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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따돌림과 이스마엘

창세기 이상호 목사............... 조회 수 1829 추천 수 0 2013.03.10 22: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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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21:8-21 
설교자 : 이상호 목사 
참고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집단 따돌림과 이스마엘
창 21:8-21                                             

2007. 4. 22, 장애인주일
 
지난 16일 미국 바지니아 공대에서는 아주 끔찍한 총기난사로 무려 32명(본인까지 33명)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범인이 한국계 학생이었습니다. 범인 조승희는 소심한 성격과 어눌한 말투로 학창 시절 따돌림을 당했었다고 합니다.
조씨와 함께 웨스트필드 고등학교를 졸업한 크리스 데이비드는 “조승희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주위에서 말을 걸어도 이를 무시했다”며 조씨에 얽힌 일화를 전했습니다. 데이비드는 “고등학교 영어 수업 시간 도중 돌아가며 책을 읽는 시간이 있었는데 조승희는 자신의 차례가 왔는데도 책을 읽지 않아 선생님으로부터 F 경고를 받았다”며 “선생님의 경고를 받은 후 조승희가 책을 읽자 모든 학생들이 어눌한 발음을 지적하며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놀렸다”는 것입니다.
조씨의 또다른 고교동창인 스테파니 로버츠도 “그를 따돌리고 놀리던 애들이 있었다”며 “그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고 애들은 그 점을 놀렸다”고 말했습니다.
조씨와 중고교를 함께 나온 리건 윌더도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조승희를 대화에 참여시키려고 했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거나 두 단어의 대답만 했다”며 선생님들은 그를 포기한 상태였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0일은 제27회 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장애인주일로 지킵니다. 장애인들은 가정과 사회로부터 집단 따돌림과 소외받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통하여 집단 따돌림이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지 알게 됐습니다. 물론 범죄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조승희씨는 망상형 정신분열증 환자였을거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그는 사건 당일 NBC방송에 우편물을 보내면서 반송주소란에 자신의 이름을 적지 않고 '이스마엘(A Ishmael)'로 적었다고 합니다. 그가 자살한 뒤 팔뚝에서도 붉은 잉크로 '이스마일 도끼(Ismail Ax)'라고 휘갈겨쓴 글씨가 발견됐었습니다. 도대체 그는 무슨 뜻으로 이 단어를 썼을까요?

네티즌들은 우선 이스마일이 종교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이스마엘은 이슬람교에서 유일신 알라를 믿기 시작한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아브라함과 여종 하갈 사이에 태어난 이스마엘은 추방자로 그려집니다. 이스마엘은 히브리어로 '하나님께서 들으심'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조씨는 NBC방송에 보낸 메시지에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약하고 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죽는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저 이집트 땅에 부모와 단란하게 살아가던 한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군병들이 어머니 아버지를 끌고 가고 아이는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이 소녀의 아버지가 나라에 큰 죄를 저지른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집 저집 종살이로 팔려 다니다가 급기야 아라비아 상인의 손에 넘어가고 멀리까지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이 '하란'지방이었고 이 아이는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이쁘장하고 착해서 안주인 '사라'라는 여인의 몸종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라'를 수발들던 이 소녀의 이름은 '하갈'이었습니다. 하갈은 이곳 아브라함의 집에서 오랫동안 종살이를 하였는데 줄곧 '사라'의 시녀 노릇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두 여인은 서로에게 깊은 정이 들었고 서로의 마음을 다 알아낼 정도로 가까워졌습니다. 이때 사라에게는 큰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기가 없다'는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는 모종인 하갈에게도 가슴 아픈 일이었고 늘 주인마님이 아기를 갖게 되기만을 바라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기 소식이 없자 사라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됩니다. 어느 날 하갈을 불러 앉히고는 '자기의 남편인 아브라함에게서 자기대신 아기를 낳아달라'고 부탁하게 되었습니다(창 16장). 사라가 그만큼 하갈을 마음으로부터 신뢰하고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갈은 순수한 마음에서 사라의 말을 따르게 됩니다. 그리하여 아기를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본능인지 하갈은 아기를 갖고 난 다음부터 주인 사라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깨를 펴고 으쓱대기 시작하고 어느덧 자기가 종의 신분을 잊고 여주인 행세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하갈의 이러한 태도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감지한 사람이 이 사건의 주모자인 사라였습니다. 사라는 내심 '하갈이 이럴 줄은 미처 몰랐다'는 배신감까지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하갈은 건장한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아이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지었고 아이는 잘 자랐습니다. 이렇게되니 집안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신분상으로는 안주인과 여종사이인데 내용상으로는 '아이를 못 낳은 여자'와 '아들을 낳은 여자'로 우열관계가 역전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갈은 시간이 갈수록 콧대가 높아졌고 사라는 아이없다는 이유만으로 기가 죽어지냈습니다. 더구나 이때 사라는 이미 경수가 끊긴 상태였다고 합니다. 즉 이젠 아기를 갖게 될 가능성마저 완전히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하갈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는지도 모릅니다. '이젠 됐다. 가만히만 있어도 이집의 안주인 자리는 내게로 굴러들어오게 되어 있구나'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유일한 아들은 자기가 낳은 '이스마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생각을 달리하고 계셨습니다. 기적을 통해서라도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아들을 주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마엘이 14살 되던 해 그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이미 너무 늙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사라가 아기를 잉태한 것입니다. 하갈로서는 벼락을 맞는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하갈이 은근히 사라를 약올리고 무시하는 분위기였는데 이제 다시 분위기가 재 역전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하갈의 마음이 주인을 축하하거나 자기 일로 알고 기뻐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아브라함의 아기를 낳지 않고 여전히 사라의 몸종이었다면 뛸 듯이 기뻐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습니다.

