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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삐딱이들’12 -향유 붓는 여인

요한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833 추천 수 0 2013.03.09 23: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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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0:12-13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2.10.8 주일설교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삐딱이들’12 -
요10:12-13

먼저 이미 읽고 넘어온 요한6:61-66절을 보려고 합니다. 오떡이어가 일종의 축제와 환호라면 그 말미로는 예사스럽지 않은 대목입니다. 제자들 가운데 그 일(오떡이어 때문에)로 내분이 생겼고, 예수의 길에서 떠난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떡이어가 이렇게 그 대상에 따라서 환호와, 갈등과, 분리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하겠죠. 성경이 증언하는 바니까 말입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영’과 ‘육’이 나뉘고, 배신자인 가룟 유다의 존재가 예고되는 것을 감지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요한복음 6장의 오떡이어의 본문을 보시면서 여기까지 생각할 수 있다면 참으로 깊은 신앙의 눈을 가졌다 하겠습니다. 바둑으로 치면 단(段)증을 딴 겁니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이지만, 고수들의 바둑을 해설하려면 그 역시 고수여야 합니다. 만약 프로 7단의 바둑 대국을 해설하는데 아마추어 5급의 바둑 쟁이가 해설을 한다면 그건 넌센스입니다. 그런데 우리네 신앙에도 아마추어 5급 실력의 기사가 성경을 해설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러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죠.

여하튼, 다시 12장 1-8에 나오는 향유 붓는 여인의 이야기로 옮겨가면 요한복음의 이야기는 다른 공관복음서와는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요한복음은 향유를 붓는 사건을 통해 ‘영’에 대비되는 ‘육’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요한공동체를 이해하는 단서이기도 합니다.

향유 붓는 여인은 네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26:6-13, 막14:3-9, 눅7:36-50 인데요, 그만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일화였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같은 이야기를 네 복음서는 약간씩 다르게 전하고 있습니다. 구성이 다르다 보니 초점이 다른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누가복음은 아주 새로운 이야기로 재구성을 합니다.
나머지 복음서는 유사한 흐름으로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런데 유독 요한복음만 이들 복음서들과는 다른 방식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최초로 전한 복음서는 마가복음인데, 마가복음에서 향유를 붓는 여인의 이야기 초점은 종말에 관한 예고입니다. 즉, 예수님은 곧 죽임을 당할 것이고, 이 여자는 예수님의 그런 사건을 예시하는 행위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의 시각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누가복음은 이걸 완전히 바꿔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여인이 아니라 제자 또는 바리새인이 예수와 논쟁을 벌이는 재료로 변질을 시킵니다.  

그러면 요한복음은 어떨까요? 요한복음은 이 이야기를 마르다-마리아-나사로- 가족 이야기와 결합을 시킵니다. 그리고는 부수적으로 제자중의 한 사람이 유다의 탐욕과 연결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니까 같은 이야기인데도 4개의 복음서가 각기 다르게 그 초점을 맞추고 있죠? 이렇게 때문에 성경을 뭉뚱그려 한 가지 목적으로 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마르다와-마리아-나사로 대 유다의 등식은 마치 요한복음 6장 63절의 영과 육의 대립을 연상하게 하지 않습니까? 자신이 먹기에도 모자라는 것을 모두 내놓고 함께 먹으니 오히려 남았다는 이야기, 그걸 접한 사람들은 그를 왕으로 옹립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예수는 그것을 거절하기 위해 피했다고 합니다. 이건 나쁜 권력(기존의 권력)을 다른 권력(예수라는)으로 대치하려는 전략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그걸 거부합니다. 그리고 유대주의적 물신주의적 신앙과 혁명적인 유대주의는 기실 다른 것이라는 태도를 보이는 거죠. 예수는 한 마디로 물질화 되어 있는 유대신앙을 거부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게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오늘날 다시 ‘물질주의’의 기독교가 되었지만 말입니다.

이제 이런 기류가 생기자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 속에 내분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을 요한복음의 예수님은 ‘육’에 속한자로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 중에 예수에 대해서 불평을 갖게 된 이들은 예수를 통해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고픈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를 통해 그동안 갖지 못했던 물질적인 이익을 기대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떡이어의 분위기가 그게 아닌 쪽으로 흐르자 분노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건의 전개는 12장에 와서, 향유를 부은 여인의 이야기에서 가룟유다의 등장과 함께 정점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실수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예수의 의도와는 다른 제자들의 태도가 일반적으로 파렴치한 경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의 의중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단지 그들이 파렴치하기 때문이 아니라 ‘억눌린 이들을 해방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그들은 혁명주의자 들이었습니다. 칼을 써서라도 나쁜 권력을 무너뜨리자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유다를 욕하지만, 그의 본심은 자기 주머니를 챙기자는 게 아니라 공익적 가치 측면에서 그렇게 하는 것보단 이렇게 하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조건 가룟 유다를 ‘나쁜 놈’을 몰아 마치 자신은 ‘좋은 놈’인 것처럼 변장하려는 사고는 버려야 합니다.

이제 오늘 이야기의 결론부분에 당도했습니다.

요한복음의 예수님은 10장에서 이른바 ‘목자와 양의 비유’에서 장사꾼에 지나지 않는 목자에 대해 언급을 합니다. 10:12-13절이죠.

‘양’은 그들을 믿고 따르지만, 그들의 가르침이 옳다고 받아들이고 그들의 경건함에 의존하지만, 그들은 실은 자신들의 양을 생각하기 보다는 다른 가치를 위해 양을 거래하는 자에 불과 하다는 것입니다.

육의 제자들이 사람들의 배부름의 환희를 혁명의 에너지로 환산하고자 했고, 가룟 유다가 한 여인의 실존적인 고백을 공익을 위한 비용의 낭비라고 해석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요한복음은 그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게 바로 예수를 배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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