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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롬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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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 참고 : | http://www.bamjoongsori.org 밤중소리 |
(로마서 강해 11)
남을 판단하는 죄
(본문 : 로마서 2 : 1 - 5)
서 론 : 로마서의 전체적인 개요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이신 청의’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이신 청의’의 기독교의 진리를 1:16절에서 시작하여 8:39절까지 펴냈습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지적하는 바는 판단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경종이 되겠습니다. 이 경종은 주로 율법이 있는 유대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유대인들은 그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우월감으로 이방인들을 멸시하였으며, 판단하는 죄를 범하고 있었으므로 바울은 율법이 있는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정죄하심을 면할 수 없다고 하는 경종을 들려주고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1. 남을 판단하는 자의 죄
성경은 여러 곳에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에 대하여 정죄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말씀하고 있는 판단이라고 하는 말은 ‘크리마’란 말로 ‘선이냐? 아니면 악이냐의 결정을 내리는 최종적인 선택’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1) 율법에 속한 사람들이 남을 판단합니다. 율법의 사명은 죄에 대한 정죄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에 속한 사람들은 죄에 대하여 용서가 아니라 정죄를 내리게 됩니다. 율법이 주어진 목적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율법아래의 인간들은 정죄뿐 아니라 원수 갚는 일조차 허락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21:23-25). 이 같은 일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런 하나님의 허락은 인간의 마음이 악하기 때문입니다{마19:7, 8).
(2) 그러나 은혜에 속한 사람들은 이와 판이합니다. 은혜는 판단이나 정죄가 아니라 사랑과 용서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에 대하여 결코 정죄하라고 하시거나 판단하라고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혼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마18:21,22). 은혜 받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무한대한 사랑과 용서입니다.
다음에 은혜 받은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과 허물에 대하여 곧바로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라 하겠느냐”고 말씀하심으로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밝히셨습니다(마7:1-4).
(3)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판단을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일은 자신이 자기를 정죄하는 일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왜 남에 대한 판단이 자기 스스로 자신을 판단하는 결과가 되느냐? 이에 대한 해답을 바울은 명쾌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남을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하기 때문이라고 한 것입니다.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려면 자신만큼은 절대로 그 같은 죄를 범하지도 말아야 하며, 다른 이로부터 판단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도 다른 사람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내린 것과 똑같은 판단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우리는 내가 판단한 사람과 똑같은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중에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없는 의인은 한 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일은 절대로 핑계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한 가지 죄가 더 추가되는 것입니다. 판단하는 죄와 또 판단한 사람과 똑같은 죄를 자신이 짓는 죄입니다. 이 같은 죄는 하나님의 판단을 받는 죄가 된다고 경종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고 말씀했습니다.
2. 남을 판단하는 사람의 세 가지 무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무서운 범죄자들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율법에 얽매어 율법적인 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 판단하고 정죄하는데 이 같은 일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기 때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1) 율법을 가지고 남을 판단해 온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풍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인자하심이 풍성한 분이라고 여긴 것이 아니라 판단하고 정죄하시는 분이시라고 여긴 것입니다. 인자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도 똑같으십니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에게도 인자하십니다(시116:5). 하나님은 가난한자에게도 인자하십니다(시35:10, 시9:12).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죄인에게도 인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죄인들에게도 오라고 하십니다(사1:18,19).
(2) 다음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용서하심의 풍성하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용납이란 용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그의 무한대 하신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그 어떤 죄라도 용서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간음 중에 잡혀 온 여인에게조차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가지고 우리를 정죄하고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아들 안에서 무한대한 사랑으로 우리를 용납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사55:6,7).
(3) 다음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길이 참으심의 인내의 풍성을 몰랐습니다. 길이 참으신다는 말씀의 원어의 뜻은 사람의 죄와 허물에 대하여 오래도록 참으시고 화를 내지 아니하시고 간과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최종적인 심판을 내리시기까지 오래도록 길이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노아의 때에도 하나님은 죄악된 세 상사람들을 즉시 심판하실 수 있으셨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회개를 위해 오래도록 참으셨다고 하셨습니다(벧전3:20).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회개하기에 이르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길이 참으심이라고 하셨습니다(벧후3:8).
결 론 :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가 반드시 이 같은 무리들에게 임하십니다. 이들은 고집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고집이란 말은 ‘스크레로테스’인데 완고, 완악을 의미합니다. 마치 마음을 경화시키는 영적 경화증입니다. 그 마음에 불신으로 가득차 있는 상태가 완고한 마음입니다. 다음에 회개치 않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십니다. 회개란 말은 ‘메타노에오’로 마음을 고친다, 바꾼다, 뉘우친다의 뜻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에는 하나님 앞에 반드시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회개가 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죄악이 관용함에 따라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의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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