사라가 아기를 가진 이 사건은 하갈 자신과 그 아들 이스마엘의 운명을 180도로 뒤 바꿀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하갈과 사라의 불꽃튀는 신경전은 우리가 안봐도 능히 상상하고도 남을만한 일이었습니다. 사라는 열달이나 지나 아들을 순산하였고 그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습니다. 이 아기 이삭이 젖을 뗄 무렵 집안에 잔치가 벌어졌는데 14살 먹은 이스마엘이 이제 갓난아기인 이삭을 괴롭히다가 사라에게 발각되었습니다. 이 일로 집안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몸종 주제에 아들 낳았다고 목에 힘주고 주인 알기를 우습게 알기에 '괴씸하다'했는데 그 아들 녀석이 천금같은 우리 아기 이삭을 괴롭히는걸 보았으니 가만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하갈과 이스마엘은 하루아침에 떡과 물 한 가죽부대만 가지고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성경에서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를 중심으로 이삭이 탄생하게 되기까지 전개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실제 주인공은 '사라'와 그가 늦게 얻은 아들 '이삭'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하갈'과 '이스마엘'의 입장에서 이 장면들을 다시 보았습니다. 사라로써는 괴씸해서 쫓아내었겠지만 하갈로서는 억울하고 분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쫓겨나서 브엘세바 들녘을 헤메이다가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다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이젠 꼼짝없이 이 들판에서 굶어죽게 생겼습니다. 하갈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상상해 보십시오. 서러움이 북받쳐 오르고 억울한 마음도 들었을 겁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자기가 잘못한 일이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죄가 있다면 애굽여자로 태어나 어찌하다가 노예가 된 일과 여기까지 팔려와서 여주인 사라를 만나고 사라가 먼저 제안을 해서 주인의 아기를 갖게 된 것. 그것이 죄라면 죄요, 자신이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가게 되는 것 그리고 자기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을 견딜 수 가 없었습니다. 하갈은 이때 방성대곡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오기까지의 배경입니다. 하갈이 지금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이스마엘은  '이삭'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대를 이을 아들이라고 금이야 옥이야 하더니 하루아침에 이토록 매몰차게 쫓아낼 수가 있는건가 싶었을 겁니다. 여러분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 자기 생각대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으로 인하여 큰 꿈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기도 하고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되기도 하고, "내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나" 싶을 정도로 비참한 자리까지 굴러 떨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직 성숙하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가 이런데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재벌이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고, 아무 것도 없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떼부자'가 될 수 있는 나라. 이런 나라는 무얼해도 안심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경제가 언제 어찌될지 모르고 교육제도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고, 국민연금, 의료보험제도가 다시 어느 방향으로 바뀌게 될지 모르는 나라, 국민은 정부의 말을 믿지 않고 정부는 어찌하든 급한 불만 끄면서 '정권 창출'에만 집착하는 나라, 문제가 터지면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는, 지도가 없는 나라, 도덕과 윤리가 오래 전에 무너진 나라, 사람들은 이런 나라에서 도망치듯 이민 보따리를 차고 있습니다. 그러나 준비되지 못한 이민생활에서 조희승씨 같은 사람이 나왔습니다.

