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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주시는 하나님

이사야 김남준 목사............... 조회 수 1935 추천 수 0 2013.03.08 12:5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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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66:2下~4 
설교자 : 김남준 목사 
참고 : 2008-10-12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만나주시는 하나님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도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청종하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며 나의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이사야서 66:2下~4).

 

Ⅰ. 본문해설

 

이사야 선지자는 주전 7세기에 활동했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이사야서 전반부에서는 하나님이 행하실 큰 심판에 대해, 후반부에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와 성전을 수축하고 그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큰 감격을 누릴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실로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 제사하는 감격적인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백성들은 다시금 영적 타락에 빠져 진정한 예배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66장은 그 일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는 선포합니다. “성전에서 너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 것이고, 하나님은 성전에 갇히실 수 없는 위대하고 크신 분이시다.” 포로 된 지 70년 만에 귀환했을 때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을 입은 자’들이 지도자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삶의 기반을 버리고 원수들에게 둘러싸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위험한 일들을 뚫고 성전수축을 위해 그들은 돌아와서 눈물 흘렸습니다. 노인들은 솔로몬의 성전보다는 보잘 것 없는 기초를 보고 눈물을 흘렸고, 젊은이들은 그들의 새로운 성전을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그 첫 감격을 상실하고 영적인 타락에 빠져버리자 눈물도 사라졌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찾는 뜨거운 심령도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만남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만나주시는 진정한 예배자는 누구입니까?

 

Ⅱ. 만나주시는 예배자(2절)

 

A. 가난한 마음

 

우선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가난한 마음은 파산선고 받은 마음,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기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아는 것이 예배자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자신의 지위나 건강, 재산을 움켜쥐고 있는 부요한 마음을 가지고 목마름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을 갈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B. 통회하는 심령

 

두 번째는 통회하는 심령입니다. 심령은 우리 마음과 영혼의 가장 깊은 곳, 그야 말로 우리의 마음과 정신, 육체까지 움직이는 핵심부입니다. 그 곳에서 주님의 큰 사랑을 몰랐던 것, 제멋대로 살았던 것을 통회하며 뉘우치고 깨닫는 마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예배는 진정으로 통회하는 예배입니다. 여러분, 일주일동안 얼마나 많은 죄를 지으셨습니까? 우리의 삶 전체는 선하고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 분투해야합니다. 부패한 삶은 별 노력 없이 욕망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깊이 심령에 통회함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C. 말씀 앞에 떠는 자

 

또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 앞에서 떠는 자를 만나주십니다. ‘떨다’라는 표현은 두 가지로 나눠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도망하여 그분의 심판과 분노에 벌벌 떠는 노예적인 떨림이 그 하나입니다. 그에 반해 말씀 앞에서 떠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위대하심 앞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싶지만 자신의 악함을 보고 떠는 경건한 떨림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예배자는 그러한 떨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헛되이 행하였습니다.

 

Ⅲ. 하나님을 모욕하는 예배자(3절)

 

가난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 말씀 앞에 떠는 자세가 없는 모든 예배의 참여를 오늘 말씀은 어떠한 것인지 보여줍니다. 사실 소를 잡는 것, 어린양으로 제사 드리는 것, 예물과 분향은 제사의 필수조건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살인, 개의 목을 꺾는 것, 돼지의 피, 우상을 찬송함에 비유하셨습니다. 이것은 모두 이교도의 거짓제사의 대표적인 목록들이었습니다.

 

A. 쓸모없는 재물

 

이것은 마치 우리 시대의 장중한 예배당, 정해진 시간에 드리는 예배, 찬송소리 등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필수적인 요소들이라고 하는 것들이 있다하더라도 그 순서에 어울리는 진정한 예배의 마음이 없다면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 목마른 마음, 주님의 은혜를 구하기 전에 일주일 동안 살았던 삶에 대해 깊이 돌아보고 통회하는 심령, 말씀에 떨림이 정말 있습니까? 제사는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들을 당신과의 관계로 초청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사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가장 닮은 것은 우리의 육체가 아니라 영혼입니다. 영혼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 어찌하든지 주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깊은 목마름들이 없을 때 모든 제사는 그 순서가 아무리 뛰어나게 아름답다고 할지라도 주님을 향해 불결하게 여겨지는 목록이 될 뿐입니다.

 

B. 쓸모없는 마음

 

쓸모없는 재물은 쓸모없는 마음의 반영이었습니다.

 

