심령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계속 좋지 않은 일이 생기게 된다.
9.우유 이야기
우유는 비닐봉지 안에 들어 있지만 그 봉지 속에서 우유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우유를 넣은 것처럼 생각과 감정은 우리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계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영혼이 어둠의 세계, 지옥계와 교통하고 있는 이들은 항상 그 의식과 생각이 혈기와 근심과 두려움과 낙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모든 것은 영계, 소속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실제적인 구원과 천국의 누림은 영혼의 깨어남을 통하여 실제적으로 천국의 은총과 빛을 누리고 교통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영계와 하늘이 열리는 것이다. 주를 믿고 사모한다는 것은 그렇게 놀라운 일이다.
10. 잠에서 깨어나 내면의 모습을 보자
불신자나 무신론자를 만날 때 나는 그리 힘들지 않다. 그러나 믿는 자들을 만나면, 영적 지도자들을 만나면 그들의 영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울 때가 참으로 많다.
왜 그럴까... 불신자는 주님과 상관없는 삶을 산다. 그러나 믿는 자는 주님을 찌르고 못 박으며 산다. 다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할 뿐이다. 자기 안에 거하시는 주의 영이 고통스러워하고 말할 수 없이 탄식하고 아파하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주님을 대적하며 괴롭히면서 주님께서 자기에게 상급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왜 상을 주지 않느냐고, 종일 더위 속에서 수고한 자기들을 더러운 자들과 같이 취급한다고 분노한다. 그것이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11. 천국 가정의 기초
나는 아내가 남편에게 짜증을 내는 것을 정상적인 가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집을 가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동거생활일 뿐이다. 그것은 불신자의 집과 같은 것이며 주님이 통치하는 가정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온갖 공격에도 제대로 보호받을 수 없다. 나는 예의와 질서를 모든 것의 기초로 둔다. 목회 사역을 할 때 성도들이 가끔 사역자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동을 하면 나는 공손하게 말했다. '성도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주님께서 성도님을 축복해주시기를 빕니다.' 그것은 이제 안녕히 가시라는 것이다. 통곡을 하면서 비는 성도도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 용서하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냥 가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나는 성도들을 사랑하지만 권위가 무너진 것은 이미 그 관계가 끝이 난 것이라는 원리를 잘 알고 있다
12. 권위를 주장하는 자세
주님은 남편들에게 가정의 권위를 맡기셨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남편들이 남편으로서의 정당한 권위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주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거기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 아내를 순종시키지 못하는 남편은 악한 것이다. 그러한 남편은 자신이 아내를 사랑하며 좋은 남편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그는 아내를 지옥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이다. 마귀에게 넘겨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내가 혈기와 온갖 완악함으로 가득해도 그저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남편으로서 가장 악한 것이다. 남편들이 약하면 아내들은 사나와진다. 그들은 자녀들 앞에서 남편을 함부로 대하며 무시한다. 그러한 기운, 그러한 영은 다 지옥에서 온다. 아무리 은사를 많이 받고 기도를 많이 하는 아내라도 남편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영들은 지옥에서 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책임은 아내를 그렇게 악한 영에게 사로잡히도록 '권위'를 행사하지 못한 남편에게 있는 것이다.