대를 이을 자식이 없어 고민하던 아브라함의 가정에 본처의 시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이 출생하여 건강하게 장성하게 되자 이것이 아브라함에게는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에 이스마엘이 장성하여 온 가정의 기쁨이었는데 본처가 이삭을 낳았을 때 온 가정에 기쁨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난 지 25년만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응답 앞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에서 기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첩 하갈과 이스마엘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적자 이삭의 출생으로 이스마엘은 장손으로서의 권한에 큰 위협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마엘은 이삭이 젖뗄 때를 기념하여 큰 잔치를 베풀던 날에 그의 시기심을 이기지 못하여 이삭을 조롱하였고 악행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마엘은 이삭을 희롱하고 능멸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을 파괴시키고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마엘은 그것이 그렇게 나쁜 것을 잘 몰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육신에 따라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모르는 것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이 불의합니다. 그들은 그것이 그렇게 나쁜 것인지 모릅니다. 자기의 욕심만 채우면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이기심만 채우려고 합니다.
자기 동생 이삭이 하나님의 약속의 씨로 인류역사의 신앙의 산맥을 이룰 사람인 줄을 모르고 자기의 시기심과 이기심을 동원하여 못살게 굴었습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자의 모습은 너무 불쌍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모릅니다.
또한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집에 있는 행복을 모르고 그 안에서도 불행과 불만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집의 아들로 태어나 살게 된 이스마엘이 감사할 것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동생이나 조롱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자기를 위한 잔치보다는 동생의 잔치에 여념이 없는데 대한 분풀이를 동생에게 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집에 있는 것을 행복으로 알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낙원인 에덴동산에 있는 것을 행복으로 알지 않고 하나님과 같이 되기 위해서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것은 에덴을 에덴으로 알지 못한 자의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품을 하나님의 안식으로 알지 못하고 불평 속에서 살았습니다.
오늘날 현대 크리스챤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의 몸된 교회에 있으면서도 은혜로 행복으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품을 은혜로 모르는 자는 결국 쫓겨나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아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이것을 행복으로 알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이스마엘은 광야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 집의 행복을 불평하던 이스마엘은 그 어머니와 함께 그 집에서 쫓겨나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실로 아브라함의 집은 광야의 무더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그늘이 있었고 견딜 수 없는 갈등을 식혀줄 시원한 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 모자에게는 그러한 평안과 안식이 모두 박탈되었습니다. 그들의 앞에 전개될 운명은 사막의 뜨거운 모래바람과 죽음이 넘나드는 배고픔과 목마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난 자의 괴로움은 너무나 참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들의 앞은 황량한 들판과 무시무시한 죽음의 그림자는 시시각각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어디로 갈지 몰랐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모자는 슬피 울었습니다. 해결의 방법이 없었습니다. 과거에는 아버지 집에서 그리운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께 고마운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집에서 쫓겨난 뒤 광야에서 길을 잃고는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죽는 일만 남았습니다.

하갈은 통곡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통곡소리를 들으시고 물을 주사 살아나게 하시고 이스마엘로 하여금 활쏘는 자가 되게 하시며 애굽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게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되었으니 오늘날 이슬람교를 믿는 이라크를 비롯한 스탄이란 국가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결국 중동전쟁은 이스마엘과 이삭 형제의 싸움이요, 소외와 따돌림의 결과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이루게 된 셈입니다.
우리는 결코 장애우들을 따돌리거나 약하고 힘없는 자를 소외시키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서로 격려하며 버팀목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장애와 비장애가 없고 소외와 편애가 없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우리 교회에서는 집단 따돌림이나 무시, 소외가 있어서는 절대로 안되겠습니다. 모두가 더불어 함께 하는 세광공동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귀한 장로님, 안수집사님을 세워서 교회와 지역사회의 평화와 연합과 따뜻한 사랑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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