1. 자기고집
그 첫 번째는 자기 고집에 가득한 마음입니다. 자기의 길을 스스로 택하면 하나님 앞에 예배는 드리고 있지만 삶은 드릴 수 없습니다. 무수히 짐승을 잡아 목을 꺾었지만 헌제자인 자신은 한 번도 꺾임이 없는 신앙생활은 제사를 드릴수록 분노만을 쌓고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 없이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 앞에 내놓는 더러운 밥상과 같습니다. 손님이 밥상을 받을 때 밥상으로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손님은 주인에 대해 원한을 품을 것이고, 밥상을 받는 안방이 아를다우면 아름다울수록, 주인의 표정이 밝으면 밝을수록 모욕감은 심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아우구스티누스는 통회하면서 흐르는 눈물 그리고 참회의 기도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비록 큰 예배당이 없고 다 쓰러져가는 집이라도 그곳에서 자기가 깊이 깨어지는 마음으로 드리는 성도가 드리는 참된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 하나님께 꺾임이 없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자기 고집으로 가득 차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를 받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지만 자신의 인생관의 채에 말씀을 걸러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함을 표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게 완고한 편견대로 욕망에 가득 찬 감정,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의지는 심판의 불길 이외에 어디로 가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주님은 우리가 통회하고 우리의 모든 소원을 주님께 맡길 때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하지만 자기고집으로 인생을 휘몰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의 다른 이름입니다. 목회자로서 인생을 살면서 가장 보람되고 행복한 때는 교인들이 자신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 성도들이 깊이 자신의 삶을 회개하면서 돌이키는 위로입니다. 인간도 이러할 질대 순전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얼마나 더 많이 그런 마음으로 여러분을 보시겠습니까? 신앙은 껍질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주님의 은혜에 젖는 것 그래서 돌 같은 마음이 녹는 것으로 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2. 가증한 기쁨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예배가 열납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쓸모없는 마음 안에서 가증한 기쁨을 찾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가증하다는 표현은 십계명의 1, 2계명과 관련 있습니다. 기쁨을 위해 우상을 만들고 절하는 것은 하나님께만 드려야할 진정한 경배와 하나님 안에서 찾을 참된 기쁨을 버리는 대가로 이 세상과 육체의 가증한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가증한 기쁨은 하나님 뜻대로 살려다가 순간적으로 잠시 낙을 보는 그것이 아니라 계명을 위반하면서 얻는 기쁨입니다. 우리는 때로 겉모습에 감추어진 사람들의 추문이 들어날 때 깜짝 놀라게 됩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하지만 그것은 댐에 물이 가득차면 둑이 터지고 물이 넘치는 것처럼 자기 꺾임이 없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의 당연한 귀결일 뿐입니다.

 

Ⅳ. 심판하시는 하나님(4절)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심판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A. 유혹받게 버려두심
첫 번째로 유혹받게 내버려 두십니다. 비록 현재 은혜가 충만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마치 양을 울타리로 보호하심과 같이 가시를 두어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울타리를 만들어서 양을 찌르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신앙이 떨어지고 하나님 보시기에 결함이 있는 제사를 드린다 하더라도 무의식, 의식, 환경 등을 사용하셔서 보호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 하실 때는 이런 모든 보호를 포기하십니다. 비탈진 언덕에 차를 멈추기 위해 돌멩이를 박아 놓은 것처럼 그 돌멩이를 치웠을 때 인생은 돌진하는 차와 같이 언덕 아래로 돌진합니다. 모욕하며 예배하는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어느 정도의 은혜마저 소멸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린 무방비한 상태로 자기의 욕망을 따라 유혹을 받고 불순종의 상태로 가게 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B. 심판받게 하심
그런데 예배 속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만이 죄에 대해서 두려운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남은 은혜를 소멸하고 억제하시는 은혜에 해방되는 사람들은 비탈 아래로 돌진하는 자동차처럼 욕망대로 잠시 죄의 낙을 느끼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닥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 돈과 지위, 사랑하는 사람들의 상실을 통해 하나님이 없이 잘 나가는 모든 것들을 하는 것을 일시에 무너지게 하셔서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드려졌다는 사실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결코 불현듯 심판하시지 않았습니다.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청종치 아니하는 구나.” 무수히 많은 시간 동안 주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당신의 사랑으로 돌아오도록 진정한 관계로 끊임없이 부르십니다.

 

Ⅴ. 결론: 부르시는 하나님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이런 예배를 드린 하나님을 모욕한 예배자들은 언제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 하셨으며 경고하셨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신비한 방법으로 여러분 각자를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교회에서 당신의 마음을 목회자에게 주셔서 자신의 양떼를 부르십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은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부모에게 효도하듯 알아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주님의 마음은 육신의 욕구에 들떠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면서 오물 같은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당신의 말씀을 통해 전해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미각이 있는 사람들 말씀의 맛을 알고 진리에 자기를 깊이 침잠시키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인생 사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예수 믿는 인생의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웬만큼 믿어서는 인생 사는데 도움을 못 줍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나니까 예수 믿기 전보다 언제 나 행복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를 올바로 믿지 못했을 때 밀려오는 갈등과 큰 번민은 세상에서 방황하던 때를 방불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고 알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 그것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예수 믿는 것이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주님이 우리에 중심에 계시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 전체에서도 주님을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백성을 위해 아들까지도 내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 자신의 자녀들을 향해 끔찍한 심판을 경고하실 때 얼마나 고통스러우실지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자녀를 기르면서 자녀가 바르게 살지 않아 매질 할 때와 비교할 수 없는 큰 아픔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사실 그 마음은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너무 사랑하셔서 자기의 외아들을 사람의 몸을 입혀 내려 내신 마음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막보는 예배는 결국 외아들을 내어주신 따뜻한 마음에 차가운 못을 박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긴 세월 인생을 살았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를 악하게 대해주신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신실하고 선하셔서 우리의 가는 길을 인도하셨고 이끄셨으니 우리가 주님을 거스를 때 느꼈던 큰 고통과 환란도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의 나타남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도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래서 마음을 모으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은 그 속에서 주님을 깊이 이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순간 주님을 의지하면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비록 이전에는 모욕하는 예배자의 모습을 보여 드렸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정말 주님이 만나주시는 예배자들로 변화되시길 바랍니다. 2008-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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