13. 남편의 권위가 세워지지 않으면
남편의 권위를 세우는데 있어서 아내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그들은 지금 남편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유약하며 가정을 리드하는 힘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남편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세워주고 강건하게 하는 것이 아내의 역할이다. 그것을 하지 못하면, 그래서 자신이 리더의 역할을 하면 다 같이 불행해진다. 남편의 약점을 지적하며 그의 부족함을 비난하고 그를 공격하는 것은 가정에 재앙을 끌어들여 같이 망하는 길이다. 아내가 남편을 세워주면 남편의 유약한 모습은 사라지고 원래 주님께서 주시려고 하셨던 지혜와 용기와 강건함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나는 성도들이 있는데서도 남편에게 호통치며 짜증내는 사모들도 많이 보았다. 사모가 그렇게 화를 내고 있을 때 성도들 앞에서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사모를 달래려고 애쓰는 목사님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의도가 없었겠지만 그것은 주님의 머리를 깨뜨리는 것이다. 영이 마비된 사람은 주님을 채찍으로 때리면서도 자신은 평생 주를 위해 일을 했으며 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깨어나는 순간 그 모든 것들은 비극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14. 영의 인식과 분별에 대하여
사역의 중요한 부분이 사람 속의 어두움을 드러 내고 청소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빛과 자유함 속에 거하게 하는 것이다. 사역에 있어서 열심히 사람들을 도우려고 하지만 그 사람의 영적 상태를 보지 못하며 역사하는 영을 분별하지 못하면 주움을 잘 주기 어렵다. 분별력은 빛으로부터, 천국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세상의 심리학과 의학의 기법은 마귀를 드러내지 못하며 사람을 진정으로 자유케 할 수 없다. 그것으로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분별력은 순결함에서 오는 것이다. 오직 예수의 영, 거룩한 영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에 미치고 예수에 빠지고 예수에 함몰되어 예수를 먹고 마시며 빛 가운데 거해야 한다.
15. 머리가 아플 때
머리가 아픈 것은 대체로 머리에 열이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머리는 열 받으면 안 된다. 머리는 찬바람을 쐬거나 머리에 얼음을 올려놓으면 정상이 된다. 머리에 열이 나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영적인 원인도 있고 정신적인 원인도 있다. 아무튼 좋지 않은 것이다. 쓸데없이 머리를 너무 많이 굴려도 머리에 열이 나게 된다. 무엇을 결정해야 할 때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 합리적인 이유를 찾는다고 너무 머리를 많이 사용해도 열이 나게 된다. 물론 그럴 때는 바른 판단을 할 수가 없다. 아무튼 그렇게 열이 날 때도 머리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도움이 된다.
오늘날 사람들은 별로 엎드리지 않고 애를 많이 쓰고 뛰어다니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물질 세계에서 아무리 뛰어도 영계에서 결재가 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허공에다가 어떻게 집을 짓겠는가. 물질 세계에서 열심히 뛰는 것은 허공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 영계에서 허락이 떨어지는 것은 땅 위에 집을 짓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쉽다. 모든 필요한 것들이 척척 들어 맞아서 저절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것이 영의 힘으로 사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바람이 밀고 가는 것처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모든 것들이 이루어져 가게 된다.
16. 독립된 영과 기쁨의 영을 구하라.
그리스도인들은 독립된 영을 구하고 사모해야 한다. 독립된 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스스로 서는 것, 자립할 수 있는 영을 말한다. 영이 독립되어 자립할 수 있을 때 그는 다른 이들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남의 관심이나 사랑을 기대하거나 그것이 없을 때 서운해하지 않는다. 독립된 영의 중요한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밝음이다. 독립된 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자유로우며 밝다. 그들은 스스로 자기를 정죄하지 않으며 어려움이 있어도 그리 좌절하지 않는다. 그들은 넘어져도 곧 회복된다. 그것이 독립된 영이다.
