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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롬4: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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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 참고 : | http://www.bamjoongsori.org 밤중소리 |
로마서 강해 = 23
믿음의 의로 나타난 하나님의 의
(본문 : 로마서 4 : 9 - 14)
서 론 : 유대인들은 할례 자들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의를 얻는 일에 할례의 비중이란 절대적입니다. 심지어 신실한 유대인 기독교인들 중에도 그리스도안에서 구원을 얻는 일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의 할례 당마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골4:11).
바울은 로마서에서 믿음으로 의를 얻는 하나님의 언약을 증거 함에는 먼저 할례가 하나님의 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증거 해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아브라함의 경우에 결부시켜 아브라함이 받은 하나님의 의와 할례와의 상호관계를 설명하면서 의를 얻는 일에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시원하게 증거한 것입니다.
1. 사죄와 의의 행복자는 누구인가?
바울은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의 행복에 대하여 과연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행복의 대상자가 누구냐에 대하여 반문법으로 묻고 있습니다.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 할례자에게뇨 라고 물었습니다. 할례자란 유대인을 말하고 무 할례자란 이방인을 말합니다.
(1) 할례자에게뇨라고 물었습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할례란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중대한 의미가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실 때 여 언약이 할례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 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창17:9-14).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가 할례가 없는 이방인들에게 돌아간다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의를 주시는 일도 그것은 할례자인 자기 백성에 국한된 것인 줄로 알고 있었던 유대인 기독교 성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같은 사상을 깨지 않고서는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될 수가 없었습니다.
(2) 바울은 다시 그러면 무 할례자에게뇨 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율법과 상관이 없으며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없다고 하니 그러면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를 받을 수 없게 되었으니 이 같은 의의 행복은 무 할례자들인 이방인들에게만 돌아 갈 것이 아니겠느냐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3) 바울은 다시 의를 주시게된 하나님의 은혜를 아브라함에게 거슬려 올라가 그 근원을 제시했습니다.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를 얻은 일은 할례나 무 할례와 상관이 전혀 없었음을 밝힌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조상이요 그들에게는 가장 숭고한 인물이요 의의 상징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런 아브라함이지만 아브라함은 자기 행위로 의를 얻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의를 받았을 당시에 아브라함은 할례가 무엇인지 무 할례가 무엇인지 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할례나 무 할례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를 받았다면 하나님의 의를 받는 행복에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바울은 이처럼 그의 논증에서 칼로 벤 듯이 분명하게 들어냈습니다.
2. 아브라함의 의와 할례와 무 할례
하나님의 의를 얻는 일에 할례와 무 할례와의 관계를 설명함에 아브라함의 경우를 그 예로 든 것은 할례의 언약도 아브라함에게 주셨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의 언약도 아브라함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1) 아브라함이 의를 얻은 시기가 할례에 훨씬 앞섰다는 사실을 증거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시기는 99세시였습니다(창17:1). 이때 이스마엘도 아브라함과 함께 할례를 받았는데 이스마엘의 나이는 13세였다고 했습니다(창17:23-26).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믿음으로 의를 주신 시기는 아직 이스마엘이 잉태조차 되지 아니했을 시기였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시기와 할례를 받은 시기와의 시차는 적어도 14년간 이상이나 나있는 것입니다(창15:4-7).
그러면 아브라함이 왜 무 할례 시에 의롭다 하심을 얻었는가? 이에 대하여 바울은 감추어진 비밀을 들어내어 증거하기를 “이는 무 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무 할례자의 조상이 된다는 사실은 충격적인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의 자손으로서의 씨를 언약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그의 후손들에게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신 이 모든 언약이 무 할례자에게도 해당된다고 하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갈3:26-29).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무 할례자의 조상이 되게 하시기 위해 아브라함으로 무 할례 시에 믿음의 의를 주셨다고 말씀하고있는 것입니다.
(2) 아브라함에게 주신 할례의 의는 무 할례 시에 받은 의의 인 침이라고 했습니다. 할례는 의의 선언이나 의의 조건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지 아니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아브라함이 이미 받은 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할례의 언약은 두 가지 뜻에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믿음으로 의를 얻은 일에 대한 인 침이라는 사실입니다. 의의 인 침이기 때문에 의가 없는 사람의 할례는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신약의 세례란 구약의 할례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징표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없는 사람의 세례란 그것이 침례이건 세례이건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또 하나의 의미란 의를 얻은 자의 성별된 생활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할례가 다만 남자들의 양피만을 베는 의식으로 마친다면 그 의식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할례에 대하여 하나님은 분명히 영적인 뜻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신10:16, 30:16, 레2641).
이런 면으로 볼 때 육체가 받는 할례나 무 한례는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얻는 의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할례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부인한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일은 또한 할례자들의 조상도 되기 위해서임을 명백히 하므로 할례를 쫓아온 유대인이나 무 할례로 하나님의 법 없이 살아온 이방인들이나 다 함께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다고 하는 하나님의 진리를 천명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시는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율법을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셨다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헛것이요 믿음으로 의를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도 아무 쓸모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말게 될 것입니다.
결 론 : 믿음으로 의를 얻는 하나님의 언약은 신약시대에 와서 새삼스럽게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구원이나 의를 주시는 하나님의 계획이나 섭리에 있어서는 시대를 따라 연장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의를 얻는 일이라든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대한 축복의 언약은 이미 아브라함을 부르신 그때부터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와 구원의 은혜로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 같은 하나님의 약속에 포함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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