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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롬3:2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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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 참고 : | http://www.bamjoongsori.org 밤중소리 |
20 ≈
율법과 믿음의 법
(본문 : 로마서 3 : 27 - 31)
서 론 : 바울은 사람이 의를 얻는 일에 있어서 아무도 자랑할 데가 없다는 사실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유대인으로 자랑할 데가 있느냐? 율법으로 자랑할 데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의의 조건이 될 수 없으므로 자랑할 데가 없는 것입니다. 의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은 유대인도 율법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그의 아들로 인간에게 의를 주실 수 있는 화목 제물로 세우셔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시고 예수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무한한 찬양과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1. 의를 얻는 일이 무슨 법으로냐?
바울은 27절에서 “무슨 법으로냐”고 묻고 있습니다. 사람이 의를 얻는 일이 어떤 법으로 말미암아서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의를 얻는 일이 행위(율법)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자랑할 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행위로냐”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법으로니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의를 얻을 수 있는 두 가지 법을 주신 사실에 대하여 알 수 있게 됩니다. 율법과 믿음의 법이 그것입니다.
(1) 하나님은 행위의 법으로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인간이 생각하기에는 그로 말미암아 의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레18:5). 그러나 여기에 율법의 함정이 있는 것입니다.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에 율법의 온전한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첫째로 율법은 그 많은 명령 중에 그 어느 하나만이라도 범하면 의에서 제외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약2:10). 다음에 율법에는 용서나 사죄의 은혜가 전혀 없습니다. 오직 정죄와 심판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한 평생 살아가는 동안 단 한번이라도 율법에 거치는 일을 하면 그 사람은 율법의 정죄를 면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율법은 왜 주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을 성경에서는 여러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하신 말씀대로 죄를 깨닫게 하시는데 있습니다(롬3:20).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롬3:19). 율법은 “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5:20). 더한다고 하신 말씀은 조장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 안에 숨겨져 있는 죄를 율법으로 더 들어낸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처럼 의도 줄 수 없고 인간의 죄를 드러내며 정죄하는 율법을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 대답은 오직 십자가에서만이 풀리는 것입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갈3:24).
(2) 새로운 법으로 믿음의 법을 주셨습니다. 범죄하여 죽게 된 인간을 구원하시는 일에 하나님께서는 애초에 믿음으로 의를 주시기로 작정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의 구원을 계획하셨습니다(엡1:3-5). 인류 최초의 의인으로 인정받은 아벨의 경우,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의도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히11:4).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 치심을 받은 성경적 대표인물은 아브라함입니다. 그가 가진 의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증명되고 있습니다(롬 4:16-22). 이에 대하여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셨습니다(갈3:11). 그러나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율법으로는 의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갈 3:12).
믿음의 법이란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를 믿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해 주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법이 곧 믿음의 법”인 것입니다. 이 같은 믿음의 법은 신약시대에 와서 비로소 생겨나서 효력이 발생된 것은 아닙니다. 애초부터 하나님은 이 믿음의 법으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섭리하셨고 그 섭리대로 이루어 오셨습니다.
2. 차별이 없으신 하나님
만약 하나님께서 인류구원에 차별을 두신다면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롭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끊임없이 유대인과 이방인과 차별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차별이 마치 하나님에 의하여 주어진 것처럼 여겨왔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인류에게 의를 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결코 차별이 없음을 밝혔습니다. “할례 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 할례 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고 말했습니다(롬3:30).
(1)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뇨. 바울은 편견적인 사상에 깊숙이 물들어 있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고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육적인 조상인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하나님의 부르심은 유대인들에게 의나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가 아닌 것입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바울은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롬4:16).
여기서 모든 사람이라고 말한 범위란 16절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다”고 하심으로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조상이 아니라 믿음에 속한 모든 민족의 조상으로 세움을 받은 조상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이것을 유대인들은 잘 못 알고 성경을 오해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바른 성경 지식을 가지지 못하고 오해한 일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이처럼 책망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 하였도다”(마22:29).
(2)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고 했습니다. 메시야의 언약은 결코 유대인들 을 위한 언약이 아니십니다(창3:15). 아브라함과 세우신 하나님의 언약도 어느 모로 보나 유대인들과의 언약이 아니십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사망이 왔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의 생명이 와야 할 것입니다(롬5:12). 유대인으로 말미암아서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라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의 구주가 되시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결 론 : 바울은 마지막 절에 가서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고 반문했습니다. 사람이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다면 이제 율법은 무용지물이 아니겠느냐? 그러하다면 신약시대에는 마땅히 율법이 폐하여져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고 하는 반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고 말했습니다. 폐한다는 말은 ‘카타르게오’로 헛되게 하다, 없게 하다란 뜻입니다. 그리고 세운다는 말은 ‘히스테미’로 서게 하다, 굳게 하다, 확정하다란 뜻입니다.
믿음은 율법을 헛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을 굳게 할 뿐 아니라 확정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율법은 절대로 폐할 질 수 없는 법입니다. 의를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 인류로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게 하기 위해 율법은 언제까지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은 율법의 증거가 필요하며 율법이 있으므로 믿음의 법이 하나님의 최선의 의를 주시는 법으로 증거 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언제나 믿음의 법과 병행하여 인류를 정죄하고 인류로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음을 알게 할 것이며 죄인들을 믿음으로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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