17.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마음이 즐거울 때 아름다움이 온다. 아름다움은 우리의 영혼에 들어오고 의식속에 들어와서 우리의 몸과 마음과 인상과 모든 것을 바꾸어놓으며 영향을 준다. 우울하고 어두운 모습은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대표적인 영이다. 우울한 마음은 어두운 영들을 끌어당기기 때문에 삶에 여러 가지 저주와 재앙들을 불러들이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기뻐해야 한다. 즐거워해야 한다. 웃어야 한다. 주님을 찬양하며 웃어야 한다. 그것이 재앙을 깨뜨리는 힘이며 권능이다. 그것이 삶을 신선하게 만들며 우리의 인생을 도와주는 천사로 가득 둘러싸이게 한다. 그것은 복음전파에도 도움이 된다.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는 말이 있다. 경험자들은 다 그 말이 사실인 것을 알게 된다. 거꾸로 말하자면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것은 분노와 미움이라는 말이다. 분노와 미움은 인상을 사납게 하고 추하고 보기 싫은 모습을 창조하게 된다. 남의 단점을 너그럽게 보아주며 용서하고 모든 것을 좋게 보아주는 이들은 선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그 눈을 보면서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들의 눈을 보면 편하고 즐겁다. 분명히 기억하시라. 사나움은 아름다움을 파괴한다. 그것은 악한 영이다. 그 사람이 지금은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그는 점점 더 아름답지 않은 용모로 변화되어 갈 것이다. ⓒ정원 목사
아름다움의 세 번째 비결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반대로 원망은 아름다움을 파괴하며 추한 기운을 가져오게 한다. 범사에 감사하는 이들은 항상 주위에 천사들이 진을 치고 있다. 반면에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들은 악한 영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자연히 외모도 거칠고 사납고 추한 모습으로 서서히 변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도록 더욱 더 인격과 삶에서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8. 헌금의 영적 의미에 대하여
예배시간에 헌금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 평생 헌금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고 이것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역자들도 있지만 그것은 바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는 결코 성도들이 가난의 영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혹시나 헌금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믿음이 여린 자들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한 배려는 나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눈치를 보느라고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을 전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바른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다.
헌금은 결코 맨 뒤에 있는 헌금함에 슬쩍 넘어가듯, 부끄러운 듯이 드려져서는 안 된다. 헌금은 예배를 드리는 중에 예배의 한 부분으로 중심에서 찬양과 감사와 눈물과 기쁨의 고백 속에서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려져야 한다. 헌금기도는 형식적으로 드려져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사랑과 애절함과 아름다운 고백들이 포함되어져야 한다. 예배란 자신을 주께 드리는 것이다.
설교를 듣는 것이 예배가 아니다. 우리를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예배의 핵심이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을 드리는가? 물질을 드리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스펄전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의 호주머니가 회개할 때까지 당신의 회개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확정되는 것이 아니고 구체적인 삶의 태도와 방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19. 우울함을 대적하고 기쁨을 구하라.
생각과 의식이 밝은 사람들은 주위에 천사들이 많다. 그래서 마음속에 생각하거나 원하는 것들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마음과 의식이 어두운 이들은 그 반대다. 우울하고 비관적인 사람들의 주위에는 악한 영들이 가까이 있다. 천사들은 어두운 파장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주위에서 다 도망가고 어두운 것을 좋아하는 악한 영들만 근처에 어정거리게 된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염려를 하면 그 안 좋은 일들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악한 영들이 그렇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일들이 항상 나쁜 쪽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런 원리에 대해서 바르게 이해하게 되면 항상 하소연하며 신세한탄을 하고 푸념하지 말고 즐겁고 기쁘고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를 알게 된다.
20. 행복의 근원은 무엇인가
행복의 근원은 오직 한가지, 그것은 오직 주님이라고 나는 믿는다. 행복은 환경에 있지 않다. 그것은 오직 주님과의 거리에 있다. 행복은 오직 영혼이 깨어나서 주님을 알아갈 때 오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은 다 주님과 멀리 있어서 오는 것이다. 주님 중심의 의식이 없어서 오는 것이다. 주님은 살과 피가 있는 사람보다 더 가깝다. 주님은 더 선명하신 분이다. 당신의 영혼의 감각이 죽어 있어서 그분이 멀게 느껴지는 것이 문제이지, 주님은 피상적인 분이 아니다. 당신의 마비된 영성이 문제이지 주님은 피상적인 분이 아니다. 주님은 놀랍고 선명하며 실제적인 분이시다. 다만 주를 깊이 갈망하고 사랑하지 않는 이에게 그분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실 뿐이다.
