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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롬4: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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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 참고 : | http://www.bamjoongsori.org 밤중소리 |
22 ≈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의
(본문 : 로마서 4 : 4 - 8)
서론 : 믿음으로 의를 주실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방법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이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말할 수 없는 값을 치르셨습니다. 그의 아들로 속죄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의를 주시기 위하여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그 은혜 안에는 아들의 피를 값으로 치르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를 믿는 자에게 의를 주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의를 주신 일은 우리의 행위에서 나온 일이 아니기 때문에 율법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온 것입니다.
1. 삯으로 비유된 하나님의 恩惠
바울은 믿음으로 의를 얻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설명에 들어갑니다. 바울은 일과 값을 결부시켜 은혜의 참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일하는 자가 받는 삯은 은혜가 아닙니다. 우리는 4절-5절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우리에게 오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공로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값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일을 해서 얻는 임금은 은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을 아니했음에도 불구하고 일한 것으로 여김을 받아 대가를 받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에게 값을 준 사람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일을 했다 혹은 아니했다고 표현된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입니까? 그 일이란 우리 인간이 율법을 지켰다거나 자신의 어떤 행위적인 공로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의가 이런 사람에게 그 대가로 당연히 돌아갈 수 있다면 그 같은 의는 하나의 값이지 은혜라고 말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킨 일도 없고 의를 얻을만한 아무런 공로가 없는 죄인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의를 주신다면 이 같은 일이야말로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2) 일을 아니할지라도 의를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고 하셨습니다. 인간 중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서 그 대가를 받을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의인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에게 의를 주시는데 이 의를 은혜로 받을 사람들에 대하여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의를 얻을만한 아무런 공로가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아들을 통하여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셨으니 이 같은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인들에게 의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새롭게 열린 것입니다. 그 길은 일한 대가에서 오는 그런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사 나를 위한 화목 제물로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우리들에게 그의 의를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어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는가? 지금 이 은혜는 온 세상에 미치고 있으며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하신 말씀대로 은혜로 구원받을 문이 활짝 열려져 있는 것입니다(고후6:2). 아브라함도 이 같은 믿음으로 의를 얻었으며 우리도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의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2. 공로 없이 의를 얻는 자의 행복
바울은 이 같은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인물인 다윗의 경우를 예로 들었습니다. 6절-8절에 나타난 말씀대로 다윗은 율법을 지킨 일이 없이도 하나님께 아무런 공로 없는 죄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시편 32편에서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입니다.
(1)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다윗을 그 증인으로 내 세운 이유는 다윗이야말로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메시야의 조상에 대하여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할 만치 다윗의 위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존재였습니다. 아브라함을 아버지라 부른 유대인들은 장차 자기들에게 나타날 메시아야말로 다윗의 뿌리에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가 다윗의 영원한 왕국을 건설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 다윗도 율법에서 의를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의를 얻었다면 누가 율법으로 의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여기서 바울은 다윗의 경우를 예로 들어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의에 대하여 증거한 것입니다
(2) 참된 복은 불법의 사하심을 받고 죄의 가리우심을 받는 자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이곳에서 다윗은 자신의 죄과에 대한 사죄의 은혜의 경험을 말하고 있지만 아울러 모든 사람에게도 이 같은 사죄의 은혜가 미친다고 하는 사실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기서 하나님께 받는 사죄의 은혜를 말하고 있는데 이 사죄에서 나온 다윗의 기쁨이나 행복은 다만 사죄에 그치는 것 뿐 아니라 사죄로 말미암아 미치는 하나님의 의를 언급하려고 하는데 그 목적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불법은 인간의 무법적인 행동, 죄는 율법의 정죄를 말하는 것이지만 이 둘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는데서 온 것입니다. 죄란 ‘히마르티아’로 과녁(목표물)을 잘 못 맞춘 것을 말합니다. 인간의 과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이 같은 과녁은 완전히 빗나가 버렸습니다. 우리 인간은 이 같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행위로도 율법으로도 이 죄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야말로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하심이란 말은 ‘압히에미’로 상관치 않는다, 탕감하여 준다, 내어 보낸 다의 뜻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신다”는 뜻입니다(롬3:25). 우리의 모든 불법을 탕감하여 준다는 것입니다. 없었던 것처럼 전혀 상관치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가리우심이란 말은 ‘에피 칼립토’로 덮는다, 감춘 다의 뜻입니다. 우리의 불법적인 모든 행실에 대하여 아주 감추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도록 하나님의 손으로 덮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죄는 완전히 사하심을 받아 모두 탕감 받은 것입니다. 우리들의 그 많던 죄악이 그리스도의 피로 사하심을 받고 가리우심을 받아 하나님께서 기억도 나지 않게 모두 덮어 버리시고 감추신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감추시고 덮으신 것을 누가 들추어 낼 수 있겠는가?
(2)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유하신 죄는 하나님께서 그 죄를 죄로 인정치 아니하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율법의 정죄도 소용없습니다. 사단의 참소도 효력이 미칠 수 없습니다.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송사하리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8:33).
결 론 : 다윗은 이런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시는 그 죄로 인하여 정죄함을 받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은혜로 받을 것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사죄의 은혜는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회개를 동반하기 때문에 사죄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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