21. 아가들의 영성 관리
아이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것은 행복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지금처럼 계속 아름답고 천진난만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른들이 잘 관리해주지 않는 한 급속하게 영이 악해지고 혼탁해진다. 아이들이 돌 정도 되면 찡찡거리는 꼬마 악령들이 아이에게 들어오기 시작한다. 찡찡대거나, 고집을 피우거나, 엄마 아빠를 힘들게 하거나 그게 아이의 성질 같지만 사실은 그런 영이 하는 짓이다. 하지만 그 영들을 분별해서 쫓아버리는 엄마는 찾기 힘들다. 대부분 영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아기와 영을 분리시킬 줄 모른다. 그래서 그 작은 악령들이 아기들 속에 집을 짓고 자리를 잡아버려 아이의 악한 성품이 형성화된다. 부모들은 아기들이 귀엽다고 고집 부리고 찡얼대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은 아기들과 악령들을 연합시켜서 아가들을 지옥자식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 연결되어 있는 그 영들은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영들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22. 영계의 닫힌 문을 열자
주를 추구하지 않는 이들은 세상과 자기 중심과 어두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행복하지 않으며 삶이 복잡하고 힘들고 지친다. 이들은 온갖 지옥의 영들에게 고통을 겪으므로 환경과 상관없이 고뇌와 고통이 끊이지 않는다. 사모하지 않는 이들은 영혼의 깨어남을 경험할 수 없다. 그래서 진리를 들어도 들리지 않고 빛을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갈망하지 않는 이들에게 억지로 생명을 공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영계의 법칙에 어긋난다. 준비되지 않은 영혼을 억지로 주님의 감동과 인도하심도 없는데 스스로 도우려고 애쓰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니 시간이 있다면 할 수 있는 한 빛을 받을 수 있고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이들을 만나고 돕는 것이 좋은 것이다.
23. 오직 낮은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가자
자녀들이 시집가는 것은 배반이 아니다. 유치원을 떠나서 초등학교에 가는 것은 배반이 아니다. 성장이다. 신앙이란 과정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 자라가고 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어린 아이들로 충만하다. 어린 사역자도 있고 어린 성도들도 있다. 모든 고통과 아픔이 있는 것은 어리기 때문이다. 영을 분별하지 못하고 열심히 주를 위한다고 애쓰는 것이 오히려 주를 방해하는 것도 어리고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기, 질투, 두려움, 염려, 열등의식, 사람을 소유하려는 것, 그 모든 악성들이 다 어리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어리기 때문에 그것이 자기에게 재앙과 고통이 되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장성할수록 즐겁게 자신을 버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섬기며 천국의 기쁨과 영광 속에서 살게 된다.
24.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영혼을 돕는 즐거움에 대하여
나: 다시 신앙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영혼이 예민한 기질이기 때문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체험하고 영혼이 눈뜨지 않으면 인생을 아주 피곤하게 살게 돼요. 영혼이 맑고 아름답고 순수한 편이기 때문에 영적으로도 빨리 성장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물: 어머나, 그래요. 하지만, 저 아주 못된 부분도 많은데요.
나: 하하..자기가 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못된 사람이지요. 착한 사람은 다 자기가 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정원 목사
25. 한밤의 열변
하나님은 대충 구해서 오시는 분이 아니다. 그렇게 값싼 분이 아니다. 오직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은혜가 오면 좋고 아니면 할 수 없고... 그런식의 마음이라면 기도하지 않는 게 낫다. 오늘날 사람들은 갈망하지 않는다. 교회에 대충 다니고 급하면 주님을 찾고... 그렇게 살면서 갈망을 잃어버렸다. 주님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전혀 고통을 모른다. 그것은 죽은 삶이다. 그것은 시체가 걸어다니는 것과 같다. 간절함이 없는 것은 영혼이 죽은 것이다. 미칠 것 같은 사모함이 없는 것은 영혼이 병든 것이다.
인간적인 많은 흠이 있어도, 겁이 많고, 꾸준하지 못하고, 인내가 부족하고, 영리함이 부족하고, 성품이 아름답지 않은 부분이 있고, 외모도 시원치 않고... 그 어떤 약점이 있다고 해도 주님을 사모하고 간절함을 가지고 있으면 그 약점이 다 커버가 된다. 다 용서받고 회복될 수 있다. 그러나 간절함이 없으면 그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은 시체와 같은 것이다. 평생 주님을 알아가고 영혼이 눈을 뜨고 자라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잡을 수가 있다면 그 사람은 온 세상에서 가장 복 받은 사람이다. ⓒ정원 목사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